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입단(入團) (7)
39. 입단(入團) (7)
빛에 적응이 되고 보니 확실히 정산과는 다른 생김새였다.
어금니 한쪽이 부러진 것도 그렇고, 정산보다 좀 더 날카로운 인상에 머리카락을 길러 뒤로 묶은 것도 그렇고.
“너, 누구냐?”
하지만 그가 겨눈 총이 오크의 거대한 손을 위해 맞춤 제작된 것으로 보아, 확실히 정산의 ‘급’은 된다는 게 느껴졌다.
표현하자면.
위압감.
그때 마주치는 것만으로 반드시 죽을 거라는 그 위기감이 그에게서도 발산되고 있었다.
“나, 나는······.”
머리가 다 아프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게다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이야, 확실히 이놈이 물건이긴 하다. 그치 임 부장아?”
내가 생각에 사로잡혀 곧장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사이, 진짜 내 머리를 터뜨리려고 했던 오크는 거대한 총구를 치우며 말했다.
“예.”
그러자 뒤에서 임해찬 부장이 튀어나왔다.
시발놈.
면상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묘한 안도감이 드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이 불편한 반가움은 아마 임해찬만이 이 거지같은 상황을 내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에 이런 것이리라.
“확실히 서승범 과장을 구하려고 온 게 아니라, 정산 사장님을 죽이러 온 것 같네요. 정강, 사장님.”
정강.
그것도 정산과 같은 사장의 직급을 가진 오크.
그의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뿌옇게 흐리던 생각이 전부 지워지고. 피가 끓어오르며 딱 한 가지 생각이 온 신경을 지배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여긴 내 끝이 아니다.
정산의 위치는 어차피 이곳에 있지 않고, 내가 그를 죽이려 했다는 게 ‘가산점’으로 생각되는 것 같은 기류.
나는 그것을 분명히 느꼈고, 그것이 내가 살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 절대 놓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게. 확실히 그 이우람이란 놈보단 쓸 만하겠는데?”
“예. 그놈은 절대로 반장을 버리는 선택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우람? 갑자기 웬 이우람이지?
설마 그 새끼는 여기 반장님이 있다는 것도, 정강이 있다는 것도 알았나?
‘아니, 그딴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총구는 날 향하지 않더라도 아까 자재로 막아둔 길을 뚫고 오크들이 둘러싸고 있다.
아직 임해찬과 정강이 날 살려 둘지 확실히 정해진 건 없다는 뜻이었다.
“이우람에게 이곳에 반장이 있다는 걸 들었을 텐데, 이곳으로 바로 왔다는 건 반장의 목숨은 두고, 정산 사장님을 죽이려 했다는 게 기정사실이겠죠.”
“흠, 아무래도 인간 새끼니까. 지 여기까지 키워준 반장 목숨이야······.”
쿵-
“응?”
나는 곧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아니 저는 정우입니다! 소개가 늦어 죄송합니다! 큰형님!!!”
순간, 아무런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변했어······!’
나 역시 말을 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인식을 준다. 내가 가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는다.
“무엇이든 여쭈시면 바로 대답하겠습니다!”
그래서 날, 자신의 편으로 둘 수 있도록.
살려 줄 수 있도록.
“오호, 이 새끼 그래도 싹수가 있네?”
아직 고개를 처박고 있느라 상황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확실히 내 주위로 몰려들던 놈들이 멈춘 것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자, 정우라고 했지. 왜 반장을 구하지 않고 이곳으로 온 거지?”
‘이제부터 시작이야······!’
내가 가진 정보를 우선 정리하자.
임해찬은 덫을 깔았고 그 덫을 깔게 지시한 건 정산과 같은 사장인 정강. 하지만 여기서 나만 알고 있는 정보를 더 생각할 수 있다.
‘이우람은 반장님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내게 말하지 않았다.’
저들은 지금 내가 이우람에게 반장님의 위치를 듣지 못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차혜정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까.
그렇다면, 내가 반장님을 구하러 가지 않은 이유는?
“이우람에게 반장님이 여기 있다는 걸 들었을 때, 당연히 구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반장을 담그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어?”
“다, 당연히 듣지 못했습니다. 임해찬 부장님은 제게 반장님이 여기 있다는 것도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으니까요.”
내 대답에 임해찬이 거들었다.
“아마 이우람은 반장이 있다는 것만 말하고, 죽이는 건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놈이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죠.”
“마, 맞습니다. 저는 확실히 바로 구하러 가려고 했었으니까요.”
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정강은 나를 금방에라도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처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거래가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래?”
“청두파와 정산 사장님의 목을 두고 하는 거래 말입니다. 임해찬 부장님이 제게 반장님이 여기 있다는 걸 알리지 않은 이유는 거래를 더 우선시하라는 뜻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반장을 구하려 했지만 우선 일에 집중했다.
여기까진 정답이었는지 정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네가 여기 들어오는 길에 우리 오크들을 막고, 저 밖에서 칼까지 쑤신 건 뭐지?”
“예?”
“아니, 그렇잖아? 꼭 우리 형님을 죽일 생각으로 온 것처럼.”
아뿔싸.
정신이 멍하고 급한 터라 오크들까지 처리한 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칼을 들고 이곳의 문을 열었다.
꼭 정산을 반드시 죽일 생각을 했던 것처럼.
‘제길······.’
이건 아무리 봐도 빠져나갈 틈이 없는 느낌이었다. 오크는 적송의 소속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인간에게 잘못을 돌리자.
“그, 그건 임해찬 부장님 때문입니다.”
“뭐?”
임해찬은 정강의 앞인데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날 죽일 것처럼 뛰쳐나오려 했다.
“임해찬 부장님께서 이번 일을 명령하셨을 때. 반드시 혼자서 움직이라고 하셨습니다.”
“혼자서 움직이라고 했다?”
‘나는 본사 내부의 일 때문에 따로 인원을 투입하기 어려워.’
“예, 적송 내부 사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우람이 왔고 서로 다른 일을 시킨다면······ 지금 제가 이곳까지 오면서 마주쳤던 오크들은 제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강은 임해찬을 신뢰하고 있진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인간이니까.
아주 약간 스쳤던 그 위화감을 비집고 임해찬에게 모두 덮어씌운다.
“혹시나 제가 모르는 적송 내부 일이 생겼고, 정산 사장님을 헤치려고 온 놈들이 있다면. 반드시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역시나 임해찬은 내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못했다.
덫을 놓느라 병력을 나눈 것을, 꼭 ‘정강 몰래 일을 진행한’ 것처럼 만드는 거지.
꼴 좋다 개새끼 저거.
“하긴 이놈한테 네 얘기를 들었을 때, 여간 복잡한 절차를 둔 거긴 했지. 인간 새끼들 대가리 굴리는 거야 똑같긴 하네.”
아무쪼록 여기까지도 정답.
하지만.
“그래도, 대화도 없이 칼침부터 박는 미친놈을 쓰긴 어려울 것 같은데?”
아, 여기까지도 정답. 정산은 날 죽일 생각이 없다.
오히려 날 자기의 손 아래 두려는 거지.
“이 바닥 생활을 하며 본사로 올라갈 생각뿐이었습니다. 반장님도 힘이 없으니, 어떻게든 제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고요!”
“증명?”
“예, 그 어떤 일을 시키든 반드시 해내는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 어떤 일을 시키든.
그러니까, 정산을 죽이는 거든 뭐든 할 수 있다는 모습을.
“그건 마음에 드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딱 한 가지 더 시험이 남아 있었다.
“좋아. 하지만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툭-
정강은 내 앞에 종이를 한 장 던졌다.
어떤 명부, 그것도 내 이름이 있는 명부였다.
‘뭐지 시발?’
“이, 이건······.”
“우리 쪽에서 열심히 긁어모은 쁘락치 목록.”
‘이런 시발!’
정강이 날 살려 둘지 말지.
그것을 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걸림돌은 바로 ‘언더커버’였다.
철컥-
그는 총을 장전하고 내 머리에 겨누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묻지. 너, 누구냐?”
결국 돌고 돌아 또 이 질문이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부터 앞으로 죽기 직전까지도 날 괴롭힐 질문.
‘네가 누구인지 잊지 마.’
눈앞이 하얘진다.
지금까지도 이 질문에 대답할 게 아직 내 안에 없기 때문이었다.
“저는······.”
여기가 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인 걸 밝히고 나면 죽는다.
그렇다면.
명령을-
“잠깐.”
하지만 이런 계속되는 억까의 상황을 끝내 준 건 임해찬 부장이었다.
그는 정강이 던진 종이를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이건, 적송에서 관리하는 보육원 출신 관리 명단이지 않습니까?”
보육원? 잠깐, 내가 있던 보육원이 적송에서 지은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이놈의 출신은 확실하다고 제가 말씀드렸던걸, 쁘락치라고 하신다면······.”
“아아, 장난 한번 친 거야.”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도 임해찬이 조사했다는 건가?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정강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그 둘의 갈등을 비집고 들어가 생긴 의외의 변수.
“장난 한 번에 겁 먹을 인간이면 뽑아 쓰기도 어렵지 않겠어?”
“그 장난 때문에, 일을 그르쳐선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임해찬 역시 정강을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구에게 붙어야 하는 거지?
하지만 그걸 정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었다.
“아무쪼록 반장이랑은 아무 연관도 없는 거 알았으니까. ‘영감님’도 관여하진 않겠지. 일어나라.”
“예?”
“반장의 사냥개로 굴렀다는 얘기 들었다. 잘했고, 잘 쳤고. 하지만 이제부터 너는 사냥개 같은 게 아니라······.”
아직도 정강은 내게 총구를 겨눈 채였다.
“내 칼이야.”
“칼, 이요?”
“그래. 박경석이라는 오점을 도려낼 칼.”
그는 주변에 있던 오크들에게 명령했다.
“자, 이제부터 다 퍼부어라.”
오크들은 그의 명령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송이, 이곳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우리 적송의 새출발인데 제대로 털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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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차혜정은 지하 주차장을 따라 몸을 숨긴 채 나서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엔 적송의 오크들이 차를 타고 내리고 있었다.
인간이란 인간은 전부 때려눕히면서.
‘서둘러야 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발견한, 청두파의 ‘혈석 연구 결과’를 서둘러 정우에게 가져가야만 하니까.
“쳇.”
그렇게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그녀는 익숙한 차 한 대를 발견했다.
“저건······.”
분명 소장이 사무실에 끌고 왔던 검정 승용차였다.
이름이, ‘이우람’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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