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영잔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임제
작품등록일 :
2012.05.1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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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0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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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UMMY

봉천우와 함께 육전호와 정우태가 연무장 한가운데로 걸어 나오자 청살검진을 연습하던 몇몇 교육생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육전호와 정우태는 교육생 중에서는 가장 원숙한 경지의 청살검진을 펼치는 자들이었다. 교육생들은 두 사람의 합격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참고가 된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봉천우를 마주 보며 서 있던 육전호와 정우태가 목검을 들어 각기 기수식을 취했다.

“그럼 시작할까요?”

육전호가 묻자 봉천우는 천천히 팔짱을 풀며 목검을 잡았다.

“그래.”

봉천우가 천천히 하단세(下段勢)를 취한 후 발걸음을 떼자 돌연 세 사람 사이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각기 다른 강렬한 기세였다.

교육생들 사이에 십일 호, 봉천우는 화산파(華山派)의 적전제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간혹 그가 보여주는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은 이십 대 중반의 나이로는 이루기 어려운 절정의 경지에 이른 것이어서 어떤 교육생들은 그가 아마도 화산파의 매화검수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검술 경지는 나이에 비해 뛰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왜 명문의 제자들이라면 모두 꺼리는 제삼 경비단에 지원을 했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다만, 문파 내에서 무슨 큰 사고를 쳤을 것이라고 짐작만이 소문으로 떠돌 뿐이었다.


봉천우가 뿜어내는 기세에 긴장한 듯 뻣뻣하게 서 있는 육전호와는 달리 정우태는 천천히 다리를 끌며 봉천우의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반쯤 감은 눈으로 정면의 아래쪽을 바라보던 봉천우의 눈동자가 작게나마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

“타앗!”

긴장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던 육전호가 호쾌한 기합소리와 함께 힘차게 도약했다. 순식간에 이 장 정도의 거리를 좁히며 어깨를 찔러오는 육전호의 검을 피하려 어깨를 젖히는 순간, 어느새 정우태의 목검이 소리 없이 무릎을 쳐오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수!’

패액!

땅!

봉천우가 정우태의 목검을 걷어내자 육전호의 검이 어느새 그의 오른 손목을 쳐왔다. 그 검을 막아야 하지만 정우태의 검이 사라졌다. 아마도 뒤에서 그의 등을 노려 올 것이었다.

봉천우는 흐트러지는 몸을 재빨리 공중으로 뽑아 올렸다. 그리곤 다시 한 번 왼쪽 발등을 오른발로 찍어 더 높이 도약했다. 순간, 그 밑을 육전호의 검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였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또다시 정우태의 검을 시야에서 놓쳤다.

떨어지는 봉천우의 왼쪽 옆구리로 정우태의 검이 순식간에 파고들었지만 허리를 비틀어 피하며 빤히 보이는 정우태의 머리를 향해 검을 쳐 내렸다. 그 순간 육전호의 검이 재빠르게 꺾이며 봉천우의 오른쪽 발목을 쓸어왔다. 실전이라면 봉천우가 정우태의 목를 자르는 순간 봉천우의 발목 하나가 날아가는 상황이었다.

봉천우는 정우태의 머리를 포기하고 오른발을 뒤로 들어 올리며 몸을 회전시켜 육전호의 검을 막아갔다. 그리곤 오른발 뒤축으로 정우태의 머리를 재차 노렸으나 걸리는 것이 없었다. 상황판단은 빨라야 한다. 왼쪽 측면에선 육전호의 검이 그의 어깨를 노리고, 오른쪽 뒤편에선 정우태의 검이 그의 허리를 찔러 왔다. 몸을 정면으로 날리며 육전호의 검을 쳐내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날려 땅바닥을 삼 장 정도를 구른 후에 몸을 일으켰다. 그 뒤를 정우태와 육전호의 신형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나려타곤(懶驢打滾)을 펼쳤음에도 봉천우의 안색은 변화가 없었다. 어쩌면 나려타곤의 수법을 명문정파 제자의 수치라고 생각했다면 애당초 제삼 경비단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봉천우가 화산파의 매화검수로 추측될 만큼 절정의 무공을 자랑하지만 정우태 또한 산동에서 일류 검객으로 그 무명을 날리던 이였고, 육전호도 나름대로 오랜 실전을 통해 단련된 고수였다. 거기에다 두 사람이 펼치는 청살검진은 백도의 원로들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자비한 공격이 주를 이루는 검진이었다. 교육대에 와서야 사파(邪派)의 검진이라 할 만한 것을 경험하는 봉천우로서는 곤란을 겪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십일 호가 수세에 몰릴 정도니 정말 대단하구먼.”

“이 호와 육 호는 지금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될 실력입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땐 두 사람이 펼치는 청살검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상대하는 십일 호가 더 대단해 보입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십일 호가 매화검수라는 소문도 있고.”

연무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건물의 창가. 교육대장과 검술교두가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봐, 만약에 말이야, 이 호와 십일 호가 진검승부를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교육대장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던 검술교두는 입을 열었다.

“이 호가 익혔다는 비룡방의 무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태산파 산동남검(山東南劍)과의 비무 결과를 놓고 보면 아무래도 십일 호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래? 하긴 화산파와 비룡방의 이름값이 차이가 크긴 하지.”

검술교두의 답변을 듣던 교육대장의 차가운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오래전에 비룡방의 방주가 시전하는 광룡오검(光龍五劍)을 본 적이 있네. 흔히 강호에서는 광룡오검을 비룡방 최고의 무공이라 말하지. 하지만 역사가 짧은 중소문파의 무공이 뛰어나봐야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별다른 기대감은 없었네만, 직접 보고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 오랜 세월을 다듬어 온 명문의 검법을 보는 것 같았어. 정말 대단했지. 그 광룡오검을 이 호가 극성으로 익혔다면 지금 십일 호의 실력으로는 백 초를 버티기가 어려울 거야.”

“네? 설마 그 정도란 말입니까?”

검술교두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태산파의 일대제자와 비무 결과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음…… 산동남검이라는 태산파 일대제자와의 비무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아. 이 호의 광룡오검이 완전치 않았거나 뭔가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야.”

“그렇군요.”

교육대장의 말에 검술교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각자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연무장에서의 비무는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수세에 몰려 있는 것으로 보이던 봉천우가 반격을 시작하자 채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육전호의 무복이 군데군데 너덜거렸다.

패배를 인정하여 목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난 육전호는 아직도 팽팽히 맞서고 있는 정우태와 봉천우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스물여섯 살의 나이임에도 두 명이 짝을 이룬 청살검진을 상대하면서 반격까지 할 수 있는 경지라니…… 나도 오 년 후에 저 정도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정우태와 짝을 이뤄 봉천우를 상대 한지도 벌써 보름째였다. 하지만 번번이 육전호가 봉천우의 검에 당하고 나면 정우태와 봉천우는 몇 수 겨뤄보지도 않고 약속이나 한 듯 서로 검을 거두었다.

오늘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봉천우의 목검이 빠르면서도 화려한 변화를 보이며 매화낙섬(梅花落暹)을 펼쳐내자 정우태의 목검 또한 어지럽게 휘날리며 기세 좋게 몇 수를 막아갔다. 그러나 그뿐, 다시 재빠른 보법으로 날카로운 매화검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버린다.

“하하하! 그만 하세, 내 실력으론 자네의 매화검을 상대하기가 어려워.”

정우태가 검을 거두자 봉천우의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변화가 생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실룩거리다가 검을 거둔다.

육전호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두 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그래 자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천우형님께서 많이 봐주셔서 옷이 조금 찢겼을 뿐 다친 데는 없습니다.”

육전호가 밝게 말하며 포권의 예를 취하자 봉천우는 말없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자자, 아침수련은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 식사하러 가자고, 먹어야 오늘 하루도 그 지겨운 훈련을 받지.”

정우태는 육전호와 봉천우의 등을 토닥거리며 식당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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