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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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이아빠
그림/삽화
내복이아빠
작품등록일 :
2011.05.26 12:44
최근연재일 :
2019.01.29 07:06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9,353
추천수 :
90
글자수 :
250,466

작성
17.10.18 16:53
조회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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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7

DUMMY

어느덧 해가 진 저녁, 가로등도 없이 어두컴컴한 나루터 인근의 복잡한 골목으로,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여자는 손목이 잡혀 끌려가면서도 팔을 흔들고 남자를 발로 차며 소리질렀다.


“아 왜 이래요!”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여자를 끌고 갔다.


“잔말 말고 따라 와!”


키가 큰 남자는 술을 거하게 마신 듯 얼굴이 붉어지고 온 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가녀린 여자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검은 머리에 새하얀 얼굴을 가진, 진한 화장을 한 그 여자는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체격 차이가 너무 큰 탓에 남자를 떨쳐 낼 수가 없는 듯했다. 여자는 가냘픈 목소리로 주변을 향해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너무 목소리가 작은 탓에 큰길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들이 있는 골목은 너무 으슥한 탓인지 그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남자는 비틀거리면서도 여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손목을 빼 도망치려는 여자의 몸을 계속 낚아채며 걸었다.

그렇게 끌고 끌려가며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지러이 꼬여있는 골목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이었다. 비틀거리던 남자는 한 광의 벽에 여자를 세게 몰아붙이고는 여자를 범하려는 듯 두 손을 잡아 여자가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여자는 점점 자신의 얼굴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의 얼굴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아까보다는 더 컸지만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도움을 구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가만히 있어! 고 년 참 예쁘......잠깐.”


혀로 입술을 축이고, 여자의 입술을 훔치려는 듯 고개를 들이밀던 남자가 행동을 멈추고 골목의 한쪽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잡고 있던 여자의 팔을 놓았고, 그 쪽을 좀 더 자세히 보려는 듯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여자는 계속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내저으며 애처롭게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이 거지같은 남자가 감히 제 입술을 범하려 해요!”


남자가 잠시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보더니, 검지를 들어 여자의 입술을 비벼 뭉개며 말했다.


“아, 그만 하라고, 그만, 그만! 끝났다고.”


완벽한 가온디말씨를 쓰던 남자는 어느새 가야말씨로 말하고 있었다. 남자의 손가락에 입술에 바른 연지가 번졌다. 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의 손을 쳐내려고 팔을 허우적대었다.


“아, 하지마! 이거 비싼 거란 말이야!”


이내 남자의 손가락이 멈추었고, 옷자락으로 입술을 비벼 연지를 지워버린 여자는 그 큰 눈을 반짝이며 남자의 눈길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는 몰래 여자의 옷에 손가락을 슥 문질러 빨간 얼룩을 닦아내고는 여자를 내버려 둔 채 자신이 바라보던 곳으로 갔다.

남자가 달려간 곳은 어느 광의 문 앞이었다. 밝은 달빛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건물이 촘촘하게 들어선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광의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게.......”


술 취한 남자, 아니 술 취한 척하던 이리가 주변을 살피더니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이리의 곁으로 뛰어온 까만 머리의 여자, 희아는 영문을 모른 채 두리번거리다 무언가에 발이 걸려 균형을 잃었다.


“으아악-!”


희아가 넘어지기 전에 이리가 팔을 뻗어 여자의 몸을 받아내었다.


“고, 고마워 이리야.”


이리는 희아의 몸을 일으켜 세워주며 자신도 일어났다.

계획대로 상아리가 나가고 이십 분쯤 후, 취한 연기를 하며 목표인 여섯별 장수무리의 광 근처까지 왔다. 거기서 희아와 연기를 하며, 광을 지키는 문지기들을 꾀어내어 소동을 일으켜야 했는데, 굳게 닫힌 채 보호받고 있어야할 문은 열려있었고, 이 문을 지키고 있어야 할 문지기들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희아는 이 둘 중 하나의 몸에 걸려 넘어질 뻔 한 것이었다.

쓰러진 두 사람을 발견한 희아가 실색하며 물었다.


“이, 이 사람들 주, 죽은 거야?”


“살아있다.”


이리는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숨은 붙어 있었다. 이리가 짐작컨대 한 명은 강한 힘으로 울대와 그 옆의 경동맥을 맞아 질식으로 기절했고, 한 명은 자세를 보아하니 낭심을 맞아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희아는 안도의 큰 숨을 내 쉬었고, 이리는 석연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을 조용히 기절시키고 싶은 경우 보통 뒤에서 몰래 다가가 그 사람의 관자놀이 양 쪽을 세게 때린 후, 그래도 실신하지 않으면 입을 막고 목을 졸라 질식시키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그것이 상아리 같은 모톨아치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기도 했다. 혹시 정면으로 맞닥뜨렸다면, 이 경우처럼 울대 옆의 두 맥을 동시에 잡아 조르거나 남자의 경우 남자의 중요한 부위를 힘껏 차거도 한다. 하지만 애초에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경우라면 몰래 기절시키는 건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가 저항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 정면에서 울대가 거의 박살날 정도로 목을 치고, 낭심을 기절할 정도로 찼다는 건 죽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두 곳은 아주 치명적인 급소이기 때문이었다. 기절시키려 했다기 보다는 한 방에 끝내려 사람의 중요한 급소를 가격한 것인데 둘 다 아주 운이 좋게도 죽지 않은 거라고 보는 게 맞았다. 물론 둘 다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남기는 힘들겠지만.

어느 쪽이든,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일을 크게 키울 리 없는 상아리가 쓸 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상아리와 파라새치가 이런 식의 강행돌파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광이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납치된 사람들이 갇혀있는 곳이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광에 들어갔다가 그 곳에 사람들이 없으면, 들켰다고 생각한 무리개들은 더 꼭꼭 숨어버리고 납치된 사람들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하여 모종의 방법으로 처리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 한울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워 질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한울이 죽임 당할 수도 있었다.

이리는 생각을 정리했다. 계획대로라면 아니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상아리가 이들과 싸움을 벌였을 가능성은 있었다. 싸움이 벌어진 탓에 그냥 강행돌파하기로 판단한 것일 수도 있었다. 모톨아치인 상아리가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혹시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사람?


이리를 광 안으로 들어갔다. 광문은 바깥에서 누군가가 세게 민 듯 안쪽의 걸개가 약간 꺾여 있었다. 광의 가운데쯤에 아래로 뚫린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저게 상아리가 말한 비밀통로일 것이었다. 그 주변 바닥에는 피가 조금 묻어있었다. 싸운 흔적이 분명했다.

이리를 따라 들어온 희아가 희미한 화톳불에 비친 핏자국을 보고는 놀랐다.


“피?!”


이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봐도 상아리한테 뭔 일이 생긴 것 같다.”


그때, 예민한 이리의 귓가로 여자의 비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바닥으로 통하는 구멍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희아 역시 같은 소리를 들은 듯 깜짝 놀라더니 이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뒤돌아 나가며 소리쳤다.


“내가 새치 오빠 데리고 올게. 이리 넌 빨리 가서 막아!”


“아야, 잠깐만!”


이리가 몸을 돌려 희아를 잡으려 했지만, 희아는 이미 문을 나선 상태였다. 문틀을 짚은 채, 희아가 그 큰 눈으로 이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아리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목숨 걸고 막아!”


희아는 이내 이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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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4 17.12.16 11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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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2 17.12.08 113 1 9쪽
54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1 17.12.06 121 1 9쪽
53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0 17.12.03 109 1 13쪽
52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9 17.12.01 127 1 12쪽
51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8 17.11.30 1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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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6 17.11.27 110 1 9쪽
48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5 17.11.24 104 1 8쪽
47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4 17.11.22 123 1 9쪽
46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3 17.11.22 113 1 11쪽
45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2 17.11.21 135 1 11쪽
44 제5장 붉은 머리의 여자 - 1 17.11.21 164 1 7쪽
43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10 17.11.02 142 1 9쪽
42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9 17.10.20 121 1 12쪽
41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8 17.10.18 131 1 13쪽
»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7 17.10.18 137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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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4장 지난날의 그림자 - 2 17.10.14 123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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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3장 도망 - 9 17.10.14 138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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