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내공을 포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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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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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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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버러지도 밟히면 꿈틀거린다 (1)

DUMMY

3화 – 버러지도 밟히면 꿈틀거린다 (1)




“크흠, 그 뱀들이 뭔데 그러시는 거요?”


나는 최대한 해맑은 표정으로 순진무구한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런데, 사내의 표정이 참 묘했다.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이랄까.


‘아, 나 지금 민머리였지.’


난 이제 고작 열아홉이다.

참고로, 나는 자기 객관화에 철저한 인간이다. 열아홉이지만, 스물아홉같이 보일 거라는 건 잘 안다.

어쩌면 서른아홉 같이 보일지도.

역시, 머리빨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큼큼, 저희 가문에서 키우던 뱀들인데 글쎄 오늘 탈출했지, 뭡니까. 흔적으로 보아하니, 이쪽으로 간 것 같은데···.”


일단, 첫 번째 든 의문은.


‘집에서 뱀을 키운다고?’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집 안에서 뱀과 오순도순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독사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뱀한테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흔적을 남긴단 말입니까?”


흔적이야 남길 수 있겠지. 흙바닥을 기어다니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산길은 수풀이 우거져 있다.

아무리 전문 땅꾼이라도 뱀의 흔적을 찾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하하, 그 녀석들은 참 특별한 녀석들이라 말입니다. 끼니마다 천리미향(千里迷香)을 섞은 먹이를 주기 때문에, 저희처럼 미향에 관한 특수 훈련을 받은 이들이 추적할 수 있지요.”

“······.”


그래서 내 앞에 와 있는 거구나.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그쪽 분에게서 그 향이 감지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인 게지요.”


이런, 젠장. 놈들을 먹으면서 터져 나왔던 검은 액체는 독이 아니라, 저 천리미향인 게 틀림없다.

내가 그 뱀들을 먹었다는 사실이 곧 드러날 게 뻔했다.

고민이 되었다.

사실대로 말할까? 뭐, 내가 먼저 공격한 것도 아니고 그놈들이 먼저 나를 공격한 건데, 이 정도면 정당방위 아니겠어?

그렇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결심을 굳힌 순간.


“그쪽 분의 뱃속에 들어간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한 건지, 원 참.”

“···예? 왜 그런 일은 가정조차 하지 않는 거죠?”

“하하, 당연하지요.”


다음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놈들의 이름은 청홍쌍사(靑紅雙蛇)이지요. 한 녀석은 극한(劇寒)의 냉기를, 한 녀석은 극열(極熱)의 화기를 그 영단에 품고 있기에, 혹여라도 누군가 녀석들을 산 채로 잡아먹었다면 온몸이 얼어붙거나, 혹은 열기에 녹아내려 버렸겠지요.”

“······.”


즉,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놈들을 먹지 않았단 반증이 되어버린다는 거다.


“하하, 그리고 워낙 날랜 녀석들이라 일반인의 반응 속도로는 녀석들을 잡는 것도 불가능하고 말이지요.”

“······.”


그때였다.


“잠깐.”

“왜 그러니, 문혜야?”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오라버니?”


왠지 나의 태도가 석연찮았는지, 이번에는 여인이 두 눈을 좁히고는 나와 내 주위를 훑었다.


“그 입가에 묻은 건 뭔가요? 그리고 바닥에 흥건한 이건···.”


어둑한 밤이라 색깔 식별이 어려워서 천만다행이랄까.

나는 얼른 입가를 닦았다.

여인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바닥을 킁킁거렸다.


“피 냄새···?”


딱 걸렸다.

그 시뻘건 뱀을 잡아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아직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기에서··· 뭘 드신 거죠?”


여인이 눈을 좁힌 채 추궁하듯 물었다.

아, 이제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 때인가?

나는 원래 어릴 적부터 거짓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굳이 내가 남을 속여서 득을 볼 것도 없었고, 괜히 마음만 불편하니까.

그래,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먼저 사냥한 게 아니고, 날 공격한 놈들을 잡아먹었을 뿐이다.

이들도 이해할 거야.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문혜, 너는 설마하니, 황금 천 냥으로도 절대 살 수 없는 그 진귀한 청홍쌍사를 이분께서 잡아드시기라도 했을 거라고 의심하는 것이더냐?”


사내가 질책하듯 말했다.

이에 나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하하, 그, 그렇지요. 저는 뱀이라고는 전혀 보지 못했어요. 산짐승이 먹다 남은 고깃덩이의 잔해인가 보죠, 하하.”


아무리 억센 철이라도, 녹이려면 녹일 수 있는 법이지 않은가.

마음도 그와 같다.

언제든 굳은 마음은 녹여버릴 수 있는 법.

암, 그런 법이다.


“어쨌든, 큰 변고를 치른 분에게 저희가 너무 꼬치꼬치 캐묻기만 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무례랄 것까지야.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사내는 꽤 고귀한 가문의 출신임이 확실했다. 어투에서 풍기는 특유의 기품이라든지, 타인의 행색과 상관없이 존중해 주는 모습이라든지.


“하하, 이런.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하지 못했군요. 소인은 산 아래 개현(開縣) 당가타에 살고 있는 당철영이라 합니다만.”


‘당가타··· 당철영?’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지명과 성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사내가 여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여인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당문혜에요. 철영 오라비의 사촌이고요.”


통성명이라는 건, 서로의 신분을 밝히는 자리이다.

그러니, 나도 응당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게 옳다.


“영문골, 화진이라 합니다.”

“영문골···?”


사내, 당철영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아하하, 내강(內江) 인근의 아주 작은 마을이지요.”

“그러셨군요. 내강이라면, 쉬지 않고 족히 사흘은 걸어야 할 텐데···.”


자꾸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혹여, 화진 공자께서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저희 가문에 들러 잠시 쉬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하하, 그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다.

내가 먼저 공격한 게 아니라도, 나는 저쪽 사람들이 아끼는, 심지어 무지무지 비싼 뱀들을 꿀꺽하고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하, 전 괜찮습니다만···.”

“그건 아니 될 말씀입니다. 사해가 동도인 법인데 어찌 곤혹에 빠진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그리했다간 저희 당가타에서 저를 모진 이라 여겨 내칠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뭐, 그렇게까지···.

선행을 베풀어 준다니,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몹시나 불편했다.

아무리 청홍쌍사인지 뭔지 하는 뱀들이 먼저 공격했다손 치더라도, 잡아먹은 건 잡아먹은 거니까.

그러나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기도 민망했다.


“하하, 그러면, 그 도움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보답은 나중에 하면 되지.

일단 의식주만 간단히 해결하고 끝내면 될 문제다.

그렇게 나는 따뜻한 두 남녀를 따라 당가타로 향했다.



***



사천당가, 혹은 당문.

독과 암기로는 중원 무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위상을 지닌 가문이다.

그리고 현재, 사천당문의 문주인 당가석은 그의 집무실에서 아들, 당철영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걸 지금 이 아비보고 믿으라는 말이더냐?”

“···확실합니다, 아버지.”

“그러니까, 그 화진이라는 놈이 청홍쌍사를 잡아먹었다? 상식적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이더냐.”

“그건 소자도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아버지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천리미향은 달포 동안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놈이 청홍쌍사를 먹은 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당가석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냉독은 물론이고, 화독까지 집어삼킨 놈이 아주 멀쩡히 살아있다? 아주 만독불침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하지 그러느냐.”


당철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놈, 만독불침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헛소리! 우리 당문의 도반삼양귀원공(導反三陽歸元功)을 대성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만독불침의 육체를 고작 약관이 채 되지 않은 애송이가 이루었다고?”


도반삼양귀원공의 대성에 이른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독공으로는 무림 전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현 당문의 문주인 당가석조차도 아직 이루지 못한 경지이다.


“왜? 아예 화경의 경지에 이른 초절정 고수라고 하지, 그러느냐.”

“그게 아닙니다, 아버지.”


당철영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처음 그놈을 만났을 때, 그는 나체였습니다. 온몸은 희다 못해 창백했고 전신 그 어디에도 털이 없이 말끔한 피부를 보였습니다.”


인간이라면 햇빛을 받고 살아간다. 당연지사, 옥좌에 앉은 황제도 아니고, 영문골이라는 촌에 살아가는 촌부가 그렇게 백옥같이 흰 피부를 지닐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온몸의 모든 털이 빠졌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라면, 타당한 근거는 단 하나다.


“그가 말하길, 그를 납치한 어떤 광인으로부터 실험을 당했고, 사흘 전에야 탈출했다고 합니다.”


즉, 희귀병보다는, 그 실험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 광인은 독공을 연구했고, 화진이란 놈은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 갇힌 채 실험을 당한 게 틀림없습니다.”

“허어, 그러니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미친놈이 떡하니 당가타 뒷산에서 독공을 연구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까요.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


감히 당가타를 앞에 두고 독공 연구를 한 미친놈이 있다라···.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당철영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당가석은 수염을 쓸며 한참이나 상념에 빠졌다.

그때, 당철영은 눈을 빛냈다.


“청홍쌍사를 잃은 것은 마음 아프나, 소자가 판단하기에 이번 일은 저희 당문에 찾아온 기회입니다.”


한숨을 푹 내쉬는 당가석.

아들의 의도가 뻔히 보인 탓이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놈을 실험체로 쓰자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그놈이 정말로 만독불침일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만에 하나, 그놈의 모든 말이 거짓이고, 실제로는 재야에 은둔한 초절정 고수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의 말에 당철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벌써 뒷조사를 한 모양이구나.”

“하하, 그렇습니다. 영문골에 알아보니, 삼 년 전에 행방불명이 되었다더군요. 그전까지는 무공의 무(武)자도 모르는 그야말로 무지렁이로 살았고요.”


그렇다면 말이 달라진다.

고작 삼 년 사이에 경천동지할 만한 무공을 얻는다?

그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이들의 상식으로는 말이다.

당가석은 자랑스러운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네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그 독’에 대한 연구를 재개할 수 있겠구나, 끌끌. 똑똑하게 잘 처리했구나. 역시, 당문의 미래를 책임질만해.”

“과찬이십니다, 아버지.”


그렇게 두 부자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웃음을 흘렸다.



***



후비적- 후비적-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할 거야.

침상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제 손으로 콧구멍을 후비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이다.


“오우야, 왕건이다, 왕건이!”


동굴 탐험을 끝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코딱지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 탁, 하고 던질 때 느껴지는 이 짜릿함!

아주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편하게 지낼 수가 있는 거지?”


사실 딱 하루만 신세를 지고 당가타를 나설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편한데 어떻게 나가!”


처음에는 그가 살아온 영문골과 같은 시골 동네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당가타, 이 당씨들이 살아가는 집성촌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규모의 마을이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돈이 얼마나 많은 건지···.

산해진미는 물론이고, 폭신한 침상에 보들보들한 비단옷까지!

그야말로, 복수고 나발이고 평생 죽치고 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아무리 몸이 편해도, 마음은 몹시도 불편했다.


“하아, 이 기구한 인생 같으니.”


이곳에 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설마 벌써 날 잊은 건 아닐 거야. 그래··· 어머니, 아버지께서 자식 걱정에 얼마나 가슴 졸이고 계실까.”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도와준 보답은 톡톡히 할 생각이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래, 얼른 당철영 공자에게 가서 말하자.”


더 늦으면 더 후회할 뿐이다.

그렇게 방을 나서려는데.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화진 공자, 안에 계신가요?”


당문혜의 단아한 목소리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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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 변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2) NEW 17시간 전 165 2 13쪽
11 11화 – 변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1) 24.09.18 297 5 12쪽
10 10화 – 고통을 즐기는 변태 (3) 24.09.17 382 6 13쪽
9 9화 – 고통을 즐기는 변태 (2) 24.09.16 355 8 12쪽
8 8화 – 고통을 즐기는 변태 (1) 24.09.15 410 8 11쪽
7 7화 – 버러지도 밟히면 꿈틀거린다 (5) 24.09.14 445 9 12쪽
6 6화 – 버러지도 밟히면 꿈틀거린다 (4) 24.09.13 461 6 13쪽
5 5화 - 버러지도 밟히면 꿈틀거린다 (3) 24.09.13 502 9 11쪽
4 4화 - 버러지도 밟히면 꿈틀거린다 (2) 24.09.12 562 6 13쪽
» 3화 – 버러지도 밟히면 꿈틀거린다 (1) 24.08.27 1,635 17 13쪽
2 2화 – 달콤한 탈출 24.08.26 1,652 20 12쪽
1 1화 – 천일 비망록 24.08.26 2,005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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