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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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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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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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0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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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화 - 2

DUMMY

힐끔 내 옆에 앉은 여자애를 쳐다본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인가, 여자애 옆자리에 앉는 건.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똑바로 여자애를 못 쳐다보고 힐끔 쳐다보고 있다. 나 참, 남중 3년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니.

여자애는 처음 봤을 때 느껴지는 이미지는 ‘모범생 스타일’ 이다. 그냥 모범생은 아니고, 모범생 ‘느낌’이 나는 정도. 그렇다고 아예 범생이는 아니고, ‘적당히’ 모범생일 것 같은 느낌. 편하게 말하면 착해 보인다. 머리는 단발에서 조금 길어 어깨까지 닿는 생머리이고, 약간 갈색 기운이 도는 산뜻한 색깔이다. 염색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검은색보다는 갈색에 가까운 머리카락. 피부는 여자애이니 희고 뽀얗다. 잡티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는 꼭 넓은 들판에 눈이 쌓인 것처럼 눈부실 지경이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눈. 엄청 크거나 한 건 아니지만, 눈빛이 아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똘망똘망’ 하다고 해야 할까? 작고 도톰한 입매는 귀엽다. 개성 있는 외모는 절대 아니고, 음─ 평범한 여고생의 얼굴을 그대로 업그레이드 한, 그런 느낌? 어이어이, 그게 무슨 소리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자애가 힐끔 나를 쳐다본다.

“이름이 뭐야?”

“응, 정웅도.”

“만나서 반가워. 난 임성빈이야.”

“……응.”

먼저 밝게 인사하는 성빈이라는 여자애. 나는 어색한 돌하르방처럼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젠장! 여자애가 해맑게 인사하는데 이 정도로밖에 대답을 못 하다니! 성빈이라는 애 시무룩해하는 표정 안 보여?! 휴우. 어쩔 도리가 없다. 아직까진 너무도 어색하기 때문에.

여자애들이 나를 동물 보듯이 하고, 묘하게 무서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 나이 열 일곱, 이 나이대 남자애들이 그렇듯 ‘여자애’라는 건 참 구미가 당기는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그만큼 미지의 상대이기도 하다. 겪어보지 않았고, 전혀 아는 것이 없으니 그만큼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여자애들을 대하는 법이 서툴다 못해 아예 전무해서 말도 제대로 못 거는 X신 같은 남중 출신인 나인지라. 앞날이 꾸준하게 걱정된다. 여자애가 먼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도 제대로 못 받아주는 바보인 나인데.

“안녕하세요, 선생님 처음 보는 사람! 어멋, 다 처음 보는구나!”

“─하하하하.”

혼자 한숨 푹푹 쉬어지는 생각을 하는 중, 문득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자라 해도 굉장히 높고 명랑한 톤의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든다. 교탁 쪽에 선생님이 서 계신다. 단아한 베이지색 정장 느낌의 옷에, 방긋 미소 짓는 모습이 아름다운 분.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 돼 보이고, 어깨 조금 너머까지 긴 웨이브 펌 머리에 앞머리 쪽에 꽂은 핀이 인상적이다. 키는 160 조금 넘으려나, 덩치도 작아서 굉장히 아담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물론 가슴도 크지 않다. ……거기부터 보고 판단하는 거냐. 뭐, 남자 고등학생이니까. 스스로 이런 생각 하는 것도 우습네. 선생님의 어쭙잖은 농담에 여자애들은 허탈하게 웃는다.

“선생님은 1반 담임을 맡은 유정자에요! 반가워요!”

“네─”

“정자면 선생님 언니는 난자에요?”

“하하하하하하하─”

“??!?”

정자라, 여자 이름 치곤 좀 촌스럽군. 생각하는데 한 여자애가 손을 번쩍 들며 말한다. 다들 그 여자애 말에 까르르 웃는다. 뭐야, 이 난감한 듣도 보도 못한 섹드립은?! 남고생인 나조차 상상 못한 건데. 게다가 수준도 낮아.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응, 선생님은 언니는 없고 여동생 있어. 여동생 이름은 춘자.”

“으에에, 엄청 촌스러!”

“그래도 정자가 낫지 않니?”

“그게 그거에요~”

“에헤헤헤헤.”

뭐랄까, 이거. 조금은 문화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선생님이 이상한 건지, 여자애들끼리 있어 여자애들이 맛이 간 건지. 금세 선생님하고 친해진 애들이다. 벌써 자기들끼리 죽이 잘 맞아 까르르 웃고 있다. 만난 지 2분도 안 된 것 같은데. 이상하네.

“자, 그럼 어디. 자리는 너희가 벌써 알아서 앉았구나! 선생님이 짜 주려고 했는데!”

“아아아~~ 이대로 앉아요!!”

“그래, 이미 앉았으니까 그렇게 하자.”

“와아아아~~”

참 편리한 생각이군. 나도 자리를 다시 옮기는 건 귀찮기에, 작게나마 속으로 찬동했다. 아무래도 이 창가 구석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 것엔 제격이잖아. 선생님은 계속 이어 말한다.

“그러면! 오늘은 고등학교 첫 날 첫 수업이니까! 그걸 하자. 자기소개!”

“에에에~~~”

“싫어요~~~”

“으흥! 안 되요, 1년 동안 같이 추억을 만들 소중한 친구들인데! 게다가 사회 나가서도 자기소개 하나 못 하는 바보가 되면 안 되니까! 꼭 해야 해요.”

“에에에에~~~”

선생님의 말에 여자애들은 야유까지 실어 잔뜩 싫어한다. 그건 조금 공감 가는구먼, 여자애건 남자애건 남들 앞에 서서 주목 받으며 말하는 건 조금 싫을 만하지. 무대 체질이라 발표하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면 또 모를까. 대다수의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면 조금 무리지. 하지만 선생님의 고집은 완강하다.

“1번부터, 나와서 소개해요.”

“에에에에에~~~”

아이들은 잔뜩 야유하지만 한 편으론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오는 애를 쳐다봅니다. 1번인 여자애는 그냥 여고생. 더 이상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여자애이다. 평범하게 ‘어디 살고 이런 거 좋아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이정도로 끝냅니다. 여자애들도 작게 박수를 치고 끝냅니다.

자기소개라. 남고였다면 크게 세 가지 분류 정도로 나뉘겠지. 수줍음, 개그, 발표의 신.

「수줍음」인 애들은 겨우 이름 석 자 말하는 것도 힘겨워하고, 결국엔 뒷머리를 긁으며 수줍게 이름 석 자 정도 말하고 도망치듯 교탁 앞에서 뛰쳐나가겠지. 의외로 수줍음인 애들이 꽤 많은 편이지. 딱히 남들 앞에서 얘기할만한 기회 같은 것, 생각보다 없으니까.

「개그」는, 말 그대로 개그. 그런 녀석들은 학교생활의 대부분이 개그가 목적인 녀석들이지. 자기소개도 최대한 웃기게, 웃기지 않더라도 말로 깨알 같은 작은 재미라도 주려고 하는 녀석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유쾌한 녀석들이다. 부끄럽거나 창피한 행동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웃길 수만 있다면. 조금…… 또라이 같은 녀석들이 이 타입이지.

마지막 「발표의 신」은, 무대체질인 녀석들. 달변가라고 해야 할까, 주저리주저리 말도 잘 하는 녀석들이다. 이런 녀석들은 어떤 애들은 재미있고 어떤 애들은 좀 잘난 척 하는 것 같아 재수 없기도 하다. 나는 세 부류 중에─ 굳이 포함시키자면 수줍음 쪽이겠군.

“나희세입니다. 재미있게 학교생활 할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우우우~”

한 여자애가 교탁 앞에 서자 다들 숨을 죽였다. 숨을 죽일 만큼 미소녀라 그럴까. 아, 저 애. 입학식 때, 전교생 대표로 섰던 그 여자애. 전교 1등이던 그 여자애다. 힐끔 하고 보니 과연 훌륭하다.

약간 도도할 것 같은, 힘이 잔뜩 들어간 눈은 자기주장이 강할 것 같은 느낌이다. 마찬가지로 꾹 다문 입도 그것과 같은 느낌이다. 머리카락은 약한 갈색에 살짝 웨이브 기운이 들어 있는데, 성빈이의 자연스런 갈색과는 달리 탈색한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드는 인공적인 갈색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어울리긴 한다. 애초에 얼굴이 예쁘니 뭘 해도 어울리겠지만. 피부는 성빈이 저리 가라할 만큼 희고 깨끗하다. 힘주어 말하는 목소리 역시 깐깐할 것 같은 느낌이 팍 드는 목소리다.

무엇보다 첫 대면에 눈이 확 띄는 곳은 단연 가슴이다. 자기주장이 강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는데, 가슴도 그러한 것처럼 당당한 크기이다. 쌀쌀한 봄인지라 마이를 입고 있지만 그 마이 단추가 갑갑해 보일 정도로 굉장히 크다. 가슴 크기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얼추 예상하자면 D, E 정도? 아니 그보다, 난 그런 사이즈 같은 거 대강밖에 모르는데. 어쨌든 고등학교 1학년 치곤 굉장한 발육이다. 뭐, 같은 여자애들한테는 크게 어필하기 힘들겠지만. 남녀공학이었으면 남자애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을 걸, 저 애. 이름이 희세구나.

희세는 생긴 것과 비슷하게 도도하고 짧게 자기소개를 마치고 들어간다. 여자애들은 환호인지 야유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희세를 쳐다본다. 흠, 뭐 예쁜 여자애구나. 그 정도뿐이다.

“안녕하세요! 임성빈이라구 하구요, 모두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우우우우우우~~”

조금 지나서 내 옆의 짝, 성빈이가 나가 자기소개를 한다. 역시 이미지대로 밝게 맑게 유쾌하게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성빈이다. 다른 애들의 반응도 아까 전 희세의 도도했던 인사보다 훨씬 좋다. 아무렴, 들어오는 쪽에서 먼저 웃으면서 들어오면 받아주는 쪽도 나쁘게 대할 이유는 없지. 야유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는 여전하다. 성빈이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온다. 몇몇 애들은 성빈이를 빤히 쳐다본다. 참, 보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 주는 그런 애인 것 같다. 성빈이는. 이제 조금 지나면 내 소개 차례인데. 이게 뭐라고 조금 떨리려 한다. 음음, 정신 차려라 정웅도! 첫 소개부터 말리면 안 되지, 적진 한 가운데에서!

“잇챠. 에구.”

“…….”

바로 내 앞 번호 여자애가 소개하러 나온다. 키가 작아 앞자리에 앉은 그 여자애는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덩치가 작아서 사실 나오기 전까지는 반에 있는지 없는지 몰랐다. 나오면서 교탁에 무릎을 부딪혀 아파하는 건 덤이다.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로 신음하는 그 여자애는. 어제 입학식 끝나고 교실에서 봤던 그 여자애다. 같이 얘기하면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갈 것 같은 여자애. 어색하다면서 엄청 친하게 얘기하던, 거기다 남자애를 조금 무서워하는 것 같은, 그 여자애.

키는 작달만하게 작고, 얼굴도 동안이다. 머리도 하필 쌍갈래로 묶어서 어려 보이는 외양을 더욱 어려 보이게 만든다. 이목구비 자체는 오밀조밀 귀염 상에 예쁜 편이지만, 특히 눈이 커서 눈이 엄청 커서 귀엽지만 어떻게 봐도 어린애 같기에 예쁘다는 기분보다는 귀엽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몸매도 이런 애의 몸매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죄로 느껴질 정도로 절망적이다. 한줄 평을 내리자면 유아체형. 가슴이고 엉덩이고 나올 데는 안 나오고 들어갈 데도 안 들어간, 통나무 체형. 거기에 풍기는 분위기마저 약간 덜렁거리는 느낌이라, 외모, 몸매, 분위기 세 가지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어떻게 봐도 중학생 이상 알아보기 힘든 녀석이다. 그것도 중학교 갓 들어온 것 같은 느낌. 초등학생 중에 성숙한 5,6학년 녀석들이 차라리 저 애보단 더 여성스러울 것 같다. 아차, 그건 범죄구나.

“안녕하세요! 저…… 정리유라고 해요! 저도 모두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모두하고 재미난 추억 많이 만들고 싶으니까…… 잘 부탁드려요! 헤헤헤헷☆”

“…….”

녀석은 약간 긴장한 모양인지 조금 머뭇거리며 말한다. 마지막엔 귀엽게 웃어 보인다. 흠, 확실히 귀엽긴 귀엽네. 헌데 어째 반응이 시원치가 않다. 몇몇 애들은 그 애의 행동이 귀여운지 방긋 웃지만 대부분의 애들은 반응이 싸늘하다. 뭐야, 이거. 싸한 공기가 반을 감돌고, 여자애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제자리로 돌아간다. 음, 확실히 고등학생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어리고 귀여워 보였지만, 충분히 귀여웠는데. ‘귀여움’이란 코드는 여자애들한테 안 먹히는 건가. 아니, 난 여자애들이 귀여운 거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그보다, 이런 어색한 공기가 되고 다음 소개하는 게 나다. 아아, 정말 훌륭한 토스다.

“…….”

“……으흠!”

여자애가 들어가고 잠시 정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압도적인 침묵. 모두 나를 쳐다본다. 세상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이다. 살면서 내가 이 정도로 주목 받은 적이 있었나. 그것도, 여자애들 앞에서. 남자애란 이유 하나만으로. 심호흡, 심호흡.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 마인드 컨트롤 마인드 컨트롤. 으아아, 다 쳐다보잖아 흐으…… 힘이 빠진다…….

막상 앞에 서니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스윽 교실을 둘러봤다. 노려보는 애, 웃는 낯으로 보는 애, 무표정한 얼굴로 보는 애. 가지가지의 여자애들이 모두 내 얼굴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아, 얼굴 빨개지면 안 되는데. 발표하는 체질이 아닌지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하지만 난 짐짓 허세를 부리며 강한 눈빛으로 여자애들을 노려보고 있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힐끔 성빈이를 보니 방긋 엄마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날 보고 있다. 자기소개 잘 하라는 무언의 인사일까. 다시 시선을 돌려 앞자리를 보니 리유라 하던 방정맞은 여자애가 방정맞게 웃고 있다. 참 천진난만하다. 마지막으로 시선을 교실 중앙으로 하니 희세가 아니꼬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보고 있다. 팔짱을 껴서 가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건 눈의 착각인가. 생각하는 동안 계속 침묵이 유지돼서, 반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얼음장과 같다.

“정웅도, 열일곱 살, 남자입니다. 조용히 학교 다니고 싶습니다.”

“…….”

이런, 말을 너무 무섭게 했나. ‘조용히 학교 다니고 싶다’ 라니, 무슨 양아치나 조폭도 아니고. 게다가 너무 무겁게 말해서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다. 어떻게 보면 허세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반의 분위기는 더욱 싸하다. 석빙고라면 이런 느낌일까. 그렇다고 이대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패배자의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다. 더욱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강인한 인상을 심을 수 있다.

“왜 남자애가 여고로 온 거야?”

“……그게, 서류상의 착오로…… 사정이 좀 복잡한데.”

“사정이 복잡해? 단순하지 않나? 그냥 흔들면 되잖아.”

“─아하하하하하하!!”

“…….”

한 여자애가 불퉁하게 물어본다. 순간 망설이다 과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에 아까 선생님 이름 가지고 섹드립 치던 여자애가 다시금 섹드립을 친다. 싸늘하던 반 애들이 와하하 하고 웃는다. 이, 이것들이……! 여자애들이 못 하는 말이 없어……! 괜히 부끄러워진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아, 완패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나, 여자애한테 성희롱 당한 것 같은데. 이거 신고해도 되나?

선생님은 ‘자 자, 너무 짓궂게 하지 마요! 웅도도 엄연히 우리 학교 우리 반 학생이니까! 남자애던가 여자애던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며 아이들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애들은 더욱 발악하며 ‘그런 게 어딨어요!’ ‘남자애들은 꼬추도 달려 있어요!’ ‘어우 야 꼬추라니! 하하하하’ 하며 저들끼리 마구 떠든다. 남자가 성추행 당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겠구나. 말로만 들었는데 생애 처음으로 언어적 성추행을 당한 것 같다. 선생님의 위하는 말이 어째 더욱 비참하게 들린다. 시무룩해진 나는 그대로 퇴장. 다음 번 여자애 차례가 되어 자기소개는 계속된다.

“괜찮아? 애들이 여자들끼리만 있다 보니까 못 하는 말이 없어. 충격이었어?”

“아, 아니야. 그냥…… 혼자 있고 싶네.”

“에헤헤. 좀 미안해지네. 다들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장난이니까.”

“……응.”

자리에 돌아오니 성빈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이 와중에도 천사 같은 애는 천사 같이 말하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과묵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일단 멘탈을 다스려야겠다. 묵묵히 주위 애들을 쳐다보는 나. 조용히 입을 다물고 은둔 상태가 되어 여자애들을 쳐다본다.

그 뒤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선생님은 앞으로 할 수업, 학교 과정 등등을 설명해준다. 뭐,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된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고등학교는 중학교 업그레이드 같은 느낌이기에 생활하는 게 그리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선생님이 그런 걸 설명하는 동안 나는 반 여자애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자애들이 예쁜 애들이 별로 없다. 그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긴, 남중 다닐 때에도 잘 생기고 괜찮은 애는 손에 꼽았지.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데는 비슷한 모양이다.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투닥투닥 때리기도 하고 욕도 해 가며 차근차근 내 여고생에 대한 환상을 파괴하고 있다. 음, 그렇지. 난 여고에 오면서 모든 환상을 내려놓기로 했는데, 실제로 이러니까 굉장히 당황스럽네. 거기다 학교 첫날부터 섹드립으로 성희롱 직격타를 맞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일단은 유일하게 성빈이란 여자애가 살갑게 대해주니, 이 여자애를 중심으로 조금씩 말을 터서 여자애들에 대한 정보를 더욱 모아야겠다. 그리고 적당히 몇몇 애들하고 얘기하고 밥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지면 그 뒤론 잠적.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가해지는 이 관심도, 몇 달, 아니 몇 주만 지나면 사그라들겠지.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거니까. 아마 내가 있건 말건 훌렁훌렁 옷을 벗고 체육복을 갈아입겠지. 그건 좀 기대되는데? 아아, 아니다.

어쨌든 좋은 기회이긴 좋은 기회다. 평생 여자애 한 명 제대로 얘기해본 적 없는 내가, 여고로 학교를 다니다니. 이게 무슨 하루 이상한 체험 하는 게 아니라, 3년 내내 이어질 내 고교생활이라니! 솔직히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한 거 아니야? 남자 고등학생이 여고를 다닌다니! 여자애들의 묘한 거리감과 섹드립은 조금 힘들지만, 그것도 적응하면 괜찮겠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게 사람의 임기응변인데. 적응해보도록 하자.


“그럼, 다음 수업 열심히 들어요!”

“네~~”

수업이 아닌 것 같은 수업이 끝이 났다. 선생님은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특유의 높고 귀여운 톤의 목소리로 방긋 웃으며 말하고 나간다. 애들도 좋아서 인사하고 저들끼리 떠든다. 고등학교 최초의 쉬는 시간인가. 별 감흥도 없다. 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앞문 쪽으로 갔다. 선생님에게 물어볼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와 복도의 찬 공기를 마시며 앞서 가는 선생님을 쫓는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네요. 후훗, 할 짓도 없고 이러고 있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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