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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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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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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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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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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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다락과 세혼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씻는 것이 낯선지 전처럼 집돌이는 자주 탈출을 감행했다. 그는 강제하기 싫었기에 줄을 묶지 않은 채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집돌이를 잡아와 끝까지 씻겼다. 씻기고 난 후 몸이 덜 마른 상태인데 집돌이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냥 있어.”


집돌이는 그의 말뜻을 이해 못했기에 고개를 돌린 채 쳐다보았다. 그리곤 마루문으로 다가가 앞발로 문을 툭툭 쳤다.


“그냥 있으라고.... 너... 나가면 또 저...분 파내려고 들까봐....”


먹으려 들까봐, 라는 말은 삼켰다. 집돌이가 땅을 팔 때 그는 분노했다. 집돌이가 시신을 꺼내 먹으려 한다는 오해를 했었다. 집돌이는 그의 말에 한참을 보다 문 앞에 다리를 접고 누웠다. 그리곤 처음으로 그가 아닌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집돌이의 그 행동에 서운함이 아닌 감동을 느꼈다.


‘날 믿는 건가...’


믿지 못하면 계속 보게 된다. 손찌검을 자주하던 이모부가 두려워 그는 돌아온 이모부를 늘 빤히 보곤 했다. 형편도 어려운데 아이를 떠맡았다며 그의 이모와 이모부는 자주 싸웠다. 사촌형제들도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았고 그 화는 다시 그에게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라 두렵지는 않았다. 대항할 수 없는 어른인 이모부와는 달랐다. 두려웠기에 본 것이다. 그 눈빛이 혐오스럽다며 또 맞곤 했고, 그 후론 몰래 지켜보곤 했었다. 갑자기 물건을 던질 때가 있어 피하려는 것이었다. 몰래 노려본다고 또 맞기도 했다.


눈치 보는 집돌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린 시절 가졌던 약한 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게 달갑지 않았기에 미움의 감정도 가진 채 바라보았었다. 처음으로 자신을 경계하지 않는 모습에 감격한 이유다.


-예전에 내가 잘해주지 못했던 것은....


짐을 찾으러 갔을 때 그는 작은이모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잘해주지도 못해주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다. 무관심했다. 자신은 책임질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던 사람이었다. 말주변이 부족하고 조금 더 잘사는 큰이모가 그를 떠맡게 된 이유였다. 다시 만난 날 작은 이모의 말투와 행동이 전과 많이 달랐다. 그 변화에 작게 놀라던 그는 곧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가 변했기 때문이다.


군 생활동안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한 결과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함께 지내게 해준 큰이모일가가 도망치듯 떠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 그는 추측한다. 그건 자신들이 해온 일들에 대한 죄의식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그 이후 더는 그들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다시 봐도 담담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되도록 마주치지 않고 살기를 바라고 있다.


‘두려움은 상대적인 것이지. 내가 널 믿기에 네가 두렵지 않은 것이고.... 너도 날 믿어주니 날 경계하지 않는 것이겠지....’


딸깍.


관심을 돌리려 캔을 연 순간 집돌이의 귀가 쫑긋 선다. 돌아보지 않는 모습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캔을 두고 식탁으로 다가가 주린 배를 채울 준비를 했다. 살며 익힌 몰래 훔쳐보는 기술로 개의 동향을 살피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무관심한 척 여전히 누워있는 집돌이의 꼬리가 작게 살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식탁은 불편해서... 방에서 먹어야겠다.”


3분이면 해결되는 즉석요리를 밥 위에 붓고 그는 밥과 찬을 양손에 든 채 방으로 다가갔다. 방문의 고리가 고장 났기에 잠기지 않는다. 발로 밀어도 쉽게 열린다.


툭.


문을 열고 들어가 책상위에 음식을 두고 그는 조용히 문으로 다가갔다. 닫혀 있는 문을 조금 열고 내다본 그는 조심스레 움직여 캔으로 다가가는 집돌이의 모습을 보았다. 먹는 모습을 지켜보지는 않았다. 그도 숨어서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에게 들키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 그는 오늘 새삼 느꼈다. 만약 정기적인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이었다면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오늘 밤 시간을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밤이 오자 그는 먼저 어느새 담을 넘어온 쓰레기를 치웠다.


“영수증이네? 크흐흐. 잘 걸렸다.”


배달 영수증이 포함되어 있는 쓰레기에는 주소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는 쓰레기를 펼쳐 다른 쓰레기들과 연관성을 확인했다.


“감자가 사천원, 마늘도 샀군.... 새송이버섯 한팩... 마트 영수증도 있군. 어디보자...전화번호 뒷자리가 같군.”


마트의 포인트 점수는 전화번호 뒤 번호로 저장된다. 배달영수증이 있던 검은 봉지와 음식쓰레기가 포장용기와 뒤섞인 봉지에서 나온 영수증의 주인은 동일인이라 판단한 그는 두 봉투를 하나에 담고 한쪽에 치워두었다. 그 위에 두 개의 영수증을 테이프로 정성드레 붙이고 다시 무단투기하면 신고하겠다는 경고문도 부착했다. 만약을 위해 사진으로 찍어 증거도 남겼다.


다른 세 개의 쓰레기들에선 단서가 나오지 않았기에 그는 새 쓰레기봉투를 열고 그 안에 쓰레기들을 담았다. 쓰레기들을 들고 밖으로 나온 그는 쓰레기처리장에 먼저 들려 짐을 덜어내고 쓰레기의 원주인집을 찾아갔다.


주소로 집을 찾기 힘든 동네였다. 그가 사는 집이 있는 골목은 매우 넓은 편이다. 가장 부유한 이들이 살던 곳이라 집들도 다른 곳과 달리 컸다. 그런 집들의 현재 집주인이 은행이라는 것도 그가 유일한 주민이 된 이유일 것이다.


2층 주택의 2층에는 불이 훤한데 1층은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문 밖에서 상황을 살피고 그는 벨을 누른 후, 쓰레기봉투를 집 앞에 두고 자리를 떠났다. 증거사진을 찍었다는 글을 첨부했기에 다시 버리는 짓은 하지 못하게 차단해 두었다. 따지지 않고 떠난 이유는 사람과 대면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감추려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처리하고 돌아오며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경계벽을 가만히 보았다. 그의 시선으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까치발을 들어도 어렵기에 매달려 보았다. 담을 넘어보려는 것이다. 발판이 될 것이 없기에 매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담에서 내려왔다. 주차하기 위해 헤드라이트를 켠 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문으로 들어온 그는 차의 전조등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 조용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


밤 11시. 그는 화장실과 이어진 이동로에 신문지를 깔았다. 그걸로 부족하다 여겨 그 위에 집안에 가득했던 김장봉투를 테이프까지 발라 깔고 난 후 그는 삽을 들었다. 삽을 든 순간 집돌이를 보았지만 마루에 앉아 있는 집돌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화를 내고 있지 않기에 경계하지 않는 것이다.


“영리한 녀석이야.”


그도 그런 차이점을 이내 깨달았다. 그는 땅을 조심스럽게 파들어 갔다.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아 부드럽게 파지는 땅이지만 혹시 사체를 손상할까 그의 손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이런.”


간이욕조의 테두리를 따라 흙은 걷어낸 후 본 광경은 시신을 덮은 돗자리가 흙의 무게에 눌려 있는 모습이었다. 맞춰 잘랐던 돗자리가 아래쪽으로 눌리며 시신의 얼굴부위가 흙에 닿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급히 사과하며 그는 손으로 흙을 걷어냈다. 이 순간 그는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걱정도 잊었다. 오직 사자에 대한 미안함만 떠올리며 손톱을 파고드는 차가운 흙 조각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신위의 흙을 털어내고 그는 고민했다. 물이 차올랐던 곳에 간이욕조를 두고 흙을 덮었었다. 흙이 차오른 만큼 수분이 차올랐는데 추위에 얼어버렸다. 욕조가 그대로 땅과 결합된 것이다. 삽으로 찔러보고 떼어내려면 더 큰 소리를 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예상하며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안고 옮기자...’


들어 옮기기로 결정하고 그는 큰 김장봉투로 사체를 감쌌다.


“흐어!”


새된 신음이 나온 이유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시신이 무겁기 때문이다. 아래쪽에 놓인 시신을 불편한 자세로 꺼내기 힘들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시신을 굴리듯 꺼낸 후 제대로 들 수 있었다. 앞으로 껴안으면 시신의 얼굴이 보이기에 그는 시신을 업으려 했다. 허나 굳어버린 시신의 자세 때문에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자의 얼굴이 자신의 목옆에 놓이는 자세가 나와 깜짝 놀라며 포기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사체를 담은 김장봉투를 끌고 들어갔다. 비닐과 비닐의 적은 마찰 덕에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마루의 턱을 넘을 때는 다시 굴려야 했다. 또 죄송하다는 말을 남발하며 그는 시신을 최대한 정중히 굴려 마루위로 올렸다.


턱!

“으히.”


굳은 시신의 발이 마루문에 닿아 소음이 유발되었을 때, 그는 세상이 자신을 주목하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동안 그는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굳어버렸다. 이어진 정적에 세상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자조하며 그는 더 과감하게 움직였다.


화장실로 시신을 옮긴 그는 잠시 고민했다. 그는 사체를 깨끗이 씻기고 싶었다. 석회와 소금으로 범벅을 만든 것이 미안했기에.... 그러며 개에게 물린 상처가 있나 살피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고, 그도 그런 생각을 해낸 자신에게 기겁했다. 하지만 그것이 개를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자신도 해명할 방법이 생길 듯해 참고 견디기로 한 것이다.


“...얼어서 그런가.”


사체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그는 몸이 얼어 굳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씻기려면 옷을 벗겨야 한다. 이리저리 굽은 채 굳은 시신의 몸에서 옷을 벗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벗겨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잘라내야 하나. 흐음.”


그래서 응급환자들이 나오는 장면에서 옷을 자르는구나, 그는 TV속 장면을 떠올리며 가위를 찾아 움직였다. 가위를 찾아들고 왔을 때 집돌이가 화장실 앞에 앉아 있었다.


“...왜. 걱정 되냐?”


잠시 살핀 결과 개에게 물린 것처럼 보이는 상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집돌이를 향한 그의 말투가 전보다 부드러워져 있는 것이다.


“넌 아닐 거야. 담 넘다가 굴러서 죽은 것이 분명해.”


그가 사체를 살피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취객이 무슨 이윤지 모르지만 담을 넘으려 했다. 높은 담에 올라선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후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담과 경사면의 높이를 합치면 7미터는 되는 곳이다. 경사면은 두껍게 시멘트가 포장되어 있다. 떨어지며 목이라도 꺾였다면 즉사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뼈가 부러진 곳이 많아 그의 추론은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옷을 잘라낸 후 드러난 상처를 본 그는 다시 집돌이를 의심하게 되었다. 상처 일부가 너덜너덜하게 찢겨진 것처럼 보였다.


“....젠장.”


그는 우선 사체를 정성들여 씻겨 나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물을 붓자 얼룩진 피가 씻겨 나가며 붉은 물줄기를 만들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 샴푸를 뿌리고 그는 미용사라도 된 것처럼 머리를 마사지 하듯 문질렀다. 문질러야 했던 이유가 있는데 그가 뿌린 백시멘트가 딱딱하게 굳어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손톱을 이용해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시멘트를 벗겨내느라 그는 집중했다.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집돌이는 어느새 자세를 낮추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머리를 감기며 그는 머리에도 상처가 나 있음을 확인했다.


“역시... 떨어져 죽은 것 같은데.”


허벅지와 옆구리의 상처 때문에 집돌이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그 상처들이 떨어져 죽은 후에 놀란 집돌이가 물어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시신이 쓰러져 있던 위치는 집돌이의 집 바로 옆이었으니까.


사체를 씻기고 난 후 그는 또 고민했다. 나체의 상태로 그냥 두기 미안했던 것이다. 벗겨낸 정장을 입히는 방법도 있다. 잘라냈지만 스스로 익힌 바느질 솜씨라면 충분히 기워낼 수 있다. 선을 따라 잘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그 전에 깨끗이 빨아야 했다. 그때까지 옷을 벗겨 두기 미안했기에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내 옷이라도 입히자.”


그것이 사자를 대하는 예우라 생각하며 그는 입히기 쉬운 옷을 찾아보았다. 위아래 색이 같은 트레이닝복을 찾아낸 그는 시신에게 입히고 난 후, 자신이 현재 입은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싸고 편안하기에 여러 벌 같은 것을 산 것을 잊은 탓이다. 찝찝한 기분이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옷 중에 가장 깨끗하다는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이제 어쩌지.”


화장실에서 마루로 시신을 옮긴 후 그는 다시 고민했다. 그 순간 자신이 해선 안 될 일을 또 했다는 자각을 가졌다.


“....나 미친 걸까?”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현재 자신이 여전히 공황상태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다. 보통 사람이라면 시신을 자신의 집에 들일 생각을 하지 못한다. 씻기고 옷을 입힐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질러버린 사체의 유기. 그 이후 저지른 일들이 그의 정신을 더욱 혼미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어 자꾸 엉뚱한 짓을 벌이는 것이다.


쓰러지듯 주저앉은 그는 다리를 접은 자세로 앉혀 둔 사체를 보며 멍해졌다.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다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곤 시신의 잘린 옷을 빨려 했다. 자신의 옷보다 사체가 입었던 옷이 더 비싸다는 생각에 다시 입히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속옷을 입히지 않았기에 입혀주고 싶었다. 자신의 속옷은 새것이 아니라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입히지 못했다.


빨기 전 주머니에 넣은 물품을 꺼내는 버릇이 있던 그는 사체의 재킷에 지갑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제야 급히 벗긴 옷에 있는 사자의 물품을 챙겼다. 팔에 찬 시계에도 피가 튀었기에 씻기 위해 벗겨냈다. 반지는 사체를 씻는 동안 함께 씻었다. 살이 부었기에 빼낼 수 없던 것도 그대로 둔 이유였다. 사자는 정장 외에도 외투를 입었었다. 외투 주머니에서 핸드폰에 매다는 액세서리가 발견되었다. 길거리에서 좌판을 하며 팔아본 물건이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줄이 끊어진 액세서리만 주머니에 있는 것이 이상해 그는 밖으로 나가보았다. 누구나 핸드폰은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나 핸드폰은 마당 어디에서도, 집돌이의 집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핸드폰 혹시 봤어?”


돌아봤지만 집돌이는 그를 쫓아오지 않았다. 아직 그렇게 친해지진 않았음을 자각하며 그는 쓰게 웃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온 그는 사체 옆에 멍하니 앉은 집돌이를 발견했다. 가만히 지켜보자 집돌이가 사체를 가볍게 코끝으로 건드리곤 했다. 마치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집돌아. 그러지 마.”


그의 부름에 집돌이는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응, 죽었어.”


마치 그리 물었다는 듯 답하고 그는 사체로 다가갔다. 그 앞에서 그는 사체의 지갑을 열어보았다.


“...젠장.”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가족사진이었다. 두 아이의 아빠.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 단란한 가족의 사진을 보고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크으....죄송합니다...”


그는 또 울고 말았다.


*


“얼음 팔죠?”


“네? 네...”


아직 겨울이 다 지나가지 않았다. 대량의 얼음을 사는 이는 드문 계절이었기에 아르바이트생은 남자를 기이하게 보았다. 그리곤 남자가 손에 쥔 포도주 병을 보고 피씩 웃었다.


“차게 해서 마시면 맛없는데. 오히려 데워서...”


포도주에 대해 아는 지식을 풀어내려 할 때, 남자의 눈빛이 변하자 아르바이트생이 급히 계산기에 얼음포대들을 눌렀다.


“취향.”

“예? 아....네. 취향이죠.”


기분은 나쁘지만 남자의 초췌한 모습에 더는 말을 걸기 싫었던 아르바이트생은 20개의 얼음팩과 포도주 한 병의 계산을 끝냈다.


*


포도주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체의 지갑에서 나온 사진 중에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이 있어 사온 것이다. 사자가 즐겨 마시던 술인가 싶어서다. 먹는다 해도 5천원 미만의 포도주를 먹어보았던 남자는 3만원이 넘는 포도주를 사왔다. 그렇게라도 사자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려는 것이다.


“데우면... 맛있나...”


남자는 아르바이트생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흘려들은 듯했지만 그는 데워서 마시는 것이 좋다는 말을 새겨들었다. 그래서 가스레인지를 켜고 냄비에 물을 받아 끓였다. 직접 끓여선 안 된다는 상식은 있지만, 현재도 제정신을 찾지 못했기에 뚜껑을 열어야 된다는 상식은 결여되어 있었다. 뜨겁게 데워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상식도.


펑!

“으악!”


결국 팽창한 수증기가 병을 터트려버렸다. 사방에 뿌려진 포도주를 보고 그는 기막혀 멍해져 버렸다. 사체를 단장하던 그는 손을 놓고 사방에 퍼진 포도주를 치우기 위해 움직였다.


“젠장... 젠장...”


세상에 대한 불만이 다시 솟구친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


오래된 집에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많이 존재한다. 자주 고치고 확장을 거듭한 집이라 더 그럴 것이다. 단층의 집이지만 다락이 존재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남자는 다락에 시신을 두고 있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마루를 올라서면 바로 보이는 정면에 위치해 있다. 집은 한차례 앞뒤가 바뀌었다. 대문으로 나가는 현관의 위치가 바뀌며 집안의 구조도 변경되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훤히 노출되는 상황이 되었다.


노출의 위험성이 큰데도 다락을 택한 이유는 다른 곳보다 서늘하기 때문이다. 외풍이 심해 다락에서 내려오는 공기를 막으려 남자는 다락의 입구를 도배지로 막아두었었다. 그곳을 개방하고 사체를 옮기려 했다. 땅과 일체화되려는 간이욕조를 떼어와 그곳에 두고 얼음을 채워 넣어 부패의 진행을 늦출 생각이었다.


그는 결국 간이욕조를 떼어내지 못했다. 떼어내려면 곡괭이를 사와 땅을 깨야하는 상황이었다. 연이은 추위로 간이욕조를 봄이 되기 전에는 꺼낼 수 없다 그는 판단했다. 삽질은 자신 있지만 곡괭이질은 서툴러 혹시라도 간이욕조를 깨버릴까 싶은 걱정도 있었다. 곡괭이가 일으키는 소음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바람을 불어넣는 유아용 간이 수용장이었다. 여름 특수 상품이라 구하기는 어렵겠다 싶었지만, 유아용 풀은 계절에 상관없이 팔려나가기에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걱정하며 찾아갔다가 쉽게 구하자 그는 일이 술술 풀린다고 기뻐했다.


“아...”


그런 그의 앞에 근원적인 문제가 나타났다. 다락입구는 좁다.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넓이를 가졌다. 큰 물품은 옮기기 어렵다. 이 또한 확장을 하며 다락입구를 좁힌 결과다. 남자는 그를 모르고, 안다고 해도 덧붙은 나무를 떼어낼 생각은 못할 것이다.


결국 부피가 크고 융통성 없이 딱딱한 플라스틱 간이욕조를 바닥에서 파내어도 다락으론 옮기지 못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유아용 풀이 공기로 부풀리는 물품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마루에서 부풀려 옮기다 깨달았다. 또한 몸이 굽은 채 굳은 사체도 다락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펴야하나.”


옮기려면 접힌 몸을 펴야 한다. 사자의 몸을 마음대로 접었다 펴는 것이 옳은가 그는 오래 고민하지 못했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기에. 밤일을 하는 것도 사람들의 밝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어둠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강제로 펴다 뼈라도 부러지면 어쩌나. 걱정은 가득하지만 그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힘주어 몸을 폈다. 마치 레슬링 연습을 하듯 다리를 잡고 두 다리 사이에 끼우고 당겼다.


뿌득!


“허.”


부러졌을까. 다리를 이리저리 만져보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부러져 있던 다리뼈를 제외하곤 이상이 없어 보였다. 사람의 신체에 대해 아는 것은 군에서 배운 상식이 전부다. 그를 바탕으로 그는 뼈가 뒤틀려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사자의 몸을 펴나갔다.


“...흠.”


몸을 반듯이 펴는데 성공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양손이 위로 쭉 뻗은 형태로 굳어버린 것이다. 팔을 내리려하자 부하가 걸리듯 뼈 소리가 나 그는 포기해야 했다.


“할 수 없지.”


바람을 다시 빼고 다락으로 올라가 찬바람을 들이켜 간이풀에 넣으며 그는 주변을 살폈다. 그가 모르는 물건들이 다락에 쌓여 있었다. 들어와 살게 되었을 때 그가 조만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물건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집이 아니란 생각에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실행하지 못한 채 방치하고 있었다.


간이욕조에 얼음을 채운 후 사체를 그곳에 두기 전 그는 사체를 김장봉투로 정성스레 감쌌다. 얼음이 녹아 물이 사체에 직접 닿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였다. 쭉 뻗은 팔을 한 사자의 모습을 보며 그는 또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미안했다. 사진을 본 순간 그와 사체와의 관계는 모르는 타인이 아니게 되었다. 조금은 아는 사람이었던 존재로 변화되었다. 그래서 죄책감은 더욱 커졌다. 계속해 몰리다보니 그는 제정신을 차릴 겨를조차 없게 되었다. 스스로 만든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었다. 작업을 마치기까지 삼일 간 그는 일도 하지 못하고 매달렸다. 다락의 문을 닫고 나서야 그는 겨우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작가의말

선추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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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2 오쎈
    작성일
    20.05.12 16:08
    No. 1

    싸이코인가?
    사체를 유기하면서 왜 저리 태연하지?
    일단 가봅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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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죄는 무엇인가. +1 20.05.11 189 21 24쪽
1 그 집에는 아무도 안 산다. +2 20.05.11 495 101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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