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재앙급 크리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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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9.22 16:47
최근연재일 :
2024.09.2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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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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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

DUMMY

무언가 있는 것 같다. 귀로 들은 것도, 눈으로 본 것도, 냄새를 맡은 것도, 하다못해 육감으로 느낀 것도 아니다.


그저 있다는 인지만이 나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힌다.



그러나 여긴 아무것도 없다. 오감 없이 있다는 인지만이 있다니,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 역설이 나에게 기시감을 불러온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경종이 나의 머리를 관통한다.


나는 지금 당장 있다고 인지하는 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강렬한 기시감이 든다.



뭐였더라? 뭐였지? 정말 중요한 거였는데. 이렇게 잊을 게 아닌데. 꼭 있어야 하는 건데.



기억해내기 위해 여러 생각을 떠올린다. 그러자 생각이 눈앞에 그려진다.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놀랍게도 진짜로 눈앞에 나타났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일상에서 생각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뇌손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러나 이 이현상이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곳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

생각이 눈앞에 나타나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좋은 일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니까.



생각을 떠올린다. 하얀색의 추상적인 형체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해상도가 떨어진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다. 인형처럼 움직이지도 않는다. 기억이 없는 모양이다. 아마 나와의 추억까지도.


맞아. 창조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어.

문득 방금 느꼈던 익숙함이 더 강해진다. 과거가 기억을 타고 현재가 된다.



창조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선. 수학적으로 또는 인공적으로 모난 곳 없이 세상을 가르는 선을 떠올린다.



이내 어떤 굴곡감이 느껴진다. 그 굴곡감이 마음속의 선을 휘게 한다.



그 휘어진 선은 인공물의 것처럼 완벽하고 부자연스럽다. 곡선에 차원을 더한다. 그러자 곡선이 곡면으로 변한다.



곡면의 질감은 무른 고체이다. 색은 하얗고 반투명하다. 하지만 아직 무언가는 아니다.


이 요소들이 삼차원 공간이 아닌 다른 세계에 구현된다면 어떨까?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런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그건 본 적이 없는 것이고, 나는 본 적 없는 것을 떠올릴 수 없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니까.



내가 상념에 빠진 사이 무언가는 곳 나의 기억과 뒤엉킨다. 무언가는 나의 기억에 따라 내가 인지하는 ‘있다’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된다.



어떤 구슬이 나타난다. 구슬은 빛을 난반사하며 아름답게 빛난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구의 모양이 아니다.


일차원의 점, 이차원의 원, 삼차원의 구.


그리고 나의 이해를 벗어난 다른 차원의 완전한 모양들이 중첩되어있다.


마치 ‘있다’라는 것을 시각화한 듯한 모습이다.



구슬을 중심으로 방금 내가 떠올렸던 요소들이 모여든다. 곡면은 머리카락이 된다. 곡선은 몸체가 된다. 무른 고체는 살이 된다.


마침내 한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 비누내음이 퍼진다. 어딘가 가슴 한편이 아릿해진다.


“안녕, 오랜만이야.”


나타난 아이를 바라본다. 고체로 된 몸답게 머리카락은 고정되어 움직이 않는다. 그러나 머리카락의 곡선은 어떤 움직임보다 더 동적이다.

그 과장된 굴곡은 휘날리는 커튼보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정지된 형상은 마치 과거의 기록과 같아 이전에 어떤 강렬한 사건이 있었을지 상상력을 자극한다.


잠깐, 사건? 무언가 떠오를 듯한데.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를 에태운다.


머리를 헤집는다. 생각을 떠올린다. 하얀색에 비누향이 나는 누군가. 어릴 적에 만났던 나의 친구. 신기루같은 자신의 세계를 아끼던 그 아이. 그래 그 아이였어.


“오랜만에 이곳에 왔구나. 아니, 이곳이라는 말은 어색한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아이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아니야.”


그 슬픈 눈에 어떤 형상들이 촛불처럼 피어올랐다 흔들리며 꺼진다.


그 눈을 보건대 아이의 말은 그 눈에 걸맞은 비밀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곳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니, 무슨 뜻일까.

나의 생각과 실체가 구분되지 않는 점.

그렇기에 생각만으로 창조할 수 있는 점.

아이의 말.


이 단서들은 모두 한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그래, 여긴 장소가 아니다. 여긴 공간이 아니다.

방향이 없다. 차원이 없다. 물체가 없다.


‘비어있음’이, 공허가, 허공이, 텅 빔이 없다.


여긴 어디지? 아니, 이건 무엇이지? 공간이 아니라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무엇인가? 공간이라는 무대 없이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기는 한가?

아,

그렇구나

그 아이도 없다.




나는 지금 꿈속에 있다.



나는 방금,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건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이곳에서 때와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그런 것을 제대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내가 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눈앞에 나타난 그 사람 형체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아이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잘 있으렴.”


그러면 항상 그랬듯이 그 아이는 이렇게 답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가 꿈이라는 것을 모른체 하며.


우리와의 추억이 꿈이 아니라고 위로하듯이.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알고 있다.


나는 지금 꿈속에 있다.



나는 그 모른 척의 따스함을 느끼며 아이를 멍하니 바라본다.


아이는 사라지고 있다. 아니 애초에 존재한 적도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를 배웅하며 꿈에서 깨어날 준비를 했다.

.

.

.

눈을 감는 순간, 그 아주 잠깐 사이에 아이의 웅얼거림을 얼핏 보았다.

.

.

떠나지 않을게.

.

그러니 걱정하지 마.

.

.

[업적 ‘현실이라는 꿈에서 깨어있는 자’를 달성]


[두번째 달성자 입니다. 존재에 업이 새겨집니다.]


[오류. 각인이 불가능한 영혼의 격입니다.]


[투영계 안에서 대상을 검색 중... 해당되는 대상 2명을 발견했습니다.]


[투영계 안의 ‘배역’에 업이 각인됩니다.]


[투영계 밖의 영혼과 안의 배역을 서로 동화합니다.]


[배역 몰입도 92%]



***



정신을 각성시킨다. 현실에 자고 있을 나의 몸의 감각을 찾는다. 그런데...


‘깨어나지를 않잖아?’


말도 안 된다. 꿈은 뇌가 조금만 흥분해도 깨어나게 되어 있다.


‘게다가 현실에 있을 몸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리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단서를 얻기 위해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빛을 오색으로 구분시키고 있는 프리즘, 사용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꼬여있는 계단,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형태의 조형물들.


‘아무리 봐도 꿈속은 맞는 것 같은데.’


리하는 조금 더 돌아다닌 후 더이상 얻을 단서가 없다 생각했는지 자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사고부터 점검해보자. 생각에 문제가 있으면 무언가를 파악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사고를 자유롭게 흘려보내 본다. 사고가 트이며 엄청난 해방감이 몰려온다. 논리와 규칙, 관점과 선입견. 사고의 속박이 사라진다. 꿈속에 있을 때의 전형적인 상태이다. 이내 리하는 사고를 갈무리한다.


‘사고에 영향을 받는 정체불명의 곳에서 이런 짓은 위험하겠지.’


자신의 몸도 둘러본다. 어떠한 생리적인 현상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현실의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것 같지도 않다.


‘이건... 관념이 형상화된 것이군.’


꿈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 눈치채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더 자세히 살피니 몸에서 어떤 구슬이 느껴진다. 그 아이에게 있던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둘러보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안되나.’


그렇게 생각하자 어떤 통로가 생겼다. 미술관의 복도처럼 보인다. 걸어나갈수록 주변의 관경들이 점차 변화한다. 관념이 실체로. 비현실이 현실로.


꿈과 현실이 뒤섞인 듯한 신기한 관경을 감상하며 나아가자 어느새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한 아이가 서있다. 그건... 인지할수 없는, 아니 인지해서는 안 되는 대상처럼 느껴진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건 해석할 수 없어서 마치 공백처럼 느껴진다.


“안녕, 기다리고 있었어.”


불가해가, 공백이 리하에게 말을 건다. 리하는 그 해석할 수 없는 것에서 역설적이게도 익숙함을 느꼈다.


“너구나. 음...”


리하는 묻고싶은 것이 많았지만 굳이 질문하지는 않았다. 이 아이는 제대로된 소통이 통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랜 꿈속에서 함께한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리하는 눈앞에 있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제 나가면 되는 거지?”


아이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답한다.


“뭐? 나가는 게 아니라 들어가는 거야. 경계 너머에 있는 세계보다 우리가 있는 곳이 더 크고 다양하잖아. 그러니 경계 너머가 안, 여기가 밖인거지.”


아이의 기묘한 말에 리하는 익숙하다는 듯이 그저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모르겠고 그냥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


리하는 별 생각이 없다. 갑자기 현실과 꿈이 뒤섞인 것도, 아이가 나타난 것도 그냥 그런갑다 하고 있다.

지금은 그저 나가고 싶다는 별 이유 없는 욕구가 그를 이끌 뿐이다.


“그래 그래. 그럼 빨리 들어가 보도록 하자.”


리하는 왜인지 조금 들떠 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아마 꿈속 친구와 함께 현실로 향하는 상황이 그를 들뜨게 만든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새삼스레 이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에게 있어 이 아이와의 모험은 그가 매일 밤 하던 일이기 때문이다.


경계 너머로는 여전히 미술관의 복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관념은 전혀 섞여 있지 않다. 진짜 현실이 눈앞에 있다.


후웅


약간의 저항감과 함께 경계 바깥으로 나왔다. 리하와 아이의 몸은 여전히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현실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비현실이다. 마치 그들이 이곳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말하는 듯하다.


숨소리, 발소리, 그리고 옷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그들에게 인기척 따위는 없다. 마치 미술관의 미술품처럼 적막하다.



“어디 가고 싶어?”


적막한 무언가가 의미를 전한다.



“장소가 중요할까?”


공백이 반문한다.



“그럼 뭘 하고 싶어?”


관념이 뜻을 전한다.



“별을 보고 싶어.”



아이가 미술관에 손을 가져다 댄다.


공백이 세상에 접촉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에 닿는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에 알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미술관의 천장이 유리로 변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변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해를 벗어난 방식으로 하늘이 보이게 되자 뇌가 합리적인 설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리하는 굳이 뇌의 거짓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미쳐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별을 눈에 담으며 기이하게 말한다.


“아늑하고 좋네.”


***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미술관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누군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한 남자와 어린 소녀.


‘여기에 직원이 아닌 사람이 있을리는 없고... 혹시 탈출한 인간형 몬스터인가?’


그 중 남자를 먼저 관찰하던 관리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은 정보가 오감을 통해 밀려 들어온다.


그 정보의 파도는 마치 자연재해처럼 관리인을 덮쳐 버린다.



그것은 ‘존재’이다. ‘존재’라는 관념 그 자체이다.


사람일까? 동물일까? 사물일까? 시간일까? 에너지일까? 법칙일까?


너무 추상적이다. 아니 너무 구체적인 건가?


알 수 없다. 너무 크다. 너무 깊다.



그 거대함에 짓눌린 채 미술관의 관리인은 조금씩 미쳐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거대함 속에는 관리인이 나열했던 현실의 어떤 것도 들어있지 않다.


그건 관념적으로만 존재한다. 대응되는 현실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관념.



관리인은 그 역설을 버텨내기에는 너무 연약한 존재였다.


인지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인지한 대가로 목숨이 사라지기 직전, 어떤 공백이 그에게 닿는다.


그 공백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관리인은 왠지 그 영향이 따뜻하다 느꼈다.


관리인은 공백 덕에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르고는 연락을 취한다.


“전세계 ‘관리인’들에게 전해라. 이례적인 위험 수준을 가진 개체가 나타났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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