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피어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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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도원
작품등록일 :
2024.08.20 03:13
최근연재일 :
2024.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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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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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못 (2)

DUMMY

···


필지는 굳은 얼굴로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얼마 전에 진급을 했던 것에 기뻐하기도 잠시 자신의 친구 태휘가 중국의 사업장으로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러 갔다는 것을 알고는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다.


"말도 안 돼, 분명 전출자 목록에도 없었고 갈 이유도 명분도 없는데 갑자기 사업장에 간다고? 최전방의 장교가?"


필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발령이었기에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대대장실로 향하였다.


똑똑똑

"대대장 동지, 2 중대장입네다. 들어가도 되겠습네까!"


"들어오라우."


필지는 문을 열며 들어가 가볍게 경례를 했다.


"무슨 일이네? 이 시간에 여기-"


"대대장 동지 부대대장이 전출이라니, 그것도 중국 사업장에 관리자로 발령받았다는 거이 사실입네까?!"


"2 중대장이 그런 건 어떻게 알았네? 맞디 부대대장은 새로 발령을 받았어. 그곳에서 잘 지내야 할 텐데 말이야. 허허허."


그 말에 필지는 태휘가 자신의 의지로 그곳에 간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뿌드득 소리를 내며 필지는 이를 갈았다.


"필지야, 너무 열내지 말라. 부대대장... 태휘가 괜히 거기 갔겠어? 그놈 별명 너도 알고 있지 않나. 도깨비 자식이 갑자기 사라진 게 이상한 건 아니지 않간?"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곧 훈련 작전도 있는데-"


"필지야... 필지야... 우리 편하게 가자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려는 이유가 뭐이네? 물론 태휘 동무가 다른 상집자식들과는 다르게 건실하고 열심히 살지만은 그거이 그놈 팔자 아니간? 솔직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갔어 쯧... 이번 발령은 위의 위에서 내려온 거야. 더 이상 아무 말 말라."


"알갔습네다..."


대대장 리유중은 필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2 중대장... 대장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게 아니다. 알간? 부대대장이 비록 도깨비... 자식이라지만 진급 속도에 비해 건방 떠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인민을 위한 봉사를 하는 걸 내가 모르갔어? 이 대장도 다 알고 있지비. 물론 이번 발령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왜 이런 애매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디만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당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수 밖에 없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


유중은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는 필지를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알갔으면 이만 나가보라우."


잠시 머뭇거리던 필지는 이내 쓴 웃음을 지으며 경례를 한 후에 방을 나섰다.


"으득. 개간나 새끼... 뼈다구 파내는 소리 하고 있어. 저딴 것도 상관이라고..."


필지는 잠시 열을 식히기 위해 막사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한대 꼬나물고 불을 붙였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하얀 연기를 내뱉던 필지는 점점 표정이 바뀌었고, 뭔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


김 과장은 2동의 의류 검수장에서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의류 공장은 2개의 동으로 이뤄져 있으며, 1동은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로 이용되고 있었다.

3층의 경우 관리자의 사무실 겸 숙소가 있는 공간이었다.


2동은 총 5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완성된 의류를 차량에 적재하는 공간, 2층은 검수를 위한 창고 같은 공간이었으며, 3층과 4층은 공장식으로 의류를 수선, 재가공을 하는 공간이었다.


김 과장은 연변의 조선족이었지만 외가가 북한 출신이었기에 북한의 중국 사업장 운영에 있어서 통번역과 기타 잡업무 등을 처리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변변찮은 급여를 받는 일이라 불만이 생길 만도 한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때에 비하면 조금은 사정이 낫기에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과장의 직함을 달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일이란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을 이끌어내는 장치이자 안정감을 주는 안식처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 죽어-! 이 개간나 새끼들...! 우린 다 속은 거야...! 다 죽여!!!"


"살려줘...! 끄아아아악!!!!!"


"철영 동무... 나... 나 좀 살려주시라요...제발...숨겨만 주면 뭐든 다하갔습네다! 제바-"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끄어어억! 허억...! 허억... 허억... 후... 꿈이었구만... 으후... 언제까지 이렇게..."


잠시 숨을 고르던 김 과장은 전화가 오고 있음을 깨닫고는 급히 휴대폰을 꺼내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받았습네다! 예... 옙! 부장 동지 걱정하지 마시라요 하하하! 혹시 몰라서 나중에라도 말이 안 나오도록 잘 처리해 놨습네다! 옙! 옙! 심려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네다! 그럼 모쪼록 잘 쉬시-"


뚝 전화가 끊기며 짧은 통화를 끝낸 김 과장은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김승학 부장


"개간나 새끼... 매너 없기는... 쯧"


김 과장은 잠시간의 불편한 보고를 마치고는 피곤한 발걸음을 옮겨 3층으로 올라갔다.


"음...? 오~성민 동무 일 마쳤네?"


"아 김 과장님 아이십네까 하하하. 이제 이것만 마치고 씻으러 갑네다. 한데 아직까지 여기서 뭐 하십네까? 엇, 근데... 어디 아프십네까? 무슨 땀이 이렇게..."


김 과장은 그 말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자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옷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성민을 향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야 원. 나도 집에 가서 좀 씻어야겠구만 기래요~ 하하하."


"하하하 과장 동지도 땀나실 정도로 열심히 다니셨나 봅네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네다. 들어가시라요~"


김 과장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윗 층에 볼일이 있다고 올라갔다.


성민은 2층 안쪽에 작업이 끝난 의복을 내려 놓고 태휘와의 약속을 지키러 1동의 샤워장으로 향했다.


"여~성민이 작업은 잘 마무리했네? 고생했다."


"어 오늘치는 다 내려놓고 왔어. 내일은 별일 없으니까네 내 좀 아프다 하고 쉬어도 돼갔어?"


"왜 니 어디 아프네?"


"조금 몸살 기운이 있어서 쉬려고. 괜찮갔어?"


"그래 그럼 좀 쉬라우. 내가 니 일까지 다 하면 돼."


"고맙다."


성민은 샤워장에서 만난 동료 강정혁과 대화를 마치고는 깨끗이 씻은 뒤 세탁장에 가서 작업복을 세탁기에 넣은 후 3층 안쪽으로 향했다.


똑똑


"관리자 동지 작업자 윤성민이라고 합네다. 들어가도 돼갔습네까?"


"그래 들어오라우."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태휘가 창가에 서 있었다.

태휘는 성민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민아! 이게 대체 얼마만이간? 잘 지냈네? 어디서 뭐 하고 어떻게 살았던 기야? 응?"


"너...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네? 허허허."


태휘는 멋쩍게 웃으며 성민을 테이블 앞에 의자로 안내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간단하게 먹을 안주로 땅콩과 소시지를 꺼냈다.

술이 빠지면 안 된다며 병맥주를 몇 개 추가로 꺼내서 테이블에 놓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너 담배는 안 피우지 않네?"


"괜찮다. 편하게 펴도 돼. 여기 있다 보니 다들 조금씩이라도 피게 돼서 나도 최근에 피기 시작했어. 나도 인민군 장교가 피우는 담배 하나 펴보자."


"하하하. 기래 한 대 펴보라우. 쓰읍 후... 한데 별 일이구만 기래? 군에 있을 때는 죽여도 안 핀다더니... 일이 많이 힘들간?"


성민은 태휘에게 받은 담배에 불을 붙여 피고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안 힘들갔어, 군에 있던 시절은 어디 갔는지 지금은 이렇게 타국에서 로동이나 하며 지내고 있는데 말이야. 뭐 어쩌겠네? 하하하."


"그럼 말해보라. 대체 왜 갑자기 군에서 나간 거네?"


잠시 태휘를 빤히 쳐다보던 성민은 피식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먹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태휘야, 우리 집안... 탈주했다."


"뭐... 뭐? 뭐?! 탈..."


태휘는 급하게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탈... 탈주라니 조국을 배반했다 이 말이간? 너는 그럼 어떻게 살아 있는 거이가?"


"나는 당시 부대에 있었고 임관 후로 집과 연락이 거의 되지 않은 점, 그리고 오마니가 삼촌아버지랑 함께 붙잡히셨는데 브로커랑 거래한 내역이 삼촌아버지 것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나는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사면 조치 됐어."


"그럼 너는 아예 몰랐던 거이가?"


"당연히 몰랐지. 우리 삼촌아버지 잘 알지 않네? 그 쌍 간나 새끼가 저 혼자 살자고 한 짓인데 우리 오마니가 기냥 돈 벌러 가는 건 줄 아시고, 함께 가셨다가 안전사업에 탁! 걸린 거지..."


"허... 이게 대체 무슨... 그럼 넌 그 일 때문에 전역 당한 기야?"


성민은 쓰게 웃으며 다시 술을 마셨고 태휘는 당황해 하며 담배를 태웠다.


잠시 침묵이 길어지자 성민이 테이블을 탕탕 치고는 웃으며 말했다.


"야야! 그런 건 이미 지난 일이지 않네?! 난 괜찮다야! 뭐 보위부까지 끌려갔지만은 초급이라지만 장교 출신인 데다가 혐의도 없어서 고문은 안 당했으니 됐다! 그나저나 뭐 소문이 그렇게 났간? 뭐? 사단장 아내를 꼬셔? 하하하하! 미친 거 아니네? 내가 용모가 출중한 것도 아이고 그거이 뭔 헛소리가? 하하하 너나 필지가 지어낸 말 아니네?"


태휘는 애써 분위기를 풀어주려는 성민을 보며 잠시 옛날 생각이 났다.

성민은 늘 이렇게 자신이 불안하거나 우울한 생각에 깊이 잠겨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나, 다른 동기들이 분위기가 어두울 때면 늘 유쾌하게 풀어주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다들 내심 성민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고, 성민도 그런 것들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갔어?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진 데다가 연락도 안 되고 행방도 알 수 없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그건 맞는 말이지 음음. 기래서 뭐 돈이라도 벌자 하고 이런 일 저런 일 하다 보니 여까지 끌려왔지비."


"네가 선택해서 온 게 아니네?"


"선택은 무슨 거의 강제였지! 배고프고 돈 없는 부랑자들 모아다가 여기서 2년만 일하면 급여의 절반은 생활비로 쓰이고 나머지 절반은 조국으로 돌아오면 즉시 지급. 만약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거나 수령하지 못하는 상황일 경우 가족들에게 지급해 준다 기카던데, 가족이 있던 아니던 살려면 해야 하는 거 아니갔어?"


"맞지..."


"기래도 이제 관리자로 친구가 오고 나는 살았구만 기래! 하하하!"


성민은 신난다는 듯이 술병에 남은 술을 한 번에 들이마시고는 다음 병을 열고 있었다.


태휘는 아무래도 오늘 밤이 조금 길 예정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가의말

성민의 주량은 과연 몇 병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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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얼어붙은 못 (3) 24.09.15 2 0 12쪽
» 얼어붙은 못 (2) 24.09.08 8 0 11쪽
2 얼어붙은 못 (1) 24.08.31 14 0 9쪽
1 여러분의 아이돌, 수아입니다! 24.08.26 1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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