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안녕, 달나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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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백만잔
작품등록일 :
2019.03.13 08:52
최근연재일 :
2019.03.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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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안녕, 달나라 사람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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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하고 내용이 다르니까 기회가 되면 원작도 플레이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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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아직 숲 속의 작은 집에 살고, 숲의 낮과 밤이 완전히 다른 걸 모를 무렵의 일이다. 처음 보는 나무. 작은 다람쥐, 헤엄치는 물고기는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해 더 깊은 숲으로 유혹했다. 길을 잃고 울면서 가족을 불러댈 정도로 깊은 숲까지 말이다.


한참을 울고 있자니 나뭇가지 사이로 빛이 내려왔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나뭇가지 사이에서 살랑거리는 달빛에 시선을 뺏긴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이를 따라갔다. 잡힐 것 같을 때마다 조금씩 멀어지는 빛. 정신을 차렸을 무렵엔 이미 숲 속의 작은 집에 도착한 뒤였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거기엔 숲 속에서 본 빛에 감싸인 은은한 달이 떠있었다. 아이가 매일 밤 달을 바라보게 된 건 그 무렵부터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밤의 꿈으로 잊혀진다.


도시로 이사하고, 학교에 다니고, 수험에 고뇌하고, 사랑을 하고, 헤어짐에 울었다. 교복은 양복이 되었고, 넥타이로 목을 여미었다. 하늘을 보던 고개는 상사 앞에서 숙여지고, 끓는 속을 맥주로 삭이는 날이 이어졌다.


아이는 달이 빛나던 하늘을 잊고 어른이 되었다.


이것은 어느 깊은 밤, 어른이 된 아이에게 걸려온 일곱 번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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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사의 부조리한 질책과 지독한 러시아워를 겪은 그는 녹초가 된 채 집에 돌아왔다. 한 손에는 가방이, 한 손에는 맥주 한 묶음이 들려있었다. 한 캔은 홧김에 벌컥벌컥 들이켰고, 나머지를 냉장고에 우겨넣은 뒤엔 침대 위에 쓰러졌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다. 그의 마음에 패인 구덩이를 메우는 것은 술과 깊은 잠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한밤중의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그의 소소한 행복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달나라 사람이에요.”


기가 찼다.


화가 났다.


옛날 사람조차 코웃음 칠 수준의 장난전화.


하지만 이날 너무 지쳐있던 그는 오래전 숲에서 올려다본 달을 떠올렸다. 어둠을 몰아내고 길을 이끌었고, 그리움마저 일으키게 하는, 그 은색에 가깝던 달을.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안녕, 달나라 사람.”


"베란다로 나와 저를 봐주시겠어요?"


이미 어울려줬기 때문일까. 그는 흔쾌히 베란다로 나왔다. 지상의 별들이 밤의 어둠을 몰아낸 가운데, 달은 입꼬리를 높게 올리고 있었다.


"말해줘요, 내가 웃고 있나요?"


웃고 있노라고. 그는 보이는 그대로를 전했다.


"저는 웃고 있군요. 고마워요!"


진심이냐.

그렇게 생각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내일도 전화할게요!"


갑작스레 걸려온 달나라 사람의 전화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레 끊겼다.


다음날, 그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 마냥 한 손에 캔 맥주를 든 채 초죽음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늘 같은 이유고, 흔해빠진 플롯이다. 상사에게 구박받은 부하직원의 이야기가 어디 한둘인가.


가볍게 취기가 오른 머리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시선이 아주 잠깐이지만 시선이 전화기에 머물렀다. 왜 그걸 봤는지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전날 걸린 한밤중의 장난전화를 기억하기엔 너무 힘든 하루였다.


그걸 빼곤 약속된 전개였다. 맥주를 마시고, 뻗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달나라 사람이에요."


전화가 왔다.


"오늘도 베란다에 나가서 저를 봐주시겠나요?"


이유는 묻지 않았다. 왜 한밤중에 전화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홀린 듯 이끌려 나가자, 매연도 세상의 시끄러움도 닿지 않는 하늘에는 오늘도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간 달이 떠있었다.


"오늘은 하늘에 명왕성이 보였어요. 하얗고 작은 점이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답니다. 왜냐면, 명왕성은 밝은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아이가 하늘을 거닐 때면 그 하얀 심장의 두근거림이······. 별에서 별로, 북소리처럼 퍼져나가요."


조잘조잘, 말도 많았다.

하지만 맥주 한캔과 함께 하기엔 좋다 여겼다.


"은은한 소리에 맞춰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달의 중력은 지구보다 훨씬 약해서 걷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냥 북소리에 맞춰 고개를 까닥일 뿐이랍니다. 그런데, 오늘 제 표정은 어때요? 나는 웃고 있나요?"


웃고 있노라, 그는 오늘도 그렇게 답했다.


"저는 웃고 있군요. 고마워요!"


설렁설렁 보낸 대답에 돌아온 건 역시나 진심을 담은 기쁨.


"내일도 전화할게요!"


전화가 끊겼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는 내일을 기대하게 되었다. 상사의 부조리 속에 사라질 얄팍한 기대를 끌어안은 채, 밀려오는 현실 속에 눈을 파묻었다.


다음날도 전화가 왔다. 왜 퇴근하면서 맥주를 사오지 않았는지 스스로 의아해 하던 그는 달나라 사람을 기억해 내곤 서둘러 맥주를 꺼내왔다.


"안녕하세요. 달나라 사람이에요. 오늘 하루는 어떠셨어요? 힘들지는 않았나요? 배란다로 나가서, 나를 봐주세요."


밖으로 나가는 그의 걸음이 가벼웠다.


"얼마 전, 혜성이 근처를 지나갔어요.“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는 반쯤 눈을 감은 채 세상 모든 걱정과 너무 멀리 떨어진 별 세계의 선율에 몸을 맡겼다.


“태양계 너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느 별이 눈을 감고 깊은 어둠이 되었는지 제게 조근조근 이야기해줬답니다. 저는 혜성에게 말했어요. 나도 태양계를 떠돌며 많은 것을 보고 싶다고요.”


잠깐의 침묵. 무슨 일인가 싶어 달을 올려다보지만 표정이 보일 리가 없었다.

지구에서 달까지. 약 38만 4400킬로미터.

현실세계에서 올려다보는 달은 턱없이 멀다.


“너처럼. 너처럼."


그 현실을 무시한 채 꿈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재개되었다.


"하지만 혜성은 난처해했어요. 그리고는 ‘너는 그러기 힘들거야’ 라고 말하곤 저 태양 너머로 사라졌어요. 어째서일까요? 왜 혜성은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요? 모르겠어요."


말할 수 없었다. 묘하게 현실적인 색채를 띤 것에 의아해 하면서도 세상 속의 새는 침묵했다. 밤에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오늘 제 표정은 어때요? 웃고 있나요?"


절반에 가까워져 가는 달은, 아직은 웃고 있다.

달의 모양만을 두고 말한다면 아직은 있는 그대로 답할 수 있었다.


"저는 웃고 있군요. 고마워요!"


기계적이고 패턴화된 답변에 진심을 담은 감사가 돌아왔다.


"내일도 전화할게요!"


전화가 끊긴 뒤,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캔 맥주를 비웠다.


다음날, 흘끗대며 전화기를 살피고 있자니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달나라 사람이에요. 여기는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로 오고 있어요. 그렇다는 건 곧 지구의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오른다는 거겠죠? 자, 오늘도 베란다에 나와서 나를 봐줘요."


그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밖으로 나서는 그의 얼굴엔 초승달 같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거 아세요? 달은 지구에게 자신의 한쪽 얼굴만 보여줘요. 덕분에 고개를 들면, 하늘엔 언제나 여러분들이 있죠."


그는 이제 너무 오래되어 단편 밖에 기억나지 않는 숲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맞장구를 쳤다.


"여러분들이 별 위에서 자전하는걸, 저는 조용히 바라봐요. 그 움직임은 정말 사랑스럽고 멋져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의 움직임을 보고, 어떤 소리를 낼지 상상하곤 해요. 달에서 지구까지는 너무 멀어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전화는 무어냐. 오늘도 굳이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진 않았다. 꿈이 깨지지 않길 바라는 얄팍한 소원에서 비롯된 외면이었다.


"사실 말이죠, 바라만 보던 여러분과 이렇게 전화하는 게 믿기지 않는답니다! 나는 행복해요! 그래서, 어떤가요? 제 표정은? 오늘도, 웃고 있나요?"


웃고 있노라, 그는 오늘도 똑같이 답했다.

그리고 직감한다.

사실은 이 전화가 더 이어지길 바라지만, 오늘은 여기가 끝이란 것을.


"저는 웃고 있군요. 고마워요! 그럼, 내일도...전화할게요!"


그렇게 또 하루가 끝났다.


다음날은 비가 내렸다.

달은 보기 어려우려나. 시무룩해진 채 그런 생각을 하며 우산을 접고, 우체통을 봤다. 세금고지서. 정체모를 광고, 그리고- 아무것도 써있지 않은 편지 한통.

집안에서 영문모를 편지를 열자, 첫 문장은 이렇게 적혀있었다.


-안녕하세요. 달나라사람이에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반가운 마음에 기쁨이 손끝에서 입으로 번져갔다.


- 오늘은 전화를 할 수 없어서 편지를 남겼어요.

- 달나라에서 사는 건 정말이지 심심한 일이에요.

- 여기에 있는 건 먼지와 돌 뿐.

- 가끔 소행성이 저의 뒷면으로 찾아오지만 그리 반가운 손님들은 아니에요.


- 저 멀리 다른 행성이나 별을 올려다보는 것 외엔 할 게 없어요.

- 그러니 언젠가 저에게 우주선을 쏘아 주지 않을래요?

- 내게와 말을 걸어주고, 나와 달 위를 걸어주세요.

- 당신이 와준다면 그날 하루만큼은 전혀 심심하지 않고 매우 행복할 거예요.


- 당신이 오는 날, 저는 너무 기뻐 고요의 바다 반대편까지 뛰어넘어 버릴지도 몰라요.

- 그때가 온다면, 당신이 내게 찾아와주는 때가 온다면, 내가 날아가지 않도록 나를 꼭 붙잡아 주지 않을래요?

- 제 손을 붙잡고 저와 함께 달 위에서 조심스럽게 춤을 추어주세요.


- 마지막으로 제 표정을 물어보고 싶지만 답해줄 수 없다는 걸 아니 넘어갈게요.

- 편지를 마치기 전에,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 저를 향해 건배 한번만 해주세요.

- 저도 오늘밤 당신을 향해 건배할게요.

-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이미 몇 캔이고 비우며 편지를 읽어 내린 그가 작은 부탁을 못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있는 힘껏 캔을 흔들며 '위하여!'를 외쳤다. 오랜 회사 생활에 몸에 배어버린 나쁜 습관이었다. 그 기세가 너무 센 탓에 맥주가 조금 흘렀다.


화들짝 놀라 편지를 밀었지만 몇 방울은 튀었는지 편지지를 자세히 보니 물방울이 묻어있었다. 어쩌면 빗물에 젖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아까운 짓을 했다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어제 달은 어땠더라?'라는 생각이.


그리고 여섯 번째 날.

달에서 오는 신기한 전화는 오늘도 한밤중에 걸려왔다.


이미 전화가 올 것을 알고 있던 그는 한 손에 전화기를, 다른 한 손에 캔 맥주를 쥔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베란다로 나섰다.


"저를······, 봐주세요. 말해줘요. 제가 웃고 있나요?"


왜 벌써 그 말이 나오는 걸까.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는 당연히 그렇다고 답했다.


"정말로, 제가 웃고 있나요?"


새로운 장난일까.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정말로. 정말로."


이상했다.


"내가, 웃고 있나요?"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답은 같았다.


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멈추지 않았을까.

왜 같은 대답을 한 걸까.

왜 그는 달을 올려다보는 대신, 맥주를 쥔 채 전화기에만 귀를 기울였을까.


거기에 의문을 던지기엔 이미, 시간은 무정하게 그의 앞을 지난 뒤였다.


"왜, 당신마저···. 거짓말을 하는 거죠?"


통곡과 같은 외침에 그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웃고있다기 보단 입을 벌려 소리치고 있는 것 같은 달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도 나처럼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있을 거면서!"


달로부터의 비명에 온몸이 굳었다. 눈동자는 떨렸고, 바닥에 떨어진 맥주는 내용물을 게워냈다.


"사실은, 보고만 있는 건 싫었어요. 저도 여러분처럼 서로 웃고, 떠들고 싶었어요. 사랑하고, 싸우고, 울고, 웃고 싶었어. 별의 탄생을 가까이서 보고 은하수에 손을 담그면 얼마나 차가운지······. 그리고 명왕성의 심장은 실제론 얼마나 큰지······. 나도 보고 싶었단 말이야!“


달의 이면에서 들리는 통곡은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도 없었고, 달나라 사람의 질문을 몇 번이고 외면한 그에겐 멈출 자격도 없었다.


"사실은 혜성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어! 별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고 싶었어! 풀의 촉감이 어떤지 알고 싶었어! 나도 세상을 떠돌고 싶었어! 하지만 안 돼. 닿지 않는 걸. 그 숲처럼!“


숲이란 말에 끔찍하게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단숨에 삼킨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그제야 '뭐야, 이 전화는 날 알고 걸었던 게 아니었어?'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아이는 혼자 집으로 돌아갔어. 난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인데. 아무도 나한테 닿지 않아! 누구든 좋으니 그 빛을 봐주길 바랬어. 그 빛과 춤춰줘서 정말로 기뻤어. 하지만 돌아가 버렸어. 조금만 더 있어줘도 좋았을텐데!"


들려오는 목소리 전부를 부정하고 싶었다. 정말로 고마웠고, 달을 사랑했노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왜! 내 목소리는 닿지 않는 거야!“


지구에서 달까지. 약 38만 4400킬로미터.

고요하고도 장엄한 그 하늘의 벽은 둘의 목소리를 무자비하게 베어가른다.


"내가 진심을 다해도 모두 떠나버려! 손에서 멀어져버려! 나는 여기 멈춰있는데! 미워. 저 밤하늘 끝에 신이 있다면, 그 사람이 미워. 그 하늘의 끝까지 미워! 이 전화는 왜 연결된 거야! 왜 내가 이렇게 울어야 하는 거야!“


달 저편의 목소리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그건 하늘의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폭발한 감정은 결국 순간적인 것.

울쩍임과 침묵이 몇번 자리를 교대한 끝에, 잔뜩 풀죽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요······. 당신에게 화낼 일이 아닌데. 그 숲에 있던 아이도 아닌데.“


그는 소리쳤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자신이라고. 들려온 통곡처럼 크게 소리쳤다. 물론, 이 또한 하늘 저편에 닿을 목소리는 아니었다. 모든 감정을 담아 고함쳐도 달 저편의 목소리를 위로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 맞다. 얼마 전에, 장미 한 송이를 길러보려 했어요.“


위로할 새도 없이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막지는 못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너무 먼 곳에서 울고 있으니까.


“당연히 죽어버렸지만요. 물도 공기도 없는데 식물이 자랄 리 없죠. 꽃에겐 정성을 다했어요. 하루하루 바라보며 사랑을 주었어요.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난 결국 장미를 잊어야 했어요. 이제······. 모든 것에 마음을 주는 게 두려워져요. 저 검고 말 없는 우주처럼······.”


침묵. 수화기 너머가 우주의 진공처럼 조용해졌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토록 불안한 것이던가.

미처 몰랐던 사실에 몸을 떠는 사이, 달나라 사람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 하는 저도 곧 당신을 떠나야 할지 몰라요. 저의 빛도 이제 점점 줄어드니까요. 이 빛이 줄어들지 않게 붙잡고 있어볼게요. 그래봤자 시간을 버는 것뿐이지만. 당신도 저를 붙잡아 주세요. 지금까지처럼. 당신이 제 전화를 받고 베란다에 나와 준 것처럼."


다음날, 그는 이제 냉장고에 몇 캔 남지 않은 맥주를 꺼내 마시며 전화를 기다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온 신경은 전화에 가있었으니 달에서 온 전화를 놓칠 리가 없었다.


"나와서 저를 봐주세요."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 그는 이미 밖으로 나온 뒤였다.


"예전에 달은 지구에서 한쪽 면만 보여준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이유를 아시겠나요? 제 뒷면은 흉측해요. 온갖 상처와 구덩이뿐인 뒷면. 가끔씩 어루만지면 반짝이는 은을 쓰다듬는 거 같답니다. 은은 말이죠, 깊은 어둠을 헤집는 것 같아요. 아름답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죠."


그는 무심코 손을 들어보였다. 물론, 닿지 않는다. 좌우로 크게 흔든다 해도 저 위에서 얼마나 선명하게 보일지도 알 수 없다.


"이제 이곳도 은으로 뒤덮이고 있어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통화가 될지도 몰라요. 내일도, 통화할 수 있을까요? 내일도, 저를 사랑해주시겠어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베란다로 나오는 것. 지상의 턱없이 작은 점을 한 칸 옆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움직임일까.

그리고 그에겐 얼마나 크게 보이는 걸까.

알고싶지만 묻지못한다.

닿지 않으니까.

닿지 않기에, 달로부터 일방적인 감사의 말이 내려왔다. 그건 달빛보다 더 찬란히 빛났고, 맥주로도 채우지 못했던 공간을 맥주 캔의 은빛보다 더 아름다운 색채로 빈틈없이 채워갔다.


"말할 수 없어도······.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상한 전화인데도 받아줘서."

"감사해요. 이상한 이야기, 들어줘서."

"기뻤어요. 베란다에 나와주셔서."

"내 전화, 받아줘서 고마웠어요."

"저, 안녕이라고 하지 않을거에요?"

"내일도 이상한 이야기 잔뜩 할거니까."

"잔뜩 화내고, 울고, 웃을거니까.“

"그러니까, 내일도 전화를 받아주세요."

"고마워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내일도 꼭 전화할게요."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누구의 마음도 모르는 저 높기만 한 하늘은 공허한 달과 함께 화가 날 정도로 황홀한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출근하지 않았다. 쉬겠다는 일방적인 전화 한 통을 보낸 채, 캔 맥주로 시간을 보냈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는 붉게 충혈된 눈과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직장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지구는 돈다.


누군가 사랑하는 밤이 지나고

누군가 화내는 밤이 흐르고

누군가 슬퍼하는 밤이 스쳐갈 때,

누군가 어깨동무 하고 웃는 밤도 떠나갔다.


모두가 뒤엉킨 채, 헤아릴 수 없는 밤이 지난 뒤.

이름 모를 이가 달의 반대편에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굉장히 앳된 얼굴의 그는 한 손에 액자를, 한 손에 잘 포장된 물건을 들고 있었다. 물건은 오래된 비단으로 곱게 싸여, 위가 둥근 새장 같은 윤곽을 가진 것 외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잿빛의 세계 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선명히 남은 장소였다.


달에 사람이 살았던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달의 뒷면에는 장미가 피어있었다.


돌의 파편을 잇고 쌓아서 만든 수백 수천. 아니, 셀 수 없는 숫자의 장비가 달의 저편까지 뻗어있었다.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다.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곳곳이 패인 탓이다.


그가 찾던 사람은 월석의 장미 정원 한가운데 앉아있었다.

언젠가 나눈 우정을 가슴 속에 품은 채 시간의 끝을 받아들인 이다.

말해도 대답 없을 이를 향해 그는 고개 숙여 인사한 방문자는 들고 있던 짐을 그의 양 옆에 놓았다.


오래된 비단 안에는 이 달 위에 두기엔 지나치게 화려하고 선명한 장미 한 송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튼튼한 강화유리로 잘 보호된 가짜 장미는 제법 오랫동안 달의 이면에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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