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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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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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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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한편, 아루신에서는······.

DUMMY

카추샤 두나는 이마를 괴었다.

주브만칼리를 통치하는 일곱 상임위원은 흙빛 얼굴로 그녀의 눈치만 살폈다.


상임위원에서 가장 어린 바치수 네리야가 60살이었는데, 그런 노인네들이 고작 25살짜리 계집애에게 겁먹고 있는 꼴이 참 볼만했다.


카추샤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고 예의 보고를 올린 그 말단 당원에게 물러가도 좋다는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책상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꼼짝도 못 하고 숨 막히는 침묵에 짓눌릴 뿐이었다.


그나마 위원장 코네샤 소데라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서 놓쳤다고?”


20대를 갓 넘긴 것처럼 보이는 당원이 재빨리 대답했다.


“네, 다프네스 산 8부 능선 입구였습니다. 츠카가 염력으로 베카린 윈스반의 시체를 던져 수색대에 다수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고 합니다.”

“그때 무괴는 어디에 있었지?”


카추샤가 침묵을 내려놓았다. 고막을 통과해 뇌를 찌르는 것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에 그 당원의 다리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용케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듣기로는, 츠카와 함께 도망쳤다고 합니다. 각하.”

“달이 떠 있었어?”

“네, 어젯밤은 내내 맑았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이제 나가.”


말단이 경례하고 회의장의 문을 닫은 뒤 물러났다.

회의장에는 상임위원과 카추샤만이 남게 되었다. 카추샤가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앉았다. 상임위원들이 쭈뼛쭈뼛 발언했다.


“유감이지만, 츠카를 잡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괴를 쫓는 건 불가능합니다.”


카추샤가 그렇게 말한 위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겁에 질려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도 카추샤는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렇겠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말이야.”


위원들은 카추샤가 아주 침착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녀는 적어도 당장 무괴와 츠카를 따라가라고 명령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카추샤는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메케인, 츠카는 못 도망친다.”


회의장에 잡음이 생겼다. 카추샤는 아름다운 손가락을 허공에서 휘휘 돌렷다.


“무슨 말이신지······.”

“윈스반한테 물어보면 알 거야. 보험을 들어놨지.”


그러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 명에게로 쏠렸다. 그는 상임위원이자 만칼리 과학기술연구부장 베이카 윈스반이었다. 베이카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우선, 저희 가문 여식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각하.”

“그래. 너희가 만칼리 정부에 이바지해온 바를 참작하여 상황을 수습할 기회를 주겠다. 위원들에게 설명해라.”


베이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상임위원들에게 연구의 성과를 일부 공유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츠카에게 실험한 모든 내용을 국민회의에 부치지는 않았소. 너무 많고, 별 성과 없는 것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중에는 츠카를 효율적으로 제어하려는 조치도 포함되어 있었소.”

“그럼 츠카를 다시 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어떻게 가능하죠?”

“설명하려면 복잡하오. 우선 옥토끼의 회복력에 대해서 말해야겠지.

츠카의 몸 안에 이물질을 집어넣었을 때, 대부분은 면역 체계가 분해해 버렸소. 분해 속도보다 더 많은 양의 독약을 투여해도, 아주 잠깐의 중독 증세가 나타나긴 했지만 이내 회복해 버리지.

그래서 옥토끼가 분해할 수 없는 물질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이내 답을 찾았다오. 속도와 효율의 차이일 뿐 옥토끼의 면역 체계 자체는 평범한 동물과 다를 바 없지. 그들의 세포도 중금속을 분해할 수는 없었소.

하지만 중금속······수은이나 납 중독은 갈증을 일으키지는 못하지, 대신 우리는 거기서 착안해 납으로 된 작은 장치를 만들었소.”


베이카 윈스반은 여기서 손으로 가느다란 막대기 비슷한 것을 표현해 보았다.


“이 안에 헤로인을 넣고, 츠카의 뇌하수체 밑에 집어넣었지. 그러면 안팎의 압력 차에 의해서 헤로인이 아주 조금씩 흘러나오게 되었소.”

“원래 주사로 주입하고 있지 않았나요?”

“그렇소. 이 장치는 지금처럼 츠카가 탈주했을 때, 놈이 계속해서 마약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오.

츠카의 세포는 계속된 헤로인 주입에 내성이 생겨 더 많은 약을 요구할 테지만 장치는 언제나 극미량만을 제공하지. 이렇게 인간보다 짧은 옥토끼의 의존증을 계속 연장하는 것이오.”


상임위원들의 표정이 아주 활짝 폈다.


“그럼 츠카가 제 발로 다시 찾아올까요?”

“언제일지는 확신하기 어렵소. 저녁에 투입해놓은 약이 듣고 있을 동안에는 갈증에 시달리지 않을 테지. 강물에 젖어 체온이 내려가면 분해 속도도 느려지니까. 내 소견으로는, 내일 오전 중으로 중독 증세가 올라올 것 같소. 아, 하지만 그가 다시 찾아올 거라는 건 확실하오.”


상임위원회는 화색이 되어 일제히 베이카 윈스반과 카추샤 두나를 칭송했다.


“다행이군요.”

“역시, 각하의 혜안은 탁월하십니다.”

“윈스반 위원의 일솜씨는 믿을 만하지요.”


카추샤 두나는 그런 훈훈한 분위기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잘 없었기에, 상임위원들은 카추샤가 뭘 생각하든 일단 그녀를 칭찬하는 것에 열중했다. 그들은 베이카 윈스반에 비해 카추샤 두나에게 더 많은 칭찬을 할애했다.


반면 카추샤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생각을 이어갔다.


그녀는 헤로인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마약을 아주 신뢰했다. 마약 중독은 개인의 의지로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츠카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먹지도 않은 음식물을 죄다 토해내고 칼에 찔리지도 않았으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아루신에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는 헤로인을 달라면서 애원할 것이다.


뇌 속의 장치는 츠카가 계속해서 헤로인에 시달리도록 만들 것이다. 염력으로 뇌를 헤집는 순간 사고가 정지하므로 장치를 스스로 파괴할 수도 없다. 카추샤와 베이카는 츠카에게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내린 셈이다.


하지만 카추샤는 아주 불길한 감각을 느꼈다.


그 느낌은 마약 중독자들이 의존증을 묘사하는 것과 똑같은 감각이었다. 다리가 80개쯤 달린 벌레들이 피부 위를 꾸물꾸물 기어올라 모공 사이사이로 파고들려고 하는 느낌. 불안감이었다.


카추샤는 불안했다.


그녀는 츠카를 자신의 통제 아래로 두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어디선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어떤 변수가 까꿍 튀어 올라 츠카를 낚아채 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의 눈 아래 발등 위에 두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카추샤는 이렇게 지시했다.


“추적을 지속해라.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수색대를 다시 꾸려.”


상임위원회는 계속된 카추샤의 침묵에 칭찬을 멈추고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성향도 잘 알고 있었기에, 예상했다는 듯이 그 명령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명령의 이유를 들을 수는 없었다. 카추샤가 곧바로 회의장을 박차고 떠났기 때문이다.


상임위원회는 찬물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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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추샤 두나는 자신의 사무실에 돌아왔다.


해가 잘 드는 북향 창문, 모든 것이 정갈한 가구 배치가 마음에 안식을 주었다. 이

공간의 모든 것은 단 2개를 제외하고 카추샤의 의도대로 존재했다.

그녀는 사무실 문 위에 부적처럼 걸려있는 두 개의 초상화를 돌아보았다.


사무 책상에 앉으면 초상화와 바로 눈이 마주치는 배치였다. 저것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올라왔지만, 카추샤는 굳이 그것들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왼쪽에 있는 초상화는 카추샤의 아버지 네흘류 두나이다. 그리고 오른쪽은 어머니 샤투카 두나이다. 그들은 만칼리 삼각형을 사이에 두고 가증스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기들이 무슨 자애로운 성자라도 되는 양 웃는 낯짝이 마음속에 불을 질렀다.


카추샤가 그것들을 치워두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전대 주브만칼리 수장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들을 잇는 핏줄이 카추샤를 군림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눈앞에 오도록 배치한 이유는, 카추샤는 뒤통수나 옆구리로 저 역겨운 시선을 받아내기에 비위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카추샤는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면서 사무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머리를 괴고 생각했다.


조만간 카추샤는 네흘류와 샤투카의 딸이 아니고서도 주브만칼리를 통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영보교의 성녀가 아니고서도 주브만칼리의 수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보교······. 참 웃긴 이름이었다. 바다 너머의 가나 대륙에서는 주브만칼리 국민들이 두나 가문에 보내는 광적인 찬양을 두고 ‘영보교’라고 비꼰다고 한다. 카추샤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정삼각형 3개가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만칼리 삼각형도 영보교라는 단어만 끼어들면 그만큼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없었다.


어쨌건, 그때가 오면 만칼리 상임위원회장, 국방위원회장, 무력 최고사령관, 국무위원장. 이 모든 이름이 카추샤의 손안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츠카가 필요했다.


불안감이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느슨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고작 13살짜리 계집애가 내 기분을 잡쳐놓다니······.


혼란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처음 그 물꼬를 트는 건 어렵지만, 두 번째부터는 오히려 흐름을 막기 위해 온몸을 내던져야 하며, 이미 새로운 흐름이 생긴 세 번째에 와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고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고치고 싶다면 나태해져서는 안 된다. 2번째 허물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러려면 1번째 불안요소를 철저히 뿌리뽑아야 한다.


카추샤는 고개를 들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그녀의 부모와 눈싸움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녀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린다.


그날 상임위원장 교지는 다음과 같았다.

1. 탈주자의 어머니인 슈돈나 윈스반을 처형한다.

2. 츠카를 호위하는 10명의 병력을 차출해 조직한다.

3. 근위대 2사단은 특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윈스반 가문을 호위한다.

4. 생업에 종사하고 이웃에게 봉사하여 부강조국을 건설하고 경애하는 수령님의 유일적령도강령을 위하여 몸 바쳐 투쟁한다.


평소보다 의아하게 적은 양의 교지를 보고, 주브만칼리 국민들은 하나같이


“이토록 교지가 간단명료한 것을 보아, 각하와 수령님의 은혜 덕에 세상만사에 허물과 부도덕이 없나 보다!”

라며 칭송하였다.


그들은 잿가루 묻은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려 목청껏 만세를 외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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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옥토끼와 인간과 지사리와 무괴 22.06.02 25 4 11쪽
» 한편, 아루신에서는······. +1 22.06.01 44 4 11쪽
5 오해 +1 22.05.31 41 6 11쪽
4 물 속의 불 22.05.31 49 10 9쪽
3 낙관은 사람의 아편이다. 22.05.30 55 12 12쪽
2 달빛 아래 야반도주 +1 22.05.29 100 23 22쪽
1 육체가 없는 지사리 +1 22.05.27 208 3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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