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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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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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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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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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내 죄는 무엇인가.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쓰러진 이를 살피려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지 그는 머뭇거렸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 없던 일이 되길 바래보지만, 냉기서린 바람처럼 현실은 냉정하다.


‘어떻게든 해야해. 어떻게든...’


“비, 비켜!”


밀려오는 불안감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그는 용기 내 쓰러진 이를 살폈다. 몸을 뒤집자 드러난 얼굴에 그는 멍해져 버렸다. 사람과 다르다, 사람 같지 않다. 그런 느낌에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코를 보던 그는 차마 귀를 가까이 기울일 수 없어 주변에 보이는 가볍고 얇은 무언가를 집어 코 위에 올렸다. 미동 없는 그것을 빤히 보다 뒤늦게 새의 깃털임을 인식한 그는 왜 이런 것이 집 안에 떨어졌을까, 아주 잠시 생각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무엇이라도 단서를 잡아보려는 것일 뿐이었다. 깃털은 날아다니는 새들에게서 혹은 음식물 찌꺼기에 포함되어 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미치겠네....”


거친 욕이 거듭 그의 입을 통해 나온다. 민감한 개는 그런 그의 행태를 유의하며 보고 있었다. 경계심이 바짝 든 몸짓을 그는 아직 보지 못했다. 개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는 생각을 거듭하며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뭘 해야 하지? 집에 시체가 있잖아! 시체라니....’


“....으아아아...! 젠장...”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소심하게 울분을 표해본다. 과연 어떻게 될까. 미래를 예상해보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은 동경했던 모습이지만 당당히 얼굴을 든 연예인이나 존경받는 모습은 아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겉옷으로 몸을 최대한 가린 채 손에는 수갑을 찬 모습이었다.


“젠장.... 왜 내게만....”


불행이 찾아올까. 아무도 그를 위로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편들어주지 않는다. 그는 오래전 그를 깨달았었다.


학우의 못된 장난에 화를 내 싸움이 일었을 때, 그의 담임은 그에게 잘못이 있다 단정 지었다. 그것은 치맛바람이라 불리는 어머니들과 선생들 간의 관계도로 인한 인식의 차이였다는 것을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돌봐주던 이모도 바쁜 일도 많은데 학교까지 오게 한 것에 화를 낼뿐, 그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는 그때 세상에 자신의 편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그는 세상 모든 것에 차가워졌다. 특히 사람에게 마음을 닫았다. 그렇게 마음을 닫아야 나중에 상처입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배웠다.


성실히 일해도 조금의 잘못만 부각되었다. 신문배달이 지연되었다고 따귀를 맞는 일도 있었다. 억울했지만 그 일을 전할 사람도 없어 혼자 삭혀야 했다. 며칠 후 따귀를 때린 이가 일을 그만두며 자신의 일까지 그에게 떠넘겼던 것이 밝혀졌지만 그에 대해 위로해주는 이는 없었다. 사실을 알게 된 소장은 그가 억지로 맡아야 했던 구역을 그가 원래 맡아야 했던 것처럼 굴었다. 그렇다면 돈을 더 줘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세상에 대해 잘 모르던 때라 당연하게 여기다 알게 된 뒤에 따지고 얼마라도 받아냈다. 그때의 경험이 그의 삶의 지침이 되었다.


낯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낯선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그의 사정은 봐주지 않았다. 그에게 그런 상황 속에 놓인 것에 대한 위로도 전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제사는 언제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불운한 일화에서 얻은 것은 독기와 자책뿐이다. 말을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항변해야 알아준다. 그를 깨달았기에 그는 장례식장에 온 아버지의 지인들에게 말했다.


-난 이사람 몰라요. 생부라는데 태어나 오늘 처음... 이렇게 사진으로 본 겁니다.


살아 있었다는 것이 분했다. 한번이라도 만나러 와주었다면 그것으로 족했는데.


-그러니 제사니 뭐니 헛소리 작작하시죠? 그리고 장례식장이 무슨 술판벌이고 노름하는 곳입니까. 시끄러우니 그만 꺼져 주시죠? 계속 떠들면 경찰 부릅니다.


그의 말에 당연히 손님들은 화를 내며 떠났다. 화장터까지 관을 운구할 때 필요한 인원조차 구하지 못해 업체에서 고용해야 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지인이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증오만 남은 아버지의 인복을 탓했다.


*


화나고 답답한 현재의 상황에서도 그는 자구책을 찾고 있었다. 알고 있는 법률 상식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흉하게 쓰러져 있는 죽인이가 보였다. 제발 꿈이었다면.... 찬 밤공기가 그의 도피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후우... 후우... 크으...후우...”


그는 현실을 직시하려 애썼다. 쉽지 않은 일이라 거듭 숨을 쉬며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삶이 끝난 이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가장일 법한 나이대의 남자였다. 죽었으니 그 것이 사실인지 물을 수 없다. 당연한 깨달음을 뒤로 하고 그는 다시 보았다.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는 자신처럼 혼자 사는 사람일 수 있다는 가정을 버리지 않았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야만 죄책감이 덜어질 테니까.


“무슨 죄목일까. 법...”


찾아봐야 한다. 억울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알아야 한다. 문득 든 생각에 움직이려던 그는 멈춰 섰다. 죽은 이를 그냥 방치하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젠장...나 너무 침착하잖아?”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던 그는 이내 떨리는 손을 보았다. 그리고 전신을 떨며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행이다. 그런 정상적인 반응에 그는 안도했다.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저 새끼 눈빛 봐라. 정신 나간 새끼라니까.


항변하지 않으면 무시 받는 사회였다. 자존감은 한없이 낮았고, 눈치 보며 살던 것이 버릇이 되었다. 약해 보였기에 괴롭히려는 이들이 생겼고, 그는 그들에게 적극 대항했다.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큰 효과가 있지만 제정신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곤 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어린 마음에 부모 없이 크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일까란 의문도 가졌었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신체반응에 ‘정신은 온전한데?’ 라고 생각하다 정말 온전할까 또 의문을 갖는다. 그런 의문들을 떠올리며 그는 움직였다. 무엇이든 눈에 보이면 처리해야 한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방식이다. 눈칫밥을 먹고 살려면 솔선수범해야 목안의 가시 같은 자신이 덜 아프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은 이유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삶이라 혼자 처리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플 때도 혼자 약국을 찾아가 약을 사먹어야 했으니까. 군에선 그런 그에게 여러 차례 포상휴가를 주었었다. 갈 곳도 없는 그에게.


‘차라리 군에 있을 걸.’


제안을 여러 번 받았지만 그는 사회가 그리웠다. 무언가에 속박된 삶이 싫어 체질이라는 주변 평가에도 뿌리치고 전역을 했었다. 삽자루를 들고 완벽한 몸짓으로 땅을 파는 이 순간 그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군에 남았다면 이런 꼴은 안 당하는 것을....


골목길에 선 담장과 7미터 가량 낙차가 있는 마당사이에는 흙으로 된 지반이 존재한다. 50도가 넘는 경사면이라 비가 오면 흙이 흘러내리곤 해 그가 시멘트를 사다 보강을 한 후였다. 전에는 화단을 꾸몄던 곳이었다. 담장을 높인 후 혹시라도 무너질까 싶었고, 뭔지 모를 말라죽은 화초가 가득한 곳이라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그가 손을 본 것이다. 낯설어 타인의 것이라 여기는 집과 달리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손을 댄 곳이기도 했다. 전주인과 그의 가족들의 손길이 덜 닿은 옥외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멘트로 흙벽 위를 덮었기에 벽면을 파낼 수 없었다. 그는 오래되어 균열이 생긴 마당의 시멘트 바닥을 들어내고, 부드러운 흙 땅이 나오자 그곳을 파내려 갔다. 그를 위해 먼저 개집을 옮겨야 했다. 개집을 둔 곳 주변에 유독 땅이 드러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가 습성에 따라 파둔 곳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지금은 모르고 있었다.


“너 때문에 이게... 이 개 새끼... 개새끼...”


교도소에 갈지 모를 상황이라 개만 나무라는 중이다. 한 시간에 걸쳐 땅을 판 그는 자신이 파놓은 땅 아래 고인 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물이 있었지.


작은 산에 자리한 동네였다. 집터가 샘이 있던 곳이라는 말도 있고, 아주 오래된 유명한 서예가가 머물던 집터라는 설도 있다고 남자는 들었다. 정보를 주는 사람은 한명이다. 그가 오락가락하는지 아니면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인지 매번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땅에서 물이 솟는 곳이란 점이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우물이 있는 집이었어. 나도 어릴 때는 이집에 와서 물을 길어가곤 했어. 그때 집주인 위세가 대단했지. 나중에 국회의원 된다고 땅도 팔고 다 날려서 쫄딱 망했지만.... 물 인심은 좋아서 우리처럼 가난한 집에는 공짜로 물을 가져가게 해줬지. 수도가 들어와서 필요가 없어지니 나중에 들어온 주인이 메꿨다고 했나? 그때 제대로 메꿔야 하는데 잘못했는지 물이 계속 올라와서 진땅이 되었다지? 그래서 집 기둥이 쓰러진 적도 있고.... 누가 그런 곳에 살고 싶겠어. 그래도 싸다고 들어와 살던 이들도 있었지만,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온다고 금방 떠나고 그랬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


주인은 한차례 바뀌었을 뿐이다. 대물림되었다는 것을 오래 산 노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이 기억하는 중간에 잠시 머물던 이들은 집주인의 친인척이다. 노인보다 집의 역사를 더 모르는 그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야 했다.


“마찬가지네요. 영감님...”


*


-으게에!


아버지와 형님아우하던 사이라던 노인은 그가 철문을 열고 나타났을 때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었다. 놀란 후엔 화를 냈다.


-거가 어디라고 숨어들어가서 살어! 이 거지 놈이!


거지가 빈집에서 산다고 노한 목소리로 꾸짖기까지 했었다.


-상속 받았습니다만...


기막혔지만 그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고, 노인이 동네 터줏대감이라는 것과 그의 아버지와 형님아우하며 지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도 노인과 그는 종종 만나곤 했다. 그가 벽면을 보수하기 위해 막노동을 하던 때였다. 그 이후에 두 사람이 활동하는 시간대가 달라 거의 마주치지 않는 중이다.


노인은 그를 볼 때마다 이것저것 묻곤 했다. 그리곤 들은 답보다 긴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그는 노인이 인적 없는 골목에 와서 재활훈련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들었다. 친했던 이의 집이라 자주 방문했었고, 당당했던 자신이 절룩이며 걷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은 점도 한몫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는 것도 들었다.


-나 때문이야.... 내가 아우가 판다는 것을 말렸어. 팔아서 뭐 할거냐고 했지. 몇 푼 받아 뭐하냐고... 아들이 있다더군. 아들 둘에 딸 하나 있는 걸 아니 그런 줄 알았지. 술 먹고 난리치다 도망간 부인과 그 애들 이야긴가 했는데... 그런데 아닌가 보군.


그를 애잔하게 보며 했던 말이었다.


‘제가 아닐 겁니다.’


속내를 꺼내 말하지 못하고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노인은 자신의 고집으로 집을 팔지 않은 이들에게 원망의 소리를 들었다. 그가 충동질해 함께 팔지 않고 버텨 더 큰 보상을 받자고 했었다. 그도 투기꾼인줄 몰랐던 이에게 충동을 당한 것이지만, 그것에 속은 것은 자신이기에 욕먹어도 싸다 스스로 말했다.


-아우는... 내 탓은 한마디도 안했어. 그날부터 끊은 술을 다시 먹었다는 것은 몰랐지. 통 소식이 없기에 안 좋은 생각이 들어 찾아와보니....


죽어 있었다. 싱크대 앞에 쓰러진 채로. 사인은 심근경색이었지만 술이 원인이라고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틀이나 방치된 상태로 있는 그의 아버지를 보고 노인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때 온 마비증상이 풀리지 않아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재활치료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정신이 없는데 전화는 했던지.... 119가 와서 나랑 아우를 실어갔다더군. 둘이 쓰러져 있었고 하나는 죽어 있으니 집단 자살이니 뭐니 그런 소문도 돌았고.... 다 내 탓이지. 멍청하면 입이라도 다물고 살아야 하는데, 괜히 나서서.....


마비가 와 장례식장에도 참석하지 못한 노인은 그 때문에 더 미안해하며 매일 재활을 핑계 삼아 그의 집 담장을 짚고 걷는 중이었다. 그게 노인의 속죄였다. 부질없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노인은 미련스럽게 찾아와 벽을 잡고 미안함을 계속 되뇐다.


밤에 일을 나가고 잠에서 깨어도 조용히 지내는 덕에 그는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와 산지 한참 후에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만난 후 더는 사람 없는 골목이라 말하지 않게 되었지만, 관심을 주는 이도 적고 노인도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꺼려해 동네 전체에 전달되지는 않았다.


*


멍하니 노인과의 대화를 떠올리던 그는 발목까지 차오른 물을 보고 인상을 썼다. 아직 봄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 차가운 밤공기와 발에서 전해진 물의 서늘한 기운이 그의 정신을 강렬히 깨우는 중이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은 심정이었기에 그런 감각들에 그는 더 짜증이 치솟았다.


“젠장...”


모르는 이라 해도, 어찌 물속에 넣을까. 그는 고민하다 엉뚱한 생각에 도달했다. 집안으로 들어간 그는 간이 욕조를 꺼내왔다. 그 안에 시신을 담고 물 위에 올려본다. 과하게 땅을 판 덕에 욕조는 충분히 들어갔다. 적어도 물에 직접 닿지 않겠다며 그는 간이 욕조 위에 놓인 시신 위에 낡은 스티로폼 돗자리를 올렸다. 옆으로 튀어나온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자 가위를 가져와 옆면을 잘라내 간이욕조에 맞춘다. 그렇게 임시 관을 만든 후 흙을 덮으려던 그가 삽을 던지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소금 포대가 들려 있었다. 지금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두 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시신을 오래 보관하려면 염장한다는 기이한 생각에 도달한 것뿐이다.


소금을 촥촥 뿌리다 나중엔 부어버리고 손을 턴 그의 뇌리에 석회란 단어가 떠올랐다. 미라를 만들 때 석회를 쓴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왜 미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도 모른다. 그는 또 움직였다. 집 뒤쪽에는 밖으로 난 문이 달린 오래된 창고가 있다. 지금은 그가 잡다한 물건들을 두는 곳이고, 쓰다 남은 백시멘트가 놓인 곳이기도 하다. 백시멘트는 소석회가 들어 있지만 미라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석회는 쓰는 방식이 따로 있다. 그는 그저 떠오르면 움직이며 현실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다.


“....허!”


백시멘트를 얼굴과 전신에 뿌린 후, 그는 하얗게 변한 사자의 얼굴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피 얼룩을 씻지 않아 이내 분홍색으로 변한 부위들이 더 기괴하게 보였다. 놀란 그는 급히 돗자리 뚜껑을 덮고 삽을 들어 흙을 퍼 넣었다. 정신없이 삽질을 하며 땀이 흥건해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땅을 고르게 다지고 그 위에 파낸 시멘트 조각을 직소퍼즐을 맞추듯 연결해 붙인 후에야 그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미친놈.”


자신이 해놓은 일이 뒤늦게 떠오른다.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시체를 유기하는 것도 죄다. 그런 상식은 있었다. 괴로워진 그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옷을 벗지도 않고 샤워기를 틀고 찬물에 머리를 식히며 그는 숨죽여 울부짖었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왜....


*


언제 잠이 들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깨어나 보니 알몸으로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그 자리에 누워 있음을 떠올렸다. 가만히 그 자리를 내려다보다 손을 내밀어 더듬어본 그는 놀라며 손을 움츠렸다. 그가 남긴 온기였지만, 마치 이전 아버지의 온기가 남은 듯해서다. 온기가 전해준 기이한 감흥은 떠오른 시신의 모습에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제 어쩌지.”


터벅터벅 걸어 밖으로 나가려던 그는 문을 열자 들어오는 찬바람에 급히 들어가 점퍼를 걸쳤다. 다시 나와 마루에 걸터앉은 그의 눈에 개집 밖을 방황중인 집돌이가 보였다. 땅을 파 시체를 묻느라 개집을 옮겼었다. 개는 집의 위치가 달라지면 허락받지 못한 공간으로 여긴다. 집돌이가 집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는 이유였다. 이를 알 리 없는 그는 어슬렁거리는 집돌이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다.


“넌... 너 때문에 내가... 이 개새끼야!”


터져버린 감정을 발산하려고 그가 달려들었다.


-컹!


개의 경고음에 그가 멈춰 섰다.


-크르르르....


집돌이는 겁을 먹었다. 화내는 주인, 그것은 이어진 폭력이 예상되는 행위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힘껏 말하고 있었다. 오지 마. 나 물 거야. 오지 말아줘.


“....살벌한 새끼.”


다행히 그는 아직 완전히 이성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랬다면 개의 이빨에 움츠리지 않고 달려들어 먼저 물었을 것이다.


뒤로 물러난 그는 집돌이처럼 경계했다. 혹시나 달려들까 싶어서. 집돌이도 눈을 피하지 않고 살기 위해 그를 주시했다. 두 생물의 경계는 오래 유지되었다.


“젠장...”


먼저 경계를 풀고 돌아선 것은 남자였다. 속으로 이런 상황에서 시장기를 느끼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여기며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주린 배를 살짝 누르며 그는 노트북을 켰다. 평소엔 TV대용으로 쓰는 것으로 인터넷을 직접 연결하지 않고 주변의 와이파이를 잡아 쓰는 중이었다.


아래쪽 길이 확장되며 주변 주택이 철거된 후 조성된 공원이 있다. 그곳에서 발신되는 시에서 관리하는 공용와이파이가 남자가 사용하는 통신 수단이다. 와이파이의 안테나 수를 늘리기 위해선 방의 창을 활짝 열고 창 가까이 노트북을 옮겨야 한다. 수신용 안테나를 사면 될 일이지만, 남자는 그런 물품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창을 열자 찬바람이 들어와 남자는 점퍼의 지퍼를 올려 잠그고 손을 비비며 검색을 해나갔다.


타닥 타닥.


그가 찾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것들이다. 과연 어떤 벌을 받을지, 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이다.


“뭐?! 무단침입한 사람은 개에 물려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기뻐하려던 그는 그것이 미국의 법체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집 안에 침입한 자를 물어 죽인 경우 정당방위가 성립될 요지가 있으며, 그 외의 경우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받게 됩니다.


“정당방위인가... 집에 있었다면 과실여부가 생길 가능성이 높겠지. 난 집에 없었고. 내가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일인데.... 젠장.”


겁을 먹고 시체를 유기해버렸다. 그대로 신고했다면 어쩌면 정상참작이 되어 그는 어떤 처벌도 없이 풀려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는 괴로워했다.


“젠장... 집돌이만 안락사하면 끝인 것을...!”


자신의 내뱉은 말에 그는 또 놀랐다. 너무 쉽게 집돌이의 죽음을 당연시 한 것이다.


“....뭐 볼게 있다고 담을 넘어 온 거야? 나도 넘기 힘든 높이인데 키도 그리 크지 않더니....아, 진짜 미친놈이 죽으려면 혼자 죽던가! 왜 넘어와서 개한테 물려... 죽는 거야.”


창이 열려 있음을 보고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미치겠네...”


멍하니 화면을 보다 그는 시신의 유기에 대한 죄와 형벌에 대해 살폈다.


“형법 161조...”


[제161조(사체 등의 영득)]

①사체, 유골, 유발 또는 관내에 장치한 물건을 손괴, 유기, 은닉 또는 영득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분묘를 발굴하여 전항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게 무슨 말이야? 관? 관을...도굴에 대한 법률인가? 그럼 도굴이 아니면 사체유기가 성립이 안 되는 건가?”


[제162조(미수범)]

전2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미수범.... 161조 2항의 미수범도 처벌한다는 것인가? 아...그런 것인가.... 그럼 난 무슨 죄지? 관에 있는 시신을 유기한 것이 아닌데... 길에 쓰러져 있는... 그건 아니겠고, 집에 와서 개에게 물려 죽은 시신을 유기한 것....”


이해할 수 없어 판례를 살피던 그는 실소하고 말았다.


“장례를 잘 치러주면 괜찮다고?”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시신을 화장해도 절차에 따라 제대로 장례를 했다면 사체 유기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례였다. 이 경우 다른 죄목이 생기겠지만, 그에겐 단지 법망의 허점으로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그럼 화장을 하면 난 무죄....아니겠지. 젠장...”


뒤이은 판례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사람을 살려서 인적 없는 곳으로 끌고 가 죽이면 사체 유기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뭐 이딴 법이 다 있어...허!”


죽인 후에 범죄사실을 숨기려 시신을 다른 장소로 옮겼다면 사체유기와 살인죄가 동시에 적용되지만 살아 있는 상태로, 혹은 실신한 경우에도 인적 없는 곳으로 가서 죽이고 그대로 두고 떠나면 살인죄만 적용된다는 판례였다. 사체의 정의를 떠올려보면 당연한 판결일 것이다. 허나 그에겐 법망을 피하는 교묘한 방법으로만 보였다.


범죄예방을 위해선지 법망을 피하려는 이들에게 답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그가 찾고자 하는 내용이 자세히 나온 곳이 없었다. 판례를 직접 찾아내 살펴도 알 수 없는 법률 용어가 가득했기에 그는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될지 가늠하지 못했다.


“짐작을 하자면... 우선은 사체를 발견하고 신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법... 개를...이건 무단침입이라 정당방위 성립인가...그런데 그 사람은 왜 이 집에 온 것일까.”


도둑을 떠올렸었지만 훔쳐갈 것 없는 곳임을 떠올렸다. 빈집으로 알려졌음을 아는 그였기에 더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설마.... 아니겠지.”


새어머니의 가족이 돌연 떠올랐다. 터가 좋지 않고 낡은 집이지만 시내에 그것도 지리상의 중심에 위치했고 집터도 넓다. 시세가 불안정하고 평가절하 되었다하여도 땅값은 그가 평생 번 돈보다 큰돈이 될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평생 외면한 부친이 물려줄 생각이 없을 것 같은 큰 가치가 있기에 그는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있었다.


“상속을 받지 못해서 알아보려고 누군가를 고용했거나, 그분의 친인척인 누군가... 아! 젠장!”


신분증이라도 꺼내 확인할 것을 하는 생각을 하며 그는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렇게 자책하고 나니 경황 중 자신이 벌인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상식적인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런 자신에 대한 자책에 시달리던 그는 문득 사체가 입은 옷에 주목했다.


“....양복이었나?”


제대로 기억나지 않기에 그는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차갑게 굳은 시신의 모습이 떠올라 그는 두려워졌다. 급히 눈을 뜬 순간 그의 눈앞에 죽은 이가 서 있었다. 죽은 이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고 있었다. 전신의 털이 곤두선 그는 몸이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컹!


숨도 쉬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던 순간 들린 개 짖는 소리에 그가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서 원망의 눈길을 보내던 시신은 사라져 있었다.


“...헉...헉...”


뒤늦게 호흡을 하며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낸 그는 아직 창문도 닺지 않아 방안이 서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컹! 컹!


“...도움이 안 되네.”


공포에서 꺼내준 집돌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계속된 소리에 짜증이 솟구친 그가 방문을 열고 뛰어 나갔다.


“뭔데?!”


마루의 미닫이문을 열고 밖을 본 그가 곧 괴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야아!!!”


집돌이가 땅을 파내고 있었다.


“하지 마!!”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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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2 오쎈
    작성일
    20.05.12 15:51
    No. 1

    픽션임을 강조하시는데
    아직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픽션을 다룰때는 먼저 커다란 암시를 준 다음 시작하면 궁금한 마음에 따라가는데
    잔잔하게 흘러가네요. 제가 몰입을 못해서 그런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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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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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죄는 무엇인가. +1 20.05.11 189 21 24쪽
1 그 집에는 아무도 안 산다. +2 20.05.11 494 101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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