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산신령 도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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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운
작품등록일 :
2020.02.0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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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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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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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5화. 아랑(3)

DUMMY

"도 산신. 도 산신은 혹시 의사야? 아니면 어디서 의술을 배우기라도 했어?"

"아뇨. 저 문과에요. 인공호흡이나 그런 구급 교육을 받긴 했지만, 의사는 아닙니다."


하랑이 고개를 젓는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근거로 아랑 님을 낫게 할 수 있노라 자신한 거지? 설마 본 신격을 우롱하는 것은 아닐 테고 말이야."

"에이, 설마. 지금 상황에서 농을 할 만큼 머리가 떨어지진 않았겠지. 안 그래?"


하랑의 말에 동조한 미려가 옆에서 손끝을 쓰다듬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언제 길어졌는지 모르는 손톱이 예기를 흩뿌렸다.

만약 허튼 말이라도 흘러 나왔다가는 내 입을 찢어버리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아른거렸다.


"그랬더라면 애초에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겠죠.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이 방법으로 아랑 님이 쾌차하실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불확실한 방법을 지금 논하려고 하는 것인가."

"하지만 여태까지 여러 방법을 사용하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차도가 없지 않습니까. 분명 이솜 님이나 다른 분들이 귀한 약들을 썼을 것인데도요."

"그래서 의원도 아닌 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란 거야? 도 산신, 혹시 면허는 없어도 이쪽 관련해서 경험이라도 있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대가 나나 하랑처럼 아랑 님을 공경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하, 이건 정말."

"그만 두거라. 둘 다."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용언이 나와 미려의 사지를 붙들었다.

다른 이의 의지를 붙드는 힘. 당연히 그냥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크, 크흠."


기침과 함께 아랑 님의 환부에서 검은 피가 한 줄 주르륵 흘렀다.


"아랑 님!"

"아직은 버틸 수 있으니 괜찮다. 그나저나 도 산신, 자네가 처음에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판단한 이유는 무엇이었지? 한번 들어보고 싶구나."


주변의 공간을 옭아매었던 무형의 힘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운신의 자유를 얻었다.

신격을 가진 이의 행동조차도 억제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환부에 새겨진 저주를 몰아낼 수는 없었나 보다.

일종의 상성 때문인 것인가. 일반 지네의 독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텐데.

내가 건드리려고 하는 것이 그만큼 복잡하게 구성되어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간결한 이유를 꼽자면."


하지만 불가능하다 하여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일단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한다는 고언이 왜 나왔겠는가.


"저는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나는 발을 내디뎠다.


"아랑 님의 환부에 깃든 지네의 독과 확연히 구별되는, 몽랑, 그 자의 기운이 말이죠."

"그게 가능해?"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네, 가능합니다."


그 과정과 원리를 명확히 설명하라고 한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지금도 어째서 내가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상식과 논리로 이해가 불가능하다 하여 있던 것을 없다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손을 쓸 것인지에 대해선 지금부터 고민해봐야 할 일이겠다만, 머리 속 공간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나는 입에 담았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제가 유일한 당사자이기 때문이겠죠. 지금 여기에 모인 분들 중에서요."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줄 수 있겠느냐."

"남한강과 북한강의 신령분들, 잠시 제게 떨어져 있던 연하. 심지어 저주의 당사자인 아랑 님까지. 모두 몽랑에 대한 이야기 혹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손과 발을 섞어 맞상대를 해보진 않으셨지요."


하지만 나는 그 자와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온 사람이다.

물론 어, 아주 조금의 차이 때문에 내가 쓰러져 기절하긴 했지만, 어쨌든 녀석의 공세를 버텨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내 기운을 듬뿍 머금었던 결계를 깨기 위해 계속해서 몰아치던 것이 몽랑의 기운이었으니, 현재 나만큼 녀석의 힘에 친숙한 이도 드물 것이다. 아랑 님의 거처에 모인 이들 중에서는 유일하고 말이야.


"요컨대 도 산신은 몽랑이란 도깨비의 영기를 겪어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는 건가? 영기에서 풍기는 향, 성향, 혹은 그 속에 감추어진 본질까지도."

"본질은 잘 모르겠네요. 허나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아직 몽랑과 맞붙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이라면... 이매망량의 저주와 지네의 독이 결합한 그 부분을 건드릴 수 있을 거라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허황으로 가득 찬 말이라 생각할 지 모른다. 과연 미려와 하랑, 그리고 아랑 님은 내 발언에 대해서 어떡해 생각해 줄까.

말을 끝낸 나는 이어질 반박이나 타박을 듣고자 눈을 부릅뜨며 만전의 준비를 다했다.


"무엇이 필요하더냐."

"네?"


어, 어라? 이게 그대로 먹혀 들어갈 줄은 예상치 못했다.

지금의 여건에서 가장 최상으로 내놓을 수 있는 비책이긴 했으나, 잡음이 하나도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다못해 궁금한 거라도 없으신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랑 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랑 님. 설마 저 산신의 말에 찬동하시는 건가요?"

"이솜이 가지고 온 갖은 약들로도 큰 차도가 없진 않았으니, 지금의 방책에 한번 기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겨지는구나."

"아, 아직 쓰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제가 빨리 금강산에 다녀올게요. 금강산에 온갖 영초와 몸에 좋은 것들이 널려있는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미려야."


따스한 빛을 담은 용의 눈이 그녀를 흠모하는 신령을 비췄다.


"조금 전 거처의 안팎을 분리하던 결계를 열었지."

"...아."

"지금도 조금씩이나마 느껴지는구나. 그 몽랑이라는 자가 내게 피해를 주려 두물머리와 팔당호를 오염시켰다지?"

"하지만 그건 저와 미려가 다 제거했습니다, 아랑 님."

"그건 더 많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줄인 것임에 불과하지 않더냐. 이미 엎질러진 물잔에 새로운 물을 채운다 해서 그것이 예전과 같다고 볼 수는 없으니. 그런고로."


이윽고 용의 눈이 내게 향했다.


"도봉구, 내 부탁으로 그 무거운 신령의 업을 짊어지게 된 아이야. 네게 무엇이 더 필요하더냐."

"아마 아랑 님께서는 고통에 익숙하시겠지요. 하지만 제가 손을 대면 그 고통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일 거에요."


영기를 도인(導引)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환부에 직접 손을 써야 했다. 말 그대로 내 '손'을 말이지.

날붙이마냥 살을 파고 들어갈 것이라 내 생각엔 그게 필요했다.

수술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필수적인 절차, 마취.


하지만 용을 완전히 재우는 약이 있다곤 들어보지 못했다. 하물며 수많은 구전과 기록에서도 그런 건 접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차선책으로는 피부의 겉 부분 정도를 마취시킬 수 있는 국소 마취제 정도.

용과 같은 신수, 혹은 영적인 존재에게 먹히는 약. 그런 것을 다룰 수 있는 존재는 내 기억에 단 한 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의원이 있습니다. 그 자라면 아랑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에요."

"위치만 알려줘. 내가 데리고 올게."


눈물을 훔치며 미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뒤로 비치는 신선의 영기가 일렁거림을 넘어 이글거렸다.

말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내 입에서 어딘가의 이름이 흘러나오기만 하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갈 것처럼.


"잠시만요."


분명히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의술을 익히기도 했지만 대학을 다니며 실력을 쌓기도 했다고.

거기에 개인적으로 카드 단말기까지 가지고 있지 않던가. 옥향은 자기 병원을 가지고 있는 개원의라는 소리다.

어떠한 병원인지는 모르지만 시장에 있던 의원의 규모를 고려할 때 아마 국소마취제 정도는 있을 터. 거기에 그녀의 영력을 더한다면 짧은 시간이나마 아랑 님의 고통을 경감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오늘은 민속촌에 도깨비시장이 서는 날이 아니다. 밤을 기다린다 한들 그곳에선 그녀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스마트폰의 은행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옥향의 전화번호는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그녀의 계좌번호가 남아 있었다.

현대문물을 좋아하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녀가 스스로 말했으니, 내 생각이 맞다면.


'분명히 그녀의 스마트폰에도 어플이 깔려 있겠지.'


은행들마다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돈이 입금되거나 하면 스마트 푸시로 알림이 오게끔 할 수 있다.

나는 옥향의 계좌에 계속 돈을 보냈다.

내 전화번호와 간단한 사정을 메시지에 담으며 계좌이체를 누르길 여섯 번. 스마트폰의 화면이 전화가 왔다는 신호로 가득 찼다.


"이렇게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네요. 좀 더 정확한 사정을 듣고 싶은데요."

"그게 말이죠..."


일련의 이야기가 흐르고, 스마트폰 너머로 전해지는 옥향의 목소리에는 흥미로움이 반, 그리고 의사의 사명감이 나머지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용도라... 일단 가능은 할 거에요. 제가 복수면허를 취득한 의사라서요. 의학 쪽에서는 더블 보드이기도 해서 병원에 마취제는 가지고 있지요. 제가 어디로 가면 될까요?"

"그것보다는 옥향 님이 계신 병원의 위치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 쪽에서 모시고 오는 게 더 빠를 거에요."


도깨비들이 신통한 술법으로 공간을 건너뛰며 빠른 운신이 가능하다고 하나, 이곳 팔당호는 도깨비 의원이 있던 민속촌과 꽤나 거리가 멀었다.

자가용을 이용한다 해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며,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하면 당장 내 옆에서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양반이 폭발할 게 분명했다.

차라리 이쪽에서 옥향을 데리고 오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병원이 민속촌과는 멀지 않죠?"

"지곡천을 따라 쭉 이어지는 동탄에 제 병원이 있어요. 여기서 먼 곳에 있으신가 보네요."


훨씬 더 멀어졌다. 어림잡아 2시간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도 산신, 그 의원이 어디라고 해?"

"동탄이요. 혹시 아세요?"


미려는 초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때였다.


"지곡천은 신갈천에 합류하고, 신갈천은 오산천에, 오산천은 안성천에 합류하지. 안성천을 맡고 있는 자는 아마... 평로일 거다."


아랑 님이 기침을 토해내며 말을 이었다.


"안성천과 한강은 비록 이어지지는 않았다만, 서로의 영역의 일부를 연결해두었으니 그것을 통하면 빠르게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말씀 하시지 마세요, 아랑 님."


쇠한 용의 육체를 연하가 부축했다.

둘을 바라보던 하랑이 이를 악물며 미려에게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내가 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미려, 너는 그쪽 지리를 잘 모르잖아. 남쪽은 내가 좀 더 밝으니까..."

"됐어."


하랑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한 미려가 신발끈을 묶으며 말했다.


"내가 가는 게 나아. 내가 지도도 못 보는 줄 알아?"

"그래도."

"너, 나보다 느리잖아? 최대한 빠르게 치료를 받고 싶으시다며 내가 금강산에 다녀 오는 것도 말리신 아랑 님이야. 나라면 남북의 경계고 뭐고 자시고 그딴 것들을 풀쩍 넘어서 눈 깜짝할 새 다녀올 수 있지만..."

"미려 님이 다녀오시는 동안에 저와 하랑 님은 치료의 준비를 하도록 할게요."


내가 그녀의 흐려지는 말에 계획을 덧붙이자, 미려의 눈빛이 다시 한번 타올랐다.

몸을 곧추세우며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리는 그녀의 입가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얼마 안 걸릴 거야. 이십 분, 그 정도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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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116화. 오랜 기억의 꿈(1) +3 21.01.13 122 7 13쪽
» 115화. 아랑(3) +3 21.01.11 126 8 12쪽
115 114화. 아랑(2) +3 21.01.08 124 7 13쪽
114 113화. 아랑(1) +3 21.01.06 131 10 12쪽
113 112화. 몽랑(3) +5 21.01.04 155 10 12쪽
112 111화. 몽랑(2) +1 21.01.01 160 12 11쪽
111 110화. 몽랑(1) +1 20.12.30 158 9 12쪽
110 109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4) +1 20.12.28 150 9 12쪽
109 108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3) +1 20.12.25 153 8 12쪽
108 107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2) +5 20.12.23 157 7 12쪽
107 106화. 두 물이 만나는 자리(1) +1 20.12.21 148 10 12쪽
106 105화. 다시 피어나는 산 +3 20.12.18 160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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