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 - 첫 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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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섭마린
작품등록일 :
2024.08.15 14:54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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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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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드래건

DUMMY

“펜드래건?”

“예, 펜드래건···”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일까?

“그런데, 다른 부족들이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나 봐요. 세력이 약한가?”

“모건···”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가나!”

내가 낮지만 강하게 모건을 다시 불렀다. 그제야 방황하던 모건의 눈동자가 내게 돌아왔다.


“모건··· 이게··· 우연의 일치인가요?”

“예?”

“혹시, 혹시나 내가 알아야 하는 다른 무엇이 있나요?”

“어···”

모건의 눈동자가 다시 초점을 잃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아니, 아니에요.”

모건은 다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한 글자씩 강조하듯 이야기했다.

“재희 씨, 맹세코! 제가 여러분들에게 뭔가를 숨긴 적은 없답니다. 사실, 저도 지금 이 상황이 몹시 혼란스러워요.”


나는 물끄러미 그런 모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 속에··· 거짓은 없었다.

“믿을게요, 모건”

모건은 그런 나를 보며 살풋 미소 지었다.

“웃지 마요 모건. 웃으면 미모가 드러나요.”

“크흣··· 크크”

모건은 안 웃으려 얼굴을 온통 찌푸리면서도 웃었고, 결국 매우 웃기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이봐요, 당신들!”

그때 포로들 가운데, 우리 근처에 있던 중년 남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는 머리를 크게 다친 듯, 흘러내린 피가 온통 머리카락에 엉겨 있었고, 한쪽 귀마저 잘려서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지금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마당인데, 웃음이 나와요?”

나는 대거리를 하려다가, 상대의 측은한 모습에 한숨을 쉬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 죄송합니다.”

내가 영어로 대답했다.


그 남성은 아마, 모건을 보고 이야기를 한 것일 텐데 엉뚱하게 동양인인 내가 응답하자 잠시 당황하더니, 말했다.

“영어를 하시는군···”

“예, 방금 우리 일행이 살아있는 걸 확인해서. 기쁜 마음에 실례를 했군요.”

“그런가? 후··· 그건··· 다행이오. 우리 일행들은 놈들에게 거의 살해당했다오.”

“놈들···에게 말입니까?”

나는 켈트인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소. 놈들이··· 내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죽였소.”

음··· 사람 함부로 죽여대는 야만성은 켈트인들이나 바이킹들이나 거기서 거기인 듯하다.


“유감이군요, 선생님”

모건이 말했다.

그 남자는 흠칫하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모건을 보고 이야기했다.

“나도 미안하오··· 미안··· 가족들이 모두··· 내가 민감해져서··· 아가씨, 조심하시오. 특히 여자들은··· 이놈들은 살인과··· 강간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야만인들이오. 대체 이런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두서없는 말을 들어 보니 이 아저씨도 꽤나 흉한 일을 당한 듯하다.

그는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을 봤을까?


어쨌거나, 나도 잠시 잊고 있던 현실적인 걱정거리들이 한꺼번에 다시 밀려오는 듯해서 골치가 아파왔다.

그렇다. 일단 다른 일행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걱정이지만, 이런 야만적인 놈들에게 포로로 잡힌 이상 우리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와 모건은 물론, 강윤찬과 홍수빈도 단순히 살아있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 아저씨는 잠시 혼자 넋두리를 하더니, 이내 소리를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모건도 두려움에 감염되었는지, 이내 말이 없어져서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오른쪽 다리를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힘도 좀 주어보고···

아까보다는 낫다.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가슴 쪽은 계속 아픈 것이, 확실하게 갈비뼈를 다친 듯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일단 유사시에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서 약간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다음에는 야만인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 이들은··· ‘군대’라기보다는, 뭐 말 그대로 야만인의 ‘무리’였다.

잠깐 살펴보는 동안에도 술에 취해서 고성방가를 하는 놈들, 토하는 놈들, 술 먹는 자리에서 그냥 뒤로 돌아서서 노상방뇨를 하는 놈들··· 심지어는 남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남녀가 행위를 벌이고 있는 등, 그야말로 가지각색으로 개판을 벌이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싸움이 벌어졌는지 두 놈이 주먹다짐을 벌이다가 칼을 뽑아 들었고, 아무도 말릴 생각은 없는 듯 응원을 하거나 욕을 하다가, 피를 보자 광분해서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어··· 저래도 군대가 유지되는 걸까? 심히 의심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때, 과연 패싸움까지는 야만인들의 지휘부도 용납할 수 없었는지 중앙의 막사에서 여러 명이 나오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이들은 확실히 다른 야만인들보다 화려한 복장과 장식을 한 것이 지휘관이나 족장으로 보였는데, 나이대가 다양했고 거기에 ‘펜드래건 영주’라는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 그랬다··· 그 펜드래건의 어린 영주는 이제 두건을 벗어 내리고 있었는데, 이곳 야만인 무리 가운데에서도 도드라지는 하얀 피부에 백금발의 왜소한 소녀였다.

펜드래건 영주의 일행이었던 이도 두건을 벗었는데, 그는 하얀 머리칼과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있었지만, 두 눈에 허옇게 눈동자가 없는 것이 맹인으로 보였다.


족장들은 서로 뭔가를 이야기하더니, 그중 두 명이 싸움판으로 다가왔다.

둘 다 족장들 중에는 젊은 축이었는데, 하나는 머리카락을 빡빡 밀고 얼굴 전체와 머리통까지 시뻘건 물감으로(설마 피···는 아니겠지) 기괴하게 칠한 놈이었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의 풍성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복잡하게 땋아서 장식한 놈이었다.

보아하니 싸우고 있는 두 무리도 그들의 지휘관과 비슷하게 꾸미고들 있는 것이, 그 자체로써 부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듯했다.


아무튼, 그 두 명이 싸움판으로 뛰어들어 엉덩이를 걷어차고 몇 놈을 쥐어 패니, 일단 싸움이 멈췄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두 명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처음엔 말로 하나··· 싶더니 이내 무기를 뽑아 들고는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인양 싸우기 시작했다.

대장들이 몸소 진두지휘하니, 잠깐 싸움을 멈췄던 부하들도 이내 잠깐 잊었던 원한을 되새기고 용기백배 싸움질을 벌였다.


저러다가는 전투 외 사상자가 더 많이 나올 판이었지만, 그나마 다들 술에 취해서인지 흐느적대는 꼴이 상대를 일격에 쳐 죽이기 쉽지 않다는 점이 다행이랄까···

싸움과 직접 상관없는 다른 부족들도 흥분해서 주변을 둘러싸고 소리소리 질러대며 응원을 해대고···

과연 야만인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가운데 맑고 날카로운 고함이 갑자기 주변을 압도했다.

왜소한 체구의 전사가 갑자기 칼을 뽑아 들고 싸움판으로 치고 들어오더니, 빛살처럼 사방을 베어내며 순식간에 싸움꾼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어··· 펜드래건 소녀 영주였다.

소녀의 작은 몸집, 가녀린 팔다리로 저게 가능할까 의심스러운 속도와 힘이었다.


“으~ 저렇게 같은 편을 마구 헤쳐도 되는 걸까요?”

어느새 모건이 내 곁에 와서 말했다.

“아뇨, 정확하게 칼등으로 제압하고 있어요. 솜씨가 굉장하군요···”

그렇다. 소녀의 칼이 눈부신 속도로 술꾼들 사이를 헤집고, 덩치가 두 배는 되는 야만인들이 나가떨어지고 있었지만, 정작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낮에 야만인들과 싸우며 느꼈던 자신감이 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저 소녀를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그래도 체급 차이가 있는데···

하고 생각하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뭔, 호승심이람··· 정신 차려라.


어느새 싸움판은 정리되었고, 펜드래건 영주는 야만인들을 향해 뭐라고 소리 질렀다.

“어, 꾸짖고 있네요. 기백이 대단한데요?”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남아있던(아니 ‘남겨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족장 중에 뻘건 스킨헤드 녀석이 그런 소녀에게 반발하는지 소리를 지르며 악다구니를 써 댔다.

무기를 놓쳐버린 붉은 수염 쪽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단지 씩씩거리고 있었고···


그 사이 막사에서 나와 싸움판에 도착해 있던, 족장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노인이 중재를 하는 듯 보였다.

잠시 그들 사이에 시끄러운 소리들이 오가더니, 대충 낙착되었는지 족장들이 각자 흩어졌다···

그들이 명령하자 일부 야만인들이 포로들 쪽으로 다가와서 포로들을 구분해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모건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부족 별로 자기 몫의 포로들을 챙기고 있어요.”

그 말에 나는 황급히 강윤찬과 홍수빈을 찾았다.

이런, 그러고 보니 아까 그들을 끌고 왔던 게 뻘건 스킨헤드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킨헤드의 무리들이 강윤찬과 홍수빈을 포함한 무리들을 거칠게 끌어내며 자신들의 무리 쪽으로 몰아세웠다.

둘 다 엉망진창인 몰골을 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강윤찬이 어떻게든 홍수빈을 보호하며 움직이고 있어서 마음이 짠해졌다.


뭔가 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어서 속으로 노심초사하고 있는 그때, 모건이 말했다.

“당장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날이 밝으면 각자의 부족으로 돌아간다나 봐요.”

하긴 그렇겠지, 이미 해가 졌으니···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행히 모건의 말 대로 스킨헤드들은 포로들을 자신들의 무리로 끌고 가서 다시 방치했다.

모두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덟 명··· 강윤찬과 홍수빈을 포함해 남자가 다섯에 여자가 셋··· 대체로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것이 스킨헤드 부족의 몫인 듯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전부 죽여버린 건가?


의아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펜드래건 영주 일행, 그러니까 소녀 영주와 맹인 노인, 그리고 남녀 두 가신이 스킨헤드 부족의 포로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거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영국인 관광객들에게 먼저 뭔가를 물었고 그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강윤찬과 홍수빈에게도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 후배 녀석들이 고대 켈트어를 할 수 있을 리가··· 그들도 멍청하게 쳐다보자, 또 다른 무리의 관광객 포로들을 찾아가 말을 거는 일을 반복했다.

응? 뭘 하는 거지?


“뭘 하는 걸까요?”

웁스, 모건 이 마녀는 갑자기 귓가에서 말을 걸어 사람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혹시 말 소리가 들려요, 모건?”

“어, 제가 아무리 마녀라도 저렇게 먼 거리는 안 들리죠···”

모건이 피식 웃으며 농담을 쳤다.

나는 그녀가 내 생각을 읽었나 해서 순간 찔끔했다.


“영국인들은 고대 켈트어를 전혀 못 알아듣나요?”

“그렇죠. 웨일스나 콘월, 그리고 아일랜드 쪽에는 아직 켈트어 방언이 남아 있기는 해요.”

모건이 고개를 외로 꼬고 잠시 고민했다.

“고유명사 쪽에 흔적이 많이 남아 있죠. 하지만, 그것들도 지역 별로 다 제각각인 데다가 현대 영어로 바뀌어서 사용돼요. 하물며, 특히 고대 켈트어 쪽으로 가면···”


아, 그렇지 하면서 말을 이었다.

“한국 사람들도 본격적인 제주도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다면서요? 고대 켈트어는 그 수준보다 훨씬 심하죠.”

여윽시 친한파 모건··· 별 걸 다 안다··· 그걸 제주도 사투리에 비유하다니···


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갑자기 시야가 가렸다.

올려다보니 펜드래건 영주의 일행인 건장한 야만인 전사가 나와 모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흉터가 종횡무진 난 데다가 정돈되지 않은 수염이 비죽비죽 난 흉악한 낯짝이었다.

근데 왜 눈을 부라리는 거냐···

“□ □□ □ □□□□□, Bedivere”

응? 소녀의 맑은 음성과 함께 야만인 전사가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비켜났다.

펜드래건 소녀 영주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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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전사 24.08.18 32 1 12쪽
9 전사 24.08.17 29 1 12쪽
» 펜드래건 24.08.17 35 1 12쪽
7 켈트인들 24.08.16 30 1 12쪽
6 트롤 24.08.16 30 1 12쪽
5 대결 24.08.15 32 1 12쪽
4 습격자들 24.08.15 31 1 12쪽
3 이변 24.08.15 36 1 12쪽
2 스톤헨지 24.08.15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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