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4)
진주만 공습은 최초로 미국이 타국에 본토가 공격당한 일이었다.
처음에 이 소식이 미국민들에게 알려졌을 때, 그들이 느낀 최초의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여태까지 미국인들은 한 번도 자신들의 나라가 공격받을 것이란 걸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찾아온 감정은 바로 분노였다.
여태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다가, 공격한 당사자가 그동안 충직한(?) 파트너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미개한 동양의 나라인 일본에 받은 공격이란 사실은 곧바로 더욱 큰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다.
동양인이 서양인을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양인들도 동양인들을 민족이나 나라에 따라 구분하는 것을 무척이나 어려워했다.
아니, 사실 이 당시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을 구분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터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양인들은 모두 미개인 다른 인종일 뿐, 동양인들의 차이, 즉 일본인이나 중국인, 한국인 등으로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모두가 동양인뿐이었다.
이 말인즉슨, 중국인과 함께 동양인을 대표하는 또 하나였던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곧바로 모든 동양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확대될 가능성이 컸고 실제로도 일본인에 대한 분노는 모든 동양인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에는 당연히 한국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일부 오해한 미국인들 중에는 아이언 마스크로 인해서 한인들의 대표 이미지가 된 코리언 마스터를 모티브로 한 도장으로 찾아와서 배신감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는 또 다른 인종차별의 기폭제가 될지도 모를, 눈앞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재임으로서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의 행태로 인해서 그동안 한국인(이하 한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던 모든 일이 수포가 될 상황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년 초에 있었던 일본국적자에 대한 재산동결조치였는데, 만약에 여기에 재임이 빠르게 대처해서 일본에 의해서 강제로 식민지가 된 한국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일본국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인들에 대한 오해를 풀고 동결조치를 빠르게 해제하지 못했더라면, 진주만 공격 사건과 연결되어 재산동결조치에 대한 해제가 더 오래 걸리는 것을 넘어 어쩌면 긴박하게 돌아가는 지금 상황에서 한인들이 오해를 받아 일본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한인들에게까지 그대로 적용되어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이루어진 한인교민회 간부와의 회의에는 재임을 비롯한 이상설과 안창호, 서종현과 유일한 등 한인교민회의 핵심간부들이 모두 참여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재임이 묻자, 안창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는 없었단다. 특히 이곳 하이랜드나 브루클린의 경우에는 이전과 다른 변화는 없다고 하더구나. 다만, 브루클린 외곽으로 나가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는 보고가 있단다. 맨해튼이나 저지 시티에서는 일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고 하더구나.”
“흠.... 펜실베니아와 메릴랜드를 비롯한 다른 곳의 상황은 어떤가요?”
서종현이 나서며 대답했다.
“그곳도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동안 우리 한인교민회를 필두로 모두가 노력해왔던 것이 있으니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휴우~ 문제는 앞으로겠죠.”
재임은 깊은 한숨에 서종현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조금 전에 언급했듯이 하이랜드와 브루클린 등 우리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역은 그동안 지속해서 다져온 이미지와 노력이 있어서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앞으로 진행될 전쟁의 여파에 따라서 달라질 공산이 큽니다.”
“그 말은....”
“네. 전쟁이 지속 정도나 미국이 입을 피해에 따라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아직 미국인들은 한인과 다른 동양인, 특히 일본인과 구분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일본에 의해서 파생된 부정적 여론은 당장은 괜찮더라도 언젠가는 한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서종현의 말에 안창호가 덧붙였다.
“최대한 일본과 우리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장 중점을 두고 부각 시켜야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재임이 다시 물었다.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모두가 고민하는 사이 유일한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으로서는 동질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동질감?”
안창호의 물음에 유일한이 말을 이었다.
“네. 실제로 한인들도 미국인들처럼 일본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란 점도 부각하게 시키는 겁니다. 저는 여기에 두 가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한인이 미국인과 같은 동병상련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한인의 존재, 즉 한국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당장 미주 한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동질감을 얻어내어 좀 더 미국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다른 하나의 효과는 바로 한인, 한국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존재를 알린다고요?”
유일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입니다. 동양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을 떠올릴 뿐이죠. 한인,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일본과 싸워야 하는 미국에 동양에 중국 말고도 또 다른 대안이 있다고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의 독립문제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의 동정표와 미 행정부에 협력자(?)가 될 수 있다는 이점은 그동안 무시당하여왔던 한인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거라 판단합니다.”
안창호가 동조하며 말했다.
“네, 유일한군의 말이 맞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나서서 일본의 비난하고 이번 전쟁을 지지해야 합니다. 더불어 징병에도 적극 참여해야 하고요. 그래야만, 유일한군이 말한 대로 미주 한인이 온전히 미국의 한 부분이 될 기회와 더불어 한국이 독립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위기와 고난을 함께 한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동지의식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요. 더불어 이런 동지의식은 그동안 우리를 억압하고 있던 인종차별 어린 미국인들의 인식에서 한인들을 한걸음 떨어뜨리는 기회도 될 겁니다.”
“대신에 한인들이 그만큼 희생을 감수해야 할 만할 일이 생길 겁니다.”
“감수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겠죠.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까요.”
모두의 한숨이 깊어졌다. 한숨을 딛고 재임이 물었다.
“모두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이번 유럽전쟁은 모르겠지만, 태평양 전쟁은 한인들에게 있어서는 독립전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점을 잘 알린다면, 많은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안창호 역시도 깊은 한숨을 내쉬면 호응했다.
“그 말대로입니다. 이번 전쟁은 한인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나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어려움과 희생이 예상되지만, 동시에 기회가 될 겁니다. 휴우~너무 냉정하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희생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이후 벌어질 전쟁과 이후 상황에서 많은 지분을 얻어내지는 못할 겁니다. 사실.... 이건 저의 힘만으로도 되지 않고, 한인들 힘만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궁극적으로 독립을 이룰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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