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firing 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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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랭지
작품등록일 :
2017.07.07 18:21
최근연재일 :
2017.10.20 03:09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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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수 :
131,840

작성
17.07.2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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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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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4-1. 탈출

DUMMY

4-1


거무죽죽하게 메말라 갈라진 입술을 겨우 혀를 내밀어 축였다. 침도 거의 나오지 않아 겉이나 안이나 별 다를 게 없다. 마음만 앞설 뿐. 생각은 느리게 흘렀지만, 몸은 생각보다도 느렸다. 머리를 쓸어 올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 손을 들어 머리로 가져간 것은 2,3초나 흐른 뒤였다.


몸이 추워진다. 배를 곯고 있지만 배가 고프지 않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약탈에 실패한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열 명 정도가 돌아오지 못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상상하기가 두려웠다. 대룡은 하루치 식량만 남았다고 털어놓았다. 슬픔에 빠질 겨를도 없이 사람들은 배고픔과 마주해야 했다. 가공식품은 이미 바닥났고, 어제부터 냉동고에 저장되어있던 쥐고기로 배식되었다. 얇게 저며 여러 조각 낸 고기를 바싹 익혀서 최대한 오래 씹는 것이 그나마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영우는 왠지 이 고기가 먹고 싶지 않았다. 배고픔을 못 이겨 한 두 조각 입에 밀어 넣으면 그뿐 이었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이 구역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서른 명 남짓 남았다. 그조차도 약탈 갔던 곳에서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여기저기 경계하며 보초를 서느라, 예전처럼 탐색하러 보낼 인원 색출도 힘들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대룡이 맡고 있는 구역은 불안감과 절망감에 스트레스만 쌓여가고 있었다.


벽에 기대고 앉아 고개를 젖히고 멍하니 있던 영우 어깨를 누군가 톡톡 건드렸다. 무리에 몇 명 안 되는 그나마 젊은 여성이었는데, 10살 조금 넘는 딸이 있는 아줌마였다. ‘그 날’이후 어린 아이를 안고 이곳을 찾아들어와 힘든 일 마다않고 묵묵히 자기 할 몫은 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약탈 때 손목이 부러졌는지 왼 손목에 부목을 대고 찢어진 천으로 칭칭 감고 있어 우울한 표정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졌다.


“못 봤니? 우리 소정이 못 봤니?”


“네? 글쎄요. 못 봤는데요.”


“어디 갔지? 어디 갔지...”


중얼거리고는 다른 사람 쪽으로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모습이 너무 위태롭게 보였다. 고개를 돌리다 멀찍이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병준과 눈이 마주쳤다. 눈 밑이 거무죽죽한 것이 너무나 암울해 보였다. 영우와 한 조를 이루어 가장 많이 다녔기에 기질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마치 ‘그 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병준이 별 생각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영우에게 다가왔다.


“야. 따라와.”


표정을 억지로 씹어내며 억세게 말한다. 영우는 군말 없이 따라갔다.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방향을 보니 주변 정찰인 듯 했다. 일이 벌어졌던 구역과는 반대방향이었는데, 이쪽은 거주구역이 없는 곳이다.


병준은 야광봉 두 개를 허리춤에 끼고 발밑에 있는 돌을 툭 굴리며 나아갔다. 별로 큰 목적이 없는 행보였다. 쥐나 벌레같은 것들을 잡으려고 주변을 살피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산책하듯이 느긋하게 걷기만 했다. 간간히 한숨소리가 들린다.


“너랑 그 기집애랑 사귀냐?”


“네?”


병준이 피식 웃었다.


“뭘 그리 놀래? 6년 전에 니들 둘이 여기 같이 기어들어왔잖아.”


“아뇨, 딱히...”


“아무생각 없어? 성격이 좀 지랄맞긴 해도, 얼굴도 이쁘장하고. 그 왜. 가슴도 그 정도면 적당하고...”


영우가 아무 말이 없자, 병준은 ‘프’하고 코웃음 쳤다.


“새끼... 뭐, 이런 말 한다고 꼴에 열은 받냐?”


영우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냉정하기만 하던 병준이 실실 웃으며 농을 던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놀라서 할 말을 잊은 것 뿐 이었다. 어찌되었건, 느슨해진 분위기에 마음이 많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며 병준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다시 구역으로 돌아와 장막을 걷어 올리니, 사람들이 한군데 몰려있는 것이 보였다. 중심에는 대룡도 있었고, 그 주위에 병준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몇 보이는 것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얼굴을 싸악 굳힌 병준은 천천히 다가갔고, 영우는 그저 궁금해서 비교적 사람들 바깥쪽에 있던 지수를 향해 뛰어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돌아보는 지수 표정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안하는 데. 무슨 일일까?


“구역 바깥통로에서 행방불명 됐던 애를 찾았어.”


누구? 아까 애타게 애를 찾던 아줌마의 아이인가?


“그... 목만 잘려있었어.”


다른 사람 일에는 별 관심 없는 영우지만, 이 끔찍한 일에는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가 처졌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원의 중심에서 아까는 보이지 않았지만, 영우에게 아이 못 봤냐고 묻던 여자가 흰 천에 싸인 무언가를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있었다. 천은 피로 범벅이 되어 말라붙었고, 대룡과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대룡이 말했다.


“그 놈들, 천천히 말려죽일 셈이야.”


대룡이 말한 그 놈들이란 아마도 쳐들어갔던 구역사람들을 얘기함일 것이다.

사람들이 눈에 공포가 어렸다. 요 근래 약탈에 실패하고, 식량도 남아있지 않아 쥐고기를 조금씩 배식 받아 뜯어 먹는 게 전부다. 몸에 힘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더욱 큰 문제는 약탈 실패로 인한 패배감과 두려움이었다. 전 같으면 분노에 휩싸여 잔뜩 흥분되어 있을 법 한데, 무언가를 도모하려 해도 싸움에서 진 영향으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대룡도 크게 다르지 않은지 별 뾰족한 대책 없이, 그저 보초를 강화하자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혼자 있을 때, 습격할 확률이 높기에 2인1조로 명단을 짜 항상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보초 교대 시간도 더욱 짧게 잡아 사고에 대비했다.


영우와 지수는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병준과 영우처럼 보통 나이가 좀 있고, 경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을 한 조로 구성하는데, 이례적인 일이었다. 영우는 그저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 그런가보다 싶었다.


자기 차례의 보초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눕자마자, 며칠 동안 간혹 느껴졌던 불쾌감이 갑자기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강하게 들어 두 손으로 머리를 꽉 쥐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지수가 눈이 동그래져 물어왔다.


“아니, 또 갑자기...”


“너 그 때부터 가끔 한 번씩 그러는데... 요즘 더 자주 그러는 것 같아.”


“그러게, 머리에 좀 이상이 있나?”


“야, 그런 말 하지 마.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는데...”


지수의 말에 떨림이 약간 묻어 나왔다.

한 5분 정도 지나자, 좀 괜찮아지는 것 같다. ‘훅’ 하고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지수 얼굴을 보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닌 듯 했다. 괜히 한번 웃어보였다.


“이젠 또 괜찮아 졌네.”


“웃긴, 빙신...”


하고, 그대로 돌아눕는다.


영우는 컴컴한 천장을 보며, 어렸을 적 봤던 공포영화의 한 장면에 속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 일행은 밀폐된 건물 안에 갇혀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에게 일행이 하나 둘씩 살해당해 잡혀 먹히는 뻔한 B급 영화였다. 화면 전체가 어두컴컴했고 직접적으로 괴물들에게 잡히는 장면은 없었지만, 비명소리가 정말 훌륭하게 녹음되어서인지 영우에게는 그것이 더욱 무서운 상황처럼 여겨졌었다.


“꺄아아아아악!”


그래, 저런 실제 같은 비명소리... 처절한 목소리에 공기가 떨려 뺨에 닿는 느낌이 드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지수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따라 일어선다. 홀린 듯 자기도 모르게 서로를 이끌며 비명근원지로 달려갔다. 그들 뿐은 아니었던지, 다른 사람들도 불안한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장소에 도착하자 대룡과 몇 명의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끔찍하니까, 가까이 오지 마세요! 물러나요!”


그들 사이로 영우또래 남자아이와 중년의 여자의 목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자빠져있는 것이 보였다. 공포에 질려 경악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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