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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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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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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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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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감 놓고 배 놓고 그것도 놔(3)

DUMMY

내가 말하면서도 말실수를 한 것처럼 뜨끔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레샤의 엄마가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여기에 우리 엄마가 여기에 있다는 것과도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우리 엄마가 여기 왜 있어?

그럴 일은 절대로 없었다.


하지만 레아 아주머니는 분명히 배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옷차림은 전과 조금 달라졌을지 몰라도, 유난히 눈에 띄는 나비모양 머리장식은 잘못 보았다고 하기엔 너무 또렷했다.


나는 계속 레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정작 그 애는 야우라와 얘기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이 충격적인 소식을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어깻죽지를 잡고 흔들어서야 레샤는 고개를 돌려 날 보았다.


"왜요오...!"


그 애는 짜증을 확 부렸다.

하긴 얘가 나한테 그랬다면 나도 짜증을 냈겠지.

그런 건 나중에 정산하기로 하고 우선은 저 멀리 배우들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 너희 엄마 아니냐고."


"예에...?"


레샤는 갑자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느냐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내가 거듭 무대 쪽을 가리키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내밀어 저 먼 곳을 보았다.


"없는데요...?"


레샤는 톡 쏘아 말했다.


"아니 저기 있잖아. 저기!"


제 엄마도 못 찾는 것이 답답한 나는 다시 한 번 더 멀리, 더 정확히 손가락으로 그 방향을 가리켜 주었다.


그런데 정말로.

정말, 정말정말 방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아주머니가 지금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 방금 전까지는 있었는데?"


한 치의 거짓도 없었노라고,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레샤의 시선은 이미 차게 식어 날 깔보고 있었다.


"레이크... 우리 엄마가 아무리 좋아도 헛것을 보면 안 되죠..."


더군다나 생사람을 잡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있었다니까? 거짓말 아니라고."


"우리 엄마가 여기를 왜 오는데요..."


"아, 그야 나는 모르지. 근데 방금 정말로 있었다니까. 내 두 눈을 걸고 정말로."


"저보고 레이크 눈을 어디다 쓰라는 겁니까...? 돌려줄게요, 가져가요."


레샤는 담보로 건 내 눈이 이미 자기 것이라고 여겼다.


"아니 진짜..."


그럼에도 내가 포기하지 않자 레샤는 손을 들어 내 말을 딱 잘라냈다.


"레이크 말이 맞다고 쳐요... 우리 엄마가 방금 저기에 있었다고요. 그럼 지금은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그 잠깐 사이에 사라졌다고 말하려는 거예요...?"


레샤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분명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이다.


"저기, 레샤. 그 레이크 눈, 나 주면 안 돼?"


그 와중에 야우라는 끔찍한 말을 하고 있었다.


"넌 뭔 소릴 하는 거야! 네가 뭔데 그걸 달래."


"아까 걸었잖아. 그러니까 달라고 할 수도 있지, 뭘."


"그래요. 야우라 가져요."


그 와중에 레샤는 그걸 또 냉큼 줘버렸다.


정말이지.

얘네 앞에서 말 함부로 했다가는 머리털 하나부터 손톱 끝까지 몽땅 뽑아 먹힐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에반젤린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에반젤린! 너는 봤지? 봤잖아. 그 머리핀이 오죽 눈에 띄어야지. 안 그래?!"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으면 내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예?"


돌고 돌아 판결의 망치를 떠맡게 되자 에반젤린은 난처한 듯 눈을 피했다.


"아... 글쎄요오?"


그 미묘한 미소며.


"그게 본 것 같기도 하고오? 음... 비슷한 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어, 그러니까..."


어정쩡한 대꾸를 보니 나는 오늘부로 시력을 잃을 판이었다.

하긴 그걸 봤으면 에반젤린도 말을 했겠지. 저 정도면 내 편을 들어주기 위해 많이 노력한 편이 아닐까 싶었다.


"하하하! 이제 레이크 눈은 내 거다!"


야우라는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손을 높이 들었다.


대체 남의 눈으로 뭘 하겠다는 걸까. 그건 곧 이어지는 정체불명의 명령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거 봐."


야우라는 손가락을 들어보이고선 그리 말했다.

그냥 손가락을 보라는 것이다. 내 눈은 자기 거니까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단다.

그 다음은 무대 쪽을 보라고 하기도 했다. 벽을 보라고 하기도, 천장을 보라고 하기도 하고, 에반젤린과 레샤 자신을 차례로 보라고 하기도 했다.


이거 내 입으로 눈을 팔았으니 한 두 번은 들어주겠는데... 뭐든 정도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탈출을 감행했다.


"아잇! 이게 뭔 짓거리야."


나는 귀찮게 구는 야우라를 뿌리쳐 밖으로 나가려 했다.

지금의 끔찍한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내가 직접 레아 아주머니를 찾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야우라가 아니었다.


"아앗! 도망간다!"


야우라는 그런 날 등 뒤에서 덮쳤다.

팔꿈치를 목에 걸어서는 아예 옴짝달싹 못하도록 매달려 버렸다.


"어딜 도망가. 오늘 딱 걸렸어!"


오늘 기회 잡은 거, 아주 기둥을 뽑겠다고 작정을 했나보다.

목둘레를 감은 팔을 다시 자기 팔로 채워 잠그고 다리를 허리에 감아 꽉 잡아 버티니 그 자세가 영락없이...


"차라리 업히던가...!"


그래, 이럴 거면 차라리 업히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혹시 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을 힘들게 만들지 연구하는 거 아닐까?


나는 그런 우스개 생각으로, 야우라를 바닥에 메쳐버리라는 마음의 소리를 최대한 억눌렀다.


내가 벽을 짚고 버티고 선 동안에도 야우라는 꾸물꾸물 움직여 업힌 것처럼 자세를 바꾸었다. 그대로 왼팔은 날 목을 둘러 안고 오른손은 앞으로 치켜 뻗었다.


"이게 훨씬 낫네. 가자!"


저 가리킨 방향으로 가자 이거다.


"가긴 어딜 가. 이 꼴을 해가지고!"


"왜. 뭐가 어때서."


"뭐가 어때? 네가 보기엔 이게 괜찮아 보이냐?"


"뭐?! 너 그거 무슨 뜻이야. 이 누님이 창피해?! 창피하냐고!"


창피하냐고? 그걸 몰라서 묻나.


"너 같으면 너랑 같이 다니고 싶겠냐고!"


그러자 야우라는 내 머리카락속에 손을 집어넣어 위로 쭉 잡아당겼다.


"뭐? 난 좋거든?! 너무 좋아서 업고 다닐 거 같거든!"


억지 부리기는.

야우라는 내 등에 업혀 호기를 부렸다.

보통은 반대로 누구를 등에 업고 호기를 부린다고 하던데, 팔자가 사나우니 웬 이 한 마리가 머리카락 속을 헤집는다.


"아아아 알았어알았어알았어. 일단 가, 일단 가. 문 열어. 문! 문! 문!"


그래도 머리는 아픈지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야우라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그 다음에도 야우라는 막무가내로 굴었다.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내 머리를 왼쪽으로 움직였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으면 또 내 머리를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아프고 뭐고 간에... 창피하다...


지나쳐 가는 사람들.

무수한 시선.

눈에 비치는 의혹.

더러 있는 비명.


당혹 경악 침묵.


그 모든 것들이 날 괴롭혔다. 이제 여기 사람들은 날 뭐라고 생각할까. 저 말은 참 사람처럼 생겼네, 생각할까. 아니면 말이 아니라 당나귀? 그것도 아니면... 뭐지.


"대체 어디가 가고 싶다는 거야?"


나는 여전히 야우라를 업고 가면서 물었다.

여기가 극장이라고는 해도 그리 넓지 않아서 갈 곳이 많지 않았다. 지금이야 관객석을 한 바퀴 빙 돌았지만, 가능하면 이 밖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딱히 가고 싶은 덴 없는데."


이게 말이야, 당나귀야.


"내려와."


나는 단박에 말했다.

내가 제자리에 멈춰버리자 야우라는 바로 앙탈부터 부렸다.


"아아! 아! 왜에."


얼른 가자고 얼른얼른 가자고 다리를 앞뒤로 흔들어대고 내 어깨도 앞뒤로 흔들어대고. 그게 안통하자 반대로 지 몸을 나한테 치대기 시작했다.


"이잇! 움직여! 움직이라고오!"


떨어져서 흔드는 힘으로 보채기보다는 아예 꽉 밀착해서 자기 힘으로 날 비틀어대는 것이다.


이럴 땐 항상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련해서 다행이야.


이래저래 발악하다가 지친 건지 야우라는 내 뒤통수에 지 머리를 가져다 박았다.


"...좀 움직여주면 안 돼?"


불쌍한 척하면 혹시 되지 않을까 하는 그 심보부터 글러먹었다.


"안 돼."


나는 다시 한 번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 안 돼, 라는 말을 해도 좀 친절하게 할 수 없어?"


"좀 내려와. 아줌마는 나이 마흔 먹고 창피하지도 않아?"


"네가 뭘 몰라서 그렇지. 사십년이나 살면 부끄러움이란 게 없어져."


"난 아직 이십년도 안 살았으니까 좀 봐달라고."


"...알았다, 뭐."


그 짧은 새에 야우라는 혀를 다섯 번이나 차고서 겨우 내 위에서 내려왔다.

어디서 새로운 기술을 또 하나 배우셨다.


"이제 됐지? 빨리 가자."


그러고 나서도 야우라는 또 날 재촉했다.


"어딜 가."


"어딜 가긴. 레아 찾으러 가야지 그러려던 거 아니야?"


여전히 눈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린다.


그러니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하다는 것이다.

분명 아주머니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먼저 뛰쳐나온 나였지만 고작 야우라가 레아를 찾으러 가자고 말한 것 하나만으로 갑자기 그러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의욕이 확 떨어졌다는 것이 얼굴에도 표가 나는지 야우라는 대뜸 내 손을 잡아서는 자기 겨드랑이 사이에 내 팔을 끼웠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면, 갈만하다고 가장 먼저 의심되는 곳은 당연히 장막의 뒤였다.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누구도 야우라한테 끌려가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직 단 한 사람. 톨로만이 야우라의 앞길을 막아섰다.

눈앞에 거인이 나타나자 야우라는 일단 정지하고 상황을 살폈다.


"무슨 일이십니까?"


톨로의 말투는 여전히 느리고 무거워 어눌하게 들렸다.


"...여기서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


"대... 대따 크다..."


이제 좀 놔줄 때도 되었으련만, 야우라는 오히려 내 손을 더 꽉 안아 잡았다.

절대 도망 못 가게 하겠다는 이 의지.

물귀신도 이런 물귀신이 따로 없다.


"그 분은 제 친구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친구라는 말이 이토록 감동적일 수가 있던가.

나는 톨로의 말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나도 얘 친구야."


야우라는 나지막이 그렇게 말했다.

그 후로는 조용했다.

고요함이 만든 긴장감에 뒤에 있는 내가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렇습니까?"


톨로가 먼저 말했다.


"응."


야우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응."


"실례했습니다. 지나가시죠."


절차는 그것으로 끝난 것인지 톨로는 길을 비켜주었다.


"아니아니아니 잠깐, 잠깐만."


나는 거기서 딴죽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통과가 너무 빠르잖아.


"거잇, 진짜 친구 아니면 어쩌려고요?"


내가 묻자, 톨로는 의아한지 턱을 매만졌다.


"흠, 아닌가?"


그렇게 묻는다면.


"...맞긴 한데요."


"그럼 뭐가 문제야?"


"문제는... 없죠."


"만나서 반가웠어, 레이크."


"아, 예. 다음에 또 봐요."


다음엔 아는 채 할 테니까.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이번엔 야우라가 지나치다 말고 서서 톨로에게 다시 불렀다.


"아, 근데. 혹시 키 큰 여자 못 봤어?"


"키 큰 여자?"


"그래, 머리에 나비핀을 한 사람 말이야."


톨로는 야우라의 질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기를 잠시. 그 모습만큼이나 둔탁한 탄성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아. 그 분이라면 지금 단장님 사무실에 있을 겁니다."


단장님이라 함은 당연히 에리히를 말하는 거였다.

야우라도 나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기에 우리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에리히 머스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리하여-


"여기 있냐?!"


"아니. 너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갈 땐 노크하라고 오늘 말 했다, 오늘!"


역시나 거침없는 야우라의 뒤통수에 한 소리하며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열어버린 거, 다시 닫고 노크하는 것도 우습지 않던가.


톨로의 말대로 사무실에는 창가 책상자리 쪽에 에리히 머스가 있었고 그 반대편엔 레아 아주머니가 있었다.


"뭐야. 진짜네?"


그렇게 말할 때는 안 믿더니. 실체를 보자 야우라는 그게 별 것도 아닌 일처럼 가볍게 여겼다.

그걸로 사람 괴롭히던게 누구더라, 나는 뻔뻔한 야우라 녀석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떠밀어버렸다.


문을 열었으면 길 막지 말고 들어가야지.


누군가 눈을 벌컥 들어온다면 당연히 그렇듯 에리히는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떨어뜨렸다.


그보다 앞서 눈을 크게 뜬 아주머니가 우릴 보고 먼저 반겼다.


"허어, 이게 누구야. 야우라 언니네? 여긴 어떻게 왔어?"


"아까 레이크가 레아가 있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한 번 찾아봤지."


꽤나 반가운지 야우라는 실실 웃으며 자랑스레 말했다.


"너 안 믿었었잖아."


그 뻔뻔함에 나는 한 마디 안 얹을 수가 없었다.


"하하. 그랬단 말이야?"


하며 레아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가까이 붙었다.


"이것 봐. 운명이란 게 믿겨져? 만날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고."


오늘은 아주머니가 굉장히 단정한 외투를 입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아줌마는 여기 무슨 일로 왔어요? 레샤 때문에?"


"응? 아니이."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레아는 뒷말을 끌며 에리히에게 힐끗 눈길을 주었다.

'저 녀석 봐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게, 여기서 사람을 후려치려고 하잖아."


후려... 친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는 당황한 에리히 머스에게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에리히는 주워 모았던 종이들을 도로 떨어뜨렸다. 전부 다.


"아니. 예? 아니. 제 말뜻은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폭력이라니.. 그런, 그런 게 아니에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돈 얘기 하는 거라고, 돈."


레아는 내가 아주 든든한 아군인 것처럼 기대서는 말했다.

사실 기댔다기보다 거의 의자 팔걸이로 쓰는 느낌에 가까웠지만.


"돈이요?"


이 곳에서 레아 아주머니가 돈 얘기를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글쎄, 나보고 여기서 일해 달라고 하더니. 완전 싸구려로 부려먹으려고 하는 거 있지?"


아주머니가 말을 할수록 에리히의 얼굴은 갈수록 사색이 되어 허얘져 갔다.


"그 정도면, 그렇게 적은 액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말도 안 돼. 적어도 거기서 두 배는 더 받아야지. 나정도 되는 마법사가 어디 흔한 줄 알아?"


팔렌팔라, 레아는 전혀 아쉬울 게 없는 사람처럼 손을 들고선 자기 손톱의 상태를 보며 말했다.


"마법사들은 보통 얼마나 받는데요?"


그즈음 나는 은근히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슬쩍 물었다.


"나야 모르지. 난 전문 마법사 노릇 같은 건 안 해봤는걸."


아주머니는 내게 조용히 숨겨진 진실을 실토했다.


"근데 왜 그런 말을 한거예요?"


허세가 들키면 어쩌려고.


"원래 이런 건 세게 나가고 보는 거야. 흥정의 원리지."


이런 아줌마한테서 어떻게 레샤 같은 딸이 나왔을까.

생명이란 참 신비하구나, 나는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그렇게 많은 급료를 드린다는 건, 저희 사정을 생각해보면 불가능 하고..."


에리히는 멋쩍게 웃으며 다시 모은 종이뭉치를 들어보였다.

저게 단순한 메모라기보다는 일종의 장부인 모양이었다.


"으으. 내가 저런 남자들에 대해 아주 잘 알아."


아주머니는 드물게 질색을 했다.


"우유부단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런 주제에 자기 마음은 알아주길 바라고. 또 고집은 세 가지고 사람 화나게 한다니까?"


그리고는 에리히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험담을 늘어놓았다.

헌데 그게 또 왠지 그럴듯하게 들려 그럭저럭 수긍하게 되었다.


"당신. 여자한테 선물 줄 때, 필요 없어져서 준다고 그런 소리하지?"


"예? 아니..."


폭풍 같은 공세에 에리히는 대꾸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실은 아예 선물을 줘본 적도 없지? 이런 남자는 말이야? 옆구리에 피가 나도록 찔러야 행동을 한다니까? 그러고는 지가 무슨 큰일이라도 한 양 만족을 해요오."


"아니... 부끄럽게도 제가 아직 그럴만한 여성분을 만나지 못 해서..."


"답답하긴! 그런 일을 해야 만나지!"


"아, 그... 죄송합니다..."


그 기세에 눌려 에리히는 사과까지 했다.


"잠깐만. 뭐야..."


그즈음 잠자코 있던 야우라가 대뜸 말을 꺼냈다.


"너 레샤한테는 레샤밖에 없는 것처럼 굴더니. 뒤꽁무니에선 또 딴 짓 하고 있었던 거야?!"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기타 사실들을 조합해본 끝에 그런 결과가 완성된 모양이었다.


"예?!"


에리히는 덜컥 놀랐다.


"뭐야. 레샤도 여기 있어?"


그리고 그런 에리히를 아주머니가 가리고 섰다.

따님 얘기가 나오니 살짝 흥분한 것이 눈에 띄었다.


"지금 여기 있어? 일 한다는 게 여기였어? 얼마나 받고 일했데?!"


으이그 정신없어.


"한 가지씩만 물어봐요 한 가지씩만."


나는 중재를 해보고자 했다.


"아니 레아 씨를 부른 건 제가 아니라... 저희 배우 중에 하나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변명을 하려는 에리히와.


"여기서 뭐해? 우리 레샤. 인기 많아?"


궁금한 게 많은 아이 어머니.


"그러니까 너 속으로는 딴 맘먹고 있던 거 아니야!"


따질게 많은 야우라까지.


작은 사무실 안에 그야말로 눈 비 바람이 다 오고 있었다. 폭풍도 이것보단 덜 할 것이다.


거기다가. 밖에서 또 다른 노크소리가 들리기까지 했다.

누군가 또 온 것이다.


"잠깐만요. 누구 왔다! 누구 왔어요!"


일단 난 그쪽에 주의를 돌렸다.


똑똑똑.


점잖은 노크소리 후 문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에리히 머스 씨, 러너스 하이입니다."


러너스 하이. 중년 남자의 목소리.

포션 부호 론데미르가의 사용인 토렌 씨였다.


"예?! 잠시... 켁...!"


갑작스런 후원자의 방문에 에리히는 달걀을 통째로 삼킨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덕분에 잠깐 기다려달라는 말을 못한지라 앞의 예라는 말을 듣고 허락이라고 생각한 토렌 씨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집안의 외출 싫어한다는 아가씨도 함께였다.

곱게 자란 분답게 웅성웅성하고 난잡한 내부를 본 트리시아의 얼굴은 멸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겁먹은 그런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어찌 보면 이 곳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리샤는 조심히 물었다.


"너희들은... 아, 오랜만이네. 여전하구나?"


야우라랑 나는 금방 알아본 트리샤는 껄끄러운 인사말을 하면서도 레아 아주머니 쪽도 힐끗 보았다.


"저 여자는...?"


누구에게 묻는 걸까.

적어도 지는 아닐 텐데, 야우라는 자기가 알고 있는 바를 소상히 일러바쳤다.


"들어봐 봐! 에리히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데!"


아.

많고 많은 표현 중에 꼭 그걸 선택해야 했을까.


난 이제 몰라.

알아서 하라 그래.


작가의말

이렇게 된 이상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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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47. 눈 감고 한 판 뒤집기(1) +2 20.01.08 150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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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46. 감 놓고 배 놓고 그것도 놔(2) 19.12.18 127 3 20쪽
263 46. 감 놓고 배 놓고 그것도 놔(1) +2 19.12.13 128 4 19쪽
262 P.S 향과 색을 쫓아 19.12.09 111 3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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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43. 쌀쌀하고 살가운(5) 19.10.18 60 5 19쪽
251 43. 쌀쌀하고 살가운(4) +2 19.10.15 67 4 16쪽
250 43. 쌀쌀하고 살가운(3) 19.10.13 55 4 16쪽
249 43. 쌀쌀하고 살가운(2) 19.10.11 56 4 14쪽
248 43. 쌀쌀하고 살가운(1) +2 19.10.08 72 3 19쪽
247 42. 그러니까 이건(9) 19.10.06 62 5 17쪽
246 42. 그러니까 이건(8) 19.10.06 56 4 21쪽
245 42. 그러니까 이건(7) 19.10.02 150 4 21쪽
244 42. 그러니까 이건(6) 19.09.30 83 4 16쪽
243 42. 그러니까 이건(5) 19.09.26 80 5 22쪽
242 42. 그러니까 이건(4) +4 19.09.22 86 4 19쪽
241 42. 그러니까 이건(3) +2 19.09.18 78 4 17쪽
240 42. 그러니까 이건(2) 19.09.17 91 4 21쪽
239 42. 그러니까 이건(1) 19.09.11 101 4 21쪽
238 41. 그것뿐이야(6) 19.09.05 105 5 25쪽
237 41. 그것뿐이야(5) 19.09.01 100 4 26쪽
236 41. 그것뿐이야(4) 19.08.27 84 4 18쪽
235 41. 그것뿐이야(3) 19.08.25 83 4 16쪽
234 41. 그것뿐이야(2) +4 19.08.22 94 4 17쪽
233 41. 그것뿐이야(1) +2 19.08.20 128 4 16쪽
232 40. 연꽃이 자라는 곳(6) 19.08.15 94 5 18쪽
231 40. 연꽃이 자라는 곳(5) 19.08.13 83 5 26쪽
230 40. 연꽃이 자라는 곳(4) +2 19.08.07 96 5 18쪽
229 40. 연꽃이 자라는 곳(3) 19.08.03 92 4 17쪽
228 40. 연꽃이 자라는 곳(2) +2 19.07.30 110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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