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천사가 던전에서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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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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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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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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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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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4)

DUMMY

***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4) ***


“으하하하하! 죽여! 죽여버려!”

“야, 야! 똑바로 안 싸우냐! 어!?”

“울어! 울부짖으라고 이 썅년아!”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장난감들.


“하앙! 흐으으응!”

“헥헥! 헥헥헥!”


짐승처럼 서로 뒤엉키는 짐승들.


“히히힛! 히힛!”

“헤헤헤헤!”


희뿌연 주사기를 팔뚝에 꽂아 넣는 약쟁이들과.


“끄아아악!”

“사··· 사람 살려! 사··· 살···!”


마수에게 던져져 한 끼 식사가 되는 먹이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키에에엑!”

“쿠워엉!”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희귀 마족도 보였고.


“이봐! 이 방패는 얼마지?”

“예, 나으리! 일단 이쪽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헤헤!”


한눈에 봐도 귀해 보이는 아티펙트가 상인들의 손에 거래되고 있으며.


“시발, 거지 같은 새끼들. 왜 이렇게 픽픽 죽어버리고 지랄이야? 퉷!”

“하··· 오늘 장사는 글렀어. 쯧쯧.”


벌겋게 달아오른 나신의 시체를 질질 끌고 뒷골목에 던져넣는 상인도 많았고.

또, 인간의 장기와 각종 신체 부위를 큐브에 담아 진열장에 전시하는 상인도 많았다.

한쪽에는 수많은 인간이 철창 속에 갇혀 자신들의 가치를 품평 받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아주 일상적인 비스크리닌의 풍경이었다.


“······.”


그 지옥 같은 장소에 라온과 일행들이 도착했다.

비스크리닌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광경.

그 지옥의 광경을 눈에 담은 라온은 광장에 우뚝 멈춰 섰다.

새로운 향기가 라온의 코를 간질인다.


“흠···.”


서로 죽고 죽이며 살기 위해 발악하는 장난감들.

괴물의 입속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서로 싸우는 먹이들.

그리고 처맞으면서도 비명 한 번 내뱉지 못하는 노예들.

그 모든 것들이 공포가 되어 라온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다양한 색깔과 맛을 지닌 공포들.

고통과 신음 속에서 탄생한 그 색다른 공포는 라온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 정도로 맛있었다.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공포의 기운에 라온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흣···!”


정말 상쾌했다.

전신에 힘이 충만해지고 짜릿한 감각이 신체를 타고 전신에 흐른다.

그것은 적들을 도륙 낼 때 느꼈던 감정도 아니었고.

성행위를 통해 느끼는 쾌감과도 달랐다.

마음속의 공허함을 가득 채우는 이 감각.

마치 죽어가는 생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이었다.

정말 악마의 성장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이렇게 공포가 가득한 장소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넘치는 것을.

공포라는 본능이 악마의 감각을 점점 깨우기 시작한다.


“아!”


그때 마침, 라온의 감각에 짜릿한 기운이 들어왔다.

그것은 반대로 생명체가 죽기 직전에 발산하는, 극히 어두운 감정이었다.

생명체가 죽음 깨닫고 그 죽음 앞에서 느끼는 공포.

그 공포가 기운이 되어 라온에게 하나둘 흡수된다.

마약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라온이지만, 이 황홀한 감정이야말로 마약이라고 생각했다.

다시는 끊을 수 없는, 끊기 싫을 만큼 고양되는 감각!

라온은 이 기분을 조금 더, 절실하게 느끼고 싶어졌다.

방금 느낀 그 기분을 다시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


답은 간단하다.

라온은 천천히 자신의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오른손을 감싸며 생성되는 검정의 불꽃.

라온의 고유능력 ‘공포화’가 오른손에서 타오르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걸 죽이자.’


지금 당장 저들에게 불을 지르고 그 사지를 찢어버리면 되는 것을.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히히힛!


“라온님!”


순간, 귓가를 파고드는 엘린의 목소리에 라온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

라온의 불이 땅에 떨어지기 직전.

엘린이 다가와 그 오른손을 양손으로 붙잡아버렸다.

공포화가 엘린의 손을 타고 그녀의 손을 태우기 시작한다.


“하으윽···!”


꺼지지 않는 불꽃이 엘린의 손을 잠시나마 태웠고.


“그··· 그만!”


놀란 라온이 급히 공포화를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다행히 손이 잘릴 정도로 불꽃에 노출된 건 아니지만, 그녀의 손 전체가 붉게 달아오를 만큼 심한 화상을 입었다.

라온은 잔뜩 굳어버리고 말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호흡이 점점 가빠진다.


“아윽···!”

“에··· 엘···!”


엘린의 신음에 라온은 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사고였다.

라온은 심히 당황스러워 어찌 해야 할 지 몰랐다.


“엘··· 난··· 아···.”


라온의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충동 때문에 엘린이 다쳤다는 생각에 몸이 경직되어 갔다.

다행히 눈치 빠른 박찰선이 재빨리 휴대하고 있던 하급 체력 포션을 뿌려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한 흉터가 그녀의 손에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아··· 하아···.”


눈을 질끈 감고 고통스러워하는 엘린의 모습이 보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오르고 얼굴 전체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건지 이 모든 일이 후회로 다가온다.

그런데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까득!


라온의 입술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라온은 엘린에게서 흡수되는 그녀의 감정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았다.

솔직하다 못해 격렬하기까지 한 자신의 몸에 라온은 경멸을 느껴야만 했다.

라온은 주먹을 으스러져라 꾹 쥐었다.


“······.”


악마의 본능이 꿈틀대더니 하나의 감정을 폭발시켜 버렸다.

공포화에 잠깐 노출된 엘린이 공포를 느꼈고 그녀의 공포가 격렬한 감정이 되어 라온에게 쾌감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짧은 시간에 벌어진 실수였다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다쳤는데 그것을 보며 기뻐하다니.

라온은 자신의 본능을 보고 순간 환멸을 느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녀를 상처입힌 것뿐만 아니라 그런 그녀를 보고 쾌감을 느끼다니.

악마라는 본능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꿈틀댄다.

지금 당장 그 본능을 뽑아버리고 싶지만, 몸은 생각 이상으로 정직하다.

라온이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라온님··· 저는 괜찮습니다.”


엘린이 검게 물든 라온의 표정을 보고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걸었지만, 라온에겐 들리지 않았다.

다 안다는 듯.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아쉽게도 라온에게 닿지 않았다.

그저 잘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만이 라온의 뇌리에 강하게 틀어박힌다.


“······.”


라온은 그녀의 품에 머리를 묻으며 찢어지는 가슴을 여미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을 안은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감지된다.

쉬지 않고 그녀의 공포를 갉아먹으며 기뻐하는 본능도 느껴진다.

라온은 그 본능을 원망해 봤지만, 악마의 본능은 원망스럽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라온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엘린의 품에 안겨 눈을 감는 것뿐.

라온은 이 순간만큼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적이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엘린의 차분 해하는 목소리가 라온의 귓가에 울려 퍼진다.

라온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


“후아···.”


박찰선은 자신을 짓누르는 무언의 기운이 사라짐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 줄 알았어···.’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무서운 시간이었다.

1분 남짓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강렬한 시간이었다.

아직까지 손끝이 잘게 떨리는 것을 보면 박찰선이 느낀 공포가 얼마만큼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상상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인지시켜준다.

박찰선은 상념을 이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

“······.”


단 한 사람으로 인해 북적이던 블랙마켓 광장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시간이 멈춘 듯, 도떼기시장 같던 광장이 정적에 휩싸여버렸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상태.

몇몇은 이미 라온님의 살기를 버티지 못해 졸도해 버렸고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는 이미 사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각성자인 자신도 이렇게 무기력했는데 각성하지 않은 일반인은 오죽했을까.

박찰선은 그의 화를 피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엘린님을 향해 품에 있던 포션을 쓰지 못했더라면, 아마 진짜 다 죽었을 수도···.


‘어머니···.’


죽고 싶지 않은 박찰선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상상하길 포기했다.

긴장감을 추스르며 얼굴을 덮고 있는 가면을 한번 건드린다.

투박하게 생긴 검은색의 코뿔소 가면.

이 검정의 가면이 낳은 힘 덕분에 다행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들은 다가오기는커녕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일행을 피해 다니기 바빠 보였다.

어떤 이는 넙죽 바닥에 엎드리기까지 했으니, 새삼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가면을 쓰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라온님과 같은 편이라는 것도 안도가 되고.


‘같은 편 맞겠지···?’


박찰선은 그런 잡생각을 하며 라온과 엘린이 있는 장소를 힐끔거렸다.

그들은 아직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에나를 찾아야 하는 박찰선으로는 마냥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혼자서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엔···.

박찰선의 입김은 그 어디에도 닿지 않아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아··· 누가 먼저 나서줬으면···.’


박찰선이 간절하게 곁에 있는 카리얀과 안드로스를 바라봤지만, 그들은 그저 직립 부동의 상태를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 하나 내비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니.

박찰선은 그들의 침착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본받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박찰선은 혼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엘린이 일어나 라온을 안고 일어섰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본인이지만, 그녀는 백조처럼 우아하게 일어섰다.

박찰선은 그 모습을 긴장으로 침까지 삼켜가며 지켜봤다.

머지않아, 라온을 안아 올린 그녀가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작은 입술이 움직인다.


“근처에 숙소가 있나?”

“비스크리닌 안에 VVIP를 위한 저택이 있습니다.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안드로스가 말을 받았다.

엘린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너희 중 한 사람만 안내한다. 남은 사람은 로드께서 내리신 임무를 수행하라.”


엘린의 명령은 마치 기계가 말하는 듯 감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순종할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가 배어 있다.

박찰선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카리스마에 녹아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엘린의 명을 받은 두 사람이 신속하게 움직인다.

카리얀은 곧장 어딘가로 사라졌고 안드로스는 저택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기 시작했다.

박찰선은 잠시 어안 벙벙히 서 있다가 급히 안드로스를 향해 따라붙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몇 분간 조용했던 광장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이전의 모습을 금방 되찾는다.

또다시 잔인하고 원초적인 본능의 표출행위를 시작하는 인간들.

진절머리가 났다.

에나를 찾아야 하는 박찰선으로선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에나를 빨리 찾아야 해···.’


다 큰 어른이 느끼기에도 이렇게 무서운 곳인데 어린 에나는 얼마나 힘들까.

박찰선은 최대한 빨리 이 지옥에서 에나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경과되 에나가 상상도 못 할 짓들을 당하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고 죄책감에 시달려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지 않기 위해선 지금 당장 에나를 찾으러 가야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상황은 박찰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아··· 어떻게 해야지···?’


가장 최선의 방법은 냉기를 풀풀 흘리고 있는 엘린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지만, 막상 도움을 구하기엔 그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녀에게 안긴 라온은 말할 것도 없고···.

안 그래도 폐를 끼치는 상황인데 여기서 더 도움을 구하기엔 염치도 없었고, 잘못했다간 내쳐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괜히 악마님의 신경을 거슬러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다.


“젠장···.”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는데, 그때 엘린이 고개를 휙 돌리더니 박찰선을 노려(?)본다.

움찔, 박찰선은 그녀의 눈빛만으로 얼어버렸고 그녀의 입이 열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너.”


싸늘하다.


“예··· 옙!?”

“넌 따라올 필요 없다. 네 할 일을 해라.”


그 말만을 남기곤 엘린은 박찰선을 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박찰선은 멍하니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엘린이 보이지 않게 되자 긴장했던 몸이 스르르 풀려 입을 열었다.


“나··· 혼자요···?”


어떻게...?

카리얀이나 안드로스라도 빌려준다면 정말 간단히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잠실 운동장 스무 개 정도를 붙여놓은 곳에서 나 혼자 어떻게···.


“젠장!”


고민할 시간이 없다.

이 넓은 백사장에서 혼자 바늘을 찾기 위해선 잠시라도 발을 멈출 시간이 없었다.

그 시간 동안 에나는 고통을 받을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박찰선은 발에 땀이 나도록 뛸 수밖에 없었다.


“에나야!”


박찰선의 간절한 목소리가 비스크리닌의 광장에 잠시 울려 퍼진다.













***


잠시 후.

박찰선이 향한 곳은 마차 안에서 안드로스에게 들었던 제4구역 노예거래 중계소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7개의 구역이 나뉘고 그중 제4구역은 새장에 갇힌 상품들이 쭉 나열된 공간이었다.

그곳은 마치 지구의 반려동물을 분양하는 분양원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애완동물을 분양받기 위해 우리 안의 동물을 품평하고 재단하며 품종을 살피는 고객들 하며 분양계약서를 작성하고 한 마리라도 더 분양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 지구의 분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다른 것을 꼽자면 그 대상이 동물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 정도.

지구에서 나고 자란 박찰선으로선 용납하기 힘든 광경들이었다.


“고객님! 구경 한번 하고 가십시오! 오늘 물이 참 좋습니다!”

“주인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희 상회는 노예 상태는 물론 서비스까지 최고입니다요! 일단 한번 구경이라도 하십쇼! 헤헤!”


길가에는 수많은 상인이 노점상 마냥 거리에 늘어져 있었고.


“달란트 상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생각하신 노예의 품종과 성별이 있으십니까?”

“저희 길센 상회는 최선과 최고를 지향합니다. 일단 매장을 한 번 둘러보시고 저희 직원을 호출해주십시오.”


유명브랜드처럼 자신들의 상회 마크를 당당히 내건 전문매장들도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면을 쓴 악마들이 벌거벗은 노예들을 희롱하고 장난감처럼 다루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이런 시발···.”


박찰선은 본인이 느낀 감정을 목구멍으로 쏟아내며 구역질이 치미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감하니 거부감이 치솟는다.

비스크리닌에 입성하고 목도한 비인륜적인 광경들은 현대 지구에서 태어난 박찰선에겐 너무 낯설고 비참한 광경들이었다.

아니, 조금 다르지만, 저 낯섦 안에 익숙함 또한 존재했기에 기분이 더 가라앉는 것이리라.

현대의 지구에서 박찰선의 삶은 이 노예들과 다를 바 없었다.

족쇄만 안 찼다뿐이지 새 장안에 갇혀 소수의 주인에게 품평 받는 삶만큼은 박찰선이 지구에서 느꼈던 삶과 다르지 않았다.

박찰선이 구역질을 느끼는 것은 아마 그들에게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탈력감이 몸을 지배한다.


“시··· 발···. 정신 차려, 이 병신새끼야!”


박찰선은 주먹을 꽉 쥐고 자신의 뺨을 콱 찍어눌렀다.

알싸한 피 맛이 혀를 감고 목구멍으로 흘러내린다.

비릿한 철향을 느끼며 박찰선은 잡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다.


‘야 이 병신새끼야···. 네가 지금 이딴 기분을 느낄 때야? 좆 거지 같은 삶은 변기통에 쑤셔버리고 지금 당장 에나를 찾아! 호로새끼야! 그딴 병신 같은 과거를 회상하기 전에 에나를 찾으라고! 에나까지 노예로 살게 할 거야? 어!?’


박찰선은 자리를 박차고 노예거래 구역으로 뛰어들었다.

주변 거리의 고객들과 상인들이 힐끔거리며 자신의 눈길을 피하는 게 느껴진다.

박찰선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권력을 십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 붉은 가면의 상인 녀석이 눈을 흘기고 있다.

박찰선은 곧장 그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야 이 씹세끼야! 우리 에나 어딨어!”

“예··· 예!? 그··· 그···! 죄··· 죄송합니다! 용··· 용서를···!”


빡!

박찰선은 어리바리 까는 상인을 주먹으로 냅다 후려갈겼다.

각성하지 않은 상인은 박찰선의 주먹을 맞고는 진열대 안으로 나뒹굴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진다.

눈이 찌푸릴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거리에 있는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못했다.

일을 벌인 원흉이 다름 아닌 검은 가면의 주인이기에.

박찰선은 다음 상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야! 에나 어딨어!?”

“저···! 저···! 그···!”


콱!

그다음 상인도.


“야!”


콱!


“야!”


콱!

박찰선은 물불 가리지 않고 안드로스의 영역을 들쑤시고 다녔다.

노점상은 물론 명품매장들까지도.

박찰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없었다.

콱! 콱! 콱! 콱!

구역의 관리자 안드로스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저 미친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정 가면 아래의 모든 가면은 숨을 죽이며 그의 화를 피하고자 노력할 따름이었다.

노예는 주인이 하는 행동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니까.


“어딨냐고! 이 씹새끼들아!”


콱! 콱! 콰직! 콱!

그렇게 수십의 상인이 나가떨어지고 수십 개의 노점상과 매장이 장사 불가능 상태에 빠질 때 즈음.

박찰선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 고정하십시오!”

“에나··· 그 에나라는 분의 성별이나 나이를 저희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최대한 빨리 찾아보겠습니다!”

“그분의 생김새라도 좀 알려주십시오! 안드로스님이라도 나타났다간··· 저희 정말 큰일 납니다! 제발요!”

“예! 저희가 찾아내겠습니다! 비스크리닌을 다 뒤져서라도요!”


상인들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검정의 코뿔소 가면을 쓴 미친 또라이가 오늘 장사를 다 말아먹기 전에 말려야 했다.

그들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저 미친 코뿔소가 매장을 다 때려 부수기 전에 에나를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박찰선에게 와닿았다.

박찰선이 그들에게 냅다 소리쳤다.


“에나는 어딨어!”


박찰선의 물음에 상인들은 한목소리를 내며 한 사람을 그의 앞에 내세웠다.

박찰선은 가만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했다.


“저··· 저는 안드로스님 직속 노예유통 4팀 팀장 팔트로라고 합니다! 제게 말씀해 주시면! 바로 찾아내겠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4구역의 상품들에 대해서는 빠삭합니다! 저는 준비됐습니다!”


박찰선은 안드로스 직속이라는 말 보다 에나를 상품 취급하는 녀석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에나를 찾아준다는 녀석을 죽여버리기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박찰선은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팔트로란 녀석에게 에나에 대해 말해줬다.

잠시 후.


“······.”


녀석이 당황한다.


“뭐냐!”


순간 박찰선의 감이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박찰선은 냅다 팔트로에게 고유능력 ‘점멸’을 사용했다.

일단 한 대.

콱!


“악!”

“야 이 새끼야! 똑바로 말 안 해!? 너 이새끼, 에나가 어디 있는지 아는 거지!?”

“···! 그··· 그게!”


다시 한 대 더.

콱!


“좋은 말로 할 때 똑바로 말해, 이 새끼야!”


콱! 콱! 콰직!

그렇게 녀석의 이빨을 세 개쯤 부러트렸을 때, 박찰선은 에나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말 희망적이면서도 절망적인 에나의 행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에나가 아직 살아있다는 거지···? 그런데 에나를 누가 데려간 지는 모른다?”

“예! 예! 살아있습니다! 그··· 그분이 분명···! 헙!”

“시발! 그래서 그분, 그 새끼가 누구냐고!”


에나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아 안도했지만, 아쉽게도 누군가 에나를 데려갔다고 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줄 생각이 없고.

아무리 때려도, 검은 가면이 명령을 내려도 거래자에 대한 비밀을 누설할 순 없단다.


“불법이란 불법은 다 저지른 새끼들이! 그 좆 같은 법은 시발 끝까지 지킨다는 게 말이 돼!?”

“그건···. 일곱 대귀족의···.”

“시발!”

“꿕!”


박찰선은 마지막으로 팔트로의 뒤통수를 갈겨버렸다.

팍! 큰 소리와 함께 녀석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상인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박찰선은 그 모습을 돌아보며 흥분한 마음을 애써 다스렸다.


‘일단, 에나가 살아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자.’


에나가 각성을 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에나가 살아있고 아직은 안전하다는 사실 하나다.

박찰선은 다시 몸을 돌려 목적지를 재설정했다.

이제 에나를 찾기 위해선 더 큰 권력에 기대야만 한다.


‘구매자를 알아내기 위해선 안드로스나 카리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일단 라온님에게 돌아가는 게 좋을 듯해. 에나는··· 지금 당장 위험하진 않으니깐 그것만으로도 족해···!’


박찰선은 재빨리 몸을 틀어 엘린이 사라진 곳을 행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그리고 두 명의 이레귤러와 조우하게 되는데···.














***


푸른 잔디가 깔린 언덕이었다.

그곳은 푸른 바다가 사방에 펼쳐진 해변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그 장소에 라온은 멍하니 앉아 있다.


“······.”


시원한 바닷바람이 라온에게 불어와 바다의 향기를 불어넣는다.

또 귓가를 간질이는 아름다운 선율이 그의 주변을 배회하며 청명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그 중심에서 라온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


라온의 머리는 쉬지 않고 공포화에 삼켜지는 엘린의 모습을 그려냈다.

악마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하는 엘린을 상처입히는 자신의 모습이 생생히 재생된다.

라온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


공포는 던전 코어를 손에 넣은 이후 악마로 새롭게 거듭나며 만들어낸 권능이다.

라온은 이 새롭게 생겨난 본능을 거부한 적이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적들이 느끼는 공포심이 좋았고 적을 공포로 물들이는 그 과정에서 활력을 얻었다.

적들이 만드는 이 충만한 힘은 라온을 단기간에 성장시켰고 그 충족감은 그를 기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악마로서 공포는 라온의 근간이 되는 권능이었다.


“······.”


그랬는데···.

그 힘이 이제는 라온의 발목을 붙잡는다.

지금까지 적들에게 잘 써오던 힘이 이제는 무거운 죄책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라온은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점점 가라앉았다.


‘본능에 충실해···.’


기억 속의 라파엘이 했던 경고가 떠오른다.

그녀가 봤던 미래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본능에 충실하라는 그녀의 경고는 이 사건을 두고 한 말이었을까?

라파엘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본능에 충실해···. 본능에··· 충실하라고···?’


지금의 라온에게 본능에 충실하라는 말은 엘린의 고통을 즐기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또, 그 말은 엘린이 느낀 공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과 진배없는 이야기였다.

본능에 충실하라.

과연, 자신이 악마의 본능에 충실할 수 있을까?

과연,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을 즐길 수 있을까?


“하아···.”


라온은 불안한 감정을 강하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라파엘이 본 미래가 무엇이든 간에 본능에 충실하란 그 말은 이제 와서 라온에게 하나의 난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마음을 어지럽히는 정신적 고통이···.

블랙마켓에 도달하며 라온은 ‘무언가’를 얻을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심연(深淵)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으리라.

심연을 모르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하아···.”


라온의 입술에서 깊은 한숨이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본능에 충실하는 게 맞는 걸까?

본능에 충실한 짐승이 되는 게···.


“······.”


라온은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난제에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얼굴을 가슴 속에 파묻으며 다시 상념에 빠져든다.

그때.

툭······. 툭······. 툭······.

하나의 음성이 라온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한다.

툭······. 툭······. 툭······.

라온은 그 소리에 이끌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정면을 바라보자 하나의 검과 다섯의 날개가 나타났다.

라온이 타락하기 전, 그의 직책을 암시하는 여섯 장의 날개가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레바테인···.”


가장 왼쪽에는 집행의 검 ‘레바테인’이 검붉게 타오르고 있으며 그 옆으로 다섯 개의 백색 문이 흑색의 사슬에 감겨 조용히 라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두 번째 문이 조심스럽게 박동한다.

툭······. 툭······. 툭······.

두 번째 날개가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며 문을 흔들고 있었다.

툭······! 툭······! 툭······!

내 차례가 왔다고.

나를 꺼내 달라고 힘껏 소리치기까지 한다.


“······.”


하지만, 라온은 녀석을 꺼내줄 수 없었다.

두 번째 문이 열릴 때가 이르렀지만, 라온은 그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저 라온은 조용히 뇌까렸다.


“사랑하는 이를 다치게 하는 힘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을까···.”


라온은 그렇게 심상 속에서 사라졌고.

툭······. 툭······.

애처로운 박동만이 그 자리에 조용히 요동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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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3) +1 18.12.23 188 3 25쪽
46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2) +1 18.11.29 248 4 25쪽
45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1) 18.11.22 227 5 24쪽
44 약속의 반지 ‘델피니엔’(2) +1 18.11.19 256 4 24쪽
43 약속의 반지, 델피니엔(1) +2 18.11.11 249 5 16쪽
42 식민지(3) +1 18.11.06 274 5 19쪽
41 식민지(2) +2 18.10.29 271 8 12쪽
40 식민지(1) +1 18.10.22 272 6 14쪽
39 꿩 먹고 알 먹고(3) +1 18.10.21 273 7 18쪽
38 꿩 먹고 알 먹고(2) +1 18.08.21 384 6 19쪽
37 꿩 먹고 알 먹고(1) +1 18.08.14 408 10 21쪽
36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5) 18.08.11 414 10 18쪽
35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4) +4 18.08.08 450 9 24쪽
34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3) +2 18.08.06 425 9 21쪽
33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2) 18.08.03 438 8 16쪽
32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1) +5 18.07.29 484 11 17쪽
31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2) 18.07.26 481 11 14쪽
30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1) +4 18.07.24 472 10 21쪽
29 차원 게이트(2) +2 18.07.22 484 11 13쪽
28 차원 게이트(1) 18.07.21 507 13 17쪽
27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3) +2 18.07.20 464 13 15쪽
26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2) +3 18.07.19 475 12 11쪽
25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1) 18.07.17 452 12 19쪽
24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2) +2 18.07.16 480 12 15쪽
23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1) +2 18.07.15 481 10 13쪽
22 다린과 선물 보따리(2) +1 18.07.14 482 11 13쪽
21 다린과 선물 보따리(1) 18.07.13 462 11 14쪽
20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3) +2 18.07.12 481 15 16쪽
19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2) +3 18.07.12 532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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