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위한 소동 - 막간
제 7장. 로마이어 카시스 교단
종교로서의 카시스 교단의 교리는 정의, 심판, 그리고 처벌로 대표되지만, 이 세 개념 중 그 어떤 것도 격론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없다. “무엇이” 정의인가, “누가” 심판하는가, “어떤” 기준으로 처벌할 것인가 등, 교단의 세력이 융성한 만큼 그 해석에 대한 갈등도 심각하며 이는 선왕국 붕괴 후 4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문제이다. 간단한 예시로서 판투스 교단은 노예 제도의 해악을 인정하면서도 모종의 필요악으로 받아들이지만, 후술할 로마이어 교단은 정반대로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순수한 악(惡)이자 불의(不義)로 규정한다. 당연하게도 두 교단의 서로를 보는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런 까닭에 교단의 지부가 위치한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놀랄 만한 일도 아니지만, 모든 지부는 적어도 형식상이나마 미드웨이 중앙 교단의 통솔을 따르며 그 권위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단 한 지역, 로마이어의 교단만은 그러한 통솔과 간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문화된 법에 의한 정의의 구현을 추구한 사제들이 카를 대제의 권유에 따라 이주해 오는 과정에서 유혈 사태를 동반한 대대적인 충돌이 있었던 까닭이다.
...로마이어의 카시스 교단은 기본적으로 카시스의 교리를 따르는 종교집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국가의 사법(司法)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는 이면을 갖고 있다. 현행 제국법 헌령에 의하면 황제와 제국 정부가 행정을, 8인 의회로 대표되는 귀족 가문과 법제원(法制院)이 입법을, 마지막으로 카시스 교단이 사법을 맡으며, 모든 기관은 원칙적으로 서로의 권한을 침범할 수 없다. 물론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칼로 자르듯 영역을 나눌 수는 없는지라 어느 정도의 겹쳐지는 영역이 존재한다. 교단의 경우 입법 쪽으로는 ‘냉정한 정의’ 사제단이 법제원에 상주하며 새로운 법률 상정 시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행정 쪽으로는 ‘중재자’로 임명된 사제들이 정부와 교단 사이에 충돌이 있을 때 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 식이다.
...카시스 교단은 정의, 심판, 처벌을 근간으로 하는 종교이지만 로마이어 교단은 그 특성상 처벌을 직접 집행할 수 없다. 앞서 언급된 분리 원칙에 따라 처벌의 권한을 가진 것은 제국 정부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로마이어 교단이 처벌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 교단 자신뿐인데, 이마저도 교단의 자체 감사를 위해 소집되는 사법감찰단만이 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노미 움베스코, 지식을 갈망하는 자에게 주는 충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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