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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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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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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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

DUMMY

비아스 개런은 이제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잔해 사이를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뭐 찾아?”


비아스의 등 뒤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몸이 굳어 버렸다.


“총 같은 거 안 겨누고 있으니까 그냥 얌전히 뒤돌아봐.”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지원이 방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비아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원이 이토록 여유로운 이유는 그녀가 완벽한 우위에 서있기 때문이었다. 비아스는 어떤 무장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에 반해 지원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칼과 리볼버, 몸이 무거울 정도로 많은 총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비아스의 동료들은 전부 제압되어 있었지만 지원의 뒤에는 언제라도 비아스의 머리통을 꿰뚫어버릴 준비가 된 옥토끼와 수틀리면 바로 전신을 불살라버릴 지사리가 있었다.


비아스는 자신의 생사가 전적으로 상대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원이 물었다.


“넌 분명히 내가 직접 묶어 놨었는데, 이건 어떻게 푼 거지?”


그녀는 비아스를 묶어놨던 밧줄을 들고 흔들어보였다. 밧줄은 여전히 매듭이 지어져 있었고, 칼 같은 것으로 자른 흔적은 없었다.


비아스는 머뭇거리다가, 뭐라도 대답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입을 열었다.


“관절을 혼자서 뺄 수 있는 체질이라서.”


비아스의 손목, 팔에는 지원이 밧줄을 꽉 졸래맸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거친 밧줄이 쓸린 찰과상이 손등 전체에 문신처럼 퍼져 있었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기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특이하네.”


이윽고 방문 밖에서 묵직하고 커다란 상자가 둥실둥실 떠내려왔다. 지원은 발로 그 상자를 퍽 찼다.


“이걸 찾고 있었지?”


정답이었다. 정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비아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비아스의 얼굴에서 노골적인 당황을 읽은 지원은 아예 상자의 내용물을 보여주기로 했다.


상자의 덮개를 열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양의 포탄이 들어있었다.

지원은 그 중 하나를 들고 비아스를 노려보았다. 비아스의 등 뒤에는 끝내주는 도시 풍경이 보이는 창문에 대포가 걸쳐져 있었다.


“다 끝났는데, 왜 굳이 발악을 하는거지? 대포를 어떻게 쓰는데 성공했으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았어?”

“이건 우리의 사명이다. 너희는 이해 못하겠지.”

“‘경애하는 수령님’의 숙원을 추구하는 게 만칼리 전사들의 사명이었지. 겨우 그까짓게 네흘류 두나가 원하는 거냐?”


‘경애하는 수령님’을 만칼리어로 말했기에, 도발의 효과는 환상적이었다. 비아스가 소리쳤다.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마!”

“내가 왜 네가 원하는대로 해주어야 하는데? 너는 명령을 내릴 입장이 아니다. 그 돼지새끼가 뭐가 존경스럽다고, 허.”


비아스가 지원에게 달려들었다.


상대가 흉기를 들고 있지 않았기에 지원은 맨손으로 제압했다. 갈비뼈를 몇 대 때려주니 몸을 움츠리고는 다시 펴지 못했다.

지원은 한손으로 비아스의 양손목을 한꺼번에 잡아서 등 뒤로 넘긴 뒤 몸무게를 실어서 눌렀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뒷목을 압박했다.


<괜찮아?>


루니가 방 밖에서 다른 생존자들을 감시하며 텔레파시를 건넸다. 안쪽에서 일어나는 우당탕쿵탕 소리는 청력이 절반으로 떨어진 루니에게도 신경쓰였다.


“괜찮아요. 아무래도······.”


비아스가 지원의 명치를 세게 때렸다. 분명 엎드린 자세에서는 신체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타격이었기에 지원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고통에 옆쪽으로 쓰러진 다음에야 지원은 관절이 빠져 기괴하게 비틀린 비아스의 팔을 볼 수 있었다.


비아스는 빠진 관절을 장난감 조립하듯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지원이 열어놓은 포탄을 챙겨들어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만둬!”


지원은 명치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그 사이 포탄은 숙련된 손놀림에 의해 순식간에 대포에 장전되었다. 비아스는 힘을 쥐어짜 대포를 움직여 도시 한가운데를 겨누었다.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지원이 비아스의 팔을 낚아챘다.

그녀를 제압하려 했지만, 일반적인 관절기가 통하지 않았기에 창문틀에 밀어붙여 몸무게로 찍어누를 수밖에 없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오지 마세요! 밖에 있는 사람들 계속 감시하고 있어요!”


루니가 지원을 도와주기 위해 방 안에 들어오면, 거실에 있는 다른 생존자들이 다시 무슨 짓을 할 지 몰랐다.


그때 등 뒤가 후끈후끈해졌다. 기르불이 온 것이었다. 기르불은 지원을 도와주지 못했다.


“지원, 비켜! 그렇게 있으면 방해돼!”

“안됩니다! 조금이라도 속박을 풀면 방아쇠를 당길 거예요!”


비아스의 등이 뒤로 꺽인 채 창틀에 걸쳐져 있고 그 위로 지원이 짓누르고 있는 자세였다.

기르불이 비아스를 공격한다면, 열기는 상승하므로 지원이 심각한 화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마땅한 소독 기구도 없는 지금 상황에 화상을 입는다면 감염되어 패혈증이 생길 것이다.


두 여자는 계속 힘싸움을 했다. 비록 비아스는 체격이 더 컸지만 이미 루니가 던진 가구에 실컷 얻어맏은 뒤라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계속 반항하면 널 죽일 수밖에 없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져?”

“비겁하게 사느니 죽는게 나아!”

“죽고 싶으면 혼자 죽지 굳이 도시 단위로 민폐를 끼치고 죽어야겠어?”


지원은 비아스를 죽여야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함부로 칼을 쥐려고 손을 움직였다가는 또다시 그 신묘한 관절꺾기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 순간 문득 깨달음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흉기가 지원에게 쥐여져 있었다. 중력이었다. 지금 자세에서 그대로 앞쪽으로 밀어붙이면 바로 추락사시킬 수 있었다.


비아스가 지원의 눈빛과 미묘한 몸짓에서 불길함을 읽고 입을 나불댔다.


“너, 너! 서로만에서 왔다고 했지! 어느 쪽이야, 정부야, 돛대 없는 배야?!”

“알 바 없어. 그냥 죽어.”

“김옥희! 내가 그 여자를 알아!”


비아스는 정답을 골랐다.

돛대 없는 배의 창립자의 이름이 비아스를 밀어붙이던 지원의 팔을 굳게 만들었다. 지원은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상대의 말에 건성건성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려 애쓰면서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분 이름은 왜 말해?”

“돛대 없는 배구나? 난 서로만에서 공작원으로 일했지. 돛대 없는 배 지하에 뭐가 있는지도 알아. 하나 알려줄까? 그 여자가 단순히 말빨이 좋고 인품이 좋아서 온 대륙에 흩어진 옥토끼들을 서로만으로 모았을까? 응? 이상하다고 생각해본적 없어?”


지원은 어느덧 비아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열린 창문으로 들이닥치는 바람과 비아스가 손을 걸치고 있는 대포, 아래쪽으로 넓게 펼쳐진 터리놀 시내가 전부 시야의 구석으로 밀려났다.


비아스는 상대가 상념에 잠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제압을 풀고 체격에 걸맞는 힘을 발휘해 지원과의 위치를 바꾸었다.


지원은 창틀에 등의 피부가 짓눌린 채 밀려나갔다. 손바닥으로 창틀을 잡으려 했지만 몸무게가 실린 압박에 오히려 찰과상을 입는 부위가 넓어질 뿐이었다.


이제는 지원이 추락사할 위험에 처해졌다. 비아스는 희번뜩 웃으면서 말했다.


“떨어지면서 잘 생각해 봐라, 온 가나 대륙이 토끼들을 끌어모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왜 서로만이었을까? 벌서라도 아니고 터리놀도 아니고 그 허허벌판에 말이야.”


보기좋게 도발에 넘어갔다.


김옥희가 어떤 인간이든 이제는 별 상관이 없었다. 더이상 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죽은 사람이었다. 과거에 지원과 연이 있었지만 김옥희가 어떤 인간인지 의심하는게 지금 상황에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동요했을까.

답은 지원이 바보같았기 때문이었다.


김옥희가 언젠가 처세술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당황했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무표정을 유지하라고 가르쳐줬었다.


하지만 지원은 딴에 여유로워보이겠답시고 연기하듯이 대답했다. 누가 봐도 당황했다는 게 보이는 말투였다. 결국 지원이 배운 걸 제대로 써먹지 못했기에 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기르불이 협박했다.


“그 애가 떨어지면 60°C에서 저온 숙성으로 최대한 천천히 죽여주마!”


비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지원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발포할 생각이었다.


루니에게 도와달라는 텔레파시를 보내기도 전에, 무게중심이 창틀 밖으로 빠져나왔다. 몸이 건물 바깥으로 스르륵 미끄러지는게 느껴졌다.


지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겸허하게 곧 두개골이 땅바닥과 부딪히며 느끼게 될 짧고 강력한 고통을 준비했다.


‘퍽’ 소리가 났다.

체감하기로 몇 시간이 지나도 머리가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높은 고도의 바람과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꺾인 머리 때문에 낙하감이 만들어져, 눈을 뜰 엄두가 나질 않았다.


지원의 가슴부터 목덜미까지 따듯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만일 떨어지고 있다면 액체가 피부 위에서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제야 지원은 눈을 떴다.


비아스가 쇄골 사이에 구멍이 난 채 피를 철철철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균형을 잃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다음 순간, 다시 한번 ‘퍽’ 소리가 났고 이번에는 비아스의 턱이 부서졌다.


비아스는 지원의 배 위로 엎어졋다. 그녀의 무게 덕분에 지원은 몸이 고정되었고 창문 밖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예요? 기르불, 어떻게 된 겁니까?”

<지원아! 괜찮아? 니들은 가만히 있어 다 밖으로 던져버리기 전에!>


루니가 생존자들을 향해 내는 신경질이 걱정의 텔레파시와 함께 흘러들어왔다.


지원은 방 안쪽으로 굴러가듯 몸을 옮겼다.

기르불은 벽지를 타고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지사리의 시야에 터리놀의 시내 전경이 담겼다.


그는 수많은 건물 중 한 곳의 옥상에서 한 눈에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찬호?”


나실 호텔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라한 터리놀 시내의 어느 영세 호텔의 옥상에서, 찬호가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저격총과 쌍안경으로 VIP룸을 조준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풍요로운 한가위, 옥토끼들이 살았다는 보름달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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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신의 이름으로 22.09.15 26 1 9쪽
» 저격 22.09.10 36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6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6 1 10쪽
58 단둘이 22.09.02 35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28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7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6 1 11쪽
54 함필규 22.08.21 21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25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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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4 1 10쪽
49 불안 22.08.06 25 2 11쪽
48 인질들 22.08.05 23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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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기다림 22.07.31 25 1 10쪽
45 블러핑 22.07.28 33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9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30 1 9쪽
42 모함 +2 22.07.21 33 1 11쪽
41 감금 +1 22.07.09 44 2 13쪽
40 진술 +2 22.07.06 42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33 2 9쪽
38 패륜 +2 22.07.03 3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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