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각각의 전투 (11)
“이게 뭡니까? 미리 이야기가 되어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뭡니까? 왜 돕기로 했다던 던(Dawn)가 측에서 이런 반응을 보인단 말입니까?”
“....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사전에 이야기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욕설 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당신을 믿고 일을 진행했는데..... 제 입장이 얼마나 곤란해진 줄 아십니까?”
“....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로지 좋은 뜻에서....”
“설마 제가 도우려는 순수한 의도를 이용한 것은 아니겠지요?”
“....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절대 그런 의도가 없었...”
“닥치세요!!! 당신을 믿은 내 자신이 한심스럽군요. 앞으로 다시는 제게 연락하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수화를 내려놓으며 이승만은 작게 혀를 찼다.
“쯧쯧~~”
나름대로 빈틈을 노린 수라고 생각했는데, 좌절됐기 때문이었다.
“뭐~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였다. 남겨놓은 끈 중의 하나가 사라진 것도 타격이라면 타격일 테고 말이다.
더군다나 이번 일도 발각이 되었을 테니, 앞으로 같은 방식으로 일을 도모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게 뻔하니, 사실 오브리엔에 대한 아쉬움은 이승만에게는 그 정도일 뿐이었다.
“자~ 그럼 어찌한다?”
생각보다 한인교민회 측, 아니 재임 측의 대응이 빨랐던 것이 문제였다. 이것으로 확인한 것은 생각보다 정계에 퍼진 재임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이승만은 준비한 작전은 단순히 오브리엔을 통해서 결의안 제출하는 것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계획의 실제적인 목적은 홍보에 있었다. 어느덧 조금씩 사라져가는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부각하게 시킬 기회로 삼으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승만은 오브리엔의 결의안 제출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언론매체, 주로 한인 관련 언론매체에 이 소식을 알림으로써 자신의 떨어진 입지를 다시 세우려고 했었다.
문제는 결의안이 제출되자마자, 바로 미 정부에 의해서 거부되었다는 점이었다.
최소한 한인교민회, 더 정확히는 재임을 따르는 이들이 돌발상황에 우왕좌왕한 사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쯧쯧~~ 최소한 상정논의 단계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주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오브리엔의원에 대해 너무 후하게 평가했었던 싶군.”
이승만에 아쉬움에 읊조렸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딱 그 정도의 아쉬움이었다. 얻은 것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번 결의안 제출문제로 인해서 늦었지만, 이승만은 다시 한번 잊혀가는 자신의 이름을 한인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비록 바로 거부당하는 바람에 효과는 제한적이었지만, 그동안 한인교민회에서 간과하던 부분을 찌른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이 일로 인해서 재임과 한인교민회의 더욱 강한 견제를 받게 되겠지만, 지금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이 점을 잘 이용하면 그들의 대항마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실제로 이번 일을 기획하면서 미주 한인 개신교 세력인 기독교친인회의 지지는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어부지리인 측면이 컸다.
재임의 한인교민회의 뒤에 사실상 MMC, 즉 가톨릭 세력이 함께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기독교친인회측으로서는 이런 정황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한인교민회의 성장과 서부 진출에 따라 기존의 한인 개신교인들이 대거 MMC로 넘어가고 있는 형국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초기에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실제로 힘이 있던 한인 단체의 등장은 전체 미주 한인사회의 입장으로 볼 때는 긍정적이기에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라 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이미 기존에 많은 나름의 영역을 확보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MMC 등장은 불편했지만,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는 쪽이 기독교친인회의 기본 입장이었다.
문제는 한인들의 대규모 입국이 벌어지면서부터였다. 이를 기반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MMC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것이 더 정확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려를 표하기는 했지만, 기독교친인회가 MMC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까지는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결정타를 날린 일이 생겼으니, 바로 초기부터 미주 기독교 주요 인사 중의 하나였던 도산 안창호가 MMC로 개종해버린 일이었다.
사실 서부지역에서 안창호의 인지도는 여타 다른 지도자급 인사 중에서 독보적이었다. 이승만도 하와이지역에서나 더 높았을 뿐이었다.
그런 안창호의 개종은 많은 이들의 변심을 이끌었다.
더구나 MMC 뒤에 안창호는 물론이거니와 이상설을 비롯한 많은 독립인사, 거기에 더해서 뒤에 존재하는 동부의 이름 높은 가문인 던(Dawn)가의 재임이 뒤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기독교친인회는 위기감에 물들었다.
실제로 급속도로 교세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독교친인회측으로서는 MMC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줄 사람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현재 그럴만한 인지도가 있는 사람은 이승만뿐이었다.
이것이 기독교친인회가 이승만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지금 임시정부에서 기호세력들이 이승만에게 매달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친인회에서 다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은 것은 이승만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기회라 볼 수 있었다.
비록 미국에서는 MMC에 비해서 소수로 힘이 약지만, 미국 이외의 지역, 특히 한국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가 바로 기독교친인회로 대표되는 개신교 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한인교민회의 견제인데.....'
사실 이승만은 한인교민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이상설이나 안창호의 존재는 위협적이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자신이 권력을 잡게 되면 자신을 따를 거라고 봤다.
문제는 한인교민회 뒤에 존재하는 재임과 던(Dawn)가였다. 지금은 이승만으로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승만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말 그대로 뾰족한 방법이 없었으니까.
'지금으로서는 기회를 기다리며 대중들이 나를 잊지 않도록 어필하는 것이 먼저야. 분명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생길 테니까.'
사실 이번 결의안 제출문제로 이승만은 기독교친인회를 물론이고 한인교민회에 반하는 이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재임을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공화당 측 인사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다시금 정치권과 연결될 고리를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나름대로 히든카드(?)인 오브리엔 의원을 버려버리는 결과가 되었지만, 이로 인해서 대항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걸림돌 정도로 인식되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이승만으로서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희망의 끈이 살아있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몸을 사릴 때였다. 더 이상 재임과 한인교민회 주목을 받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으니 말이다. 지금은 오브리엔처럼 대리인을 내세우고 자신은 잠시 시선을 피해 있어야만 할 때였다.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틈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난 이대로 죽지 않아. 기회는 반드시 올 테니까!!!”
이승만은 창문 밖으로 노을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렇게 결의안 사건으로 미주 한인사회가 정신이 없어 하던 그때, 미 해군 암호해독팀 블랙챔버의 팀장 조셉 로시포트 대령은 자신을 찾는 팀원의 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대령님, 확인되었습니다.”
로시포트 대령은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물었다.
“확인되었다고? 결과가 나온 건가?”
“네, 조금 전 일본해군 통신암호를 해독한 결과 AF에 관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어디 줘봐!”
로시포트 대령은 급하게 팀원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서류에 빼앗아 시선을 고정했다.
[.... 공작의 결과를 확인한 결과 AF는 미드웨이임을 확인했습니다.]
“됐어!!!”
로시포트 대령는 손을 든 종이를 들고는 급하게 체스터 니미츠 해군 참모 총장실을 찾았다.
“장군님! 알아냈습니다. 미드웨이입니다!”
- 작가의말
참고로 오브리엔 의원이 실제로 결의안을 제출한 것은 1943년 3월에 있었던 일로 소설의 변화된 배경으로 인한 전개 상 앞당긴 것으로 설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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