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firing 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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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랭지
작품등록일 :
2017.07.07 18:21
최근연재일 :
2017.10.20 03:09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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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55
글자수 :
131,840

작성
17.07.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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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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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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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2. Period

DUMMY

1-2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에 움직일 기력도 없어 그만 비라도 내렸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느 때처럼, 아파트 사잇길 긴 그늘에 앉아 ‘그것’을 보던 영우는 목이 타서 침을 꿀꺽 삼켰다. 익어가는 아스팔트를 넘어 지수가 사탕을 담는 통을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에 자갈이라도 들은 양,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치마를 나풀거린다.


“오늘은 여기서 죽치고 있어야지.”


그러고선 영우 옆에 풀썩 앉아버린다. 얼른 대꾸할 말이 안 떠올라 머뭇거리다 정수리에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스박스처럼 쓰면 딱 이야 이거.”


얼음 두 조각을 꺼내어 입에 넣고 와그작 씹고, 통을 탕 하고 쳤다.

얼음이었구나 하는 생각하기가 무섭게 녹아서 짭짤한 물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뉴스 봤어? 이따 무슨 대화를 한다는데.”


“말이 통해?”


군인들이 어제보다 많이 늘고, 장갑차나 탱크 같은 것들이 주변에 배치되어 있었다.

헬기도 주기적으로 보였고, 통제가 더욱 심해져서 단지입구를 지나가기가 불편해졌다.

외국에서 온 기자들도 가끔 보이는 게, 확실히 보통일은 아니다 싶다.


날이 저물 쯤, ‘그것’이 있는 곳은 굉장히 분주해졌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며칠사이 익숙해져 ‘그것’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아파트 주민들조차 일부러 나와 한 번씩 쳐다볼 정도였다. 경계는 극도로 심해져서 몇 군데에서는 주민과 군인들의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곱 시 조금 지났을 때, 허름한 SUV 차량 한 대가 군인들의 경호를 받으며 도착했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백인이었는데, 갈색 단발머리에 선글래스를 끼고 회색 나시티, 카키색 긴바지와 검정색 농구화를 신은, 나이는 30 조금 넘었을 법한 젊은 여성이었다. 주변과는 굉장히 이색적인 차림이라서 등장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부대의 책임자는 굳은 얼굴로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고, 옆에 있던 군인이 그 말을 받아 여성에게 여러 손짓과 함께 통역하는 것 같았다.


영우들이 있는 곳은 비교적 경사가 있어 높은 곳에서 한눈에 상황들이 보였다. 시종일관 콧잔등을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긁어대던 여성은 옆에서 말하는 것을 들은 체도 안하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거리가 있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조금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여자다. TV에 나왔어.”


“뭐가?”


“대화할 사람. 뭐야? 어제 TV도 안 봤어?”


무서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일찍 잤다는 말하기가 싫어 신음처럼 ‘으응’하고 말았다.

‘콰아아’ 하는 소리가 머리위에서 지나간다. 딴 때는 그리도 보고 싶었던 전투기 두 대가 지금은 왠지 감흥이 없다. 비현실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영우에게 이미 시시한 옛 놀이추억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느새 온몸에 붉은색 반점들이 솟아올라와 있었다.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변화했던 그 때처럼, 영우가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가 다시 바라볼 때 쯤 변화가 끝나있었다. 마치 원래 그렇게 생겼던 양, 가만히 눈을 감고 우뚝 서 있는데 미동조차 없었다.


‘그것’과 대화를 한다는 여성은 군용헬기를 타고 얼굴부분까지 올라갔다. 입술부분 앞에서 한참동안 뭐라고 소리쳐보기도 하고, 장갑 낀 손으로 매만져보기도 했다.


20분쯤 지났을 때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우-웅’


온몸이 바르르 떨리는 진동과 함께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자 영우는 귀를 감싸고 엎드렸다.

영우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명을 지를 세도 없이 급작스런 일이었다.

길게 울리던 진동음은 서서히 작아지다, 이윽고 거의 안 들릴 정도가 되었다.

그 현상이 너무 신기한지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동음이 줄어들었음에도, 영우는 마치 이어폰으로 그것만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가?”


“몰라, 여기 있으니까 속이 미식거려.”


속이 괜찮아질 때까지 걷던 영우는 단지 끝에 가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담벼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다가, 찌푸리고 있는 표정의 지수를 봤다.


“왜 따라와서는...”


‘딱’


얼음덩어리가 날아와 영우의 이마를 맞췄다.


“아파.”


“빙신.”


그러고는 손을 통에 넣어 얼음 두어 개를 꺼내 입에 넣는다.

‘와그작’ 씹는 소리가 묘하게 가슴을 안정시키는 것 같았다.

이젠 해도 완전히 져서 어둑한 밤에 여기저기 조명이 켜졌다. ‘그것’이 있는 곳은 어찌나 많은 조명이 있던지, 대낮처럼 환했다.


“오래 걸리네.”


“그냥 쇼 하는 거 아냐? 사기 치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보는 것도 이젠 재미없네. 내일 뭐할래?”


“숙제나 빨리 끝내고 놀아야지. 같이할래?”


“니가 숙제를 빨리 한다고?”


히쭉히쭉 웃는 영우의 얼굴에 얼음덩어리가 날아왔다.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아파서 어쩔 줄 몰랐다.


“야이 씨!”


하고 일어서다가 지수의 매서운 눈에 자기도 모르게 다시 앉아버렸다. 평소 남자애 한 둘 정도는 넉넉히 제압하는 지수에게 대들 생각은 없었다.




그때였다.




‘쿵!’


‘콰앙!’



난데없는 굉음에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하늘로 퍼지는 짙은 연기, 여기저기로 비산하는 군인들과 사람들. 쇄도하는 전투기들과 헬기. 아래쪽에선 어느새 그만큼 모였는지 십여 대가 넘는 전차와 탱크들이 정렬한다.


멀리 떨어진 그들 눈에 마치 다른 세상의 그림인 것처럼 보였다.


대화를 시도한 여성은 헬기를 타고 ‘그것’ 주위를 배회하며 스피커폰을 통해 다급하게 악을 쓰듯 무슨 말들을 외쳤다.

그간에 전투기에서 미사일 두 대가 또 ‘그것’을 맞췄다.


‘쾅!’


‘퍼엉!’


‘쐐애액’ 소리가 멀리서 여럿 들려온다. 전투기 후미에 달려있는 불빛과 같은 색의 빛들이 가까워졌다. 사람들의 고함소리, 비명소리는 폭발음들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영우와 지수는 입이 벌어진 채, 멍하니 있다가 손에 힘이 빠져 들고 있던 얼음통이 땅에 떨어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어...어...”


영우가 어기적거리자 지수가 손을 휘둘렀다.


‘짝!’


“뭐해, 멍청아! 이리와!”


손바닥이 어찌나 매운지 얼얼한 얼굴을 한손으로 감싸고, 지수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당장 이끌었지만, 어쩔 도리 없기는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쿵! 쿠쾅!’


‘콰콰쾅! 쿠쿵!’


전차의 포격과, 지원으로 온 전투기들의 폭격으로 공격이 훨씬 거세졌다.

쉴 새 없는 공격 때문인지 조명은 진작에 꺼졌는데도 어둠이 밝게 타올랐다.


‘삐-익!’


“악!”


엄청난 고주파음이 퍼졌다. 귀청이 뜯어질 것 같은 고통에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침이 흘러나오는 입을 억지로 앙다물며, 실눈을 뜨고 ‘그것’을 봤다.


몸에 있던 붉은 반점들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고주파음은 군대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일제히 공격을 멈춘 상태였다.

불쾌한 정적이 흐르고.


‘파악! 푸드닥!’


‘타다닥! 타닥!’


아파트단지 옆 조경지에서 눈으로 세기 힘들 정도의 새무리들이 날아올랐다.


‘컹! 커컹!’


단지 내 애완견들도 짖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음울한 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영우는 마치 발아래서부터 천천히 숨이 막혀오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얼어있는 지수 손을 잡아채어 앞에 있는 아파트 지하입구로 뛰어들었다.


‘팟!’


플래쉬가 터지듯이 백색빛이 강하게 그 주변을 삼켰다. 부풀어 오르던 붉은 점들은 각각 수백 개의 구체로 나뉘어 천천히. 마치 구경하듯 느릿느릿하게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진행은 느렸지만, 착실하게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잘게 바스러뜨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침착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진행했다.

콘크리트도, 유리도, 전차도, 헬기도. 그리고 인간도...


그 날. 인간의 문명은 지상에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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