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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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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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3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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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쌀쌀하고 살가운(3)

DUMMY

점토 인형이 떨어진다. 나는 그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봤다. 손으로 잡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손이 닿기도 전에 인형은 바닥과 충돌했고 두 동강 났다.


에반젤린이었던 것의 몸통이 반토막나고 팔이 부러졌다. 삐죽하던 발끝도 뭉툭해졌고 얼굴에도 번갯불 같은 금이 갔다.

점토인형이란, 원래 마르고 나면 흠이 나기 더 쉬웠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에반젤린은 점토 인형이 아닌데 왜 금가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역시..."


에반젤린의 목소리는 금이 간 것처럼 떨렸다.


"겨울이 걱정되시는 거죠? 그런데 제가 눈치도 없이 이불 같은 거나 드린다고 하고..."


대체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에반젤린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아니 그거면 돼. 뭘 더 한다고."


가끔 익힌 돌이나 끼고 자면 되지.

정말 뭘 해줄지 생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잠시 입술을 말아 물었던 에반젤린은 이내 결심하고선 내 손을 더 꽉 눌렀다.


"벽난로라도 놔드릴까요?"


너무 파격적인 이야기여서 나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이것저것 다른 것은 잠시 묻어두더라도 어떻게 작은 목조 방 안에 벽난로를 놓겠다는 걸까.


"그걸 하면 내가 죽지 않을까?"


클로에한테 말이다.


"아. 그러네요. 굴뚝도 필요하겠죠? 그것도 제가 해볼게요. 어떻게든!"


아니 그러니까 그걸 하면 내가 클로에한테 죽지 않겠냐고.


"어, 음...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나는 에반젤린의 손을 빼서는 몸을 숙여 떨어졌던 인형을 주웠다.


"추워서 그러는 거 아니니까."


부서졌던 조각들을 건네주자 에반젤린은 조심스레 그걸 받았다.


"그럼 갑자기 왜...?"


하지만 단지 받았을 뿐, 여전히 내가 대체 왜 갑자기 용병이 되겠다고 한 걸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전에는 내가 뭘 하든 응원해준다면서."


걱정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나는 대충 넘겨보려고 했다.


"아 그건 그렇지만... 저는 레이크님이 몸에 문신을 새긴다던가, 흉터자국을 만든다던가... 뒷골목에서 혓바닥을 내밀며 사람들을 조롱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니 내가 무슨 도적이나 산적이 된다고 한 게 아니잖아."


난 분명 용병이라고 말했었다.

돈을 받고 무력이 필요한 곳에 대신 가서 일하는 사람.

험한 일의 특성상 난폭하게 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지금의 에반젤린은 그런 것보다도 단순히 너무 놀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치만!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이직이라니. 너무 좋은 조건은 한 번 의심 해보셔야 한다고요!"


"아니 그러니까..."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나는 왜 그런 농담을 하게 된 것인지 천천히 설명해주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셔스 경도 그렇고 알랭가로도 그렇고 이 일은 은밀히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마법사 길드 같은 곳에서 나설 필요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즉, 일단은 나부터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 이것도 일단은 비셔스 경의 추천으로 된 거라고 할까..."


"아무리 그래도 저랑 상의도 없이..."


"에이, 뭘 상의를 할 것까지야."


그 말은 실수였을까.

어쩐지 에반젤린의 눈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할까.

시선이나 손가락의 움직임처럼, 작은 몸가지마저 부드럽던 에반젤린이 차게 식은 것이다.


노려본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 실망과 원망이 가득한 눈빛이란 겪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한 짓에 비하면 지나치게 '과분한' 원망이었다.


"왜죠?"


에반젤린은 나에게 딱 그렇게 물었다. 왜죠?


"아니 왜냐고 하면..."


"레이크님에겐 제가 그거밖에 안 됐던 거군요..."


"아니 그런 거 상의하겠다고 물어보는 것도 반대로 조금 부담스럽고 그렇지 않아?"


"저는 항상... 레이크님이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지는 않으셨을까 걱정하곤 하는데. 레이크님은 그렇게 도망칠 궁리만..."


"갑자기 도망을 왜 가. 안 갔잖아."


그리고 나이가 몇인데 침대에서 떨어지냐고.

혹시 떨어진다 해도 내가 무슨 점토 인형처럼 부서지기라도 하나?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나는 슬며시 오른쪽으로 발을 뺐다.


"어쨌든 난 이제 가봐야 하니까..."


그러자 에반젤린이 내 오른쪽으로 서서 앞을 막았다.


"왜요?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인상이 부드러운 사람도 이렇게 훅 들어오면 역시 무섭구나.

나는 한 발짝 다가온 에반젤린을 피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아. 그, 동료가 밖에서 기다리기로 해서..."


"동료?! 레이크님의 동료는 저인데?"


에반젤린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아닛. 에반젤린만 있는 건 아니니까..."


"누군데요? 남자? 여자? 아니면?!"


남자도 여자도 아니면 그게 대체 뭔데요.


"어쨌거나 그 분과는 상의를 하신 거네요?"


"아, 저기... 상의 얘기라면 나 우리 엄마랑도 상의 안 했어..."


"그럼. 지금이라도 여쭤보러 갈까요? 방문 선물로는 뭐가 좋을까요. 동생 분들이 많다고 하셨으니. 역시 과자?!"


에반젤린은 이제 턱밑에서부터 날 압박했다.

이 이야기가 우리 집 가자는 이야기로까지 흘러갈만한 게 아니었을 텐데.


"뭐야."


그즈음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우라가 오자, 에반젤린은 약간은 기세를 접고 물러났다.


"레이크 왔네. 에반젤린이랑 뭐해?"


걔는 이게 무슨 사태인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레이크님이 다른 동료랑 떠나신데요... 저는 쓸모가 없나봐요..."


에반젤린은 굉장히 시무룩해져서는 한숨까지 섞어 말했다.


"아니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까딱 했다가는 희대의 쓰레기가 될 판이었다.


"히이! 세상에. 레이크 너, 그렇게 막 사람 차별해가면서 골라 사귀고 그럼 안 돼."


뭘 잘났다고, 야우라는 나에게 되도 않는 설교를 하려 들었다.

벌써부터 몹시 재미있는 일이 생겼구나 여기는 듯 했다.


"내가 그랬으면 너랑은 벌써 척을 졌겠지."


싹은 조기에 잘라내야 하기에 나는 곧장 받아쳤다.


"아앗! 얘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뭐 어떤데!"


"클로에한테 가서 물어보던가!"


"뭐어? 너 두고 봐?!"


이를 갈던 야우라는 대뜸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클로에에게 묻기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더니 이내 직접 그 애를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나를 보는 클로에의 시선이 어째 곱지가 못하다.


"레이크 너는, 어쩜 애가 그러니?"


대번 첫마디부터가 표정 그대로였다.


"갑자기 뭐가?"


뜬금없는 날벼락에 나는 절로 야우라를 보게 되었다.


"너, 뭐라 그랬어."


"...몰라. 들었던 얘기만 한 건데?"


정작 야우라는 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쟤는 클로에가 화낼 때만큼은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나마 그게 다행이다.


"에반젤린한테 쓸모없다고 했다며?"


"내가 언제 그랬냐고!"


대체 무슨 일을 거치면 없었던 일이 사실이 되어있느냔 말이다.


"그럼 에반젤린이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는데?"


"나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 사제님 마음을 본인 말고 누가 알겠어요!


"아무리 마음 상할 일이 있었다 그래도 할 말이 있고 아닌 말이 있지."


"아, 거. 내가 내 살 길 알아서 찾는다는데 더럽게 시끄럽네 진짜잇!"


내가 참지 못하고 질러버렸을 때 에반젤린은 얼굴을 가리고 통곡했다.


"아아! 벌써 저렇게 말투도 난폭하게 변해서...!"


"여러모로 오해가 좀 있으신 거 같아요, 여러분! 예?!"


그렇다 하시니 나는 말투를 바꾸어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정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이 극적으로 튀어 나오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뭐야. 그럼 제대로 말을 해봐. 왜 그러는데?"


듣고 있기가 답답한지 야우라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그 말을 지금 할 수 없다니까 그러네!

나는 지지부진한 이유를 속마음으로 전달했다.


그 때 각진 얼굴이 보였다. 알랭가로가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막 도착한 것인지, 기다리다 지쳐서 들어온 것인지, 웬 소란인지 궁금해서 구경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왔다!"


나는 기쁘게 소리치며 다른 애들을 뚫고 나가 알랭가로의 옆에 섰다.


"동료 왔어, 동료! 이제 가야 돼. 갈게!"


질문을 하거나 딴죽을 걸 시간 따위를 주어서는 안 된다.

나는 영문을 몰라 버티고 서는 알랭가로의 등과 팔을 당기고 밀어가며 길을 재촉했다.


"네? 동료라는 분이 저렇게 우락, 부락... 아니... 그러니까... 아아..."


알랭가로를 보고 놀라던 에반젤린이 갑자기 이마를 짚고 현기증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클로에와 야우라가 얼른 부축하지 않았다면 넘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에겐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우직한 알랭가로의 걸음을 더 더 더 재촉했다. 갑자기 우락부락이 어쩌고 하며 사람이 쓰러지니 얼떨떨한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알랭가로는 별 다른 저항 없이 밖으로 나왔다.


"방금 그 사람, 괜찮은 건가? 쓰러진 것처럼 보였는데."


뒤늦게야 찬찬히 돌아볼만하게 된 것인지 알랭가로가 물었다.


나도 설마하니 에반젤린이 그리 크게 휘청거릴 줄은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알랭가로의 얼굴은 그렇게나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제와 전부 다 까발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미안하지만 오늘은 매정해져야만 했다.


"괜찮아요. 자주 저러니까."


게다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빠져나갈 적절한 기회이기도 했다.


여전히 완전 납득하진 못한 것 같았지만, 알랭가로는 잔말은 그만두고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은 나에게 모포 더미 같은 것을 내밀었다.


옷이었다. 가장 먼저 윗도리,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두껍게 덧댄 옷. 그 다음은 조끼였다. 그리고 장갑. 마지막으로 푹 눌러쓰는 챙 없는 가죽 모자를 끝으로 나는 완전히 복식을 바꾸게 되었다.


어쨌거나 가지고 나온 검까지 들쳐 매자 그로서 나는 얼추 용병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뭔가 본격적으로 하는 느낌은 좋은데, 그걸 뒷골목에서 했다는 게 참 모양 빠졌다.


이게 다 하늘그림 녀석들 때문이야.


"그래서. 이제부터 어떡할 건데요?"


나는 괜한 원망은 그만두고 너무 깊어 자꾸 눈꺼풀을 누르는 모자를 두 단 접어 올리고서 말했다.


"우선,그 우라신교 성당이 있던 자리에 가보는 게 좋겠지."


알랭가로가 말했다.


"네? 그 사람들은 다 도망갔다면서요."


"대신 그 자리에 펍이 하나 생겼어."


성당은 사라졌는데, 그 자리가 버려진 게 아니라 곧장 펍이 생겼다.

의심하자면 의심할만한 것 같기도 했다.


"뭐... 그런 곳이라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전도를 하거나 집회를 하기도 좋겠죠."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우선 거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마스터도, 비셔스 경도 그러더군."


"그런 거라면 이런 건 필요 없지 않아요?"


나는 팔을 높게 들어 두껍게 입은 옷가지를 보였다. 옷이 무거워 죽겠다는 건 아니지만 일부러 갑갑하게 입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의심하고 있을 테니까. 부자연스러워 보일 부분들은 최대한 줄이는 게 좋겠지."


동네청년이 펍에서 어슬렁거리는 것보다는 놀러온 용병이 회포나 푸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건가.


"그것도 그러네요. 알았어요. 이제 가보죠."


그리하여 알랭가로는 우라신교의 성당이 있었다는 자리로 날 데려갔다.


겉모습은 그럴듯했다. 성당하면 사람들은 색유리를 떠올리곤 했는데, 이 곳의 창문 역시 드문드문 색유리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 다른 용도로 쓰던 것을 개조한 것인지 크고, 많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색유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그럴듯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펍이었다. 새로이 간판도 걸려있었다. 가게의 이름이 적혀있지는 않았다. 그저 주류와 안주라는 글자가 병 모양 그림과 함께 적혀진 게 다였다.

제 목적에 충실한 간판이다.


우리는 곧장 들어가지 않고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봤다.

알랭가로는 저곳에 갈 수 없다. 아니,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이렇게까지 공들였는데 사소한 실수로 말아먹는 건 이 사람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겠지.


"자네는 적당히 얘기하면서 어울리기만 하면 돼. 무슨 의심 가는 말이라도 듣는다면 그걸 우리에게 전해주고."


"알았어요."


어려운 일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선뜻 답했다.


"그래도 위험해질 것 같으면 빠져나와야해."


"무슨 일 있겠어요?"


용병 일을 한다는 건, 힘좀 깨나 쓴다는 표시와 같았다. 존경하지는 않을지언정 함부로 구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럼 몸 조심하게."


"마법사님이나 조심하세요. 그 눈에 띄는 덩치 들킬라."


하도 염려가 많아 나는 시시한 농담이나 하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른 데 들를 것도 없이 바로 펍 안으로 들어갔다.


특유의 갑갑하고 뜨뜻미지근한 공기가 얼굴에 훅 닿았다.

기름 볶는 냄새도 술 냄새도 난다.

실내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또 어두운 편이었다.

시끄럽고 야단스럽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낡아빠진 카드를 가지고 노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기껏해야 입구 근처에서 놀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것이 전부다. 그 사람도 금방 내게서 관심을 돌렸다.


음...


호언장담하기는 했지만 막상 발을 들이자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아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뭘 하라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나는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길처럼 빠져나와 바 앞에 앉았다.


조금 떨어진 건너편엔 주인장이 쓰고 난 나무잔을 정리하며 이쪽을 힐끔힐끔 보았지만 특별히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다.


아, 나 지금 용병이지.


"여기. 맥주 한 잔 줘요."


난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예예."


내가 돈을 낼 의향을 보이자 주인장은 곧장 싹싹하게 말하며 한 잔 가득하게 맥주를 채워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돈은 나중에 나미얀에 가서 달라고 할까? 어쨌든 자기들 일로 쓴 돈 아닌가. 내겐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맥주잔을 들고 입에 물며 펍의 내부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다시 봐도 막막하다.

기세 좋게 들어온 건 좋은데. 누구를 골라잡아 얘기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섣불리 그렇게 했다 의심을 사지는 않을지도 고민되었다.


"그랬더니. 걔가 뒤로 자빠지더라고 햨햨햨하하하!"


어떤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 부분에선 내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어. 누굴 데려와도 내가 더 잘할 걸?"


또 어떤 사람의 목소리였다.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완전 코가 꿰였고만."


또 다른 어떤 사람의 목소리.


왠지 나만 친구 없는 사람 같았다.

별 수 없이 나는 다시 돌아앉았다. 용병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청승이나 떠는 직업이었나.


마음을 다잡았다.

그즈음 주인장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야기를 하려면 이 사람 가장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용병이지 않은가.

어디선가 일을 하다가 드디어 끝나고 놀러온 것이다. 그 ‘어디선가’는 조금 먼 곳일 수도 있지.


"아..."


목소리를 내었던 나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소리가 너무 가볍게 나왔다. 헛기침을 하고, 목을 잠시 가다듬은 나는 목소리를 약간 낮추고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아... 못 보던 곳인데. 새로 생겼나봐요?"


홀로 온 손님이 혼잣말을 하는 것이 저에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주인장은 금방 알아챘다.


"자리가 싸게 나왔거든요. 전에 하던 곳보다 넓어서 큰맘 먹고 옮겼죠."


주인장은 그게 큰 행운이었다는 듯 말했다.


"그렇, 군요..."


잠깐만.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되었다.

이게 아니다. 나의 상상과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다. 좀 더 넓고 멀리 진행되어야 했을 터인데.


"아, 음..."


용병 같은 이야기, 그러면서도 여기 있었던 종단과도 관련지을 수 있는 이야기.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것처럼 다른 이야기 고개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이야기.


"그...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방금 것은 전혀 용병답지 않았다고 나는 자부할 수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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