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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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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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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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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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오래된 집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대화도중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그가 짓자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소리가 너무... 적응 안 되네요. 옆에 있는데도.”

“크후후.”


흘기며 바라보자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선수 같아.”

“운동한 적 없습니다.”

“그쪽 말고요. 말을 별로 안하는데 설레게 하잖아요. 자꾸.”


그 말에 그의 마음이 흔들렸다. 반대로 돌려주고 싶은 기분을 꾹 참고 그는 처음으로 찻잔을 들었다.


“...으...쓰다.”

“쿡!”


그의 반응에 여인은 또 크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도 한 모금 마시곤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여과 없는 그 표정에 그도 크게 웃었다.


“쓴 차는 단 음식과 잘 어울려요.”

“그렇군요.”


사탕을 입에 물고 말하는 그녀를 힐끔 보고 그는 마당에 시선을 두었다.


“전 매우 달달한 사람이에요.”

“그럼 전 쓴 사람이겠네요.”


자신이 답하고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여인이 그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집 구경 시켜주세요.”

“물론. 그래야...!”


일어나려다 사체를 떠올리고 멈춰버린 그를 여인은 의문을 담아 보았지만, 그는 내색할 수 없었기에 신음을 내며 섰다.


“이런 자세로 앉아 있어 본 경험이 적어서 잠시 허리가...”

“예에? 그거 큰일이잖아요!”


놀라는 여인이 달려들자 그는 당황해 뒤로 물러났다. 문에 걸려 그가 멈춰 섰을 때, 허리를 굽힌 여인이 그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무서워요?”

“아뇨.”

“그런데 왜 피해요?”

“그게...”

“화장하고 올까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수줍어서 그렇습니다.”


진심이었다. 그 대답에 만족했는지 여인이 화난 표정을 지웠다.


“자.”


내민 손을 가볍게 잡으며 그가 물었다.


“...네?”

“안내요.”

“아... 볼 건 없는데.”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다락만 보여주지 않으면 된다 생각하며 움직였다. 두 걸음 움직이고 멈춰선 그가 말했다.


“여긴 마루입니다.”

“그건 알아요.”

“그냥 마루가 아닙니다. 대청마루입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대청마루가 뭔가요, 선생님. 날선생님.”


장난스럽게 물으며 여인은 가상의 안경을 치켜 쓰는 행동을 하고, 적을 준비를 하듯 자세를 취했다.


“대청의 청은 관청, 경찰청등에 쓰이는 한자입니다. 관청 청이라고 하는데 뜻은... 말 그대로 관청을 뜻하지만 왜 대청마루에 쓰이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우와...하려다 실망이에요, 선생님.”


“후... 뜻은 그렇다 치고 대청마루는 안방과 사랑방등을 연결해주는 한옥의 주요한 공간입니다. 10척, 사람 키의 두 배 정도 높이로 천장을 높여 공기순환을 돕고 시원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청마루에 기둥이 몇 개인지에 따라 그 집안의 재산규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와아! 그냥 해본 말인데 너무 잘 아신다. 그쪽 일 하세요?”


“아뇨... 집이 하도 특이해서 조사도 해보고, 이 집에 대해 아는 분께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정말 넓네요. 이렇게 넓은 거실... 아니, 대청마루는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네.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죠. 안방보다 큰데... 사실 그건 확장 때문입니다.”


그는 움직여 마루와 툇마루를 나누는 경계지점에 선 기둥을 만졌다.


“이 기둥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죠?”

“네.”

“저 안쪽에 있는 기둥은 나무로 되어 있어요. 백년 넘은 나무라는데... 잘 모르겠네요. 이 앞쪽 기둥 두 개가 콘크리트철골 구조로 된 이유는 땅의 특징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음... 땅에 물이 잘 차올라요. 습기가 많다고 할까... 집안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마루...”


쿵쿵.


“이 나무 마루 아래쪽은 비어 있어요. 땅에서 떨어져 있지요. 그래서 여름에도 습하거나 그렇지는 않더군요.”

“오... 전 이 마루 느낌이 너무 좋아요. 반질거리는 것도 고풍스럽고.”

“그건 때가 타서 그럴 겁니다.”


손으로 바닥을 문지르던 여인이 행동을 멈추고 일어나며 바지에 손을 슬쩍 문질렀다. 그는 웃으며 안방으로 다가갔다.


“아무튼 땅이 질어서 기둥이 쓰러진 적이 있다더군요. 그래서 새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어요. 본래 이 집은 북향으로 지어졌어요.”

“어... 이쪽이 북쪽인가요?”


그녀가 마당을 보며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반대에요. 처음 지었을 때 대문은 저쪽이었어요.”


막힌 벽을 향해 손짓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플로 확인하니 정남향은 아니더군요. 살짝 틀려 있어요.”

“왜 바뀌었어요?”

“아마 전엔 막아주는 산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길의 위치가 달라져서 일 것 같네요.”


그는 이씨가 말해준 집의 현관위치의 변화에 대해 알려 주었다.


“길이 아래에서 위로 갔다는 건가요? 와! 신기해.”


호응해주는 여인의 태도에 그도 즐거움을 느꼈다.


“흐... 재밌는 것이 많은 집이에요. 계속 할까요?”

“네!”


기분이 좋아진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기 전 여인에게 말했다.


“문을 열어보실래요?”


여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잡고 밀었다. 그리곤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반대로.”

“...아!”


당기자 문이 가볍게 열렸다.


“어...?”

“이 집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열리는 문입니다.”

“그런가요?”


여인은 급히 움직여 건너편 그의 방과 그 옆 작은 방문을 열어보고 왔다.


“그런데 문이 전부 안 잠기던데.”

“아, 불안하셨나요?”

“아뇨. 문도 안 잠기는데 왜 안 올까 기다렸어요.”


여인의 농도 짙은 말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를 본 여인이 웃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불도 안 갰어요?”

“그냥 두세요. 그리고... 그 방은 아버지 방이라 잘 안 들어가요.”

“아... 아! 아버지인가요?”


여인의 눈이 책상위에 있는 사진에 닿았다.


“네...”

“와... 닮았나... 어? 이건 날씨?”

“이복형제인데 한 번도 본적 없습니다.”


둘이 더 있다는 말을, 그들의 어머니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그는 말하지 않았다. 답해주지만 곧 떠날 사람이란 생각에 깊은 내용은 전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말에 담긴 무언가를 느끼며 여인도 사정이 있음을 직감하고 더는 묻지 않았다. 다시 마루로 나온 그는 안방과 자신의 방을 손짓하며 말했다.


“이 두 개의 방과 여기 마루는 제가 생각할 때 최초부터 있던 공간 같습니다.”

“왜요?”

“여기 마루에 경계선이 있어요.”


그의 말에 여인이 바닥을 살폈다. 그리고 안방과 그의 방을 잇는 뚜렷한 선을 마루에서 발견했다.


“아... 이 뒤쪽과 단차가 있나요? 못 느꼈는데.”

“예, 약간의 경사가 있어요. 뒤쪽이 조금 낮았던 것 같네요.”

“나무 바닥을 이렇게 짜 넣어서 그런지 티는 잘 안 나네요.”

“자세히 봐야 알게 되죠. 저처럼 바닥을 굴러다니며 자던가.”

“...풋! 여름에는 시원하겠어요.”

“네, 저 뒤에 문 열고...”


문이 있나 보던 여인의 눈에 계단이 들어왔다. 가장 궁금한 곳이었지만 그녀는 알려주겠거니 생각하며 계단 아래의 문을 보았다. 벽지가 문에도 붙어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문인지 모를 형태였다.


“부엌 쪽 창문 열고, 앞쪽 미닫이 네 개 다 열면 에어컨이 따로 필요 없어요. 천장이 높아서 그렇다고 해요.”

“천장... 음, 앞쪽은 높은데 뒤는 낮은데요?”

“아, 거기엔 다락이....”


‘실수다.’


여인이 금세 다락을 오르는 계단에 시선을 둔다. 조마조마하던 그는 여인이 작은방으로 달려가자 급히 앞질러갔다. 갑자기 달려와 어깨를 잡는 남자를 멍하니 보고 여인은 볼을 붉혔다. 그리고 벽에 기댄 등에 힘을 주며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더럽습니다.”

“....힝. 뭐라고요?!”

“왜 화를... 아! 아닙니다. 방이 더럽다고요.”

“....누가 뭐랬어요?”


토라진 여인이 옆으로 물러나자 그는 무안해 머리를 긁었다. 사체가 입었던 양복이 벽에 걸려 있음을 이제야 떠올린 그는 급히 뛰는 심장이 입으로 나올 것 같은 심정이었다.


‘봤을까.’


여인이 벌써 문을 열어봤던 것을 떠올리자 초조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방은 볼 것 없고요.”

“아까 봤는데요 뭐.”

“...봤습니까.”


날선 그의 목소리에도 여인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침에 문 열어봤죠. 눈 떠보니 옆에 없고. 내가 매력이 없나 자괴감도 들고. 안심도 들었지만... 그래서 찾아봤죠. 걱정 마세요. 뭐 훔쳐가진 않았으니.”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됐어요. 하던 설명이나 계속 하세요.”


화가 덜 풀린 여인에게 그는 방에 있는 양복을 봤는지 물을 수 없었다.


“흠... 예. 그럼 저쪽으로 가시죠.”


그는 화장실 앞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쳐 움직였다.


“여기가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인가요.”

“...네. 더럽습니다. 혹시... 그곳도 보셨습니까.”


돌아선 그의 눈동자가 급속히 흔들리고 있었다.


“허락 없이 보고 다니는 여자 아니거든요. 흥!”


앞질러 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는 그의 눈에는 불안과 초조, 그리고 갈등이 뒤섞여 있었다.


‘문 열고 다녔다면서...?’


휴전 이후 터만 남은 곳에 다시 집을 지었을 당시에는 한옥의 구조를 따랐다. 안방과 사랑방이 대청마루로 연결된 본채와 대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별채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곳에 새로운 건축문화와 재료가 도입되며 별채와 본채가 하나로 연결되었다. 이때만 해도 북쪽을 향한 ‘ㄴ’자 구조였는데 부엌과 화장실이 실내로 완전히 들이는 공사가 이뤄졌다. 여전히 북쪽에 대문이 있을 때 집은 직사각형에 좌상단이 툭 튀어나온 구조로 완성된 것이다.


한옥의 부엌은 실내에 위치했지만 완전한 실내라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연탄의 보급과 함께 구들을 이용한 온돌방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이 집에도 그런 시대적 변화를 따랐다. 아궁이가 사라지자 부엌의 바닥에서 신을 벗고 걷는 문화가 도입될 수 있었다. 화장실이 실외에서 실내로 도입된 것도 비슷한 시기다. 실내에 화장실을 넣는 것이 생소한 이들에게 매우 낯선 문화였지만, 그 편의성과 쾌적함 때문인지 빠르게 정착되는 중이었다. 동내에서 가장 먼저 양변기를 놓은 집도 바로 이곳이다.


현재의 집을 북쪽을 위로 둔 평면도로 그리면 마루를 기준으로 좌측에는 부엌방이라 불리는 곳과 부엌이 공간을 분할해 자리했고, 그 아래쪽에 안방이 존재한다. 별채였던 부엌방에는 여전히 과거와 미래가 만난 흔적이 남아 있다. 우측에는 위에서부터 화장실, 작은방, 그의 방의 순으로 완성된 것이다.


다락은 가장 늦게 만들어진 공간이다. 일본 건축문화의 영향도 있었고, 대식구가 살던 곳이라 공간 활용의 중요성 때문에 만들어진 곳이다. 초기에 다락은 지금의 복층이라 불리는 공간처럼 개방된 형태로 만들어졌었다. 당시에도 부엌 위까지 뻗은 ‘ㄴ’자로 꺾인 공간이었다.


북에 위치한 대문이 남으로 바뀌고 난 후에 집주인은 다락을 완전히 분리한 공간으로 만들고, 계단의 위치도 마루 중앙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화장실 문 앞으로 향하게 돌렸다. 사용할 일이 적어진 옛 현관이던 뒷문의 크기도 이 당시에 줄었다.


이런 역사를 그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상속을 받았지만 집의 역사까지 함께 물려받지 못했기에 설명하는 내내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마루의 차가운 감촉 때문인지 다락으로 인해 조금 전 토라진 기분이 풀린 여인은 부엌을 지나 보이는 문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여기서 꺾이네요? 이곳도 확장한 곳인가요?”

“....네!”


밝아진 목소리에 급히 달려간 그는 미닫이문이 두 개 달린 방 앞에 섰다.


“저 안쪽 싱크대쪽 문은 한쪽만 열려요.”

“구조상 그렇겠네요.”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지가 많으니 실내화 신어요.”


그는 문 앞에 있던 실내화를 그녀의 발 앞에 두었다.


“날씨는요?”

“날씨는 좋던데요?”

“크!”

“전 괜찮습니다. 발 씻으면 되니까.”

“그러지 말고 우리 청소해요.”

“손님 가시면 할게요.”

“손님. 흐음...”


그 말에 여인이 또 토라진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제 생각이지만 제일 먼저 이곳과 안채를 연결했던 것 같아요.”


그는 별채였다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거의 비슷하게 추측하고 있었다. 외부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두 개의 건물이 연결되고 이어붙인 흔적이 방에는 뚜렷하게 존재한다.


“여기 기둥도 그렇고.... 바닥을 보면 높낮이가 약간 다르죠? 안쪽은 마루가 깔렸고 이쪽은 흙바닥에 콘크리트로 마감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 주저앉은 것 같더군요.”

“아, 예...”


건성으로 듣고 있음을 느끼고 그는 말을 멈췄다.


“그만... 쉴까요.”

“절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사고가 멈춰버렸다.


“이상하게 보세요? 이상한 여자라 여겨요?”

“....저는.”

“전 지금 용기를 계속 내고 있어요. 처음 끼운 단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하면서요. 너무 급했다고 자책하고 있고요.”

“....절 모르시잖아요.”

“아, 차가워라. 손발이 꽁꽁 얼어버릴 것 같네요. 그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여인이 나가려 할 때, 그가 손을 뻗었다. 손끝이 스쳤지만 두 사람의 손은 만나지 못했다. 그 순간 이대로 놓칠 수 없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날린 이유다.


“꺄아!”

“....허.”


다리를 껴안고 쓰러트린 후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나 싶어 멍해졌다.


“이... 이건 아닙니다. 전... 아, 발이 꼬여서...”

“터프하시네요.”


탓하는 눈길이 아니었다. 그에 멍해진 그가 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자세가 불편해요.”

“죄송합니다. 허! 먼지가.”


자신의 옷이지만, 여인이 입었기에 그는 급히 털어냈다. 어딜 어떻게 만졌는지에 대한 자각은 뒤늦게 찾아왔다.


“...과감하네요.”

“죄송합니다!”

“후... 가요. 우리 진지하게 이야기해요.”


여인은 그를 식탁으로 이끌고 갔다. 10분 정도 여인은 말없이 그를 보았다. 그도 용기 내 그녀의 눈을 마주봤다.


“나...”

“예.”

“어때요?”

“좋습니다.”

“...뭐가요?”

“목소리.”

“목소리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성격도.”

“음, 숨김없이 행동하는 중이에요. 거의... 이게 저와 가까운 모습? 그럴 걸요?”

“그럼 마음에 듭니다.”

“그럼 됐네요.”

“...뭐가 말인가요?”

“꼭 말로 해야 해요? 눈 맞았고. 끝. 전화번호 서로 알겠다. 첫날부터 키스하는 것은 과한가? 어떻게 생각해요?”

“그 전에... 저에 대해선.”


여인이 그에게 성큼 다가왔다.


“믿으니까... 믿고 싶으니까 쫓아온 거죠. 그것도 몰라요?”

“신뢰할 만한 인상인가요?”

“음... 제법?”

“어떤 점에서?”

“당당했잖아요.”

“...제가요?”

“네. 보통 그 상황에서 위축되거나, 과시하려들거나... 그런 사람들 많이 봤어요.”


도대체 이 여인은 자신의 어떤 면을 본 것일까. 김밥과 컵라면을 당당하게 먹었던 것이 여인에겐 감동 포인트였나? 그는 생각했다.


“주눅 들지도 않았고. 대놓고 말하기 그렇지만, 어제 저희 꽤 먹히는 모습이었잖아요. 다양한 의미로... 그 차림으로 올 때 남자들 거의 백 프로 돌아보곤 했어요.”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개인 취향이란 말 아십니까?”

“왜요? 저 취향 아니었어요?”

“네.”

“....또 화나려고 하네요. 어디가?”

“어색했습니다. 어딘지.”

“인정. 그건 맞아요. 평소보다 과하긴 했어요. 컨셉이라서.”

“컨셉...설정이군요.”


그는 어떤 설정으로 손님을 이끄는 곳일까 생각해보았다.


“제가 목소리로 먹고 살잖아요. 그래서 나오면 과하게 꾸미기는 해요. 어젠 조금 심했죠. 저 드레스 새로 산 것이고요. 컨셉이라서.”

“제법 어울리긴 했습니다.”


반은 진심이었다. 진심은 지금의 모습이 좋다는 것이다. 화장을 지우니 더 어려보이고, 건강해 보였다. 과한 색이 들어간 화장과 크게 부풀린 머리, 화려한 드레스의 어제와 다른 여인이라 생각되는 모습이었다. 여유로운 표정과 부드러운 목소리. 작은 머리와 또렷한 이목구비, 큰 옷을 입고 있음에도 돋보이는 몸매. 그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거 봐. 금방 기분 좋게 하고. 선수라니까.”

“운동은...”

“크흡. 자주 들으면 식상하니까, 10년에 한번만 쓰세요. 그 농담은.”

“10년이나 만나게 되는군요. 우리는.”

“우리? 아, 그 말... 괜히 설레요.”


그도 그녀의 낮아진 목소리에 설렘을 느꼈다. 더 생각해서 무엇 할까. 그는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키스도 잘하네요.”

“인나씨도 제법.”

“연습했어요.”

“누구랑...?”

“제 숟가락으로.”

“....센스가 넘치시네요.”

“자주 들어요. 자, 한번만 하고 끝낼 생각은 아니죠?”


고개를 끄덕인 그는 여인을 안아들었다. 그들은 어느새 마루를 굴러다니며 절제된 성욕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움직였다. 집돌이가 빤히 보고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


“....밥을 안줬군요.”

“...다녀오세요.”


여인은 웃으며 손짓하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살짝 열린 문으로 그가 입은 것과 동일한 운동복이 던져졌다. 사료를 급히 퍼 수북이 쌓은 후 그는 침착하게 행동했다.


‘더는 안 돼.’


시신이 있는 집에서 그녀를 안고 싶지 않다. 그는 절제하기로 마음먹고 그를 알리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보내자. 이제 충분해.’


*


“벌써 밤이네요... 배 안 고파요?”


그의 굳은 결심은 그리 단단하지 못했다.


“별로... 인나씨는.”

“난 조금. 나갈래요?”

“예.”


급히 답한 그는 토라진 표정을 짓는 인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렇게 싫어요?”

“예? 아닌데요.”

“그럼 왜 그렇게 급히 나가고 싶어 해요?”


이럴 때 네 제안이잖아? 라고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집돌이가 추울까 봐. 내놓고 문 닫아 둔 상태라서.”

“....인정해야겠네. 알았어요. 씻고 나가야 하니 조금 기다려요.”

“네. 아,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움직여요.”

“알아요. 아까 잠시 갔다 올 때 미끄러질 뻔 했어요.... 마음이 급해서 빨리 오려다가.”


그녀가 나간 뒤 그는 그녀의 말을 곰곰이 곱씹다 또 흥분해 버렸다. 결국 그는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와... 정말 사람 사네?”

“살죠.”

“저도 이 동네 살아요. 저희 엄마가 이집에 사람 없다고 쓰레기, 헙!”

‘흠.’


그의 눈이 가늘어지자 배달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모르고 몇 번...”

“혹시 703-2번 2층?”

“네? 아닌데요?”


최근 영수증이 있던 쓰레기를 돌려준 집이 아니란 점에서 그는 용서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안 버리면 되겠죠?”

“죄송합니다. 사죄의 의미로 이거 드릴게요.”


배달원은 배달통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냈다. 그는 봉투 안에 서비스로 들어있어야 할 음료수가 없음을 확인하고 기막혔지만, 마루에서 얼굴을 내밀고 보고 있을 인나를 생각해 참았다.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해요? 아는 사람?”

“아뇨. 자신이 이 집에 쓰레기 무단투기를 했다고 고백하더군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인나는 바닥을 구르며 웃었다. 특히 본래 포함되어 있어야 할 음료수를 빼먹으려다 사죄의 의미로 줬다는 말에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꺽꺽거렸다.


“크어...살려줘... 으어...”


‘참 잘 웃는구나.’


그는 사랑에 빠졌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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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죄는 무엇인가. +1 20.05.11 189 21 24쪽
1 그 집에는 아무도 안 산다. +2 20.05.11 495 101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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