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지를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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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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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1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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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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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신아연은 일격에 즉사한 몬스터를 힐끗 내려다봤다.

평소처럼 가벼운 산책을 하고 있던 그녀가 다급히 이곳에 온 건 상당한 규모의 마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게이트 역류였다.

A급 몬스터 울트로게질. 웬만한 A급 헌터들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적색 게이트의 보스급 몬스터.

그런 괴물이 도심에서 본격적으로 날뛰기 전에 마침 인근에 있던 그녀가 그리 늦지 않게 도착한 건,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 몇십 배는 되는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


신아연이 앞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딘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서있는 남자.

얼굴을 모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야 바로 아까 전에 봤으니까.

방금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처럼 몬스터한테 소리치던 것도 전부 봤고.

사체에서 내려온 신아연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왜 그리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


퍼뜩 정신을 차린 남자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진짜 안 죽으려고요.”


몸을 돌린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신아연은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그만 그에게 신경을 껐다.

정말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면 몇 번을 구해주든 어떻게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 * *



나는 그 길로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복잡해져서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운명의 신의 가호.

이거, 정말 내가 생각한 대로의 능력이 맞는 건가?

아까 전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본다.

마인이 내게 쏘려던 대포는 하필 그 순간 고장이라도 났는지 지 혼자 터져나가고.

다음으로 마인이 날 죽이려고 달려드니, 게이트 역류로 몬스터가 튀어나와 마인을 죽여버리고.

몬스터의 마력 폭격은 모조리 다 빗나가고, 마지막에는 신아연이 나타나서 몬스터를 끝장내버렸고.

이게 단순히 우연으로 일어날 수가 있는 일들인가?

당연히 아니었다.

마치 온 세상이 어거지로 내 죽음을 회피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그러니 아마도 진짜일 것이다.

나는 운명으로 정해진 2079년까지, 70살까지는 죽지 않는다.

내가 죽으려 작정하고 별 지랄을 다 한다고 해도 말이다.


‘정말로 안 죽나?’


하지만 이만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의구심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내가 지금 당장 칼로 내 목을 찌르려고 하면?

그러면 무슨 수로 내 죽음을 막을 수 있는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방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방에서 식칼을 꺼내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칼 손잡이가 빠져서 며칠 전에 버렸었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오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도로 드러누웠다.

왠지 맥이 빠져서 그냥 관두기로 했다. 더 시험해보는 건.

어쩌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운명에 포함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진짜라고 치고.’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숨겨진 면을 깨닫고 나니 확실히 대단한 능력은 맞는 것 같다.

근데 이건 딱히 눈에 보이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가호를 얻었다고 협회에 알려도, 믿기나 할까?

증명하려면 어떻게든 증명할 방법이 없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


나는 이내 결정했다.

내가 가호를 얻은 사실은 아무 데도 알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이게 무슨 대단한 전투 능력인 것도 아니었기에, 아무리 대단한 가호라고 한들 나는 아무런 힘이 없는 일반일일 뿐이었다.

가호의 존재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괜히 남에게 이용만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만 알고 있자.’


곧 다른 고민이 떠올랐다.

그럼 이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이 죽지 않는 유사 불사신 같은 능력을 말이다.

어쨌든 능력이 생겼으니 쓸모 있게 써먹긴 해야 되지 않겠는가.


“음...”


생각이 나는 게 있었기에, 나는 책상으로 다가가서 노트북을 펼쳤다.


[끔찍한 재앙, 도심 한가운데서 마인 테러와 적색 게이트 역류...]

[S급 헌터 신아연이 마인과 몬스터를 토벌하고 사람들을 구해...]


아까 전 일들이 인터넷에 속보로 뜨고 있었다.

무시하고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했다.


이 운명의 가호를 활용할 방법.

일단 당연히 돈 되는 걸 하고 싶었다.

목숨을 담보로 큰 보수를 받는 일이야 뭐든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근데 난 그중에 이미 알고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한 노동만으로, 아주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게이트 구분 조력.’


보통의 게이트는 던전 공략을 마치지 않아도 안팎으로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번 진입할 시 반드시 던전을 공략해야만 나올 수 있는 게이트들이 일부 존재하는데, 이를 ‘폐쇄형 게이트’라고 부른다.

게이트가 개방형인지 폐쇄형인지의 구분은 헌터들에겐 중대 사항이었다.

온갖 위험과 변수가 가득한 공략에서, 만일의 경우 퇴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데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길드들은, 특히 높은 등급의 게이트일수록 반드시 폐쇄형인지부터 확인하고 공략팀을 구성한다.

만약 아무 정보도 없이 들어갔는데 폐쇄형 게이트였다?

그건 공략 실패가 곧 전멸이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게이트가 폐쇄형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직접 들어가보는 것밖에 없다.

그러니 우선 한 사람만 들어가는 식으로 그걸 확인한다.

하지만 헌터들은 귀한 인력이다.

만약 폐쇄형에 걸려 몬스터에게 죽는 리스크를 짊어지기엔 말이다.

때문에 그런 리스크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 부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되어있었는데, 그 다른 누군가란 당연히 일반인이었다.

한마디로 헌터를 대신해 일반인이 희생하는 것이었다.

이건 과거에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마땅히 여겨지는 시스템이었다.

게이트 문제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분열하고 소멸하기까지 하는 시대에, 결국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는 건 헌터들뿐인데, 인권을 외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서서히 작아질 수밖에 없었기에.


어쨌든, 오직 운에 목숨을 맡기고 그만한 목숨값을 받는 일이었다.

던전 입구부터 몬스터가 있는 경우는 없기에 개방형 게이트일 경우 들어갔다가 바로 나올 수 있다고 한다.

폐쇄형이면 그대로 갇혀서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되겠지만.


높은 등급의 게이트일수록 폐쇄형일 확률도 높아진다.

나는 검색해서 기본적인 정보를 찾아봤다.

적색 게이트의 경우는 구분 조력에 지원하면 3억쯤 받는 모양이다.

그리고 적색 게이트가 폐쇄형인 확률은 30% 정도였다.


게이트만 한 번 들락날락하면 몇 억이 생긴다니.

지금 당장 내 능력을 활용하기에 이만큼 완벽한 벌이가 또 있을까?


나는 신청 방법을 알아본 뒤 협회 사이트에 접속했다.

근데 보니까 이것도 지원 경쟁률이 상당히 빡셌다.

뭐, 그런가.

다 포기한 막장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겐 아마 훌륭한 도박일 것이다.

목숨만 걸면 아주 간단하게 거금을 얻을 수 있으니.

나라고 별로 다를 바는 없었다.

적색 게이트보다 등급이 낮은 청색 게이트를 찾아봐야 되나.

큰돈이 되는 걸 신청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배가 고픈 나는 우선 뭐부터 먹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만에 하나, 내가 가호에 대해 무언가 착각한 거라면.

이 능력이 내 죽음을 무조건 막아주는 능력이 아니라고 한다면?


‘죽으면 그만이야.’


그때는 죽으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이 능력만 아니었으면 끝내려 했던 인생이니.

나는 휘파람을 불며 컵라면에 스프를 뿌렸다.



* * *



협회 관리부의 최석훈은 시간을 확인했다가, 옆쪽에 있는 게이트를 힐끗 쳐다봤다.

청색 게이트 앞에는 그 말고도 두 사람이 서있었다.

한 명은 길드 측 헌터고, 한 명은 구분 조력 지원자였다.


“시간 됐습니다.”


최석훈은 지원자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김상철 씨,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이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게 될 텐데, 정말 후회는 없으십니까?”


게이트 구분 조력 현장에서는 협회의 직원도 개입한다.

길드가 제대로 절차대로 일을 진행하는지 감시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지원자에게 마지막 확인을 하는 것 또한 그들의 일이었고.

이미 계약서를 다 작성했어도 지원자는 도중에 마음을 바꾸는 게 법적으로 가능했다.

어쨌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니 마지막까지 최대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었다.


“네, 없어요.”


남자가 조금의 긴장감도 없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고작해야 스물 후반 나이의 남자.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해도 아직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다.

최석훈은 한심함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마음에 말했다.


“다시 잘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게이트에 갇히면 당신을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몬스터에게 쫓기다 끝내 끔찍한 방식으로 죽게 될 겁니다.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까?”


길드의 헌터가 심드렁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저래서 갑자기 관둔다고 하면 길드 입장에서는 또 지원자를 구해야 하니 번거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석훈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런 설득도 협회의 일이라면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네네, 괜찮아요.”


남자가 듣는 둥 마는 둥 손을 저었다.


“이건 분명히 개방형 게이트일 테니까요.”

“...그게 대체 무슨 자신감입니까?”

“신이 아직은 제가 죽을 때가 아니라고 했거든요. 제가 안 죽으려면 이게 폐쇄형일 수가 없겠죠.”


미친놈.

최석훈은 혀를 차고서 더 설득을 관두었다.

이 정도면 자신은 할 만큼 한 것이었다.


“빨리빨리 시작 좀 하죠.”


헌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게이트 바로 앞에 다가가 섰다.

그리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게이트에 몸을 내밀었다.

그의 몸이 빨려들어가듯 스르륵 사라졌다.


“깡은 좋은 양반이네. 안 그래요?”


헌터가 피식 웃으며 최석훈에게 말을 걸었다.

최석훈은 대답하지 않고 게이트를 바라봤다.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게이트가 갑자기 일렁거렸다.

두 사람은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게이트의 색이 갑자기 청색에서 적색으로 물들었다.

그 광경에 최석훈이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함정 게이트...!”


함정 게이트. 혹은 위장 게이트.

사람이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등급이 변하는 게이트를 칭한다.

그리고 이런 함정 게이트의 경우, 악의가 가득하게도 폐쇄 특성까지 동반할 확률은 90%가 넘었다.

폐쇄형뿐 아니라 희박하게 이런 경우도 대비하기 위해 게이트 구분 조력이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건 갔네.”


헌터가 쯧쯧 혀를 찼다.

함정 게이트에 걸린 이상 살아남기는 글렀으니까.

최석훈도 남자의 죽음을 거의 확신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하는 업무지만, 사람을 사지로 떠밀고 죽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스륵.


남자의 모습이 게이트 바깥에 나타났다.

헌터도 최석훈도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게이트를 힐끗 돌아본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함정 게이트네요.”

“......”

“이거 게이트 등급 바뀌면 바뀐 등급에 맞춰서 대금 주는 거였죠? 이야, 적색 게이트면 얼마였더라.”


헌터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게이트 등급이 바뀌었다고 길드에 상황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최석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 황당해서 말했다.


“당신 방금 거의 죽을 뻔했다는 건 압니까? 함정 게이트는 원래 열에 아홉은 폐쇄형입니다.”

“근데 안 죽었네요. 그럼 됐죠.”


고개를 돌린 남자가 전화를 마친 헌터에게 손을 흔들었다.


“돈 빨리 입금해주세요. 잘 벌고 갑니다~.”


세상에 이상한 놈들이야 많다만은, 저런 미친놈은 또 처음이었기에 헌터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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