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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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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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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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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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1부 프롤로그(3)

DUMMY

세 건의 사건들을 통해 범인이 이루고자 했던 목적, 가브리엘은 그 상세한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성녀님을 모시는 신관들을 공격하면 성녀님의 수족인 우리 ‘천사’들이 손을 쓸 수밖에 없지. 범인은 그걸 노린 거야. 하투사의 영주가 우릴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거야. 그렇게 우리가 여기에 온 순간 범인의 목적은 이루어졌어. 그래서 네 번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거고 목적을 달성한 범인은 수면 아래로 몸을 감춘 것이지.”

가브리엘은 우습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를 이었다.

“신관들을 죽이면서 우릴 여기에 불렀어. 우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겠다는 걸 모를 리가 없잖아? 그리고 신관 근무를 한 내부자라면 들은 게 있겠지. 우리 천사들이 주로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 예를 들어 저기 있는 우리엘은 전투에 관련된 임무, 그리고 나는 내정에 관련된 임무. 너희가 이런 방식으로 천사를 부르려고 했다면 분명 부르려고 한 천사는 나 하나였으려나? 실제로 너는 나와 대면했을 때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었고 말이야.”

그러니까 가브리엘은 지켜보는 역할을 관두고 직접 사건에 뛰어든 것이다. 적들의 목표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생긴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까.

“뭐, 물론 범인이 단순하게 신관에 대한 원한이 심했던 걸지도 모르지. 신관들을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죽을 만큼 컸었던 걸지도 모르지. 그런데 일이 커져서 우리들이 하투사에 오자 몸을 사리던 것뿐이었을 수도 있지. 우리가 이 가정들을 세울 때까지만 해도 가능성은 모두 열려있었어.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땐, 그 어느 것도 확정 지을 수는 없었으니까.”

자신들의 심계를 꿰뚫린 게 분하다는 듯 남자는 주먹을 꽉 쥔 채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실 범인의 목적이 천사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는 가능성은 절반 이하라고 생각했어. 이상하잖아? 너희가 우리들을 하투사에 불러놓고 다른 곳에서 뭔가 하려고 했다기엔 하투사에 머무는 5일간 우린 아무것도 당하지 않았는걸?”

불러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나를 하투사에 묶어놓고 뭔가를 벌이려고 했다기엔 ‘에덴’이 있는 ‘우르크’에서 나 하나 자리를 비웠다고 너희가 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고 그래서 내심 단순한 범행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칼날의 천사’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와 함께 와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하더라고. 나를 이곳까지 부르는 것엔 성공했지만 나를 상대로 한 뭔가를 실행하는데 있어서 준비가 더 필요해지게 된 거야. 시간이 끌릴 수밖에 없었던 거야. 나 혼자를 상대하는 거라면 몰라도 우리엘을 상대하는 데엔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한 거야.”

즉, 저 쪽에서 일단 목적은 달성했지만, 상세한 결과물이 저쪽의 예상과 달랐기에 저 쪽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런 가능성의 이야기다.

가브리엘과 마주하고 있던 사내는 요지부동했다. 다만 우리엘과 대치하고 있던 사내들 쪽에서 움찔하는 반응이 있었다. 가브리엘은 그 쪽을 읽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정답이었나 보네. 뭐, 그래서였어, 하투사를 떠나기로 결정한 게. 우리가 하투사를 떠나면 두 가지 경우의 수 모두 대응이 가능했거든. 우선 범행의 동기가 개인적인 동기라면 우리가 자리를 비움으로서 네 번째 신관 살해사건을 시도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 범인의 목적이 ‘나’라면 너희들을 이렇게 내 앞으로 끌어낼 수 있지. 너희들이 날 상대로 뭘 원하는지 까진 몰랐어도 노렸던 내가 돌아가겠다는데, 너희가 나타나지 않으면 뭘 할 수 있는데?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고 해서 애써 얻은 기회를 날릴 수 있는 거야?”

가브리엘은 우습다는 듯 이야기를 이었다.

“너희의 기습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야. 대비하고 있었으니까.”

가브리엘이 이야기한 건 여기까지, 남자는 아무래도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에 분함이라도 느꼈는지 혀를 한번 찼다.

“그럼 이것도 물어보자. 우리가 ‘사냥개’라는 건 어떻게 간파한 것이지?”

남자의 그 질문에 가브리엘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너, 몇 년 살았니?”

“······. 42년이다.”

남자의 인상이 험악한 인상이라고 해도 42년을 살았다기엔 젊어보이는 외모의 남자다. 어딜 봐도 20대의 외모. 그야 사냥’개’라고 해도 ‘라’의 핏줄, 태생이 ‘로얄블러드’니까. 기본적으로 늙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가브리엘도 마찬가지.

“내가 너보다 110년은 더 살았어. 아가야, 내가 ‘사냥개’를 처음 보는 줄 아니?!”

가브리엘은 대화는 여기까지라는 듯 날카롭게 외치면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움직임에 맞춰 주변의 수분들이 요동치더니 바늘의 형상으로 뭉쳤고 맞은편의 남자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남자는 가브리엘의 그 공격을 방어했다. 남자가 자신의 ‘권능’을 발산하자 가브리엘이 쏜 물바늘들이 모두 얼어붙었고 얼어붙은 바늘들은 남자에게 닿기 전에 산산히 부서져 흩어졌다.

“헤에, 냉기 쪽 권능이야? 그 더운 데서 인기 많았겠네?”

“쓸 데 없는 소리를!”

남자는 악에 받친 듯 소리치며 손을 뻗었다.

“가브 언니! 괜찮은 거야?!”

“상정했던 부분이긴 해. 애당초 날 노렸다는 건, 날 상대하기 쉬운 사냥개를 배치했다는 거니까. 상성적으로 우위를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남자가 뻗었던 손에 냉기가 모이더니 검의 형상을 한 얼음이 나타났다. 남자가 그 검을 쥐고 가볍게 휘두르자 궤적에 있던 대지와 공기가 서리가 끼듯이 가볍게 얼었다. 방금 같은 구도가 이어진다면 가브리엘의 공격은 남자에게 닿기 전에 모두 얼어붙을 터였다.

남자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남자는 곁눈질로 옆을 흘겨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쪽도 시작한 모양이군. 네년의 목을 빠르게 떨어트리고 저 괴물도 네 곁으로 보내주마.”

‘괴물’. 아마도 우리엘을 말하는 거겠지. 나 역시 남자의 곁눈질을 쫓아 우리엘을 보았다. 우리엘은 수적으로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지만 밀리지 않았다. 우리엘은 칠흑빛 금속들을 만들어 쏘거나, 바닥에서 솟구치게 하거나, 붙잡고 휘두르거나 때로는 엄폐물로 삼아 공격을 막던가 하는 식으로 ‘사냥개’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우리엘이 상대하고 있는 ‘사냥개’들은 바위를 만들거나 주변의 수목들을 조작하면서 우리엘의 공격을 받아치는 두 명, 그 둘이 만든 틈새로 화염을 쏘아 우리엘을 공격하려 하는 한 명의 조합. 하지만 ‘미카엘’과의 대련으로 화염의 권능을 상대하는 경험을 쌓은 바가 있던 우리엘은 ‘사냥개’의 수준낮은 공격을 피하거나 가볍게 막아내,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저들에게서 마차를 기습했을 때의 화력이 담긴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차를 기습한 건 상당히 공들인 공격이었던 모양.

가브리엘은 자신과 대치하던 사냥개와 우리엘과 싸우는 사냥개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야기했다.

“준비가 진짜 안 되긴 했나 보네? 네가 단신으로 날 이긴다고 해도 넷이서 우리엘을 이길 수 있겠어?”

“그건 해 봐야 아는 거지.”

“······. 과연 해 봐야 아는 걸까···?”

낮게 읊조린 가브리엘은 자신의 힘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을 중심으로 투명한 물의 회오리가 일었다. 회오리에선 곧이어 수많은 물줄기 가닥이 채찍처럼 뻗어나와 일대를 장악하며 휘몰아쳤다.

“이······. 무슨···!”

가브리엘과 대치하던 얼음의 권능을 사용하던 남자가 경악했다. 그리고 안전한 곳에서만 머물던 나 역시 다른 천사들이 싸우는 광경은 두 눈으로 본 적이 없다. 사냥개 남자가 경악한 것처럼 속으로 경악하고 있을 때 이어진 광경은 내 목 울대를 절로 넘기게 하기 충분했다.

물줄기 가닥에서 쏟아지는 물방울들이 마치 강렬한 우박처럼 대지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 기세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냉기로 자신을 보호해 물방울들을 얼리고 튕겨내기 시작했다. 그 판단은 정답이었다. 수목에 튄 물방울들은 수목들을 부수기 시작했으며 대지에 튄 물방울들은 흙을 파고들었고 바위에 꽂힌 물방울들은 바위를 꿰뚫고 부수었다.

가브리엘의 권능은 바로 옆에서 싸우던 우리엘의 전투에도 영향을 주었다. 바닥에서 금속 판을 뽑아낸 우리엘은 물방울의 폭격을 여유롭게 방어하고 있었지만 우리엘과 대치하던 3명의 사냥개들은 그걸 막는 것이 버거워 보였다. 남자들이 방패삼아 만든 바위는 수시로 깨졌으며 계속해서 바위를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폭격을 피하는 분위기였다.

냉기의 권능을 쓰는 남자의 냉기는 모든 물방울들을 튕겨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냉기의 장막을 통과한 물방울들은 일단 기세가 죽었으며, 기세가 죽은 얼음 우박을 맞는 남자는 계속해서 경상을 입었다. 기세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치명상일 게 분명했다.

남자가 악쓰는 광경을 본 가브리엘은 맥이 빠진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네······. 이번에도 ‘버림 패’구나?”

가브리엘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냉기의 장막을 유지하는 데에 악을 쓰던 남자를 향해 가벼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 손짓에서부터 쏘아진 물의 칼날이 눈 깜짝할 새에 남자를 덮쳤고 남자가 유지하던 냉기의 장막을 통과한 물의 칼날은 냉기가 더해지자 얄궂게도 얼음의 칼날이 되어 남자의 몸에 비스듬하게 박혔다.

남자는 자신의 냉기가 담긴 일격에 상반신 절반이 얼어붙었다. 얼음의 칼날은 꽤 깊게 박힌 게 칼날이 상반신에 흡착되어 같이 얼어붙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몸을 양단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가브리엘은 남자가 그렇게 전투불능이 되자 힘을 거두었다. 주변을 감싸던 물의 회오리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흩어져 사라졌다. 가브리엘은 선 채로 얼어 맥없이 쳐진 남자를 향해 다가간 뒤 주변의 공기만큼 차가운 말투로 남자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너흰 그거야. 버려진 거야. 고작 너희 정도의 힘으로 나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걸 ‘라’도 알았다는 이야기야.”

남자는 생기를 잃은 눈으로 가브리엘을 올려다보았다.

“그럴······. 리가······.”

“너희들은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겠지? 너희 사냥개는 꼭 버려지면서도 입이 무겁더라고. 그러면서도 도망 칠 생각은 하지를 않아. 왜일까 궁금했지만 늘 가르쳐주지 않았지.”

“정말 우리들에 대해 잘 아는군······.”

“말했지? 너희 ‘사냥개’를 한 두번 보는 줄 아냐고.”

“······.”

남자가 침묵하자 가브리엘은 차분하게 물었다.

“스스로 할래? 내가 해 줄까?”

남자는 가브리엘의 그 말에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시체 같은 모습으로 영혼이 빠져나간 듯이 중얼거렸다.

“해 다오······.”

그 말을 들은 가브리엘은 남자의 이마에 검지손가락을 얹었고, 다음 순간 두개골이 깨지는 작은 파열음과 함께 가브리엘의 물바늘이 시체같았던 남자를 진짜 시체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버려지면서도 입이 무겁다. 그러면서도 도망 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상대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 존재하지 않는다. 가브리엘이 한 질문의 의미는 자살을 할 것인지, 자신에게 죽을 것인지 고르라는 것임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자살이라는 선택을 고려했을 터인 저 남자는 가브리엘의 질문의 의미를 순식간에 이해한 것이었겠지.

남은 세 명의 ‘사냥개들’, 싸우는 것을 포기한 그 버림패들 역시 방금 세상을 떠난 남자와 같은 최후를 선택했다. 가브리엘은 익숙한 듯, 우리엘은 머쓱한 듯 피냄새가 퍼지기 시작한 자리에 섰고 이 광경을 지켜본 나 혼자만 제자리에 주저앉을 뿐이었다.



작가의말

20240827수정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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