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띠링!
핸드폰의 알람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하자 어김없이 하나의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web발신
**신용승인 강찬혁 (1111) 09/10 13:00
3,874,000원
잔액 : 65,000원]
“망할 새끼들··· 매달 돈 빼 가는 건 칼이야.”
짜증 난다는 듯 혀를 찬 강찬혁은 낡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좁은 고시원 방이지만, 그래도 강찬혁에게는 1년을 함께 살아온 집이었다.
‘이제 진짜 못 하겠다······.’
부모님이 죽으며 남긴 막대한 빚. 당연히 강찬혁은 이 빚을 떠안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법.
하물며 탑을 오르며, 몬스터들과 죽고 죽이는 전투를 겪은 각성자들이 고용되어 있는 사채 기업의 빚을 무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망할 깡패 새끼들. 합법적인 사업은 얼어 죽을······.”
법적으로 상속을 포기하여 빚을 갚지 않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깡패들이 자신을 살려 둘 가능성은 없다.
사람의 신체 부위가 얼마나 돈이 되는지, 부모님 장례식 때 직접 찾아와서 장기 하나하나 가격을 알려 줬기 때문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죽고 싶지 않았고, 오래 살라는 유언까지 들은 강찬혁은 결국 그 빚을 모두 떠안아야 했다.
그 결과가 지금처럼 매달 빠져나가는 막대한 돈이었다.
심지어 저 돈은 원금이 포함된 돈도 아니었다.
오직 이자만으로 저 엄청난 금액이 매달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우웅.
그때 핸드폰이 울리며 결코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예.”
- 아이고. 강찬혁 고객님. 이번 달도 입금 잘 받았습니다.
껄렁거리는 남자 목소리에 강찬혁은 목까지 차오른 욕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예. 그럼 끊을게요.”
- 에헤이! 왜 이렇게 성급하실까.
“이번 달 이자 갚았잖아요.”
- 물론이죠. 그런데··· 아니 글쎄, 나라에서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합니다.
“예?”
- 뉴스 안 보시나 보네. 나라에서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그럼 은행이랑 우리 같은 이들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도 이자율을 올려야겠죠?
“······.”
강찬혁은 어이가 없었다.
“이미 법정 최고 이자를 받고 계실 텐데요?”
- 아이고. 잘 모르시구나? 그것도 늘어났습니다.
“법이 바뀌었다고요?”
- 아실 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우리가 그렇게 바꿨다고.
순간 핸드폰 너머로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에 강찬혁은 입을 열지 못했다.
- 아무튼··· 이제 매달 450만 원입니다.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럼 다음 달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고 싶으시면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될지는··· 아시죠?
“빚을 내가 갚을 수 없다는 것도 알잖아요!”
- 하하하. 그렇죠? 아무리 야간 알바를 많이 뛴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탑에 가시죠?
탑이란 단어가 나오자 강천혁은 움찔거렸다.
- 나는 도대체 왜 우리 고객님이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니까요? 탑에 들어가면 수입이 얼마나 늘어나는진 잘 아시잖아요?
“탑에 들어간다고 해도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목숨을 걸라고요?”
- 그거야 좋은 보상이 나올 때까지 계속 탑을 돌면 해결되는 일이죠.
“···저는 목숨 걸고 몬스터랑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 하아··· 이제 됐어. 고객 대우는 여기까지다, 강찬혁.
강찬혁은 핸드폰 너머 급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으며 마른 침을 삼켰다.
- 선택지를 주지. 이자도 못 갚고 그 몸뚱이에 있는 장기로 빚을 갚을래 아니면 탑에서 돈 벌어 올래?
“······.”
- 50만 원 추가로 대출해 줄 테니까, 그걸로 적당한 무기 하나 구해서 탑에 들어가.
강찬혁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탑 클리어 보상이 복불복이기는 한데··· 그건 네가 알아서 할 문제고. 오늘 탑에 가지 않으면, 내일 우리가 직접 찾아가서 탑에 던져 넣을 테니 알아서 해라.
자신에게 선택권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강찬혁은 입술만 깨물어야 했다.
- 강찬혁, 우리가 너보고 다른 차원의 침공을 막는 용사가 되라고 했어? 그냥 적당한 층을 반복 클리어해서 나오는 보상으로 돈이나 갚으라고. 이해가 어렵냐?
도대체 왜 자신에게 이러냐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돌아오는 건 차가운 멸시와 비웃음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해 본 강찬혁이었다.
- 지금 50만 원 대출 진행했다. 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알아서 해라.
전화가 끊어지자 강찬혁은 온몸에 힘이 빠졌다.
탑은 지구의 신이 침략자들을 막기 위해서 만든 일종의 성벽이었다.
다른 차원에서 지구로 넘어오려는 침략자, 몬스터들은 우선적으로 탑에 갇히게 된다.
그 후 탑에 오르는 사람들이 각 층에 갇힌 침략자, 몬스터들을 죽이고 보상을 얻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른 차원의 침공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탑이었다.
게다가 지구의 신은 사람들이 다른 차원의 공격을 수월하게 막게 하기 위해 ‘시스템’을 통해서 각성도 시켜 주고, 랜덤으로 보상도 책정해 사람들의 욕망과 욕심을 자극했다.
그 결과 다른 차원의 공격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부와 명예를 위해서 혹은 각자의 사연으로, 지금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탑을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탑에 들어가 각성을 한다고 해서 다 같은 각성자가 아니잖아.’
각성의 층이라고 불리는 탑의 0층에서 사람들은 각성을 하고 직업과 특성을 부여받는다.
이 직업과 특성엔 등급이 있는데, 무슨 등급이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삶이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각성자의 약 80%가 가장 낮은 등급인 일반 등급의 직업과 특성을 얻는다.’
그리고 사채업자들이 원하는 것도 딱 그 수준.
너무 높은 등급으로 각성하면 역으로 사채업자들이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끝없이 탑을 돌며 지속적으로 돈을 갖다 바칠 돈줄이지, 자신들에게 덤빌 맹수가 아니었다.
띠링.
[web발신
계좌 입금 강찬혁 (1111) 09/10 13:24
500,000원
잔액 : 565,000원]
“진짜 보냈네······.”
오늘 탑에 가지 않는다면, 내일 진짜 찾아오겠다는 걸 돈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하··· 마석 광부라······.”
1, 2층과 같은 낮은 층수라고 해도 탑을 클리어하기만 하면 반드시 보상이 주어진다.
그 보상이 쓰레기가 나올지 대박이 나올지는 철저하게 운으로 결정되지만 나온다는 게 중요했다.
매일 즉석 복권을 긁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최하급 마석이 하나에 약 9만 원··· 이걸 하루에 한두 개씩만 얻어도 하루 일당이긴 하지만.’
문제는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탑 1층은 다른 층들과는 다르게 한 번 클리어 하면 반복 클리어가 불가능한 튜토리얼 층이니··· 무조건 2층을 돌아야겠네.’
강찬혁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한숨을 쉬었다.
“안 가면··· 놈들이 진짜 날 죽이려고 하겠지?”
직접 찾아와서 장기를 강제로 뜯어내 팔아 버리겠다는 건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1990년에 전 세계 곳곳에 탑이 나타나고, 탑에 들어가기만 하면 개나 소나 각성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전 세계의 치안은 박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먹은 법보다 훨씬 더 가까웠고, 강력했다.
그러니 강찬혁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없다고 봐야 했다.
살고 싶다면 무조건 탑에 가야 했다.
“매달 최소 천 명 이상이 죽어 나가는 탑에 살기 위해서 가야 한다니··· 웃기지도 않네.”
강찬혁은 힘없이 웃다가 고시원을 나섰다.
오늘부터 모든 알바는 모두 취소였다.
이제부터는 죽느냐 사느냐를 두고 탑에서 싸워야 했다.
***
탑에 도착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탑의 위용에 감탄한 것도 잠시.
탑의 입구 근처에서 낯익은 사람을 본 강찬혁의 얼굴이 구겨졌다.
“오, 왔네? 내일 직접 찾아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웃으며 다가오는 남자를 본 강찬혁은 목까지 차오른 욕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직접 왔으니 안 와도 됩니다, 박거준 팀장.”
“나야 편해서 좋지. 그보다 초보자에게는 검보다는 창이 더 좋을 텐데··· 검을 사 들고 왔네?”
“돈이 모자라서요.”
“아하. 그럼 어쩔 수 없지. 크크크.”
자신을 비웃는 박거준의 목을 허리춤에 있는 검으로 베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기에 참아야만 했다.
“너도 이미 알겠지만 1층에 나오는 몬스터는 고블린 1마리. 그냥 가벼운 몸 풀기일 테니 빨리 처리하고 나오면 된다. 혹시 알아? 각성의 층에서 끝내주는 직업이나 특성을 얻을 수 있을지?”
강찬혁은 대놓고 비웃는 박거준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탑으로 향했다.
“설마 머저리처럼 1층에서 죽진 않겠지? 살아서 돌아오라고! 우린 돈 잃기 싫으니까!”
응원 아닌 응원을 받은 강찬혁은 탑 안으로 들어갔다.
탑 안에 들어온 강찬혁을 맞이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
일명 각성의 층이라고 불리는 공간으로 각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게 되는 장소였다.
[탑에 들어온 수호자님, 환영합니다.]
[수호자님을 위한 각성 시스템을 진행합니다.]
[기본적인 시스템의 사용법이 뇌에 각인됩니다.]
[각성 시스템 진행이 완료됩니다. 상태창을 확인해 주세요.]
“후우··· 제발. 하나님, 제 동생이랑 부모님을 일찍 데려가셨으면, 지금이라도 절 도와주세요. 제발.”
신이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가족의 죽음으로 이미 질리도록 느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신에게 기도하며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강찬혁 - 1Lv
직업 : 검사 (일반)
특성 : 선택하는 자 (신화)]
“어?”
직업은 평범했지만 특성은 특별했다.
일반, 희귀, 영웅, 서사, 전설, 신화로 이루어진 총 6개의 등급 중 최고 등급의 특성이 나타난 것이다.
“저··· 정보 확인!”
[직업 : 검사 (일반)
- 검을 사용하는 전사]
직업의 설명은 간단명료했으며, 높은 등급의 직업들과 다르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강찬혁도 직업에 기대한 점은 없었다.
강찬혁이 기대하는 건 그가 받은 특성이었다.
[특성 : 선택하는 자 (신화)
- 탑 클리어 시 지급되는 보상 100가지 항목 중 2개의 보상을 선택할 수 있다.]
“보상을 2개나 직접 선택할 수 있다고?”
보상을 2개나 받는 것도 놀라웠는데, 남들이 랜덤으로 받는 보상을 자신은 선택한다고 하니 더 놀라웠다.
강찬혁은 괜히 신화 등급의 특성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나는 다른 각성자들과 다르게 탑을 클리어할 때마다 무조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거야!’
“후우··· 심호흡하고. 스킬창.”
[강타 (일반) - 1Lv
- 강한 힘을 담아 타격한다.]
물리 공격 계열의 직업이 가지는 아주 일반적인 스킬.
즉, 대단한 효과도 없고 강하지도 않은 스킬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좋지.’
게다가 탑의 1층은 키 1.2m 정도에 신체 능력도 성인 남성보다 떨어지는 고블린 1마리만 죽이면 되는 층이었으니 당장은 이 정도 스킬로도 충분했다.
“후우. 할 수 있다. 무조건 할 수 있다. 난 절대 여기서 죽지 않는다. 어떻게든 클리어만 하면 된다. 그럼 난 100% 로또 당첨이다.”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말을 되뇌이며, 강찬혁은 탑 1층에 올랐다.
Comment '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