어쩌다보니 마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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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비
작품등록일 :
2024.09.13 10:19
최근연재일 :
2024.09.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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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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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기차 안에서(2)

DUMMY

4화.



히죽 웃어 보인 나는 땅에 박힌 채로 각혈하고 있는 청년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뭐, 뭘 하려는 거냐.”

“나를 죽이려 했으니 너도 죽어야지.”

“너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다. 너같이 유약한 놈이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많이 죽여 봤어. 그것도 아주 많이.”

“지랄···! 내가 지금 죽으면 저 마정석이 터져 네놈 또한 죽는다! 이상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고작 스크롤 따위로?”


퍼어엉!


이내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마정석이 천지를 울렸고.

그와 동시에 스크롤이 찢어지며 거대한 화염구가 세상을 적셨다.


단 한번의 폭발로 프로스크 변경백의 객실 문이 터져나가고, 매캐한 냄새가 VIP실 내부에 가득 찼다.


“에게.”


스크롤 마법은 책에서 본 대로 역시나 별것 없었다.

요란스러운···. 문따개 정도?


그와 동시에 일반실 문이 열리더니 반군 다섯 무리가 VIP 객실로 뛰어 들어왔다.

반군이 나와 청년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눈살을 좁히며 칼을 치켜들었다.


“네놈이 엘빈 경을-!”


반군의 노성에 나는 한걸음 물러서며 손을 들어 보였다.


“너무 급한 것 아닌가? 엘빈이 나를 배신하여 조금 데리고 놀았을 뿐이야.”


내 말에 반군이 얼굴을 구겼다.


“···. 제국군 제복을 입고 있는 네가?”

“카디스 폰 에르네포제.”


나는 제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에게 툭 던졌다.


“그리고. 이런 제복을 입고 있는 내가 널 살려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가 허겁지겁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놈이 먼저 공격하더라고. 총통의 총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나 뭐라나.”

“제길. 그렇군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프로스크 변경백작은 어디 있습니까.”

“방금 문이 열렸으니 어디인가 있겠지?”


반군 셋이 객실로 뛰어 들어감과 동시에 당황 섞인 음성이 들렸다.


“프, 프로스크 변경백이 죽었습니다!”

“뭐라···!? 전부 흩어져라. 각자 집결 장소로 흩어져!”


영국식 멜빵바지에 버킷햇 모자를 쓰고 구레나룻 기른 중년인이 소리쳤다.


이자가 반군의 수장인가 보다.

그가 땅에 박혀있는 엘빈에게 다가가 끄집어 올렸다.


꿈틀거리는 엘빈의 손가락.


나는 곧장 수장의 행동을 제지했다.


“말했지 않나. 날 죽이려 했다고.”

“데리고 가야 합니다. 혹여나 엘빈이 살아나기라도 한다면 당신이나 저나 신분이 들통날 게 뻔합니다.”

“들킬 일이 없게 하면 되겠지.”


꿀꺽.


중년인이 침을 삼켰다.


“수습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행동을 취하려 자세를 잡았다.


“나와 마주쳤으니 못가. 나는 네놈이 걸리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엘빈의 죽음이 네놈의 패가 될 것 같아서 말이지. 총통께 내가 배신자다 뭐다 하면서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여기서 살아나가려면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내 말에 수장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검을 엘빈 목울대 깊숙이 찔러넣었다.


들리지 않는 단말마.

축 처진 엘빈의 몸.


엘빈이 죽었음을 확인한 나는 씨익 웃으며 길을 비켜섰다.


“이제 한배를 탄 건가?”

“···.”

“도망 안 치나? 제국군의 목소리가 지근거리에서 들려오는데.”


[사, 살려줘!]

[반군을 제압하라! 모조리 죽여라!]


일반실을 틀어막은 반군의 비명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아군이 가까이 왔다는 것.


그 순간, VIP실에 들어갔던 반군이 웬 여자를 질질 끌어냈다. 축 처져 있는 게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프로스크의 애인.’


“프로스크 변경백의 딸입니다! 이 년이라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수하의 말에 반군 수장이 여인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걸 보니 높은 위치의 사람은 아닌 모양.


“왜 내 눈치를 보지? 챙길 것 챙겼으면 꺼져.”

“유약하다고 들었는데 소문과는 다르시군요.”

“그게 내 페르소나니까.”


다시 한번 웃어주자 반군 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꺼져라.

그래야 네놈들을 한곳에 모아서 죽일 수 있을 테니.


이제 제국군을 맞이할 차례.


의심받지 않게 엘빈의 피를 손에 펴 발라 얼굴 전체에 적시고.

그의 허리를 움켜쥐어 질질 끄는 모양새를 취했다.




#



열차는 멈춘 상태.

반군이 프로스크 변경백의 딸을 들춰 매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곧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군 십여명이 VIP 칸으로 넘어왔다.

푸른 제복을 입은 기사, 그리고 철제 갑옷을 입은 병사 무리였다.


소위 견장에 푸른 제복을 입은 기사가 나를 공격하려다, 내가 입은 제복을 보고 한 발자국 물러섰다.


“마도사···?!”


기사의 외침.


최대한 평온하게,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마음을 다잡고 엘빈의 시체를 무표정이 내던졌다.


“귀관은 내 제복이 보이지 않는가?”


그가 내 견장을 보더니 차려 자세를 취했다.


“대위님을 뵙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자가 프로스크 변경백을 죽이고 반군의 도주를 도왔다. 이름은 엘빈. 귀족이며 스크롤 술사다.”


내 말에 기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눈빛 속에 의심이 담긴 걸 보니, 대위 정도나 되는 마도사가 어째서 반군을 놓쳤냐는 듯한 물음인 듯했다.


“기습받아서.”


엘빈의 피를 얼굴 전체에 묻혔던 나는 앞머리를 치켜들며 마른 미소를 내보였다.

단순하고 순수한 웃음으로 상황을 넘긴다.


“죄송합니다. 아직 제국 수도권역 내인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의심했습니다.”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을 텐데?”


내 말에 기사가 뚫린 열차 문밖을 내다봤다.

그리고는 센저 강 다리 밑을 내려다보며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그를 뒤따라 열차에서 내리니 피가 다리 난간에 덕지덕지 묻혀 있었다.


기사가 제복을 벗고 강 아래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전부 나를 따라 센저 강에-.”

“적이 강으로 도주했을 거라 보는가?”

“···. 그게 무슨. 혹시 적의 도주로를 확인하신 겁니까?”


기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거짓말.

그래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엘빈은 나를 방패막이로 사용하려 했고 센저 강으로 뛰어들라 말했었다.

그 말은 즉, 제국군의 시선을 강바닥으로 돌리려 한 것 아니겠는가.


“난간에 묻은 피는 눈속임일 뿐이야.”


내 말에 기사가 푸른 신호탄을 쐈다.

신호탄이 어둠을 뚫고 칠흑 하늘에 깊게 물들었다.


“중대장님이 합류하시기 전에 우리 3소대는 전속력으로 다리를 주파한다! 그 후 강변으로 내려가 포위망을-.”

“아니지. 그게 아니지.”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어.

일개 소대의 병력으로 포위망이라니.

그리고 이런 야밤에 말이야.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소위 견장을 단 기사가 내게 물었다.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인가?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한다고?’


고개를 갸우뚱 꺾은채로 인상을 찌푸리자 기사가 군홧발을 부딪치며 차렷 자세를 취했다.

신출내기라 그런지 내 눈빛에 압박받는 듯했다.

나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놨다.


“포위망이라니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

“포위망이 언제 가장 많이 뚫리는 줄 아나? 바로 밤이야. 적들은 우리의 불빛을 볼 수 있고, 우린 적들의 불빛을 볼 수 없고. 불을 끈 채로 포위하더라도 불가능이다. 인간의 시야각은 나비처럼 317도를 둘러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교범에는 적을 포위할 수 있으면 포위하라고 되어있습니다.”

“교범과 실전이 같을 거라고 생각하나? 포위는 전적으로 대규모 군 집단을 말려 죽일 때 사용하는 전술이야. 소수 집단에 한겹 포위는 어서 지나가십쇼- 하는 것과 다름없어.”

“···.”

“예외가 있기는 하지. 포위망을 삼중으로 구축할 수 있을 때.”


강릉 무장 공비 사건 때 결국 김신조 일당을 잡아냈던 것처럼.

하나, 일개 소대를 데려와 놓고서는 포위를 구축한다?


이는 나중에 지원 나올 다른 병력들에게 혼선을 주는 일.


이미 적은 도망쳤는데 [아직 적이 내부에 있습니다!] 하면서 백사장에서 까조기를 찾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따라서.”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수풀을 가리켰다.


“1개 분대를 내보내 최대한 멀리 돌아가라 명한 후, 지형을 반으로 갈라라. 숲 북쪽은 험지이니 그곳에 병력을 보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적은 아군이 지나쳐왔던 길을 이용해 도주할···.”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줘야 하나?”


귀찮다는 듯 말하자 기사가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눈을 번쩍였다.


“그다음 분대는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숲에 진입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적군은 다시금 아군이 지나쳤던 길 아래쪽으로 향할 것이고···.”

“2개 분대를 지나친 후, 그다음 분대를 맞닥뜨리겠지.”

“그럼 저들은 다시 아군이 밟아온 길 위에 서겠군요.”

“아주 멍청이는 아니었군. 그럼 먼저 나아간 두 개 분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


답을 알고 있지만 눈치를 보는 기색.


“우회해 적을 감싸면 되겠지.”

“그렇군요. 그렇게 된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소수의 병력으로 포위망이 구축되겠군요.”

“토끼몰이. 결국 저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제국군의 물결에 이내 열차 길 위에 서게 될 거야.”


내 말에 기사의 표정에서 약간의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는 작전을 전달할 병사 하나를 중대가 있을 본영으로 보낸 뒤,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 기병대를 상대로 내보인 전술이었다.

장창병, 조총병 조합으로 궁 기병대를 상대하려면 기병의 발을 묶어둬야 했고, 집중사격이 가능한 적절한 위치로 내몰아야 했다.

그렇게 일본군은 소수의 병력으로 우회하는 조선 기병을 공격받지 않을 좁은 지형에서 토끼몰이하듯 옥죄었고.

조선군 기병대가 그대로 활동 공간을 상실하면서 표적으로 전락해버렸다.


지나쳤던 일본군이 그대로 방향을 틀어 조선 기병의 뒤를 막아섰고. 그렇게 선봉장 이자시 백광언이 일본군에 의하여 전사했다.


이게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육군 전술.


지금 상황에서 험지를 뚫어야 하는 조선 기병은 반군.

적을 적절한 위치로 내몰아야 할 일본군은 제국군.


딱 그 상황과 같았다.



#



전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뒤늦게 도착한 기사 중대 중대장이 앞선 소위의 전술을 수용했고.


아군이 물결을 일으켜 나아가며 적을 천천히 옥죄기 시작했다.


강직한 얼굴로 전선을 지켜보던 푸른 제복의 청년 중대장이 내 옆에 섰다.

나이대는 이십 대 중반, 지금의 나와 동년배로 보였으며 늑대처럼 꽤 잘생긴 사내였다.


“제 휘하 소대장에게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관의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알고 나면 놀라실 텐데.”

“그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셨습니까? 괜찮습니다. 이미 실전적인 전술에 가슴 뛰도록 놀랐는데 어떻게 더 놀라겠습니까, 하하하. 혹시 북부 전선에 계셨던 분이십니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 두루뭉술한 대답에 중대장이 눈에 물음표를 담았다.


‘누구지 하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카디스 폰 에르네포제입니다.”

“···.”

“작전이 잘 먹히면 소문 좀 내주십시오. 이놈이 멍청이는 아니더라, 하고.”

“에이, 농담하지 마십시오. 그 카디스가 어떻게 이런 전략을 선보이겠습니까?”

“그 카디스가 맞는데.”


지갑이···.

어디 보자.


···.


없다.

없다!


제길! 반군 새끼 손에 있구나!


생포되게 해서는 안 된다.

쓸데없는 의심을 받을지도 몰라!


곧장 판단을 내린 나는 전선으로 발을 옮겼다.

중대장이 뒤따르며 말을 붙여온다.


“열차 복구 작업에 들어갔으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복구고 나발이고 그게 문제가 아니야.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럴싸한 핑계를 위해 비정함을 연기하며.

죽어있는 엘빈을 뒤꿈치로 찍어눌렀다.


“피 맛을 본 사냥개가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면 그게 애완견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작가의말

재밌게 읽으셨다면 추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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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출발. 24.09.13 5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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