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피어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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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도원
작품등록일 :
2024.08.20 03:13
최근연재일 :
2024.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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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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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얼어붙은 못 (1)

DUMMY

···


“결국엔 왔구만 기래...이곳은 별로 오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태휘는 알고 있었다. 사실은 이번 발령이 좌천에 가까운 것임을 말이다.


1년 전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곳에 감시라고는 하나 갑작스레 발령을 받은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전방 부대에 있던 자신이 해외 사업장의 감시책으로 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아버지께서 이번엔 나를 버리는 말로 쓰셨나 보구먼...”


그때 태휘는 저 멀리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소좌 동지...! 장태휘 소좌 동지...! 여깁네다! 아이고, 반갑습네다. 저는 사업장까지 모실 김철영이라고 합네다. 편하게 김 과장이라고 불러주십쇼 하하.”


“알갔습네다 김 과장 동무. 잘 부탁드립네다.”


김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와 함께 저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한 뒤 태휘를 차량으로 안내했다.


“업장에서는 주로 어떤 걸 취급합네까? 의류? 아님 농수산물?”


김철영은 짐을 트렁크에 실으면서 말했다.


“아 바로 사업장으로 이동하려던 참입네다만 의류 가공 업체입네다.”


“의류 가공 업체라면은...?”


“음 그러고 보니 작년엔가...? 산발적으로 폭동이 있던 후로는 업장 개수를 죽이더니, 이젠 또다시 조금씩 늘리는 것 같습네다. 저야 애당초 연변 사람이라 화는 피했지만, 당시에는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하던지...뭐 지금은 그런 일은 없을 겁네다. 하하하 너무 걱정 마시라요.”


“아...하...하...”


태휘는 설마설마했지만 이런 무지막지한 곳으로 오지 않기만을 바란 자신의 마음이 짓밟혔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김 과장의 차에 탄 태휘는 창밖의 회색빛 풍경을 보면서 삭막한 기분을 느끼며 생각했다.


‘도시는 지랄...여기도 별 차이 없구먼’


그렇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달리다 보니 제법 건물들이 많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중 어떤 건물 앞에 차가 멈췄고 잠시 뒤 걸어 나온 한 중국인과 김 과장은 짧은 대화를 하고는 다시 차를 조금 몰아 건물의 옆쪽 골목에 주차를 했다.


“소좌 동지 도착했습네다. 짐은 방으로 옮겨드리면 되겠습네까?”


“그래 주시면 감사하갔습네다. 헌데 김 과장 동무. 아까부터 궁금했던 거인데 연변 사람이람서 왜 우리말을 쓰는 겁네까? 아 물론 싫다거나 그런 거이 아니고 참말로 궁금해서 그럽네다. 하하”


그런 태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김 과장은 이내 웃음이 터지며 말했다.


“그거이 궁금하셨습네까? 하하하핫! 제가 군인들과 중국인들을 이어주는 역할이다 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됐지 뭡네까? 공화국의 전사들은 이런 말투를 더 선호해서 말입네다.”


“그렇구만 기래요. 정말 궁금해서 그런 거였으니 오해는 없었으면 좋갔습네다. 하하하”


김 과장은 빙그레 웃으며 차에서 내려 태휘의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기 시작했고, 태휘 또한 차에서 내려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태휘는 담배를 한 모금 태우며 슥 건물을 올려다 봤다.


건물은 4층짜리 낮은 건물이었고 옆으로 긴 형태의 칙칙한 회색 구조물이었다.


잠시 담배를 태우던 태휘는 짐을 든 김 과장을 앞으로 세우고 천천히 건물의 입구로 걸었다.


"멈춰. 뭐냐 뒤에 그놈은?" 문 안쪽에 앉아 있던 뚱뚱한 체구의 남자가 일어나며 태휘와 김 과장을 멈춰세웠다.


"뭡네까?"


"아 별 거 아닙네다. 어이 이 사람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 관리자야."


김 과장은 능숙하게 중국어로 입구의 남자와 대화를 나눴고 태휘는 잠시 눈치를 봤다.


이윽고 남자는 옆으로 비켜서며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이 고개짓을 했고 태휘와 김 과장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계단이 나왔고 옆으로 복도가 쭉 늘어져 있는 구조였는데, 낮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애초에 전등을 지 않은 건지

멀리 안쪽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소좌 동지, 3층에 사무실 겸 주무실 방이 있습네다. 우선은 그곳에 짐을 푸시고 바로 현장으로 가시지요."


태휘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 3층으로 올라와 왼쪽으로 쭉 들어가 5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맨 끝방이었다.


김 과장이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자 태휘는 방 안을 볼 수 있었는데 방은 사무실로 보이는 방이 먼저 보였고,

안쪽에 침실로 보이는 방이 따로 더 있는 투룸형 구조였다. 그리고 안쪽 방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함께 있었는데 태휘의 염려와는 다르게 제법 깔끔했다.


"음, 이전 관리자 동무가 제법 깔끔히 썼나 보오?"


"하하! 잘 보셨습네다! 깔끔하디요? 언제든 바로 쓸 수 있게 저희가 항상 관리를 해놓았습네다. 짐은 안쪽 방에 두겠습네다. 여기서 업무를 보시면 되시고,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따로 말씀해 주시면 됩네다. 현장은... 조금 쉬시다가 가십네까?"


"기다릴 거 업디요. 바로 가겠습네다."


김 과장은 빙그레 웃으며 들고 온 태휘의 짐을 안쪽 방에 있는 침대 옆에 두었고 태휘와 함께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은 함께 1층으로 내려와 아까 태휘가 봤던 어두운 복도를 향해 갔다.


천천히 복도의 끝 쪽으로 향하자 오래된 듯한 형광등이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켜졌다.


센서식이었구나 하고 태휘는 속으로 생각하며 김 과장을 따라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갔다.


곧바로 복도의 끝에서 다시 왼쪽 모퉁이를 돌자 큰 문이 하나 나왔는데 이중문이었다.


"여기서부터가 공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네다. 발 밑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시라요."

김 과장의 나지막한 경고와 함께 바닥에 물이 고여있는 곳이 몇 군데 보였고 벽에는 선전 문구가 써져 있었다.


- 수령 동지의 지휘아래 결사의 정신으로 떨쳐나서자!


"여기 건물이 1동입네다. 여기서는 가공처리가 끝난 의복들을 모아서 보내고, 옆에 2동에서는 옷, 가방 등을 만드는 생산 시설이 있디요. 여기서 모은 완제품들은 저쪽에, 다른 미완품들은 저쪽에서-"


김 과장의 설명과 함께 태휘는 2동으로 넘어와 공장의 구조와 생산 품목들을 살펴보았고 옥상에 올라갈 때쯤 김 과장은 따로 업무가 있다며 먼저 돌아갔다.


치익-소리를 내며 태휘는 담뱃불을 붙이고는 공장 부지의 인근을 내려다봤다.


하얀 담배 연기와 함께 입김이 나왔는데 한겨울의 날씨에 제법 추위를 느끼며 태휘는 주변의 풍경에 다시 한번 자신이 왜 이곳에 왔을까 고민했다.


"후... 여러모로 꽤나 추운 시기구만 기래. 하...수아씨...부디 제게 힘을..."


이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수아로 가득 찬 태휘였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내려온 태휘는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을 내려와 방으로 향했다.


"음...? 너?!" 태휘는 2동에서 1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너 윤성민이 맞지 않네? 나 기억나나? 태휘야 태휘. 장태휘!"


"어... 어! 태휘네? 참 말로 태휘네? 어허허 잇! 이게 무슨 일이네? 여기서 다 만난다야! 하하하!"


성민은 태휘와 입대 동기였다.

태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곧바로 임관을 하였는데 당시 동기 중에서도 특히나 필지와 성민은 삼총사라 불릴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태휘와 필지와는 다르게 성민은 어느 날 갑자기 모종의 이유로 전역을 하였다.


그랬던 성민을 태휘는 여기서 뜻하지 않게 만나 너무나 반가운 마음이었다.


"성민이 너 대체 어디 갔던 거이가? 다들 말이 많았는데 뭐 알고 보니 남조선에서 온 반동분자라느니 뭐 사단장 아내를 꼬셨다느니 하하하! 이런 곳에서 다 만나는구나야."


"그랬었구만...뭐 보다시피 지금은 그냥저냥 지내는 중이디. 너야 말로 여기는 무슨 일로...아 이번에 당에서 새로운 관리자가 온다더니 그게 너구만 기래?"


"맞아 내가 이번에 여기 관리자로 임명되어 이렇게 오게 됐지. 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끼리 회포나 풀지 기래? 어떠네?"


"좋지. 근데 나는 여기 노동자 신분으로 온 거라 밖에 함부로 나가지는 못해."


"내가 관리잔데 그거이 뭔 상관이가?! 정 맘에 걸리면 내 방에서 술이나 하지. 어떠네? 그건 괜찮지?"


성민은 씨익 웃으며 알겠다고 말하고는 씻고 작업복을 환복 한 뒤에 방으로 찾아간다고 말했다.


태휘는 성민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허허허 설마 성민이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동안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만..."


태휘는 이곳에서의 즐거움을 찾은 것 같아 기쁜 마음에 들떠 있는 상태였다.


성민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창문 밖을 보는데 어느덧 노을이 지면서 밤이 오고 있었다.


저 멀리에는 추운 겨울 날씨에 얼어붙은 호수가 있었다.


작가의말

날씨가 조금 풀려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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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얼어붙은 못 (3) 24.09.15 1 0 12쪽
3 얼어붙은 못 (2) 24.09.08 6 0 11쪽
» 얼어붙은 못 (1) 24.08.31 13 0 9쪽
1 여러분의 아이돌, 수아입니다! 24.08.26 1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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