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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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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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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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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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또 손가락 걸고(7)

DUMMY

프리실라가 돌아왔다.

그것도 맨 처음 만났을 때로.


어딘가 고압적이고 남동생을 너무나도 가지고 싶어서 사람처럼 행동하는 인형까지 만들었던 그런 사람.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고해졌다.

걸으면 걸을수록, 말하면 말할수록. 고개를 돌리거나 손을 뻗는 것 같은 작은 동작만으로도 프리실라는 그 프리실라처럼 느껴졌다.


그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가?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을 수는 있다.

옛날의 프리실라와 이제까지의 프리실라는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집이 세지만, 마음이 여렸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자주 했다.


과장 더 보태도 차이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예전의 프리실라가 더 차분하다는 것 정도밖엔 없었다.


그 말인 즉, 설득한다거나 평범한 대화를 하기엔 이 쪽이 훨씬 편이하다는 거였다.


"진짜 괜찮은 거예요?"


세상 일이 늘 그렇게 편리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았기에 난 거듭 묻게 되었다.


"응. 왜 그러니. 누나 어디 이상해?"


돌아왔다 싶더니 누나에 집착하는 습관까지 돌아왔다. 명백한 증거이기도 했다. 그게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하고 복잡하다.

기대하지 않은 결과란 항상 그랬다.


안 되어도 불안.

잘 되어도 불안.


그래도 안 된 것보단 잘 된 게 더 낫겠지.


"아뇨, 그냥. 그냥 물어봤어요."


내가 싱겁게 굴자 프리실라는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려는 듯 다가왔다. 그러다가 야우라한테 휙 낚아채였다.


정말, 휙, 천천히 걷던 프리실라의 팔을 붙잡아다가 저쪽으로 데려간 것이다. 무지 급해 보였다.


"진짜, 진짜로 기억이 돌아왔어? 나 알아?"


야우라는 대답을 강요하다시피 물었다.


이거 모른다고 대답하면 왜 모르냐고 한바탕 따져 물을 기세다.


"알아. 야우라지? 기억하고 있어. 전에 여기서 다 같이 식사도 했었잖아?"


다행히 프리실라는 야우라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했다.


"너는 레샤고. 으응, 알고 있어."


이어 레샤에게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 애는 야우라의 뒤에 서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었는데, 그걸 일부러 무릎까지 숙여가며 아는 척을 한 것이다.


야우라의 옷자락을 잡은 레샤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의심 가득한 눈가엔 더 짙은 그늘이 졌다.

아까 전까지는 그렇게 친밀하게 굴었는데 이제는 경계하고 있었다.


성격이 꽤나 소심한 애라 대체로 그런 모습이라곤 해도 레샤는 정령술사로서 물리 이외의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체질이었다.

뭔가 다른 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단순히 경계하는 걸 넘어서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 다 떨며 어떻게 해야한다느니 저렇게 해야한다느니 오만 난리를 쳤을 것이다.


야우라가 저 때문에 집을 나간 것이냐 아니냐 묻든 말든 대충 저는 아무 죄도 없었음을 선언하든 말든 지금으로선 뭐가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그 이상을 생각하기엔 형편이 썩 좋지 못하다.

누가 뭐래든 프리실라는 불안증으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보였고 많이 점잖은 모습으로 사람을 대했다.


"어떻게 한 거예요? 기대하지 말라더니."


난 레아 아주머니에게 가 그 위업을 찬양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어쩐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집중하느라 지친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건가.


"아무것도 안 했어."


"네?"


뜻밖의 말에 반갑게 가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럼 기억은요?"


"그것도 못 봤어."


"못 봤다고요?"


레아 아주머니는 골치가 아픈 건지 아니면 정말 머리가 아픈 것인지 이마를 짚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안 본 것이 아니라 못 봤다고 말했다.


"왜, 왜요? 아니 잠깐..."


더 캐물어서 어쩌자는 것인지 난 일단 진정해보기로 했다.

물어봐봐야 난 팔렌팔라의 마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면 아주머니가 이미 해주었을 것이다.


"그럼 프리실라가 대체 왜..."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변한 것이 없다면 어째서 프리실라는 원래대로 돌아왔는가.


"내가 보려고 했기 때문이겠지. 그것 말고 다른 원인은 생각해볼 수가 없네."


보려고 했기 때문에.

즉, 어떤 식으로든 프리실라의 내면에 접촉하거나 하려고 했기 때문에.

프리실라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럼 원래대로 돌아온 게 아니라 아직도 불안정한 것뿐... 아닌가?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내가 실수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의 기억을 보는 건 엄청 오랜만이었거든. 하지만 프리실라처럼 이렇게 기억이 단편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은 건 처음이야. 꼭 조각난 것처럼... 하아... 그 꼬마애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어."


꼬마애, 글리의 얘기였다.

녀석은 프리실라의 안엔 랜던 루거렉이 살아있다고 말했었다.


사실 난 그걸 협박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잘못 손댔다간 마치 내면의 악마가 깨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겁을 주는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최악을 상상한다면...


"저게 지금 랜던 루거렉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건 아니죠?"


"그야 알 수 없지."


"느에?"


당연히 아니라는 말을 들을 거라 생각했던 내 목구멍에선 멍청한 바람이 삐져나왔다.


"아줌마가 말했었지? 본능이 예민한 고양이인 모크가 프리실라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려 한다고."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었다.


"그건 그 남자가 어떤 식으로든 프리실라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어. 기억으로든, 의지로든 알 수 없지. 남의 마법이니까."


"어떻게 도려내거나 그러지는 못 해요?"


"아주 위험한 얘기를 하는구나. 레이크 넌 아줌마를 사악한 마녀로 만들 셈이니?"


"아니... 그건 아니었지만요."


하긴... 다른 사람의 기억을 보는 마법도 좋지 않다고 했는데 그걸 재봉질이라도 하듯 손대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겠지.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프리실라의 기억은 너무 단편적이어서 기억이라고 할 수 없었어. 본인이 그렇게 기억하고 있으니 보는 난 더 심하지. 다른 사람의 꿈을 보는 꿈을 꾸는 걸 보는 것하고 같아. 그걸 하나하나 이어 맞춰 보려면 프리실라는 여태 살아온 시간보다 배는 더 넘게 탁자 위에 누워있어야 할 걸? 게다가 그 조각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지는 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가 없네.

솔직한 감상은 그랬다.

그나마 아주머니가 나름대로 추론하고 이해하려고 애쓴 결과를 들으니까 이 정도인거지 나 혼자서는 상상도 못 할 이야기들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억이란 건 연속적이야. 연속적인 기억은 경험이라고 부르고 경험은 영혼을 성숙 시키지. 하지만 프리실라는 그렇지 못 해.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무척 불안정한 거야."


"랜던 루거렉은 그걸 알아서 일부러 프리실라의 기억을 깨버린 거겠죠?"


"아니, 내 생각에 그건 그냥 부작용이었어."


끼어든 남자의 목소리가 그리 친숙한 것은 아니었기에 난 순간적으로 돌아서 쳐내려 했다.

파블로.

계속 바닥을 기며 잔해에서 자료를 찾던 그 사람은 어느 샌가 여기 가만히 서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어. 진정해. 반항한다거나 그러려는 생각은 없으니까. 난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팔렌팔라랑 말이야."


이어 파블로는 나를 제쳐두고 아주머니에게 가 박수까지 쳐가며 말을 걸었다.


"정말 대단해. 난 수 개월 동안 여기 있는 일지와 일기들을 전부 정독하고 나서야 그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는데. 당신들은 마법 한 번으로 그걸 알아내는군. 어때, 나한테도 그 마법을 좀 알려줄 생각은 없나?"


아주머니를 보는 그 사람의 눈동자는 선망으로 반짝였다.


"난 당신들 마학사하곤 일 안 해."


정작 팔렌팔라 레아는 싫증이 잔뜩 오른 얼굴로 손을 휘휘 저었다.


마학사, 비셔스 경이 말하기로는 마법사 중에서도 이론 학자 가까운 사람들을 그리 부른다고 했었는데 레아 아주머니는 콕 집어 파블로를 그렇게 불렀다.


"사례는... 넉넉하게 해줄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그 말투가 싫어서."


아니... 자신감은 좋은 거 아니었나?

그런 얘기를 자주 들었던 거 같은데.

그 핑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막 시키려고 하고...


"왜... 왜...? 잘 생각해 봐. 그 짧은 시간동안 그만큼 알아냈는데 내가 여태 연구해온 것하고 합치면 얼마나 더 많은..."


"그러니까 그런 말투가 싫은 거라고."


뭐 어쨌거나 레아 아주머니는 그런 이유를 들며 파블로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글리 캐스트 녀석이 파블로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데 정신없던 파블로가 때를 놓치지 않고 여기 올 수 있었던 건 녀석 덕분이었다.


"정말 안 됐다, 파블로. 자료는 엉망진창이고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팔렌팔라는 쌀쌀맞고. 어우... 글리가 대신 눈물이라도 흘려주고 싶을 지경이야."


그래도 괜찮아, 라며 글리는 파블로를 밀어내고 앞장섰다.

대신 눈물이라도 흘려주고 싶다는 말과 달리 녀석은 계속 생긋거렸다.


"글리는 많은 걸 요구하지 않아요. 딱 하나 필요하죠... 음..."


"난 아무것도 말 못 해줘."


글리가 체 할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그 웃는 낯에 툭 금을 그어버렸다.


"아까 못 들었어? 아무것도 못 봤다고 했잖아. 사고라고. 어쩔 수 없는 거야. 너도 상인이라면 불의의 사고로 거래가 틀어지는 거야 흔하다는 걸 잘 알지 않니?"


"어우... 그럼..."


녀석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붉은 눈동자는 날카로운 손톱 끝처럼 가늘게 대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올려다보던 녀석은 대뜸 휙 돌아섰다.


"...프리실라에게 묻는 수밖에 없겠네."


손이 묶여 어색한 주제에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난 끈질기게 구는 글리 캐스트의 앞을 막아섰다.


슬쩍 어딜 가려고.


그러자 글리는 꽤 놀란 것처럼 눈을 치떴다.

아주 잠깐. 아주 잠깐 그랬던 녀석은 이내 비식 입꼬리를 올렸다.


"어우... 설마 잊어버린 거야? 이건 글리랑 프리실라가 한 거래야. 끼어들면 안 되지. 그것도 아니라면 레이크가 프리실라의 엄마라도 될 예정인가아?"


...한 때 때려주고 싶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난 글리 캐스트의 뒷깃을 확 당겨 올렸다.


"으악....! 웃.... 어우...."


레샤만큼은 아니지만 녀석 역시 체구가 작은 편이었기에 막상 힘으로 밀어붙이면 속수무책이었다.


까치발을 들었다 말았다.

목이 졸려졌다 말았다.

겨드랑이가 당겨졌다 말았다.


갑자기 놓아주자 균형도 잡지 못하고 풀썩 엉덩방아까지 찧었다.


"크윽, 어우... 레이크는 숙녀에게도 가차 없구나? 엉덩이 모양이 못 생겨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그럼 얼굴로 다시 떨어뜨려 줄까?"


"아... 후후... 농담도 잘 해..."


그건 하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농담 같아?"


내가 막 녀석을 일으켰을 때였다.


"아, 잠깐만 레이크. 그 아이, 누나에게 볼 일이 있는 것 같은데?"


프리실라가 와서 나긋한 말투로 날 말렸다.


"맞아요!"


무어라 해보기도 전에 글리 캐스트가 펄쩍 뛰어올라 소리쳤다.


"혹시 놓아줄 수 있겠니?"


프리실라는 나에게 매우 정중하게 부탁했다.

못 들어줄 것 없음에도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가능하면 글리 캐스트와 얘기하게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그 글리 녀석의 말대로 내가 프리실라의 엄마가 되어줄 수도 없었다.


잡혔던 뒷깃이 해방되자 글리 캐스트는 똑바로 서서는 몸을 털어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프리실라는 그런 녀석의 앞에 친히 무릎을 구부려 눈높이까지 맞춰주었다.


"날 찾았니? 왜에?"


"납기가 다 됐어요, 프리실라. 약속 했잖아요?"


"음..."


글리가 묻자 프리실라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텐더한테 얘기 해볼래?"


텐더. 그 이름이 입에 오르자. 일순간 글리 캐스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응축된 짜증과 분노는 아주 잠깐 그 면상에 머무르고는 금방 떠나갔다.


"어우... 다 때려치워버리고 싶네, 증말. 그렇지이? 레이크, 아이, 힐, 데른?"


실실 쪼개는 녀석의 웃음소리는 전혀 웃는 거 같지 않았다.


텐더. 텐더라.

원래 프리실라가 이곳에 살았을 때 이 저택의 전반적인 관리와 프리실라의 생활 역시 돌보던 인형이었다.


그 때 스칸달른의 용사님 반 랜드레이에 의해 파괴됐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은 없다.

그 사실은 프리실라도 알고 있었다.

즉, 지금의 프리실라는 정말 예전으로 돌아가 최근의 기억을 잃었다는 의미였다.


"아, 맞아. 이제 텐더는 없지? 맞아... 음..."


아닌가?

프리실라는 텐더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뭐지.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방법을 알려줘.

프리실라가 그리 말하자 글리는 여태 슬그머니 보이던 불만스런 태도는 싹 다 날려버리고 정말 손님을 맞는 장사꾼처럼 웃었다.


"어렵지 않아요. 초록색에서 파란색과 노란색을 분리하는 법. 그걸 글리에게도 알려주세요. 아니, 파블로에게."


글리는 파블로를 슥 가리키며 능숙하게 거래를 끝맺으려 했다.


"으음... 몰라."


하지만 프리실라는 고개를 저었다.

또 모른다고 잡아떼면서 얼버무리려는 건가.

아니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프리실라는 담담히 웃으며 모른다고 말했다.


"네? 어우... 그럴 리가요. 프리실라가 계속 연구하던 거잖아요. 예전에도 알려주겠다고 했고."


"....몰라."


글리가 거듭 물어도 프리실라는 계속 모른다고만 했다.


"대신 다른 건 어때? 다 같이 식사를 한다던가? 아 근데 이젠 오그리도 없지..."


"아뇨. 다른 건 필요 없어요."


글리는 계속해서 프리실라를 추궁했다.

녀석에게도 이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와 그만 두기엔 너무 많은 투자가 있었다.

시간이든, 돈이든.


"그치만 모르는 걸."


"알고 있잖아요. 프리실라. 거짓말하지 말아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아르센을 만들었을 리 없어."


"모른다고 하잖아!"


널따란 작업실에 프리실라의 고성이 메아리쳤다.

그 누구도 프리실라가 화를 내는 모습은 본적이 없었기에 우리는 전부 굳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단순히 소리만 친 것이 아니었다.

프리실라는 잔뜩 흥분해선 호흡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헐떡였다.


"모른다고 하는데 왜 자꾸 물어봐...?"


웅크려 있던 프리실라의 몸이 서서히 일어났다.

신장 차이에서 오는 그늘이 글리를 덮었고 너무나도 유약한 숙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때만큼은 글리도 그 그림자에 짓눌려 위축되었다.


"모른다는데...! 모르겠다는데에...! 하아... 하아..."


프리실라는 다시 고개를 숙여 글리에게 다가갔다. 양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감싸려는 듯한 손.

뭘 하려는 거지.


"아... 알았어요. 프리실라... 글리가 사과할게요..."


글리 캐스트는 목이 꿀렁이도록 마른침을 삼키고는 겨우 말했다.


"모른다고..."


프리실라는 고개를 들었다.

그건 우리 모두를 한 번씩 보는 과정 같았다.


"모른다니까?"


나머지에게도 미리 말해두듯 하는 것이다.


"그래요! 몰라도 되니까요!"


그 강박으로까지 보이는 행위를 멈추게 한 건 레샤였다. 이어 그 애는 프리실라에게 튀어나갔다.

옆에서 눈치만 살피다가 놀란 야우라가 그 애를 위해 그 뒤를 따랐다.


"몰라도 되니까, 이제 그만해요... 네...?"


"응... 응... 응..."


프리실라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며 레샤와 야우라의 인도를 따라 작업실에서 사용하던 의자에 앉았다.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레샤와 야우라 둘은 프리실라를 다독였고.

그 프리실라에게 일종의 간섭을 줬던 레아 아주머니는 고민이 깊어 보였다.

그리고 글리 캐스트는 전에 본 적 없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불쾌해하고, 또 초조해하고. 꼬여도 단단히 꼬여버린 상황을 어떻게든 풀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입술을 씹었다.


나 역시 생각할 게 많았다.

돌아오지 않는 고든도 슬슬 걱정되었고 에반젤린도 찾아야 한다. 다행히 그 둘은 연결된 매듭이라 한 쪽이 풀리면 그 다음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만은...


스으윽....


스으윽....


스으윽....


지하의 방 안에서는 소음만 아니라면 먼 곳의 작은 소리도 아주 잘 들렸다.

무언가 쓸리는 소리.


그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스으윽...


스으윽...


뭐지. 먼저 나가서 봐야하나.

행동에 나서기에 앞서 레아의 눈치를 살폈다.

아주머니 역시 소리는 들은 모양이지만 그 정체는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소리는 다가와 프리실라 앞에서 우스운 얘기 공연을 펼치던 야우라조차 그걸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무너진 벽의 구멍 가생이에서 반가운 얼굴이 튀어나왔다.


"어이..."


고든.

어딘가 지치고 다친 것처럼도 보였지만은 그 사람은 평소에 그러는 것처럼 눈이 째져 보이도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드디어 흉악범을 검거했는데.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건가?"


작가의말

드디어... 마침내... 그런 말에 어울리게 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60 李神
    작성일
    23.06.27 08:25
    No. 1

    마지막입니까 ㅠ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6 밤까
    작성일
    23.06.27 10:56
    No. 2

    아 아뇨 이걸로 레이크의 이야기가 끝나는건 아니지만 따지고보면 프리실라 이야기는 꽤 길었으니까요 너무 좀 오래걸리긴 했네요 정말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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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54. 조각조각 사각사각(2) +2 21.10.05 218 2 12쪽
307 54. 조각조각 사각사각(1) +1 21.10.02 132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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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53. 파편의 편파(5) +2 21.01.26 181 3 20쪽
304 53. 파편의 편파(4) +2 21.01.07 148 2 13쪽
303 53. 파편의 편파(3) +2 20.12.31 148 4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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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52. 편파의 파편(4) +2 20.09.05 153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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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51. 찰박찰박 해(1) 20.04.07 152 3 12쪽
289 P.S 푹 익혔어 +4 20.04.02 170 3 10쪽
288 50. 삼월의 토끼(5) 20.04.01 158 2 12쪽
287 50. 삼월의 토끼(4) 20.03.27 146 3 14쪽
286 50. 삼월의 토끼(3) +4 20.03.25 164 3 20쪽
285 50. 삼월의 토끼(2) +2 20.03.22 189 3 22쪽
284 50. 삼월의 토끼(1) +2 20.03.17 148 2 15쪽
283 49. 오목과 오목(5) 20.03.13 160 2 16쪽
282 49. 오목과 오목(4) +2 20.03.01 186 2 18쪽
281 49. 오목과 오목(3) +6 20.02.27 163 2 22쪽
280 49. 오목과 오목(2) +4 20.02.21 169 3 23쪽
279 49. 오목과 오목(1) 20.02.19 175 2 26쪽
278 48. 볼록과 볼록(5) 20.02.13 162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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