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단 aka. 무림조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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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ya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3
최근연재일 :
2020.05.1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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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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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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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문유신의 시험.

DUMMY

“아 고것 참··· 집 나간 우리 마누라 소싯적이랑 어찌나 닮았던지. 자꾸 눈 앞에 아른거리는구먼.”

“아서게. 안 그래도 요즘 회주님 신경이 날카로운데 괜히 뻘 짓거리 하다 반병신 될 수도 있어. 뻘 소리 그만하고 장작이나 더 가져오게.”

“쩝··· 누가 뭐 한다고 했나! 어허흠!”


창고 앞을 지키던 무사들은 자기들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장작불을 붙이기 바빴다. 금세 찾아온 산속의 어둠은 장원을 덮었고, 긴 밤을 준비하기 위해 장원의 분주함을 틈타 송연희는 지붕을 탔다.


‘장원 동쪽 담을 넘으면 곧바로 보이는 창고가 있을 겁니다. 그곳 지붕을 타고 건너편 지붕으로 건너면 회주의 방이 있는 내원까지 잠입하기 수월할 거예요.’


문유신의 말 대로 송연희는 숨을 죽이며 반대편으로 건너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말이야, 봉준이. 이번에 잡혀 온 계집들 중에 신분이 높은 여인도 있다고 하던데? 그 뭐라더라··· 자갈?”

“에휴··· 자네는 그래도 칼밥 좀 먹는다는 사람이 제갈세가도 모르나?”

“아 맞네, 제갈세가라고 했지. 거, 모를 수도 있지 무슨 타박이 집 난간 마누라보다 더 해? 그런데 그 자갈인지 제갈인지 하는 곳이 그렇게 대단한가?”

“대단하고 말고, 무림맹은 들어봤지?”

“이 사람아! 사람 너무 무시하지 말게. 무림맹 모르는 사람도 있나? 어허흠!”

“그 무림맹의 총군사라는 양반이 제갈세가의 전대 가주네. 그리고 지금 여기 잡혀온 여인이 바로 그 총군사의 손녀라고 하네.”


막 지붕을 박차고 건너편으로 넘어가려던 송연희는 무사들의 대화에 황급히 몸을 틀었다. 덕분에 밟고 있던 기왓장에 살짝 금이 가며 소리를 냈다.


“응? 무슨 소리지?”

“뭐 쥐새끼라도 있었나 보지. 내 다시 한번만 보고싶네. 어쩐지 미색이 다른 계집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더라니··· 지체 높은 댁 아씨였구만. 흐흐.”

“쯧쯧, 못 먹는 감 찌르지도 말게나.”


다행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자 지붕 위에 바짝 엎드려 있던 송연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가만? 무림맹 총군사의 손녀딸이 왜 이런 곳에 잡혀 있는 거지?’


그녀는 천천히 기왓장을 옮기며 창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창고 안에는 밧줄에 묶인 여인들이 앉아있었다. 모두가 아직은 스무 살도 안되어 보였는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여인이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맑고 깊은 눈이 매력적인 여인은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홍련, 아직 멀었어?”


제갈수아는 바로 옆에 묶여 있는 여인에게 속삭이듯이 물었다. 홍련이라 불린 여인은 호위무사로 보였는데 벌써 반나절 동안 억지로 한 줌 남은 내력을 움직여 자신의 몸에 침투한 산공독의 기운을 몰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가씨, 죄송해요. 일반 산공독이 아닌가 봐요. 조금도 풀리지 않고 있어요.”

“홍련, 미안해. 괜히 나때문에···”

“무슨 그런 말씀을! 제가 제대로 지키지 못해드려서 이렇게 되었어요, 아가씨. 죽을 죄를 졌어요.”

“아니야, 홍련. 내가 바보같이 그 요상한 악사의 연주에 홀리지만 않았어도···”


분한 표정으로 찻집에서 본 악사의 얼굴을 떠올린 제갈수아였다.


오늘 아침.


일주인 간 이어진 한림원 학사들과의 교류를 마친 제갈수아는 그동안 제대로 구경도 못한 북경을 구경하고자 숙소를 나섰다. 무림의 문파이면서도 학문으로도 그 이름이 높은 제갈세가였다. 이따금씩 세가의 어린 동냥들을 북경의 이름난 학사들에게 보내어 배움을 교류하곤 했다.


한 달 후, 무림맹 입맹을 앞둔 제갈수아는 할아버지인 무림맹 총군사 제갈정을 졸라 콧바람이나 쐴 겸 북경에 오게 된 것이다.


“홍련, 북경은 황제 폐하께서 계신 곳이니까 아마 세가가 있는 호북성보다 더 큰 세상일 거야. 그치?”

“호호, 아가씨 그리도 좋으세요?”

“그럼! 홍련, 나는 세상 모든 것들은 눈에 다 담아둘 거야. 할아버님도 그러셨어. 글만으로는 세상을 모두 알 수 없다고.”

“맞아요, 아가씨. 세상은 정말 넓고 다양하답니다.”


평소보다 무척 들뜬 제갈수아는 북경 거리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장통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가 밖의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곳이 주는 새로움이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북적북적한 시장통에서도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들어왔다.


“찻집이네요, 아가씨.”

“유명한 곳인가봐, 홍련. 우리도 잠시 쉬었다 가보자.”

“네, 아가씨.”


입구에 모인 사람들을 지나친 그녀들은 어린 소녀의 안내로 이층 난간에 위치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마치 그녀들이 올 것을 기다린 것처럼 자연스러운 안내였다. 덕분에 입구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불만을 표출했지만 이미 조금 전부터 귀를 간지럽히는 경쾌한 거문고 소리에 제갈수아는 혼이 뺏겨 있었다.


일층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 앉은 젊은 악사가 만들어내는 음률은 어찌나 맑고 경쾌한지 지난 일주일간 학사들과 학문을 교류하느라 피곤했던 제갈수아의 마음을 편안히 풀어주었다.


“홍련··· 이런 연주는 처음이야.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야.”

“대단··· 하네요.”

“차 향도 참 고급지고 대단해.”


경쾌한 연주와 청량한 차 향의 조합에 제갈수아는 행복감을 느꼈다.


띠리링 –


서서히 빠르고 경쾌하게 휘몰아치던 연주는 점점 절정에 오르며 강하게 듣는 이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심장이 터질 듯 쏟아 붓던 폭풍우는 그 힘이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 긴 울림과 여운을 남기며 멈추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연주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마치 떠나간 님을 그리는 듯한 구슬픈 음률이 악사의 손을 타고 찻집 내부를 적셨다.


띠잉 –


여인보다도 고운 악사의 손이 현을 튕기자 두 눈에 눈물이 고이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님을 향한 애끓는 마음이 공기를 타고 가슴을 울리자 모두들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홍련··· 너무 슬퍼··· 히잉.”

“흐윽.”


두 여인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착각이었을까?


길게 기른 앞머리로 눈을 가린 젊은 악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악사의 손이 천천히 거문고 위를 부드럽게 움직였다.


“홍련··· 이번 연주는 마치 꿈 속을 걷는 기분이야···”

“예··· 아가씨··· 포근한 이불 속 같아요···”


그리고 눈을 뜬 곳이 바로 이 창고 안이었다.


“분명 그 악사의 짓이 분명해!”


제갈수아의 호위무사인 홍련도 분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당장 급한 것은 내력을 막고 있는 정체모를 산공독이었다. 왠만한 산공독은 아무리 그 효과가 강한 것이더라도 몇 시진이면 풀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몸을 지배하는 이 산공독은 반나절 이상을 애를 써봐도 조금도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내력을 못쓰는 한 제갈수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홍련은 조급해지기만 했다.


“아가씨,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아가씨를 지킬게요.”


다시 한번 다짐을 한 홍련은 눈을 감고 내력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편, 지붕 위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송연희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청풍송가.


지금은 나라에 몇 안되는 장군가로 유명하지만 한때 명망 높은 정파의 문파로써 중원에 이름을 떨치던 그녀의 집안이었다. 당시 가주였던 그녀의 증조부 송학우는 원명교체기에 뜻을 품고 북경으로 건너와 관부에 투신하였다.


이제는 무림이 아닌 관에 몸을 담고 있지만, 정의수호의 정신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창고 안에는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여인들이 십여 명이 붙잡혀 있었다. 납치되어 온 그녀들이 앞으로 어떤 수치와 고초를 겪을 지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반 각 뒤에 밖에서 시선을 끌 겁니다. 그 틈을 타 송연희님은 회주의 집무실에 잠입을 해서 장부를 꺼내 오기만 하시면 됩니다. 가능하겠지요?’


이 곳에서 지체하느라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집무실에서 장부를 꺼내고 이들을 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시험이냐··· 도의냐···’


그녀가 꾸물대는 사이, 밖에서는 이미 교란 작전이 시작되었다. 객잔을 정리하고 합류한 백웅은 자기 몸통보다도 큰 통나무를 구해와 장원의 정문을 향해 던져버렸다.


“으랏차차! 게 아무도 없느냐!!!”


와지끈.


그대로 통나무와 함께 터져버린 정문으로 들어선 백웅은 다시 한번 통나무를 주어 들고는 앞을 막아 선 장원의 무사들을 향해 던질 시늉을 하였다.


“누구냐!!!”


무기를 빼어 든 무사가 호기롭게 나서며 외쳤지만, 이내 백웅과 눈을 마주치고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족히 장정 두 명을 합친 것만큼 커다란 몸뚱이와 터럭 하나 없는 머리를 가진 백웅이 자신을 향해 인상을 쓰며 노려보자, 몸이 앞서 반응을 한 것이다.


“누구냐고?”

“그, 그렇다! 누구냐···!”


히죽.


“악당!”


휘이익 –


“으아앗!”


날아오는 통나무에 맞고 그 밑으로 깔린 무사는 그대로 기절했다. 동료가 당하는 모습에 겁에 질릴 법도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북경의 밤을 지배하는 독사회의 무사들 답게 어느새 백웅의 앞을 포위하며 살기를 번뜩였다.


주변에 있던 무사들도 정문의 소란스러움을 듣고 어느새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두툼한 손가락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무사들의 수를 세던 백웅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이런. 하나, 둘, 셋··· 대체 몇 명이야?”

“놈은 한 명이다! 죽여라!”

“총관님 명만 아니었어도··· 이런 건 내 체질이 아닌데···”

“뭐라고 혼자 떠드는 것이냐!!! 죽어!”


조장급으로 보이는 무사가 칼을 휘두르며 나서자 나머지 무사들도 백웅을 향해 무기를 빼 들고 달려 들었다.


“으헛!”


아슬아슬하게 칼을 피한 백웅은 허둥대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닿을 듯 말 듯 이어진 공격도 얄밉게 피한 백웅은 아예 등을 돌리며 장원 밖을 빠져나갔다.


“놈이 도망간다! 쫓아라!”


커다란 덩치인 그가 천천히 뒤뚱뒤뚱 달려가는 모양새가 어찌나 우스운지 담벼락 아래서 몰래 지켜보던 청서는 입을 틀어막으며 웃음을 참았다.


“푸흡! 연기 많이 늘었네, 백웅이. 자, 이제 우리 귀여운 신입 장단 좀 맞춰줄까?”


휘리릭 –


가볍게 담을 넘은 청서는 순식간에 건물들을 가로지르며 장원 내부로 사라졌다. 남아서 장원을 지키던 무사들은 전혀 눈치도 못 챌 정도의 놀라운 경신술이었다.


이런 소란스러움에도 여인들을 감시하던 무사들은 전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기도 했지만, 여인들이 소란을 틈타 도망이라도 간다면 그들에게 떨어질 회주의 불호령이 더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 어쩌지···”


창고를 지키는 무사들의 수는 총 다섯이었다. 하지만 조용한 산속이고 장원 자체도 그렇게 크지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하다가 또 다른 이들이 올 수도 있었다. 이들을 제압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조용히 한 번에 제압하기에는 그들 사이의 거리가 제법 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마 잠시 무사들이 장원 밖으로 빠져나올 것입니다. 길어야 반각. 그 후에는 저들의 경비가 더욱 강화되어 다시 한번 침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사이에 장부를 가져와야 합니다. 절대로 다. 른. 일. 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마세요.’


문유신은 출타 중인 독사회의 회주도 언제 올 지 모른다고 했다. 말 그대로 회주의 장부를 차지하려면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하지만···


“모르겠어. 비밀장부고 시험이고 뭐고 우선 여인들을 구출해야해.”


마음을 먹은 송연희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푹. 푹.


“끄륵···”


그녀의 장기인 쾌검이 어둠을 가르고 창고 앞을 지키던 무사 둘의 목을 꿰뚫었다. 뒤이어 삼 보 떨어진 곳에 뒤돌아 서있던 무사의 등을 가르기까지는 숨 한 번 쉴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쩌억 –


삽시간에 쓰러진 동료들의 모습에 놀란 무사들은 크게 소리를 외치며 무기를 들었다.


“침입자다!!! 지원! 지원!”


뜨겁게 얼굴을 적시는 피를 닦을 새도 없이 송연희는 가문의 절기인 청풍보를 밟으며 빠르게 창고 앞 마당을 가로지르며 몸을 날렸다. 건너편 건물에서 무사들이 움직임이 들려왔다. 예상보다 빠른 이들의 대처에 놀랄 새도 없이 그녀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무사 둘이 각각 날카로운 검과 도를 들어 올리며 방어했지만, 날아오른 탄력 그대로 한바퀴 공중제비를 한 송연희는 무사들의 등 뒤로 떨어지며 검을 휘둘렀다.


툭.


가볍게 착지한 그녀는 목을 잡고 쓰러지는 무사들을 확인도 하지 않고 곧장 창고를 향해 급히 움직였다.


벌컥 –


창고 문을 연 송연희는 놀란 여인들을 보며 외쳤다.


“구하러 왔습니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여인의 포박을 검으로 자르고는 품에서 단도를 꺼내어 건네 주었다.


“서둘러요!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이걸로 다른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알았죠?”

“······”


단도를 건네 받은 여인은 의외로 침착했는데, 왠지 익숙한 손길로 송연희와 함께 다른 여인들의 포박을 잘라냈다. 송연희도 그 모습이 의아했지만, 지척까지 다가온 발소리에 놀라며 몸을 돌렸다.


“이런! 이미 저들이 왔습니다! 제가 막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하앗!!!”


막 창고로 들어서던 무사는 그녀의 기습적인 발차기에 가슴을 얻어 맞고 그대로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송연희는 창고로 몰려드는 독사회 무사들을 빠르게 찌르고 베며 자리를 지켰다.


“홍련, 저 분··· 우리 세가 사람이야?”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위급상황에서 나타난 영웅이었다. 심지어 미소년이었다. 제갈수아의 어린 마음이 세차게 뛰었다.


“아뇨··· 처음 보는 무사네요. 그나저나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손목이 조금 아프긴 한데··· 괜찮아.”


포박에서 자유가 된 제갈수아는 창고 앞을 막아 서며 무사들과 싸우는 송연희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피를 뒤집어써가며 무사들을 상대하는 송연희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 같았다. 하지만 흐트러진 머리칼과 온몸 가득 뒤집어쓴 새빨간 피도 지금의 제갈수아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멋져···”


넋을 잃은 듯한 그녀의 감탄에 홍련은 기가 찼다. 하여간 감수성이 너무 풍부한 아가씨였다.


“··· 이런 상황에서 그런 소리라뇨.”

“하지만 너무 멋있는 걸?”

“휴··· 아직 제 몸이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저 무사님을 도와주고 올게요. 아가씨는 여기에 가만히 계셔야 해요. 알았지요?”

“응! 조심해, 홍련.”


빠르게 창고 밖으로 나간 홍련은 바닥에 떨어진 쓰러진 무사의 검을 들고 송연희의 곁에 섰다.


“구해 주셔서 고맙...”


감사 인사를 전하려던 홍련은 송연희의 옷을 적신 피가 적들의 피만은 아닌 것을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감사 인사보다는 그녀를 도와 이 상황을 빠져나가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홍련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안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이미 많은 인원들이 몰려와 창고 건물을 에워 싼 형국이었다. 자신의 몸이 평소와 같다고 하더라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예상 밖으로 송연희의 무공이 고강하여 벌써 동료들 십여 명이 당하자, 독사회 무사들은 슬쩍 뒤로 물러서며 잠시 대치를 했다.


이제 남은 무사의 수는 열 대여섯 명 남짓.


홍련이 합류를 했지만 여인이기에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송연희의 모습에 독사회 무사들은 틈을 좁히며 조금씩 그녀들을 향해 다가섰다. 그 중, 볼에 유난히 큰 점이 난 무사가 동료의 등에 숨어 외쳤다.


“어린 놈의 검이 꽤 무섭구나. 감히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협객 행세를 하느냐!”


단시간에 많은 수의 무사들을 홀로 상대하느라 무리를 한 송연희이였다. 게다가 정말 많은 일들을 한 번에 겪은 하루였다. 이미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기백만은 아직 죽지 않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 쉰 그녀는 점박이를 향해 도발을 했다.


“하아··· 하아··· 겁쟁이 주제에! 숨어있지 말고 나와서 지껄여 봐!”


그녀의 말에 무사들은 대치 상황인 것도 잊고 킬킬댔다. 동료 무사들이 비웃자 결국 점박이 무사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앞으로 나섰다.


“오냐, 내 오늘 네 놈의 명줄을 제대로 따주마.”

“들어오기나 해. 볼에 난 점을 빼줄테니까.”

“닥쳐!! 뒈져라!”


동료의 시체 위를 뛰어 넘으며 달려든 점박이 무사는 쥐고 있던 한쪽 주먹을 송연희를 향해 펼치며 반대편 손으로 쥐고 있던 단창을 찔러 넣었다.


파하학.


언제 준비했는지 모래알들이 송연희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송연희는 재빨리 눈을 감았지만 이미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모래가 들어왔다.


“치사한!”

“닥쳐! 죽어라!!!”

“위험해요!”


점박이 무사의 단창이 송연희의 복부를 향해 찔러오자, 옆에 있던 홍련은 있는 힘껏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찌르르.


그 순간, 무언가 등을 빠르게 두드리는 느낌과 함께 지금껏 움직이지 않던 내력이 기적같이 움직이며 홍련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싹둑.


전광석화같이 움직인 홍련의 검은 그대로 단창을 둘로 쪼갰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단창을 놓친 점박이 무사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재차 휘둘려지는 홍련의 검을 피하기 위해 기겁을 하며 얼굴을 틀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는지, 송연희의 흐릿한 시야 속에 거뭇한 점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점박이!!!”

“꾸웩!!”


볼 한 가운데가 뚫린 채 쓰러진 점박이 무사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광풍이 몰아쳤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둘이었고, 내력을 되찾은 홍련의 검은 송연희 못지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무사의 목이 홍련의 검에 의해 떨어지자, 창고 안의 여인들은 하나 둘 밖으로 나와 송연희에게 감사를 표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무사님. 이 은혜를 어떻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서 빨리 이 장원을 벗어나시길.”

“하지만 어떻게···”

“여기 제갈세가의 분이 도와줄 겁니다. 그렇죠?”


제갈수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송연희의 눈빛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벗어나요···”

[아가씨, 왜 부끄러워하시고 그러세요?]


홍련의 전음에 움찔한 제갈수아는 빠르게 고개를 도리질 치며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제가 제갈세가 출신인 것은 어떻게?”

“아까 놈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 그럼 어서 빠져나가요. 적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죄송합니다. 더는 도와드리지 못할 듯싶네요.”

“네?”


깜짝 놀란 제갈수아와 홍련은 송연희를 바라보며 반문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걸음을 옮기는 송연희의 모습에 제갈수아는 말리려 했지만, 홍련이 잡아 끌었다.


“아가씨, 여기서 적들이 더 몰려오면 정말 큰일나요! 보아하니 할 일이 남아있는 듯하니 어서 빠져나가요.”

“잠시만요, 어맛! 은공.”


자신이 너무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생각했는지 급히 소리를 죽이며 송연희를 불러 세운 제갈수아는 다시 한번 얼굴이 붉어지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은공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

“다시 한번 볼 날이 있겠지요?”

“··· 저는 관부의 인물입니다. 제 이름은··· 알려드릴 수가 없군요. 그럼···”

“아···”


멀어지는 송연희를 바라보며 아쉬워한 제갈수아는 재촉하는 홍련의 이끌림에 구출된 여인들과 함께 장원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그들 중 한 여인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는 것을.


“제법··· 인데?”


단도를 쥔 여인은 송연희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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