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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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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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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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공존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개가 땅을 파는 모습을 본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혼이 나간 듯 멍해졌지만 찰나의 순간의 지나 그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노옴~!!”


달려가며 툇마루에 걸친 삽을 든 그는 개를 떨어트리려 앞으로 내밀었다. 놀란 개가 몸을 움츠리며 물러났다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겁을 먹은 그는 삽으로 몸을 보호하듯 가렸다. 개의 입은 그의 두 손 사이에 위치한 삽자루에 닿았다.


“....놔, 이 새끼야!”


개에게 겁을 먹었다는 것에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허나 그의 눈은 날카롭게 드러난 개의 이빨을 연신 살피고 있었다. 집돌이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힘주어 고개를 흔들며 물고 있던 삽자루를 당겼다. 자세가 좋지 않았던 그는 순간 몸이 기울며 끌려갔다.


“개놈이!”


급히 허리와 다리에 힘을 줄 때, 그는 발바닥에서 통증을 느꼈다.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 나온 그의 발은 흙과 뒤섞인 시멘트 조각을 밟아 버린 것이다. 통증이 느껴지지만 그는 살필 경황이 없었다. 여전히 개가 힘차게 고개를 저으며 삽자루를 당기고 있었다.


“너! 너...”


그는 그 모습에 울컥해버렸다. 함께 지낸지 이주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정을 많이 주었다. 자신은 할인하는 즉석식품을 사다 먹으면서 개에게 주려고 값비싼 사료를 샀다. 과자 한 봉지를 살 때도 그는 가성비를 따졌다. 그런 그가 하나에 몇 천원이나 하는 비싼 간식도 잔뜩 샀다. 비록 보는 곳에선 먹지 않지만, 조금씩 비는 사료와 두고 가면 어느새 깔끔해진 캔 간식을 확인하며 그는 아깝다는 생각을 지우곤 했다. 부끄럼쟁이 집돌이는 메마른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몸이 아파도 버티거나 정말 못 견디면 약국으로 힘겹게 걸어가 범용 의약품을 사던 그가 혹시 병이 들까 집돌이는 비싼 예방접종도 맞게 했다. 일을 나갈 때만 씻던 그가 물릴 각오를 하며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 씻기기까지 했었다. 아끼던 수건으로 털을 닦아 준 것도 지금 이 순간 그가 울컥한 원인이었다.


“나까지...물려고? 그래... 나도 죽여라!”


울분이 터진 그가 삽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어 휘둘렀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집돌이가 삽자루를 문채 붕 떴지만, 집돌이가 떨어질 때 그도 휘청거리며 끌려가고 말았다. 바닥에 다리가 닿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집돌이는 목을 틀며 다리를 움직였다.


-아가가가각!

“이런!”

힘주어 당긴 결과 그는 삽을 놓치고 말았다.


‘하...이제 내 차례구나...’


그는 각오하고 섰다. 유일한 무기를 빼앗겼고 집돌이는 목줄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이제 자신도 비참한 몰골로 죽은 이의 뒤를 따를 것이라며 그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런 죽음이라니.’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그의 몸은 조금씩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의 생존 본능이 그를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것이다.


-크르르릉. 아각! 아가가가!


그가 뒷걸음질 칠 때, 집돌이는 삽자루를 물고 뜯는 중이었다. 금세 너덜너덜해지는 단단한 나무자루를 보며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프겠지. 더럽게 아프겠지...!’


드디어 그의 정강이가 툇마루에 닿았다. 그는 집돌이를 노려보며 천천히 마루로 올라갔다. 문을 닫는 순간까지 그의 심장은 미칠 듯 뛰었다. 그 심장의 떨림은 문을 닫은 후에도 이어졌다. 마루에 달린 미닫이문은 얇은 유리로 된 격자문이다. 큰 덩치를 가진 집돌이가 달려들면 힘없이 깨질 것 같았다. 그는 흐린 유리 너머로 보이는 집돌이를 주시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잠기는 문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딸깍.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누른 후 그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눈에선 원통함과 현실의 비참함을 담은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크으. 개...새끼... 사료나 쳐 먹지... 왜 사람을... 사람 맛이 그리 좋다는 거냐... 평소 고기를 안 먹여서 피 맛을 보고... 개 새끼가....”


안락사를 시켰어야 했다. 그는 후회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허나 다시 흐르는 눈물이 그의 시야를 또 가려버린다. 진이 빠진 그는 몸을 늘어트렸다. 차고 늘 습기가 올라오는 바닥의 기운에도 아랑곳 않고 그는 누워버렸다. 그리고 곧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몸을 흔들었다. 그동안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그의 전신을 더 빠르게 적셨다.


*


“쥐약 있습니까?”


아르바이트생은 왜 편의점에서 쥐약을 찾는지 묻고 싶었다. 허나 어딘지 다급해 보이는 표정과 눈빛을 보고 보통내기가 아니란 판단에 말을 삼켰다.


“그런 것은 약국 가서 찾으셔야지요.”

“....약국에서 판다고요? 쥐약을?”


정말 모른다는 듯 남자가 묻자 아르바이트생의 턱이 살짝 들렸다.


“의약품이잖아요. 제가 약대 다니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친구의 언니의 남자친구가 약대 나와서 잘 알아요.”

“아아... 이거... 고맙네요.”


남자는 들어온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급한 걸음으로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아르바이트생이 중얼거렸다.


“쥐가 많은 곳인가... 어디지? 폐촌에 사는 건가?”


정확히 유추해낸 아르바이트생은 이내 플레이를 중단했던 동영상에 눈을 두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재벌3세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드라마였다.


*


쥐약을 구입하기 위해 남자는 인근 도농복합도시로 이동해야 했다. 그가 사는 곳에선 쥐약을 구하기 어려웠다. 쥐약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남자가 구입한 쥐약은 실명을 일으켜 서서히 굶어죽게 한다는 것이었다. 쥐약은 모든 포유류에게 해로운 것이므로 남자는 혹시 쥐약을 먹게 될 경우를 생각해 약사의 권고대로 비타민제를 샀다. 먹으면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그는 쥐약을 개봉하기 전 비타민부터 먹었다. 그 후, 노출된 피부를 비닐과 장갑으로 감싸고 물에 불린 사료에 쥐약을 섞었다.


‘사람 먹는 짐승은 키워서는 안 돼.’


그는 집돌이를 죽일 생각이다.


‘사람을 무시하다니. 개가... 개가 사람을 먹이로 여기다니...’


안락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고 그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과 달리 그는 그리 모질지 못했다. 출혈을 일으키는 와파민성분의 쥐약이나 사지경련을 일으키며 죽게 되는 또 다른 약 등은 효과가 더 빠르게 나타난다고 들었음에도 구입하지 않았다. 실명한 상태로 굶어 죽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하지 않고 보이게 되는 것들만 걱정한 것이다.


“....해야 해. 내가 주인이야. 내가... 보내줘야 해.”


떨리는 마음을 다스리며 그는 개집으로 향했다. 개가 또 시신을 묻은 자리를 파낼까봐 그는 그 위에 합판을 깔아 두었다. 합판에 새겨진 수많은 긁힌 자국을 보고 그의 약해지려는 마음이 단단해졌다.


“날 원망하지 마라. 네 선택이야.”


뭘 탔는지 모를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그는 자신의 의도를 직접 밝혔다. 그 후 삼일 동안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명한 집돌이가 죽기를 바라면서 비싼 모텔비를 내고 투숙했다.


*


“...젠장.”


그의 계획은 실패했다.


-그아앙!

-꺄하!


“젠장...”


집돌이는 멀쩡히 생존해 있었다. 흩어진 봉지와 그 안에서 흘러나온 음식쓰레기를 보고 집돌이가 삼일 간 멀쩡한 이유를 깨달았다. 거리를 떠돌던 개라 음식 쓰레기를 먹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사료에 작은 알갱이로 된 쥐약을 섞었다. 눈에 확 띄는 하늘색이라 사료와 섞기 위해 물을 붓고 사료를 불렸다. 그리고 정성껏 비볐다. 형태가 사라질 때까지 녹인 후 집돌이가 먹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형태의 먹이를 집돌이는 먹은 경험이 없다. 민감한 코는 사료 속에 낯선 이물질이 포함되어 있음을 경고해주었다. 떠돌이 개로 살며 음식을 철저히 골라먹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집돌이는 신뢰감이 사라진 주인이 준 먹이가 형태와 냄새까지 이상하지 먹지 않았다.


대신 들고양이들이 그 밥을 포식했다.


그는 잘 모르지만 고양이들은 이전부터 그와 공생해왔다. 그가 살피지 않는 구석구석에 고양이들의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워낙 은밀하게 살고, 그가 들어온 후에도 조용히 살아가던 개체들이라 그가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집돌이가 짖지 않는 이유에는 이들 고양이무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양이에게 사람들이 버리는 음식쓰레기는 주요한 영양수단이다. 그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쓰레기무단투기자들과 고양이가 공생하던 공간이 이 집이었다.


그가 온 후 고양이들은 더욱 조심히 생활했다. 그렇지만 먹어야 했기에 투기된 음식쓰레기를 꺼내 먹곤 했다. 그가 과하게 흩어진 음식쓰레기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지을 때, 고양이들은 포만감에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런 관계가 변화한 것은 집돌이가 오고 난 후부터다. 고양이들은 더 좋은 먹이가 생겼음에 기뻐했다. 집돌이의 체중이나 식성을 고려하지 않고 두고 가는 양 많은 사료가 바로 그것이다. 고양이들은 그 사료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루 한 끼였지만 영양 많은 만찬이었다. 그가 떠난 후 집돌이의 묵인 아래 사료를 포식한다. 대형견이라 많이 먹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가 과하게 두고 가기에 집돌이도 배를 굶지 않고 이웃들과 먹이를 나눌 수 있었다.


거리생활을 할 때 집돌이는 인정 많은 고양이를 만난 경험이 있다. 경계 없이 다가와 친근함을 표했고 먹을 것도 나눠주었었다. 한동안 함께 다니던 고양이는 아기를 낳기 위해 정착했고, 집돌이는 예민해진 고양이를 떠나 홀로 떠돌다 주민들의 신고로 포획되었다. 이번에도 그런 관계를 유지한 것은 아니다. 인정 많고 살갑게 다가온 고양이는 거리 생활 중 딱 한 마리 만났었다. 나머지는 보자마자 도망가거나, 그 반대로 죽일 것처럼 쫓아왔었다. 귀를 따갑게 하는 울음소리, 이해하기 힘든 몸의 언어, 집돌이는 고양이를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가 어떤 먹이를 두고 간 것인지 고양이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집돌이는 고양이들이 무서워 집에 숨어 있기에 경고해 줄 수 없었다. 고양이들은 평소보다 부드러운 먹이에 취해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그 결과 눈이 멀어 버렸다.


-꺄오!

-크하!


“지랄들 하고 있네...”


눈이 먼 고양이들은 몸에 무언가 닿으면 발광을 하곤 한다. 제 꼬리에 놀란 녀석도 보였다. 저들끼리 부딪히고 발톱을 세워 때리고 할퀴기까지 한다. 깡통하나를 쥐고 때리는 녀석도 있었다.


“넌... 개 맞냐?”


그가 한심하게 보았지만 집돌이는 집에서 눈을 부릅뜬 채 그만 노려볼 뿐이다.


“먹고 죽으라는 놈은 살고... 쯧.”


연신 혀를 차지만 그도 고양이들의 발광에 겁을 먹고 마당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모텔비... 아깝다.’


왜 삼일이나 집에 오지 않았을까. 계단에 서서 고양이들을 지켜보던 그는 새벽을 지나 해가 뜰 무렵 하나 둘 사라져가는 고양이를 본 후에야 집으로 향했다. 피곤했던 그는 급히 잠이 들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태양은 다시 사라졌고 그가 반기는 밤이 되어 있었다.


“우선...먹어야지.”


2시간 후 그는 단단히 무장한 채 집을 나섰다. 옷을 껴입어 자신을 보호했는데 특히 목과 손발을 강조해 감쌌다. 급히 찾아본 맹견에 맞서는 방법들에서 본 모습이다.


-뛰어 오르며 목을 노리기 때문에....

-노출된 피부, 특히 손발은 보호하기 취약하기에...


한손엔 긴 손잡이를 가진 냄비를 들고 그는 마루의 문을 열고 마당에 섰다. 그대로 신고해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다. 허나 이미 저지른 자신의 죄로 인해 그는 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죄의 흔적은 마당 곳곳에 남아 있다. 피가 묻은 시멘트 벽면을 보며 그는 자신의 안일함에 잠시 혀를 찼다.


도움을 받는데 익숙하지 않기에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악을 쓰며 살아왔기에 그는 친구도 없다. 자신을 모두 싫어할 것이라 생각하며 먼저 벽을 쌓고 대했기에 얻어진 결과다. 그는 언제나처럼 홀로 대항하기 위해 집돌이와 마주섰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을 먹어서는 안 된다. 넌... 아주 중요한 규칙을 어겼다. 그래서 난 오늘 널... 죽일 거야. 넌 나도 죽이려고 들었어....덤벼!”


팔을 크게 벌리고 위협하듯 달려드는 그를 보고 집돌이는 급히 집으로 몸을 숨겼다.


“어쭈?”


도망간 개의 모습에 용기가 팽배해진 그는 급성장한 자신감에 몸을 맡겼다.


“까불지 말고 나와! 덤벼! 오늘 사람이 왜 도구를 쓰는 생물인지 알려주마! 나오라고... 나와.”


개집 지붕을 냄비로 두드리며 악을 쓰던 그는 문득 부끄러움을 느껴 스스로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리 사람을 죽인 개를 해치우는 일이라지만 은밀히 행해야 한다는 자기변명을 하면서.


“...나와라. 너와 짧은 인연이...젠장. 그냥 나와.”


작은 입구 앞을 서성이던 그는 집돌이가 보이지 않아 무릎을 굽혀 앉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집돌이의 눈을 본 순간 사라져가던 두려움이 확 커진다. 침을 삼키며 자신을 다독인 그는 오리걸음으로 다가갔다.


“나오라고 했다... 고통 없이 끝내자. 넌 어차피 안락사야. 도둑을 물어 죽였다고 해도 세상은 널 용서하지 않아.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보호해. 배타적인 생물이야. 사람이 늘수록 야생동물의 수는 줄어드는 이치야.... 나으어!”


마치 호흡사이를 노리듯 말을 내뱉으며 다가서는 순간, 집돌이가 달려 나왔다. 튀어나온 집돌이를 보며 그는 자신이 상대적 우월감을 가진 높이를 포기했음을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것은 집돌이에게 눌려 눕게 된 후에 더 진하게 이어졌다.


“젠장...”


집돌이는 그를 물어뜯지 않았다. 올라타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집돌이가 노린 것은 이번에도 그가 가진 무기였다. 그러나 삽자루 때와 달리 그의 손가락 하나도 같이 물려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장갑을 뚫고 그의 살도 뚫었다. 피가 흘러 그의 뺨에 떨어졌다. 그는 집돌이의 코가 벌름거리는 것을 보았다. 당황한 표정도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집돌이가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곤 뒤로 물러나 주저앉았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누운 채 그를 빤히 보았다. 그가 처음보는 자세였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구멍 난 장갑을 보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그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삽자루를 물었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개가 어디를 물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손을 피했었어... 무기를 빼앗은 것이 일차 목표여서?’


냄비자루의 길이는 짧다. 집돌이가 물면 반 이상 차지하게 된다. 그런 곳에 손가락이 있었다.


“왜... 물지 않지...?”


물지 않았다. 물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기를 바라며 다가섰다. 집돌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상처 난 손을 내밀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고개를 살짝 들었던 집돌이가 혀를 내밀어 손끝을 핥았다. 잠시 동안의 일이지만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널 믿고 싶다.”


그는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상처 난 손을 다시 내밀었다. 일부러 쭉 뻗지 않았기에 집돌이는 그의 손을 핥기 위해 엎드린 채 기어와 그의 손을 핥았다. 손에 혀의 감촉이 닿는 순간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무는 개입니다.


“물기는... 개뿔도 모르는 사람이 소장이라고...”


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학대를 받아 무기를 든 이에게 민감한 개다. 그런데 삽자루만 빼앗았다. 냄비도 빼앗으려다 손가락을 물게 되었지만, 급히 물러났다. 그런 행동들에 그는 자신이 착각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했다. 어느새 집돌이는 그의 몸에 바짝 붙어 상처 난 손을 핥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집돌이의 몸을 다른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접촉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다.


조용히 떠올라 세상을 밝히는 빛이 스며들지만, 두 생물은 그를 인식하지 못한 채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려 집중하고 있었다.


*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나와 앉은 그를 집돌이는 전처럼 빤히 바라보았다. 전과 다른 점은 두 생물의 거리였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에 그는 서운했지만, 이전보다 가까워졌기에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여겼다.


‘조금씩 가까워지겠지.’


집돌이는 상처를 입히고 미안해했다. 그는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 확신했기에 의구심이 들었다.


“무는 개라지만... 네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흠, 정말 네가 죽인 것인가... 그게 의문이야.”


그는 상황을 돌이켜 보았다. 대문을 들어서고 처음 본 광경은 죽은 이를 핥고 있던 집돌이의 모습이었다. 급히 대문을 닫고 달려 내려와 개와 사람을 떨어트렸을 때 집돌이의 얼굴 주변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래서 물어 죽였다 여겼다. 당시를 거듭 회상해본 그는 개가 물지 않았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물었다면 옷이 찢어져 있었을 텐데... 찢어져 있었나? 흙이 많이 묻었나...”


사체의 정확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확인하기 위해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려면 밤이 되어야 하겠지.”


해가 떠 세상이 온통 밝아졌다. 담 뒤로 인적 없는 길이 있고 그곳에서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해도 예외는 있는 법이다. 키가 아주 큰 사람이라면 고개를 돌리는 가벼운 동작으로 볼 수도 있다. 담장 가까이 붙어 아래로 시선을 줘야 하지만. 시신을 이리저리 옮기는 모습을 좋게 봐줄 사람은 없기에 그는 밤을 기다리기로 했다.


“꺼내 봐야겠어.... 부패했으면 어쩌지.”


사체가 부패되어 팅팅 부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몰골의 사람을 영화에선 보았지만 실제로 본 경험이 없기에 두려움이 앞선다. 허나 처음 대면하고 엉뚱한 짓을 반복한 때와 지금의 그는 다르다. 이미 벌어진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스스로 냉정해지려 애쓰는 중이었고, 개가 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도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우선은...”


그의 시선이 집돌이에게 향했다. 위기를 인식한 듯 집돌이가 슬쩍 꼬리를 말고 일어나 집으로 가려 했다.


“멈춰.”


그의 말에 집돌이가 멈춰 섰다.


“....씻자.”


피얼룩이 집돌이의 털에 남아 있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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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죄는 무엇인가. +1 20.05.11 188 21 24쪽
1 그 집에는 아무도 안 산다. +2 20.05.11 494 101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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