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보스 키우는 잡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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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피아재
작품등록일 :
2024.09.20 13:05
최근연재일 :
2024.09.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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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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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DUMMY

영혼의 숲을 둘러싼 야누스 나무는 그 높이만큼 잎사귀도 거대했다. 그러니 타오르는 태양 빛은 언제나 수만의 실타래로 갈라졌다.


그곳의 오솔길이 끝나는 곳.


언제나 기이한 푸른빛을 발현하는 반투명한 기둥은 리스폰(Respawn) 구역이라 불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 걸음이 채 되지 않는 곳.


고동빛 참나무로 지어진 작은 잡화점은 주인 라울이 지키고 있었다.


라울은 덥수룩하게 자란 콧수염을 매만졌다. 이어서 출입문 옆 창문으로 오솔길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온몸이 녹색으로 뒤덮인 오크이며, 작은 방망이를 손에 쥔 코볼트, 깔깔거리며 뛰어가는 늑대인간까지. 수많은 몬스터가 푸른빛으로 들어갔다.


리스폰되는 몬스터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온 손님과 말 몇 마디를 주고받거나 벽면에 걸린 추시계를 지그시 바라보는 것.


라울이 하는 일은 그런 게 전부였다.


그는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을 멍하니 바라봤다. 미동 없는 긴 바늘을 보고 있자면 시간이 멈춘 듯했다.


단조롭고 소소한 일상은 대체로 평온했다. 그러나 다시 말해 그는 따분했다. 그게 당연했다. 불과 며칠 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좌에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언제나 붉었던 그의 안광은 용맹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라울은 여기저기 흠집이 가득한 계산대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리고 기묘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하야스 해변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이번 삶이 마지막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에겐 선택권이 없다는 말이죠.”


레아는 서큐버스로 아니무스 세상에서 주로 얄궂은 일을 도맡았다. 특유의 퉁명스럽고 차가우며 계산적인 성격 덕분이었다.


그녀의 말에 라울은 답답했다. 무거운 바위가 가슴을 짓눌린 것 같았다. 이어서 나온 깊은 한숨은 바닥에 깔린 새하얀 모래를 날릴 기세였다.


“참나.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믿지 않으시면 어쩌시게요?”


무릎을 치면 다리가 들리듯 그녀의 대답은 즉각적이고 반사적이었다. 그렇더라도 라울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에 트집 잡을 게 없었으니까.


그는 마음을 채워가는 답답함에 궁금증을 더하긴 싫었다. 그녀의 강압적인 제안은 조건이 있을 터. 축 처진 어깨로 바닥에 모래를 쓸어 만지며 레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조건은?”


“두 가지요.”


그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지만, 어두워지는 낯빛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조건이 가을을 담아낸 낙엽을 쓸거나, 비가 오는 날 길에서 우산을 파는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라울의 가슴은 두근거렸지만, 그것이 봄날 피어오르는 꽃망울에 느끼는 설렘은 아니었다. 그거 걱정과 분노가 미묘하게 섞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느슨하던 말투에 짜증이 섞였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라고? 뭔데 그게?”


그녀는 쓰고 있던 뿔테를 슬쩍 매만지더니, 고개를 돌려 허공 한편으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파랗게 발광하는 빛기둥 하나가 보였다.


“저게 뭐? 리스폰 구역이잖아.”


라울이 푸른 빛을 모를 리 없었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주기로 20년. 그 긴 시간을 아니무스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체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곳에서 인간으로 5년을 보냈고, 커다란 검보라색 말 위에 올라, 시퍼런 낫을 휘두르는 최종 보스로 15년을 살아냈다.


두 번의 삶은 모두 죽음에 닿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한 지금.


그는 덥수룩한 코털에 견고한 녹갈색 가죽 갑옷을 입었고, 어깨에는 붉은 망토를 걸친 중년의 사내 모습이었다.


레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라울에게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리스폰에 작은 잡화점을 하나 만들었어요. 그곳을 지키면서 아니무스 몬스터를 도와주세요.”


라울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일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여겼다. 아니무스에서 인간으로 지낸 세월보다, 최종 보스로 지낸 시간이 더 길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디서 고통과 환희를 느꼈는지 제법 잘 알았다.


그러나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두근거림은 계속됐다. 언제나 중요한 이야기나 결론은 후에 나왔으니까. 그의 꿈틀거리는 눈매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서 두 번째는?”


하야스 해변은 언제나 고요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라울의 물음이 끝나자, 그 적막함은 더욱 깊어졌다.


잠시 후. 레아는 손에 쥔 서류 꾸러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과거 당신의 자리를 이어갈 후계자를 찾아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좀처럼 말끝을 흐리는 법이 없었다. 그런 레아를 잘 알았기에, 라울은 미간을 구기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녀석을 그 자리에 어울릴 존재로 만들어 주세요. 최종 보스로.”



.

.

.



그렇게 꼬박 일주일이 지났다. 라울은 딱히 선택지가 없었지만, 레아의 제안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초 마법은커녕 손가락으로 작은 스파크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힘은 절반 그리고 지금까지 모은 아이템은 잡화점에 모두 둘 테니까.”


그는 기억을 되짚는 걸 그만두고는 양손을 머리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손톱만 한 작은 에메랄드부터 큼지막한 큐빅이 박힌 방패, 청록색 수정이 달린 지팡이, 시퍼렇게 날이 선 장검까지. 수백의 아이템은 잡화점 벽면 전체를 가득 채웠다.



라울은 그중에도 작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아뮬렛을 아꼈다. 그가 인간 마법사로서 아니무스 세상에 발을 내디뎠을 때, 삼일을 꼬박 밤새워 얻은 레어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체력과 방어력을 소폭 올려주던 목걸이. 그것이 없었다면 일찍이 세상에서 소멸할 운명이었다.


아무튼, 라울은 레아의 첫 번째 제안.


어린 고블린에게 견고한 방패를 쥐여 주거나, 발목이 겹질린 해골 병사에게 가죽 장화를 신기는 일. 갖가지 이유로 잡화점을 찾는 몬스터를 돕는 일에 부침을 느끼진 않았다.


다만, 졸린 눈을 손으로 비비듯 손쉽지 않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고를 때면, 언제나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으며 깊게 고심했으니 말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린 오크에게 생명력 흡수가 가능한 장검을 쥐어 줄 수 없는 것처럼, 몬스터 레벨에 맞는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라울은 그 작업을 섬세하고 신중하게 했다. 가끔은 피곤해 눈이 침침했지만, 이따금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니 괜찮았다.


문제는 두 번째 제안이었다.


라울은 매번 옷걸이에 걸린 아작스 망토를 걸쳤다. 그 망토는 광채가 없는 흑색으로 마력 소모 없이 은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0층이나 되는 아니무스 탑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최종 보스의 자리를 이을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없었다.


전례도 없는 그 일은 라울에게 곤혹스러웠다. 마치, 하얀 백사장에서 손톱보다 작고 투명한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보다 어렵다고 여겼다.


“쯧. 이래서야 원······.”


발광하는 달 없이 별 무리만 가득하던 어제 새벽. 침대 위에서 옆으로 누운 라울은 번민에 사로잡혔다. 아무래도 레아의 두 번째 제안. 최종 보스의 재목을 찾아 권좌에 앉히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렵고 난해한 일들은 쉽사리 포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끙끙 앓기만 할 뿐이니까. 라울은 결국 어젯밤, 난잡하면서도 어려운 그 문제를 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 그 좋아하는 소고기 스튜를 배불리 먹었어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멍한 눈동자는 괜스레 창밖과 잡화점 한편을 오갔다.



『 툭. 툭. 』


라울은 갑작스레 들리는 소리에 어깨를 들썩였다. 소리는 그가 서 있는 계산대 아래에서 들렸다. 이내 라울은 눈매를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무릎까지 겨우 오는 작은 키에 피부는 어두운 녹색을 띤 작은 코볼트 한 마리가 있었다. 녀석은 날카로운 못이 박힌 방망이로 계산대를 툭툭 쳐댔다.


“뭐야? 그만 치라고. 계산대에 흠집 나잖아.”


투박한 생김새와 다르게 꽤 깔끔한 라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코볼트는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봤다.


“아. 안녕 라울? 자는 줄 알았어.”


코볼트는 라울의 잡화점 단골 중 하나였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길 원했던 녀석은 라울에게 인간을 상대하는 방법을 물었다. 욕심도 많았다. 한번은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단검을 쥐고 흔들다가 손을 베인 적도 있었다.


그래서 라울은 코 평수를 넓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종일 심란한 마음에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는데, 녀석이 곧 성가신 일을 벌일까 싶었다.


“오늘은 기분이 영 아니니까. 필요한 거나 빨리 말하라고.”


라울의 말투는 언제나 퉁명스러웠다. 가끔은 어린 몬스터에게 콧소리를 내며 살갑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으나, 결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코볼트는 라울의 언짢은 말투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저 라울을 마주하기 편한 각도로 뒷걸음쳤다. 그러고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입을 뗐다.


“뭐가 필요해서 온 거 아니야.”


왠지 모르게 코볼트의 진지한 말투는 라울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그래? 뭔데 그럼.”


코볼트는 다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에 쥔 방망이마저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1층에 수상한 녀석이 쓰러져있어. 라울이라면 알까 해서.”


“그래? 인간이겠지.”


아니무스 탑에서 20년을 지낸 라울은 몬스터 족보이며 아이템 도감에 지리까지. 눈을 감아도 훤히 그려지는 듯 모르는 게 없었다.


거기다가 인간으로서 지낸 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 녀석들에 대한 생김새나 옷차림, 사소한 행동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니 라울은 코볼트가 말하는 수상한 녀석이 인간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1층에는 땅을 기어다니는 슬라임과 키가 작은 코볼트와 고블린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이를 제외하면 바닥에 쓰러진 녀석은 초보 마법사. 즉 인간임이 분명했다.


라울이 따분한 표정으로 목덜미를 긁자, 코볼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에 둔 방망이를 들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 나를 인간하고 몬스터 구분도 못 하는 바보로 아나?”


“어.”


라울은 녀석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코볼트는 목소리에 분노를 실었다.


“농담 아니야! 여자아이라고. 머리카락은 빨갛고 이상한 갑옷과 망토를 걸쳤다고. 거기다가······”


팔짱을 끼고 있던 라울은 이내 상체를 코볼트 쪽으로 숙였다.


“거기다가?”



.

.

.



“그래. 거기다가 무시무시한 마력이 느껴진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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