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6)
"자네가?”
양 씨의 뜻밖의 말에 김우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하와이로 돌아가기로 한 거 아닌가?”
김우관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는 다르게 동지회로부터 하와이로의 뱃삯을 지원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양 씨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김우관의 말에 대답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어. 알다시피 이곳은 더 이상 동양인들이 살만한 곳이 못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사실 이대로 하와이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한테 뭔가 별다른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양씨가 말을 이었다.
“휴우~ 생각해보게나. 그래, 자네와 달리 난 다행히 동지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하와이행이 가능했지. 하지만, 그뿐이라네. 하와이에 가는 것까지만이야.”
“에이~ 그래도 동지회에서 불러들이는 건데 그냥 모른 척하기야 하겠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네도 알지 않나. 이 박사님께서 본토에서 쫓겨나듯이 물러나신 후 요즘 동지회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야.”
“끙~~~”
“휴우~ 솔직히 나는 불안하다네. 과연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에도 동지회의 도움이 계속될지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난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잠시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양 씨는 이내 속삭이듯이 말을 더했다.
“사실 난 동지회의 미래도 불안하다고 봐.”
“뭐?”
갑작스러운 양 씨의 말에 김우관이 더 놀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큰일 날 소리 하지 말게나. 이 박사님은 반드시 다시 일어서실 거야!!”
순간 찔끔한 양씨가 슬쩍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네. 하지만....”
김우관은 더 이상 이야기를 막으려는 듯 소리치듯이 말했다.
“알겠네. 자신할 수는 없지만.... 내 함 알아봄세.”
양 씨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부탁했다.
“잘 좀 알아봐 주게나.”
“암! 나만 믿고 있게나.”
동지회관을 빠져나오면서 김우관은 자신이 친 큰소리에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도 아내의 덕에 간신히 마련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좋지? 그렇게 큰소리를 쳐놨으니..... 에고~ 무슨 바람이 들어서....’
하지만 김우관으로서도 사정이 있었다. 불안에 떠는 양 씨를 그대로 외면할 수도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사실 양 씨는 그는 김우관이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이후로 지속해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휴우~ 어떻게든 마누라에게 비벼볼 수밖에 없나?~’
김우관은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괴로워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동지회관 2층에서는 그런 김우관을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양 씨와 또 다른 동지회의 간부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하와이로 가지 않겠다니?”
“조금 전에 나간 김씨(김우관)가 이번에 동부로 이주하는 티켓을 얻었는가 봐. 그 자리를 쫓아가 보려 한다네.”
“동부에?”
양 씨의 말에 동지회 간부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 이 박사님이 돌아오라고 하신 명령을 거부할 생각인가? 왜 갑자기 자네가 그 위험한 곳으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구먼.”
간부의 말에 양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종의 도박이라네. 자네도 알지 않은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말일세. 지금처럼 하와이에[ 갇혀 있다면 동지회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단 말일세. 난 이대로 이 박사님이 사그라지는 것을 볼 수는 없다네.”
“그래서 지금 이 박사님도 위험하다고 하는 동부로 가겠다고? 동지회 핵심간부인 자네가?”
양씨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 박사님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겠나? 자네 기억하나? 처음 이 박사님이 하와이에 오셨을 때 말일세? 누구한테도 환영받지 못한 분이셨어.”
“그래, 그랬지. 생각해보니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안구만.”
“그래서 모험이 필요하다는 말일세. 모두가 망설일 때 용감하게 아니라고 한 분이 아닌가? 그들이 이 박사님을 견제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게나. 이 박사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임시정부의 꼭두각시가 되어 부질없는 독립운동에 힘을 낭비하고 있었을걸세.”
양 씨의 열변에 동지회 간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분을 다시 쫓아낸 것이 바로 한인교민회와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었지.”
“우리에겐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네.”
“하지만 동부는 너무 위험해. 가진 정보도 부족하고 말이야.”
“그래서 김 씨를 쫓아가려 하는 것일세.”
“그래서라고?”
의문 어린 표정의 간부를 보며 양씨가 대답했다.
“그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아내가 MMC의 말단 간부급이거든.”
“MMC의 말단 간부급이라고? 이제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 갓 1년이 넘은 여자가? 대단하구먼.”
놀란 간부의 물음에 양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지. 나도 알고는 놀랐다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네. 솔직히 김씨가 어떻게 MMC의 동부행에 참여할 수가 있었겠나? 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더구나 아무리 지금 상황이 급변해서 어수선하다고 해도 MMC는 아무나 받아들이고 지원해주는 곳이 아니고 말이야.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렇지.”
사실 MMC는 동지회도 주목하는 단체였다. 이승만은 MMC의 지도자가 재임의 아내인 것과 이를 바탕으로 MMC가 벌이는 사업과 세력,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서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이승만의 지시하에 MMC로의 침투(?)가 동지회 차원으로 추진되기도 했지만, 여태까지는 난공불락이나 마찬가지였었다.
기본적으로 종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그 단결력과 견고함이 다른 단체와 궤를 달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동지회와 관련돼 인사가 MMC의 간부급에 이름을 올린 것 같다는 말이었다. 이는 동지회로서도 중요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아~! 그래서 자네가 따라가려는 것이구먼?”
간부의 물음에 양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겸사겸사라네. 하지만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동부에 거점을 마련할 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네.”
“어떻게 하려고?”
“일단 최대한 그들이 되어봐야지. 그래서 이번 동부 이주에 끼어드는 것이 중요하고.”
잠시 고민하던 간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 박사님에게도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 뭐 도와줄 것은 없겠나?”
“소문이 필요하다네.”
“소문?”
“네가 동지회와 관련이 없다는 소문 말일세.”
“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 자네 관련 자료는 함구하도록 하지. 잘 되어있으면 좋겠구먼.”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결과적으로 어려움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양 씨는 결국 MMC가 주선한 동부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
간신히 설득한 김우관이 마음을 돌릴 것을 걱정한 김우관의 아내가 어렵사리 MMC에게서 허가를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목적과 마음을 품은 김우관과 가족, 그리고 양 씨의 가족이 포함된 동부 이주단 50가구 227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희망과 불안감을 안고 머나먼 동부로 향한 대장정에 올랐다.
이후 미주한인사에 소련에서 대규모의 한인이 이주한 엑소더스와 비교해서 작은 엑소더스로 불리게 된 5단계에 걸쳐 진행된 이주단의 3번째 행렬이었다.
그들이 앞으로 도착할 동부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변해갈지 지금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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