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선재림 - 15 다가오는 마수(3)
검선재림 - 15 다가오는 마수(3)
-팅! 티팅!
풍도대주가 유성의 공격을 몇 번이나 튕겨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마기가 뭉텅이로 잘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가의 무공인가? 살생하지 않으려고 목검을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겠군···.’
유성이 들고 있는 목검의 소재 파사벽조목의 정체를 몰랐기에, 그는 자신의 기운이 통하지 않고 되레 약해지는 이유를 잘못 추측했다.
그는 정신없이 휘둘러지는 유성의 목검을 막고, 피해내며 생각을 지속했다.
‘소림사, 지국천문(持國天門)···. 놈이 검을 쓰니, 아마 지국천의 기술일 것이다. 그렇다면···.’
진가장이 하북의 이인자라고는 하나 사군자검이 비기(秘技)이고, 풍도대주가 저 멀리 남천산(南天山) 십만대산(十萬大山)에 살던 마교인이기에 무공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도시는 잘못된 대응을 선택했다.
“타앗!”
-콰콰콰콱!
그가 행한 것은 검풍난무(劍風亂舞)의 초식, 검기를 일으켜 적에게 마구 쏟아내는 것이었다.
“나의 마기가 네놈들의 내력을 파고들어 무력화시키는 것처럼, 불가 무공의 내력 역시 나에게 그러하렷다? 그럼 시리게 날아드는 검풍은 어쩔 것이더냐?”
그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곧 핏물이 세차게 튀고, 고통에 가득한 비명이 울릴 것이었다.
-촤아악!
역시나, 핏방울이 그의 얼굴에 튀며 강렬한 냄새를 풍겼다.
도시는 음험하게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흐흐흐흐···. 으윽?”
그리고 별안간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놀라며 상황을 살폈다.
“이, 이게 대체···. 크으윽!”
그는 자신의 오른손과 검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아챘다.
너무나도 깨끗한 절단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유성의 일섬에, 연속으로 날렸던 검풍과 함께 팔목이 잘려나간 것이다.
“끄아아악! 이 자식!”
“멍청한 놈.”
피가 흐르는 팔을 심장 위치로 들어 올리며 악을 쓰는 도시를, 유성은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이리도 생각이 없는 놈인 줄 알았다면 밑밥 까는 시간을 좀 줄이고 더 과감하게 움직일 것을 그랬군. 어쨌든 사로잡았으니 상관은 없나···.”
“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
“환검으로 눈을 속이고, 기공으로 감각을 속이고, 쾌검으로 팔을 갈랐다.”
“말도 안 돼! 내가···, 교주의 앞길을 열고 신교의 곳간을 풍족하게 하는 풍도대주인 이 내가, 그딴 얄팍한 속임수에! 이놈! 무언가 수법을 부린 것이 분명하다! 어떤 놈이 매복하고 있는 것이구나, 이놈!”
도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정했다.
일생을 천마신교의 마인으로 살며 속고 속이기를 반복해온 자신이 정파의 애송이에게 속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피식.
유성은 그런 그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분명한 사실을 끝까지 부정하려는 꼬락서니가 처참하고도 우스웠다.
동시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에게 있어 풍도대주의 공략은 매우 쉬운 일. 그런 당연한 일을 계속 자신의 힘이 아닐 것이라 소리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도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겠지. 네가 속았을 리가 없다고. 그런데···.”
-타탓!
“너 이번이 세 번째 당한 거다.”
“컥!”
유성이 손을 가볍게 흔들어 목검으로 두 곳의 혈자리를 눌러 내력을 흘려 넣었다.
‘세 번째? 무슨···.’
의문을 품은 채로 마혈과 수혈이 눌려 몸의 통제권을 잃고 쓰러지는 도시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마···.”
-털썩.
유성이 땅에 누운 풍도대주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당겨 관절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뿌드득!
차례대로 하나씩. 그는 놈의 팔과 다리를 모두 무력화시켜 혹시라도 도주를 시도할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리고 다시 목검을 집어 들어 이번에는 도시의 하단전을 강하게 내리쳤다.
-콰악! 빠드드득!
“쿠억! 그르르륵···.”
몸이 마비되고 수면에 빠진 와중에도 고통을 느꼈는지, 풍도대주가 피거품을 게워냈다.
단전이 완전히 깨져 마기가 혈도를 달리며 찢어놨기 때문이다.
유성은 철두철미하게 망가뜨린 풍도대주의 몸을 질질 끌어 어딘가로 향했다.
***
“끄···, 끄으으···.”
마교 풍도대주 도시는 눈을 뜨고 자신이 매우 어두운 곳에 있음을 알아챘다. 사방이 까맣게 보여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무, 무슨 일이지? 여기는···. 그 애송이···. 나를 어디로 데려온 것인가!’
분명 인지하지 못한 공격에 점혈을 당해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본 적도 없는 곳에 끌려와 있는 것인지, 또 어째서 사지에 고통이 가득하며 있어야 할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확인하려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음을 알고는 그저 눈만 굴려 살폈다.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일어났군.”
“넌···.”
“시간을 주고 싶지 않으니 바로 시작하지. 삭풍대를 알고 있나?”
“삭풍···. 흐흐흐···. 그래. 너는 그놈이구나. 동승학···. 죽은 동료들의 원수를 찾고 있나?”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한 사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수년 전, 도시가 직접 지휘한 작전의 유일한 오점, 무림맹 타격대 절멸 임무의 생존자, 삭풍대주 동승학. 그가 풍도대주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원수는 찾았지. 네놈들, 마교의 버러지들이 모두 내 원수다.”
“뭐라? 버러지? 푸흐흐흐흐···, 푸하하하하!”
도시가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관절이 뽑히며 완전히 망가지고 찢어진 근육이 비명을 질렀으나, 그는 계속해서 웃어댔다.
이에 동승학이 눈썹을 꿈틀대고는 물었다.
“무엇이 우습지?”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웃을 여유가 있나? 곧 지옥을 목도해야 할 텐데.”
“동료들을 직접 갈기갈기 찢은 원수를 눈앞에 두고, 모든 신교인들이 원수라는 헛소리를 하다니. 웃기지 않은가? 우하하하하!”
도시는 동승학의 물음에 비웃음과 폭로로 답했다.
그것에는 죽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분노하라, 삭풍대주여. 나를 때려죽이고 싶지 않은가? 먼저 떠난 동지들의 한을 갚아주고 싶지 않은가?’
유성에게 단전이 파괴되었음을 알고, 자신은 이미 스스로 내력을 터뜨려 자폭할 수 없으니 승학의 분노를 유도해 죽으려는 것이었다.
-피식.
하지만 동승학은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듣던 대로 멍청한 놈이구나.”
“뭐, 무엇?”
“그게 어떻단 말이냐? 설마 삭풍대가 마교 놈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너 혼자 생각해 스스로 벌인 일은 아닐 것 아니냐?”
“내, 내가 죽였다지 않느냐! 다 내가 한 일이다! 내가 네 동료들을 참살하고 그 시신을 조각내서···.”
“누가 시켰겠지. 암. 누군가 시켰을 거야. 마교 잡것들을 하나하나 쳐 죽이다 보면 그놈도 어느새 죽어 있겠지. 그것이 내 복수다. 그렇고말고···.”
“이런···, 미친···.”
도시는 자신의 말은 들은 채도 않고 광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동승학을 망연하게 쳐다보았다.
동승학은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는 미친 것이 분명했다.
등에서 피어오르는 흉흉한 기운이 그것을 증명했다.
“제, 제정신이 아니야. 네놈은···.”
“아 그래. 너를 앞에 두고 내가 혼자 지껄였군. 이거 미안한 일이야. 자, 어차피 순순히 입을 열 생각은 없을 테니 고문부터 시작할 것이다. 다 끝나고 네가 아는 모든 것을 토설해라. 그렇지 않으면 또 할 것이니. 일단 당해보고 생각해보거라.”
“무, 무슨···. 으아아아아!”
지하 뇌옥(牢獄)에 도시의 비명소리가 울려댔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잔혹한 징벌이 시작된 것이다.
“흠···.”
그 소리를 들으며 유성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잘 하겠군.’
그 증오의 깊이가 늪보다 깊으나 광기를 표출하면서도 말하는 것이 침착하니, 감정에 사로잡혀 섣불리 풍도대주를 죽이는 따위의 일은 없을 것이었다.
정보를 캐내는 역할을 동승학에게 맡긴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유성은 생각했다.
유성은 남은 일은 모두 그에게 맡기기로 하고, 걸음을 옮겨 떠났다.
“어찌 잘 되겠느냐?”
“못 되어도 어쩌겠습니까? 부딪치고 깨지는 것이지요.”
“말 하고는···. 이렇게 패기 없는 놈에게 내 증손주는 못 준다!”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노사.”
“에잉!”
뇌옥이 자리한 비동의 문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단기가 농을 걸며 다가왔다.
되지도 않는 소리로 유성의 무거운 마음을 풀어주고는, 그가 말했다.
“이번 일의 결과는 예측하고 있겠지?”
“예. 세 번째 우연은 없지요. 풍도대주도 흑암대주 놈처럼 연락이 끊긴다면, 본격적으로 적이 등장했다고 판단, 추적이 시작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이제부터는 정말로 쉼 없이 달려야 할 것이다. 괜찮겠느냐?”
“각오하고 있던 일입니다.”
각오뿐만이 아니라 그는 이미 겪어본 일이었다.
수십 년을 제대로 쉰 적 없이 무공을 연마하고,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보냈으니까.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된다면 아마 지금처럼 지낼 시간조차 남지 않을 것이었다.
“너무 혼자 짊어지지 말거라. 네 나이를 생각하고, 네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의지해···.”
“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해야 합니다. 반드시.”
“흠···. 그래. 이유가 있겠지.”
유성의 답에 단기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지만 표정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어린아이에게 너무 큰 짐을 맡기게 되는구나. 이 아이가 잘 버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손자뻘 소년 무인의 분투에 못내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끼는 단기였다.
그저 한 끼 밥 든든하게 먹고, 열심히 뛰고 다투며 성장하는 것에만 몰두하기에도 바쁜 시기에, 그는 천하를 노리는 거대 세력과 혼자 맞서려 하고 있었다.
대견하고도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유성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고 말했다.
“곧 실습 기간이 될 것이다. 내 추천장을 써줄 터이니 화산(華山)에 가보거라.”
“화산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화산의 무술이 진가장의 무학과 상통하는 바가 있으니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재와라는 믿을만한 아이도 있으니, 잘 이야기해서 도움을 구하거라.”
“감사합니다.”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단기에게 유성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단기가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아니다. 내가 돈이라도 쓰고, 사람이라도 불러 너를 더 도와줘야 하는데, 젊어 이룬 게 없으니···.”
“아닙니다. 노사께서는 제게 큰 힘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홀홀홀···. 이만 돌아가거라. 조금 쉬어야 내일 강의에 나가지 않겠느냐?”
“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유성은 단기에게 인사하며 뒤로 물러났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유성은 잠을 자기 위해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