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 혼수모어
흑산군이 도적일 때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했으나 이제는 정식으로 관군이 됐으니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장연은 병주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읽다가 선우명이 들어오자 잠시 보고서를 내려놓고는 물었다.
“이제 몸은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그보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이제 이곳을 떠날까 합니다.”
“떠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가 이곳에 있어 봐야 할 일도 없으니 제 복수를 위해 이곳을 떠나겠다는 말입니다.”
“복수라면 내가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저한테는 시간이 없어서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 작년에 가자고 말했으나 장연은 바쁘단 걸 핑계로 그걸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때를 놓친 거기도 한 선우명은 장연을 믿지 못했다.
“붙잡지 않을 테니 떠나렴.”
“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뵙겠습니다.”
실제로는 다시는 볼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선우명은 말로만 다음을 기약하고는 장연의 곁을 떠났다.
책임감을 느끼는 장연은 선우명에게 넉넉한 노자와 함께 사람을 붙여줬다. 정확하게는 황궁이 동태를 살필 생각으로 낙양으로 보내는 첩자와 함께 가게 했다.
자길 황규라고 소개한 삼십 대 초반의 첩자와 함께 산 하나를 넘어와서 지친 다리를 잠시 쉬게 하던 선우명은 바로 옆에 앉아서 쉬는 황규에게 물었다.
“아저씨.”
“예, 도련님.”
“얼마나 더 가야지 낙양이 나오죠?”
“이대로 한 보름쯤 더 가야 합니다.”
“머네요.”
멀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나 걷느라 다리가 아프니 더 멀게만 느껴졌다.
어린애가 하기에는 먼 여행이라고 생각한 황규는 웃으면서 말했다.
“도련님은 낙양에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몰라도 됩니다. 황규님은 그저 절 낙양으로 데려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낙양에 도착하면 헤어질 사람인데다가 첩자라서 잘못해서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기가 동탁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알려질 수 있어서 말을 조심했다.
머쓱해진 황규는 말했다.
“해가 지기 전에 객잔에 도착하려면 슬슬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죠.”
해가 지면 달빛 말고는 의지할 것이 없어서 해가 지기 전에 객잔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출발하자마자 신경 쓰지 못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 선우명은 한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보이는 것이 객잔 아닌가요?”
“객잔이라니요? 객잔이 어디 있다는 겁니까? 도련님.”
“저기요.”
선우명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그의 말대로 객잔이 있었다.
원래 이곳에는 객잔이 없어야 하는데 객잔이 있자 황규는 신기해하면서 말했다.
“이 년 전만 해도 여기에 객잔이 없었는데 새로 생긴 모양입니다.”
산을 넘으면 빠르다는 말에 속아서 무리하게 산을 넘느라 다리가 후들거렸기에 쉬고 싶은 선우명은 황규에게 물었다.
“다리도 아픈데 오늘은 저기서 묵죠.”
“예.”
일정이 빡빡한 것이 아니라 낙양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기에 굳이 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었다.
눈을 번쩍 뜬 선우명은 뒤통수의 통증 때문에 눈을 찡그렸다.
“아파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선우명은 자기가 왜 이러는 건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아서 주변을 둘러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여기는 어딘가의 창고이고 자기는 붙잡혀 있었다.
“뭐야 이게!”
왼발에는 족쇄가 채워진 채 창고 벽에 고정되어 있고, 손은 밧줄로 묶여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픈 머리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맞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난 선우명은 덜컥 겁이 났다. 객잔으로 들어가서 주인과 얘길 나누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의 객잔은 심심치 않게 여행객을 죽여 그 고기로 인육 식당을 하는데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으니 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황규는 충분히 조심했으나 객잔의 주인은 조심할 틈조차 주지 않고 바로 수작을 부려서 대처할 수조차 없었다.
“황규는 어디 갔지?”
같이 온 황규 생각이 난 선우명은 눈을 부릅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서 황규를 찾아냈다.
“아~.”
버려지듯이 구석이 놓인 황규의 머리는 찾아냈는데 나머지 부분은 찾지 못했다.
이미 같이 온 황규가 희생된 걸 확인한 선우명은 미친 듯이 손목을 묶은 밧줄을 풀어내려고 이리저리 애를 쓰다가 끽하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하던 것을 멈추고서 기절한 척을 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배만 불룩하고 튀어나온 남자는 기절한 척을 하는 선우명을 보고 말했다.
“아직 안 깨어냈네. 꺼억!”
남자는 트림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남자가 나간 것을 소리로 확인한 선우명은 눈을 떴다.
‘도망쳐야해!’
이대로 있다가는 잡아먹힌다고 생각한 선우명은 아까보다 더 미친 듯이 손을 움직이는데 어린애라서 팔목이 가늘어서 그런지 어찌어찌 손이 빠졌다.
‘됐어!’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른 선우명은 벽에 고정된 족쇄를 자세히 살펴봤다. 청동으로 만든 족쇄는 밧줄과 달리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기에 족쇄와 연결된 벽면을 자세히 살펴봤다. 돌벽이라면 가능성이 전혀 없겠으나 다행히 나무여서 팔목의 밧줄처럼 어찌어찌 될 것 같았다.
나이를 조금 먹긴 했어도 여전히 어린애인 선우명은 자기 힘으로 안 될 것 같아서 도구를 찾아봤다.
당연하게도 손에 닿는 범위 내에는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손목을 묶었던 밧줄을 던지면 닿는 거리에 공구 몇 개가 놓여 있는데 그중에 망치가 보여서 최대한 몸을 뻗은 다음 밧줄을 던졌다.
망치는 무거워서 가벼운 밧줄로는 잘되지 않았으나 수십 번 하다 보니 손에 닿을 곳으로 망치를 끌어올 수 있었다.
이건 장도리가 아니라서 박힌 것을 빼는데 접합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럴 걸 가릴 때가 아니라서 족쇄가 고정된 벽을 부술 생각으로 망치를 들었다가 도로 내려놨다.
“소리가 나잖아!”
객잔하고 이곳 창고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몰라도 소리가 들릴 것이 분명했다.
잠시 고민하던 선우명은 옷을 벗어서 벽에 대고는 천천히 두들기기 시작했다. 확실히 옷이 소리를 흡수해서 작은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걸로는 벽을 부수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포기하는 순간 잡아먹힌다고 생각하는 선우명은 벽이 아니라 족쇄와 벽이 연결된 부위를 측면에서 치면서 벽에 고정된 못이 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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