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연재수 :
274 회
조회수 :
33,802
추천수 :
315
글자수 :
3,873,671

작성
24.05.01 00:47
조회
75
추천
0
글자
37쪽

221

DUMMY

“치명상조차 생기지 않나? 확실히 전에도 그 튼튼한 몸뚱어리에는 감탄했었지. 역시나 환수는 환수로구나. 재차 감탄하노라.”


칭송에 반응한 것인지 뚝뚝,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레비아가 리아를 돌아봤다.



“어······어째서······?”


그녀가 물었다. 엄청난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지만 리아에게는 문제없었다.



“어째서긴. 그냥 네놈이 마음에 안 드는 것 말고 달리 뭐가 더 있겠느냐?”

“마, 마음에······ 아······안 들어······?”

“네놈은 너무 말만 번지르르하다. 한 번 정한 것이라면 끝까지 지키는 패기라도 보이거라. 오직 신이 명령했다는 것 때문에 여태 아무 의문도 없이 마구 죽여온 주제에, 정작 본인이 죽게 생겼으니 따져 묻는 꼬락서니지 않나? 도대체 마음에 들 구석이 어디 있는 것이더냐? 차라리 계속 처맞고 있었으면 좀 달리 보기라도 했을 거다.”


리아는 멍한 레비아를 올려다보며 단호히 말했다.



“결국 네놈은 이도 저도 아니었다. 신에게 헌신하며 기꺼이 그 목숨을 바치는 광신도도, 우직하게 신념을 지키는 위선자조차 되지 못한 안쓰러운 자에 불과한 것이리라. 이 여의 신하에 그딴 어중간한 놈은 필요 없다.”

“······.”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레비아는 고개를 직각으로 꼬았다.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었는지 재차 직각으로 꼬았다.



“어째서?”


우드득······.


재차 직각으로 꼬았다.



“어째서?”


우드득······.


다시금 직각으로 꼬았고, 마침내 한 바퀴를 돌았다.



“어째서······ 어째서 제 신실한 마음을 몰라주십니까?!!”


도중부터 음정이 깨진 커다란 외침과 함께 레비아에게서 마력이 들끓었다.


멀리 밀려났던 구름들이 레비아의 마력에 이끌려 모여든다. 그리고는 암운이 되어 주변을 어둠에 감싸이게 했다.


리아는 작게 스파크가 치는 구름의 사이에서 보았다.


한 줄기의 빛을······.


곤충의 외피를 두른 거대한 고래에게서 방출된 그 강렬한 빛은 정확히 리아의 정수리에 꽂혔다.


콰앙――!


천둥이었다. 인식했을 때는 이미 벼락이 내려쳤고, 직후 소리가 뒤를 따라 우렁차게 울린다.


물과 전격을 다루는 환수답게 위력도 만만하지 않아 10급 마법에도 준한다. 어지간한 존재라면 아픔에 눈물을 쏟을 틈도 없이 바로 신과 대면하는 자리를 가질 것이다.


거기에 리아는 해당하지 않았다. 2단계 마력을 몸에 두르는 것으로 간단히 중화시켰다.



“흠. 좋다. 그럭저럭 좋은 공격이었다. 그렇게 주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니라.”


흡족한 리아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여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디는 네놈을 축복한다. 고로······ 전력을 다하도록 하지.”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는 것은 체감상 백 년 만이다. 세계를 평정하고 나선 반기를 드는 자가 없었고, 무슨 말을 하든 반발은 없었다. 그나마 죽기 전에 일전을 치렀지만······ 그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기에 제외다.


하얀 악몽을 기억하는 이가 없기에 생긴 전투. 도대체 얼마 만에 싸워보는 것이란 말인가.


예상 밖의 즐거움에 흥이 주체가 되지 않는다.



“하나, 성에 차진 않는구나. 죽이겠다는 살의가 너무 부족해. 처음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흐음. 어쩔 수 없군. 보고 배우도록. 자, 이렇게 하는 거다. [뇌신의 왼팔].”


하늘을 넘어―― 우주에 전기의 덩어리로 구성된 팔이 나타났다. 뇌신 시리즈의 [뇌신의 왼팔]이다.


그것은 거친 스파크를 튀기며, 마치 신이 하늘을 가리는 것처럼 대륙에 어둠을 드리웠다. 워낙 거대하여 그 밑에 놓인 레비아가 자그마한 금붕어 같았다.


다만, 크기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고전압 특유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뇌신의 왼팔]은 그야말로 번개처럼 내달렸다.


레비아는 즉각 회피하려 움직였다. 그 속도는 당연하게도 적청―― 시간에 닿아 있었다.


잘도 저 덩치로 저런 속도를 낸다. 지구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법의 세계인 오엘문리아에서는 가능했다. 물론 저항만큼의 감속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게 지구보다 덜할 뿐. 만약 [소형화]나 [변화]로 작아진 상태였다면 훨씬 빨랐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번개는 초라하다. 겨우 빛의 약 33%에 그친다. 고로 [뇌신의 왼팔]가 레비아에게 닿을 일은 결단코 없다.


그러나 [뇌신의 왼팔] 또한 오엘문리아에 존재하는 것은 매한가지. 지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건 같다.


분명 번개처럼 보이지만 [뇌신의 왼팔]은 엄연히 마법. 번개지만 번개가 아닌, 리아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무언가였다. 한계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단숨에 백의 세계로 돌입한다.


전광석화라는 말 그대로 순식간에 내려친 [뇌신의 왼팔]은 레비아를 단숨에 움켜쥐었다.


커다란 비명이 울린다.



“흐음. 일부러 발동어까지 말해주었건만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는가? 이전에도 그렇고, 애초에 강한 인간과의 전투 경험이 없는 것이로군. 굳이 몸집을 키우기나 하고 말이야. 좋은 표적밖에 더 되겠느냐?”


비단 레비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 산 존재일수록 본인들의 고정 관념에 휩싸이기 쉬운 경향이 있다.


아마 대다수의 환수 또한 리아와 맞붙는다면 본래의 몸집으로 전투에 임할 것이다.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편하니까.


상식적으로도 전투는 언제나 최상의 상태에서 치러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여태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증명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전투의 양상 따위는 시시각각 변하는 다채로운 것이다. 적응하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생각을 멈춘다면 언젠가는 패배를 맞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여태까지는 괜찮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면 정체되어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부와아아아왕!!


고통에 찬 고래의 묵직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그만 닥치라는 것이냐? 한데, 이 정도에 울부짖으면 어쩌란 건지 모르겠구나. [뇌신의 왼팔]은 분명 강력하긴 해도 그 진정한 가치는 범용성에 있거늘.”


레비아는 열심히 버둥거렸지만 [뇌신의 왼팔]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되려 더욱 옥죄어 오는 악력에 비명만이 커졌다.


저리 아프다고 하는 것이다. 불쌍하니 자비를 베풀어야겠지.


입꼬리를 올린 리아는 살짝 악력을 약하게 했다.


몸을 옥죄는 게 느슨해진 것을 느낀 레비아는 곧장 [뇌신의 왼팔]에서 빠져나왔다.


고통에서 벗어난 레비아의 환희가 전해진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기쁨이었다.


――덥석.


헤엄을 치듯 부드럽게 유영하던 레비아의 꼬리를 [뇌신의 왼팔]이 붙들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 사뿐히.


돌아본 레비아는 뒤늦게 상황을 인식하고는 빠져나오기 위해 마구 발버둥 쳤다.


소용없다. 격렬히 버둥대지만 [뇌신의 왼팔]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빠져나오질 못했었는데 돌연 가능할 리가 없다.



“꼬리를 자르는 편이 빠를 텐데, 그런 임기응변도 없나? 인간―― 인디아도 쉽게 해내는 판단이건만, 이래서야 김이 빠지는군······.”


실망 가득한 리아의 말과 동시에 [뇌신의 왼팔]이―― 레비아의 꼬리를 잡은 검지와 엄지에서 강한 스파크가 일었다.


지축을 울리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원형의 자기장 막이 생겨났다.


지상까지 도달한 반짝임은 금방 가라앉았다. 그러나 자기장의 막이 생겨난 곳에서는 여진처럼 스파크가 불꽃을 내고 있었다. 멋모르고 들어섰다가는 감전사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공간의 중심에 있는 레비아는 당연히 절찬리 감전 중이다. [뇌신의 왼팔]에 잡혔을 때부터 줄곧······.


그러나 멀쩡하다. 왜냐하면 레비아는 물과 전격에는 탁월한 내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외의 모든 속성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내성을 지니기도 했다.


덕분에 규모에 비하면 데미지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아픔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매번 생각하지만 정말 부러운 육체로군. 우리 인간은 어떠한 내성도 지니지 못했거늘.”


인간만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아무 내성도 지니지 못한 종족이었다.


비슷한 외형의―― 교배마저 되는 다른 사람종은 그렇지 않았다. 마족은 마력에 대한 전반적인 내성을, 엘프는 대지와 바람, 물에 내성이 있고, 드워프는 대지와 불, 금속에 대한 내성을 지녔다.


수인은 정해진 내성은 없고 개개인 별로 최소 2개 이상의 내성을 타고난다. 도플갱어의 경우 본체는 너무나도 나약하지만, 내성은 전속성을 모두 지니기도 했다.


물론 내성의 심도는 개체마다 제각각이다. 거의 없는 듯한 내성을 지닌 자들도 드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성이 아예 없는 자는 단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존재는 오로지 인간뿐이다.


리아라고 다르지 않다. 워낙 강대해진 탓에―― 여러 방편으로 대응하기에 어지간한 마법은 간지럽지도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내성 따윈 전무했다.


그렇기에 리아는 내성의 연구를 금지시켰다. 겨우 내성 따위로 종족의 우열을 가릴 미래가 너무나도 뻔했기에.



“그건 그거고,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살짝 셈나니 이거나 먹어라.”


화르륵.


작은 일렁임이 레비아의 눈앞에 생겨났다.


레비아는 그 촛불에 담긴 방대한 힘을 느끼고는 몸을 움찔――


――반응하는 순간, [화신의 심판]이 발동됐다.


세상은 소리를 잃고, 순백으로 점철됐다. 이를테면 그것은 별의 최후―― 빅뱅이었다.


쩌적――!


파괴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화신 시리즈답게 공간마저 견디지 못하고 갈라진다. 그 균열의 틈으로 순백의 세상이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그에 비례하여 균열은 더욱 커진다.


마침내 임계점에 달한 균열은 무너져 내리다가―― 돌연 수복됐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처럼 단숨에.


후웅······.


레비아가 있던 곳―― 진원지로 대기가 모여든다.


이윽고 바람이 멈췄다.


폭풍 전야 같은 고요함이 퍼진다.


그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대륙이 떨릴 만큼의 굉음이 터졌다. 뒤를 이어 후폭풍의 여파가 맹렬한 기세로 퍼져나간다.


산조차 깎아내리는 열풍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세계의 수복······. 그래. 저건 정령의 짓이었나?”


본래대로였다면 과부하가 된 공간이 2차로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어야 했다. 그랬는데 어쩐지 마법의 위력이 약하더라니······.


물론 저것만으로도 화력은 차고 넘쳤다. 연비도 나름 나쁘지 않아 공격 마법으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마법은 이미지의 영역. 그렸던 시뮬레이션과는 다소 상이한 결과에 아무래도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매번 [화신의 심판]을 쓸 때마다 위화감을 느꼈었는데, 드디어 그 원인을 알게 되어 조금 개운하다.



“리아에게 얻은 지식 덕분이로군.”


그게 아니었다면 제아무리 하얀 악몽이라 하더라도 영영 전모를 밝힐 수는 없었으리라. 실제로도 그러했고.


새롭게 깨달은 진실에 리아가 제법 흥미로워하고 있으니, 고통에 찬 가냘픈 신음이 들린다.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육신의 반이 증발하고, 남은 반마저도 전신이 열기에 잔뜩 짓눌려 고름을 내뿜는, 끔찍한 외형의 다 죽어가는 고래가 있었다.



“어째 많이 허약해지지 않았느냐? 이전에는 좀 더―― 아. 그냥 여가 더 강해진 것이려나? 확실히 네놈과 만났을 시기에는 여도 아직 미숙했었지.”


리아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했다.


지금의 자신이 한 부탁은 이쪽의 실력을 보여달라는 것과 겸사겸사 레비아를 흠씬 두들겨 패서 교육하는 것. 이 두 가지였다.


부탁 자체는 어려울 게 없다. 레비아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 위협조차 되지 않으니까. 실력을 보여달라는 것도 괜찮았다. 아니꼽기는 해도 딱히 거절할 마음은 없다.


다만······ 성공 여부는 별개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건 당연히 안다. 그렇지만 자존심이 차마 실패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음. 너무 밀어붙였나······?”


전투하며 몸을 치료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단기 결전으로 사생결단을 내는 게 아니라면 필시 행해야 할 기초다. 하지만 그것조차 못할 정도로 레비아는 내몰린 상태였다.


오랜만의 전투인지라 너무 흥을 내버렸다······.


혀를 찬 리아는 레비아에게 [치유]를 썼다.


덩치가 덩치이니 제법 마력이 소비됐다. 그렇지만 레비아는 아무 흉터도 없이 즉시 완쾌했다.



“여봐라. 아직 투지는 남아 있더냐?”

《······.》


레비아는 입을 다물었다.


들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상처는 완벽히 회복했으며 의식도 또렷하였다.



“충격 요법이라지만 좀 심했나? 하지만 전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설렁설렁 할 순 없는 노릇인데······.”


어디까지 힘 조절을 해야 하나.


반성하며 고민하던 바로 그때였다. 대기를 가르며 나타난 얼음의 창이 리아에게 꽂혔다.



“······괜한 걱정이었구나.”


리아가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팔과 옆구리 사이에 낀 얼음의 창에 금이 갔다. 그러더니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조각들이 흩날렸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가루가 되었을 공격을 직격당하고도 리아는 느긋하게 손을 저어 얼음 조각을 모두 털어냈다. 피해 따윈 없다. 옷마저 손상하지 못하고 무위로 돌아갔다.



“몹시 마음에 드는구나.”


이전처럼 멍청하게 광역으로 마법을 흩뿌리지 않고, 정확히 자신을 표적으로 삼은 것에 리아는 흡족해했다.


더군다나 [소형화]로 작아지기까지 했다. 이제야 전투가 뭔지, 상대를 죽인다는 게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정말 더할 나위 없다······.



“그래. 적은 여 하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여이노라.”


리아는 미소를 그리며 위를 올려다봤다. 섬긴다는 신을 향해 강렬한 살기를 쏘아 보내는 레비아를.



“리아여, 사과하도록 하마. 네 부탁에 따라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할 것 같구나. 하나, 이해해다오. 저리 기특하잖은가?”


짧지만 진심으로 사과한 리아는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레비아, 전의를 잃지 않은 그대에게 경의를 전하마. 그대는 여가 적으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상대다. 그렇기에―― 이 이상은 없을 만큼 완벽하게 짓뭉개 주마. 이것이 여가 그대에게 표하는 찬사이자 예이노라.”


――오너라, 에아에실.


조용한 리아의 부름에 바로 옆 공간이 열렸다. 억지로 가르거나 벌린 것이 아니었다. 공간이 제 발로 그 입을 벌린 것이었다.


그 시공의 틈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한 자루의 검.


검집조차 없는 그 검은 찬크에르레이의 비늘보다도 더욱 어두운 심연 그 자체였다. 그리고 순백보다도 더욱 하얀 순백이 심연의 검 곳곳에 기형학적인 문양을 만들며 빛을 내뿜었다. 문양은 쭉 같은 형상을 유지하지 않았다. 비규칙적으로 제각각 변하며, 어떨 때는 커다란 하나의 문양을 만들기도 하였다.


담긴 기운도 범상치 않다. 신성과 사악을 동시에 내포한 기이함을 겸비하였다. 그 외형 또한 보기에 따라서는 천사 또는 악마가 사용할 것만 같은 형태로, 성검과 마검, 어느 쪽으로 불려도 어색함이 없을 그러한 검이었다.


정확한 모습은 인식할 수가 없다. 자격이 안 되는 자가 감히 직시하는 것을 허락치 않는 듯 심연과 순백의 오라에 감싸져 있다.


리아는 그 검―― 신기, 에아에실을 손에 쥐었다. 그것만으로 대기가 수군거린다. 마치 두렵다는 듯이.



“세계를 압축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창세신의 검이다. 보다시피, 세계가 멸해도 홀로 남는다고 하지. 그대에게 쓰기에는 조금 격이 맞지 않지만······ 뭐, 모처럼이다. 오랜만에 깬 에아에실도 너그러이 넘어가 주겠지.”

《헛소리를······!》

“흠. 성급하구나.”


휙.


리아는 에아에실을 들어 가벼운 동작으로 레비아를 가리켰다.


순간 구름이―― 공간이 베어졌다.


같은 선상에 있던 레비아도 왼쪽 날갯죽지 부근을 통째로 절단당하며 피가 솟는다. 저 멀리, 우주 밖 머나먼 행성의 지표면도 잘려 나갔다. 원래 그러한 것처럼 말끔하게······.





레비아는 놀란 눈으로 잘려 나간 자신의 신체를 돌아봤다.


전혀. 절단되는 순간까지도 당했는지조차 몰랐다······.


저건 위험하다. 본능이 저 검은 너무나도 위험하다고 외쳤다.


경악한 레비아는 육체를 복구하는 대신 [변화]를 발동했다. 일방적으로 맞으며 깨달은 것이다. 인간의 몸은 불편하지만, 타격에 있어서는 효율적인 구조라고.


그 외에도 범용성이 뛰어남을 깨달았다. 더불어 지금이 그걸 활용할 순간이라는 것도.


다행히 [소형화]로 작아졌었기에 신체의 손상은 적다.


복구는 뒤로 미루고 빠르게 인간으로 변하는 것에 집중했다. 다만 이전보다는 작게―― 리아와 크기를 맞췄다. 잘은 모르겠으나 저 크기야말로 최적의 사이즈라고 여겼다.


[변화]하는 것과 동시에 레비아는 달려들었다.


거리를 벌려서는 안 된다. 저 에아에실이란 검에서 발해지는 일격은 인식 불능의 절대 판정이다. 개념과도 같은 맥락인지라 회피는 불가, 방어와 내성 또한 무시하는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검의 선상에 서지 않는 것.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대처법이다.


이딴, 말도 안 되는 검이 존재한단 말인가. 가히 신의 권능, 그 자체이지 않나.


어쩌면 정말 창세신의―― 세계를 소재로 만든 검일 수도 있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몸이 굳었다. 하지만 레비아는 주먹을 꽉 쥐어 곧바로 떨쳐냈다.


두려움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리아는 가만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비아를 지켜봤다. 경계는 없다. 절대자의 프라이드가 감히 경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레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랏!!”


우박과 벼락이 리아에게 꽂힌다. 정확히 핀포인트로. 전방위에서 무수히 내려친다.


어른의 주먹만 한 우박은 보기와 달리 소형 운석에도 필적하는 파괴력을 지녔다. 하나하나가 10급 마법 수준이었으며, 그 사이에서 같이 내려치는 벼락 또한 마찬가지. 수천만 볼트는 가뿐히 넘어 주변의 대기를 단숨에 증발시켰다.


――그 모든 게 파도에 삼켜졌다.



“[수신의 자애].”


한순간에 성층권을 넘어, 우주에까지 솟아오른 파도가 눈앞에 존재하는 전부를 집어삼킨다. 그게 누구든 가리지 않고 모두 평등하게······.


레비아는 빠져나오려고 하였으나, 엄청난 수압에 짓눌려 버둥거리기조차 힘들었다. 더군다나 [수신의 자애] 안에서는 마력의 흐름조차도 정체된다. 그 탓에 공간 도약을 하고 싶어도 상당히 여의찮았다.



“흐음. 이대로 지상에 떨어뜨리면 안 되겠지. ――아. 좋은 게 있었군. 빌려가마, 위대한 대영웅이여.”


리아는 에아에실의 검 끝을 [수신의 자애]에 겨누었다.



“――[유성천공].”


에어에실의 검신을 타고 리아의 마력이 흐른다.


그리고······


[수신의 자애]가 통째로 소멸했다. 물기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완전히 제압당했었던 레비아는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무, 무슨 일이······.”


레비아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는 없다. 어느 누구도 명쾌하게 인식한 자가 없으니 말이다.


그녀는 모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기가 창세신의 검을 통해 펼쳐진 것이다.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게 가능한 것은 이 자리에선 찬크에르레이뿐. 오직 그만이 정확히 무슨 현상이 벌어진 것인지를 인지했다.



“왜 얼을 타느냐? 전투는 끝난 것이더냐?”

“······.”

“전투는 이제 끝났나?”


적막을 뚫고, 리아는 다시금 물었다.



“아직······. 아직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작아진 만큼 살짝 앳된 목소리로 답한 레비아는 눈동자에 투지를 담았다.


리아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놀란 눈으로 본 레비아도 입꼬리를 올렸다.



“오라.”


레비아는 창공을 내달렸다. 한 줄기의 빛이 된 그녀는 신속. 적청을 넘어 백의 세계에마저 아슬하게 발을 걸쳤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우화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촤악.


레비아는 허리가 잘리면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다. 이제 막 우화한 정도로는 감히 닿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크윽······!”


여전히 인식조차 할 수 없다. 움직임으로 판단하려 해도 리아는 느슨하게 팔을 내린 상태 그대로였다. 에어에실을 겨누었는지는 알 수도 없어 보고 피하는 건 무리다.


이를 꽉 문 레비아는 피를 뿌리며, 곧장 분리된 신체를 이어 붙이고는 주먹을 휘둘렀다.


마법은 쓰지 않는다. 리아는 기이할 정도로 마력과의 친화력이 높다. 한 차례 가공이 된 마법 따위는 직격해도 큰 타격이 없다.


통용되는 것은 가공이 없는 순수한 마력뿐. 전력으로 마력을 담아 후려치는 것이 정답이다.


백의 세계에 들어선, 생의 최고의 일격이라 할 수 있는 주먹은······ 리아에게 닿기 직전에 팔뚝부터 잘려 떨어졌다. 관성조차도 잘리는 순간 소멸했는지 맥없이 아래로 추락한다.


――그게 어떻다는 거냐.


레비아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재차 공격이나 하자. 상대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수복은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으아아아아!”


남아 있는 왼팔이 빛의 속도로 사출됐다. 잔상조차 남지 않는 필살의 일격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빠르고 강한 일격에 의해 분쇄됐다.


재차 피를 흩뿌리며 왼팔이 떨어진다. 무얼 어떻게 해서 당한 것인지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미스터리다.


하지만 두 팔을 희생한 덕분에 딱 달라붙을 수 있었다······.


자고로 검이란 붙어있으면 쓰기 어려운 법이다. 에어에실이라고 다르진 않다. 막강한 창세신의 검이기는 하나 그 본질은 결국 검이었다.


리아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강자이기 때문에. 그 긍지가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난타전이다.


순식간에 양팔을 복구한 레비아는 다시금 오른 주먹을 날렸다. 목표는 리아의 배. 처음에 당했었던 보디블로를 그대로 따라했다.



“나름 머리를 썼구나. 한데, 너무 쉽게 봤노라. 검이란 것은 제법 심오한 경지까지 있거늘.”


걱정스럽다는 듯 경고하는 리아.


등골이 섬뜩해진 레비아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빼려다가 그대로 내뻗었다.


처음으로 리아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다.”


진심 어린 칭송의 말과 함께 레비아의 오른팔이 어깻죽지에서부터 잘렸다.


요령이 좋은 자였다면 잘린 팔을 잡아 바로 붙였겠지만, 우둔한 레비아에게 그런 요령은 없다. 곧장 새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주먹을 뻗는다.


――리아에게 채 닿기도 전에 잘린다.


잘린 부위를 수복하는 동안 반대쪽 주먹을 뻗는다.


――잘린다.


포기하지 않고 방금 막 수복한 주먹을 휘두른다.


――잘린다.


재차 수복한 주먹을 휘두른다.


――잘린다.


다시금 수복한 주먹을 휘두른다.


――잘린다.


레비아는 멈추지 않고 수복한 주먹들을 재차 휘둘렀다. 잘리든 말든 상관없이.


미친 것이 아니었다. 레비아는 어느 때보다도 냉철했다. 그렇기에 본인만 피해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다.


다시는 없을 기회―― 본인이 공격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리아의 다리가 묶인다는 기적은 재차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맹공을 늦추면 그 순간이 끝. 승패는 한순간에 갈라진다.


다행히도 고통은 없다. 앞서 정신이 날아갈 듯한 통증을 너무 겪었기 때문이었는지 무감각했다.


덕분에 잡념 없이 사력을 다할 수 있다.



“흐아아아아!”


빛의 폭격이 이루어진다. 동시에 상공에는 피로 이루어진 레드카펫이 펼쳐진다.


시간이 멈춘 적과 청의 세계에선 무의미한 계산이지만, 기왕 따진다면 30만 번. 한 손당 15만 번의 폭격이 1초 안에 이루어졌다.


그만한 페이스로 공격하고, 베이는 것이다.


10급의 대마법이 판을 쳤다지만, 신화시대 때부터 바닥을 보인 적이 없었던 레비아의 마력이 점차 그 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모전으로 간다면 줄곧 피해를 보고 있는 레비아의 패배가 확정이다.


무언가 변화를 줘야 한다. 발차기를 날릴 수 있었다면 타격 횟수의 증가로 여유가 생겨 좋았겠지만, 인간형은 익숙하지 않다. 괜한 짓을 하다가 되려 틈만 보일 가능성이 크다.


타개책이――.



“――앗!”


조급해진 나머지 너무 신경이 팔렸다.


잠시 느슨해진 그 조그마한 틈을 놓치지 않고, 불쑥 튀어나온 리아의 왼손이 레비아의 가슴팍을 톡 쳤다.


총알이 쏘아지는 것처럼 레비아는 직각으로 날아갔다.


가까스로 멈췄을 때는 200m나 벌어져 있었다.



“큭! [종말의 겨울]!”

“[지신의 숨결].”


[종말의 겨울]은 일정 범위의 공간을 얼려 모든 흐름을 멈추는, 10급의―― 초월급에도 닿아 있는 마도였다. 레비아도 함께 멈춘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그러나 잠시 시간을 벌기에는 이만한 마법이 없다. 마력을 쥐어 짜낸 만큼의 값은 한다.


길게 유지되진 않는다. 이 틈에 대책을 세운다.


그런데 레비아가 계획을 수립하기도 전에 이변이 발생했다.


삐걱······. 삐걱······.


영구동토의 땅이 삐걱댄다.


기시감 같았던 미세한 떨림은 점차 기세를 키웠다. 곧 흔들림을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고, 거대한 지진으로 변모했다.


······무너진다.


콰직!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흐른다.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에 레비아는 당황했다. 그러던 그녀의 시야에 눈처럼 작은 알갱이가 보였다.



“모······래? 모래 안개? 설마 이게 [종말의 겨울]을······?”

“정답이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레비아는 시선을 내렸다.



“모래는 좋은 매개물이 아니더냐. 정체된 공간이라 할지라도 진동을 확산할 방법 따윈 널렸지. 더군다나 이건 이전에도 한 번 경험했었다. 그대는 매번 절체절명의 순간이면 꼭 이걸 쓰더군.”

“그게 무슨······?”

“몰라도 된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보다 이제 어쩔 테냐?”


레비아는 슬며시 주먹을 쥐어봤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정신, 육체, 마력, 모두가 한계에 달하여 감각에 간극이 생긴 탓이다.


살짝 편 손가락은 바르르 떨리기까지 한다. 이 상태로 전투는 무리다.


――하지만 움직인다.


결심이 굳은 레비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리아는 천천히 고도를 높여 레비아와 눈높이를 맞췄다.



“모습은 그것이면 됐나?”

“예.”

“신중하거라. 그 상태로 죽으면 인간으로서 죽는 것이다.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정도는 기다려 준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승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후후······. 우문이었구나. 여의 무례를 용서하라.”


둘은 묵묵히 서로를 마주 봤다.


레비아는 최후를 직감했다. 앞으로 있을 일격이 생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아니, 싸우겠다며 마음먹고 반격을 한 시점에 이미 예감했었다.


그야 상대는 신이다. 왜소한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신의 경지에 오른 세계적인 존재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신이었던 오대신보다도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간 것이니. 앞서 한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모시기로 정한 것이고, 그렇기에 승산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한 부분에서도 우세한 점이 없다. 그럼에도 싸우겠다고 결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처음은 욱한 것도 있겠다만, 이후는 그냥 분위기에 몸을 맡긴 기분이다.


어처구니없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느 때보다도 마음만큼은 후련했다.



“갑니다, 이스피리아 님.”

“오거라, 레비아.”


레비아는 돌진했다.


어차피 최후다. 마력은 당연하고, 마지막 남은 한 줌의 생명력마저 아낌없이 끌어올렸다.


그렇게······


생의 첫 신에게로의 반역은 막을 내렸다.



“홀가분한가?”


맥없이 쓰러지는―― 지상으로 추락하는 레비아를 리아가 살며시 받아내며 묻는다. 에아에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무엇에 당했는지는 역시나 모르겠다. 리아에게로 육박하고 있으니 돌연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육체는······ 보기에 멀쩡했다. 하지만 느껴진다. 급격하게 마력과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그렇다. 이미 죽은 것이었다.


신화시대부터 산 초월자답게 숨이 끊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 죽음은 확정이다. 무슨 수를 써도 벗어날 순 없다.


이제 다 끝났다······.


그래. 이제 다 끝난 것이다.



“예. 나쁘진 않습니다. 이스피리아 님께선?”

“제법 즐거웠느니라.”

“그러하시다면 다행입니다.”


레비아는 미소 지었다.


성직자의 인생을 걸어온 레비아에게는 최고의 찬사이자, 최상의 최후였다. 죽음은 그저 하나의 과정. 후회나 회환 따윈 없으며 오직 깊은 만족감만이 존재하였다.


다만······



“저흰 어째서 싸운 겁니까? 여기까지 왔음에도 머리가 나쁜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했잖느냐.”

“······정말이었습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여는 진담만을 입에 담는다고.”

“그게 뭡니까······.”


당당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레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열받나?”

“예. 무척이나.”

“그래. 그걸 깨닫기를 바란 것이다.”


눈을 크게 떴던 레비아는 생에 처음으로 씁쓸하게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아아. 그렇습니까······. 제게 죽은 자들도 이런······.”

“황당할 정도로 불합리하지 않더냐?”

“말씀대로.”


정말 그러했다. 영문도 모른 채 모시겠다고 공헌한 신에게 죽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죽음이란 말인가.


그나마도 이건 좀 나은 편이다. 신의 명령이란 연유만으로 학살당한 이들보다는······. 적어도 왜 죽는 것인지는 알고 맞이하는 죽음이지 않은가.



“저는 죄를 범한 것입니까?”

“그런 건 받아들이는 본인 나름이다. 그대가 한 것이라고는 원망―― 업을 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게 아닙니까?”

“엄연히 다르다. 죄란 외부에서 정해주는 것이지만 업은 스스로 새기는 것이다. 그 무게가 달라.”

“더욱 질이 나쁘다는 의미로 들립니다만?”

“뭐, 그렇지······. 죄라는 건 말뿐이지만 업은 영혼에 영향을 끼치니.”


단숨에 긍정하는 리아. 배려 따윈 없다.


레비아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래서야 이스피리아 님을 섬기진 못하겠습니다.”

“응? 어째서냐?”

“······예?”

“말귀가 어둡구나. 여를 섬겨도 괜찮다고 한 것이니라.”

“저, 정말이십니까?”

“여는 욕심쟁이라서 말이다. 적으로 인정할 정도의 인재에겐 빼놓지 않고 언제나 제안하고는 했다. 여의 신하로 들어오라고. 그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그대라면 환영이다. 혼의 탁함 따위야 여에겐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자격은 오로지 이스피리아 님의 인정뿐이란 겁니까?”

“암. 여가 여의 신하를 뽑겠다는데, 그 이상의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느냐.”


정말 오만방자한 신이 아닐 수 없다. 온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나 싶은 거만함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저 패기 가득한 미소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패도······를 논하는 게 아니지. 쯧. ······여하튼 레비아여. 이 여의 밑으로 들어오거라.”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상관없다. 그대의 업은 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눈치가 보일 터이니······, 며칠 대충 웬 종일 두들겨 맞아주거라. 그럼 얼추 풀리겠지.”

“네······?”

“물론 그런다고 죽은 이들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원한은 해소할 수 있다. 이후 그대의 행동에 따라서 말이지.”


리아는 피식 웃었다.



“다른 자들이었다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할 타이밍이건만······. 그대에겐 그러지 못하겠구나.”

“그렇습니까?”

“음. 그대는 지금처럼 고뇌하고 보다 깊이 생각하거라. 그래야 여의 신하에 어울리지.”

“저는······.”

“아아. 이제 그대에게 선택권은 없다. 여기까지 여의 마음에 든 이상 얌전히 따르는 길뿐이다. 그리고 그 능력 모두를 아낌없이 여를 위해 발휘하거라.”


어떻게 이런 자가 존재할 수 있는 건지.


조금의 현혹도 없이 올곧게 뻗은 리아를 보노라면 저도 모르게 동경해 버리고 만다. 절대 닿을 수 없는 그 눈부심에 이끌린 부나방처럼······.



“제 눈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스피리아 님은 제가 생각한 대로―― 아뇨, 그 이상의 존재이십니다. 재차 당신을 뵐 수 있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감사는 누구에게 향하는 것이더냐?”

“당연히 이스피리아 님. 제 모든 것을 당신께.”

“음. 언질 잡았다. 나중에 딴말하면 안 되노라.”

“예!”


정식으로 신하가 되는 것이다. 확실하게 예를 드리기 위해 레비아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됐다. 기력도 없는 주제에 뭘 하는 게냐. 가만히 있어라.”

“죄, 죄송합니다.”

“용서한다. 그리고······.”


리아는 가볍게 레비아를 띄우고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레비아―― 이 세상의 첫 신하인 그대에게 여의 축복을 내린다.”


막대한 신력이 레비아의 육체를 타고 그 혼에 스며든다.


레비아는 말을 듣지 않는 몸에 필사적으로 힘을 주어 가까스로 고개를 조아렸다.



“이 몸이 바스러져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이스피리아 님을 섬기겠나이다.”

“음. 앞으로 잘 부탁하마.”

“예!”


리아는 진중하니 내려보다가 가볍게 숨을 토해냈다.



“무게 잡는 건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둥실.


레비아를 띄운 리아는 다시금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소위 공주님 안기가 새삼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송구스러운 기분에 레비아는 얼른 일어나려 했다.



“여에게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얌전히 있거라. 피곤하지 않으냐.”


확실히 긴장이 풀려서인지 급격하게 피곤이 몰려온다.



“잠시 눈이라도 붙여라.”


그리 권하지만 어찌 신하가 주인을 놔두고 먼저 잠들 수 있단 말인가. 안 그래도 업혀 가는 마당에.


하지만 눈꺼풀이 무겁다. 버티려고 노력해 보지만 점점 더 무게를 불려 갔다.



“괜찮다. 곁에 있을 터이니.”


너무나도 따스하고 상냥한 주인의 목소리에 무심코 안도했다. 전투를 벌일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나 무섭고 두려웠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분명 이대로 눈을 감더라도 기꺼이 용서해 주시겠지.


하지만 아쉬운 나머지 다 감긴 눈을 기어코 떠, 마지막으로 주인의 용안을 담아냈다.


그렇게 더할 나위 없는 충족감에 만족하며 레비아는 눈을 감았다······.





레비아를 안고 지상으로 내려오자 찬크에르가 곧장 다가왔다. 그는 조금 낌새를 살펴보더니 시선을 내려 레비아를 쳐다봤다.



“죽었나?”

“보이는 대로다.”


리아의 팔에 안긴 레비아는 아직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살아있어서가 아니었다. 방금 막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후후. 무척이나 예쁜 미소이지 않은가. 오히려 여가 보람을 느끼는군.”

“그건 이제 어쩔 셈이지?”

“어쩌긴. 레비아는 여의 신하다. 되살리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

“소생시킨다고······?”

“물론. 하나, [소생]을 쓴다는 건 아니다. 그건 혼을 소모시킨다. 당사자조차 큰 영향을 못 느낄 정도지만, 그 소모된 만큼의 탈력감은 분명 존재한다. 제법 요양하면 회복이야 하겠지만······ 모처럼 생긴 신하다. 잘 챙겨주는 것도 괜찮겠지.”


찬크에르는 리아의 마법 스승이다. 신의 대리자로서 마법은 숨을 쉬는 것과도 동일한 존재다. 심지어는 마법의 화신으로까지 불리기도 한다. 그런 그가 [소생]의 부작용과 그에 따르는 요양이 필수임을 모를 턱이 없다.


그럼에도 구태여 묻는 것은 살펴보기 위함이다. 극진히도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의 몸이 괜찮은지 진단하기 위해, 필요도 없는 문답을 억지로 이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쪽의 말엔 관심조차 없는 것이겠지.


리아는 작게 혀를 차고는 단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레비아를 조심히 올려놨다.



“리아!”

“음. 루데릭인가?”


정보로서 먼저 알고 있었기에 즉각 누구인지 알아봤다.


하지만 앞에 두고 보니 인상이 제법 다르다. 호리호리한 개구쟁이의 기억만이 전부인 리아로서는 그가 초면의 다른 사람으로만 여겨졌다.



“확실히 엄청 듬직해졌구나. 필시 많은 노력을 쏟았겠지.”

“으응? 노력이야 하긴 했지? 아. 그게 아니고――”

“반가운 건 알겠다. 여도 그러하다. 하나, 밀린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지. 레비아를 살려야 한다.”

“어. 그래. 알았어.”


여러모로 하고픈 말이 많아 보였으나, 레비아를 살려야 한다니 곧장 눈빛이 진지했다.


참으로 루데릭답다.


다른 세상, 전혀 다른 미래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비슷한가 보다. 기억 속의 루데릭처럼, 애송이 주제에 심지가 굳센 점이 특히나.



“쿡쿡.”

“뭐, 뭔데?”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여는 지금부터 [부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겠노라.”


방해하지 말란 의미를 담아 말하였고, 루데릭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점차 인파가 모여든다. 하지만 리아는 한눈팔지 않고 작업에 매진했다. 라프리트―― 그녀와 어떻게든 눈이 마주하지 않도록.


작가의말

무무카케 : 그래!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빨리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저번에 말씀드린 카페일 때문에 제법 바빴네요

최대한 일정을 맞추려고 노력하겠습니다만, 앞으로 간혹 늦어질수도 있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무척이나 송구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추석 한가위 잘 보내세요! NEW 11시간 전 1 0 -
274 231 NEW 13시간 전 3 0 41쪽
273 230 24.09.10 20 0 41쪽
272 229 24.08.29 23 0 40쪽
271 228 24.08.25 24 0 42쪽
270 227 24.08.17 43 0 46쪽
269 226 24.08.05 47 0 45쪽
268 225-2 24.07.28 33 0 12쪽
267 225 24.07.28 31 0 45쪽
266 224 24.07.21 46 0 44쪽
265 223-2 24.07.09 28 0 14쪽
264 223 24.07.09 33 0 43쪽
263 222-2 +2 24.06.19 77 0 31쪽
262 222 +2 24.06.19 57 0 42쪽
» 221 +2 24.05.01 76 0 37쪽
260 220 +2 24.04.30 53 0 45쪽
259 219-2 +2 24.04.10 42 0 13쪽
258 219 +2 24.04.10 121 0 42쪽
257 218 +2 24.03.25 57 1 43쪽
256 217 +2 24.03.14 45 0 50쪽
255 216 +2 24.03.01 52 0 40쪽
254 215 +2 24.02.22 58 0 40쪽
253 214 +2 24.02.15 53 0 45쪽
252 213 +2 24.02.01 68 0 48쪽
251 212-2 +2 24.01.22 49 0 21쪽
250 212 +2 24.01.22 59 0 33쪽
249 211-2 +2 24.01.03 65 0 20쪽
248 211 +2 24.01.03 95 0 43쪽
247 210 +2 23.12.03 135 0 45쪽
246 209 +2 23.12.03 60 0 4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