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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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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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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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대대는 어디로 5

DUMMY

5대대는 어디로





시야가 빙그르 돌더니, 갑자기 바닥이 보인다... 링 바닥 재질이 눈깔 30cm 앞에 있다. 무릎이 꿇렸다. 사이드-킥에 맞은 옆구리가 숨을 안 쉰다. 아픈 게 아니라 내 구조가 막혔다. 체력은 남아 있다. 레프리를 보니 발모가지 후려 넘긴 게 아니다. 슬립이 아니고 카운트를 하고 있다.


관장님... 관장님이 링사이드에 양손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게 지금 내 상태. 다리, 다리에 힘을. 일어서!


감각이 없어. 말을 안 들어. 에이 씨, 욕하기도 벅차다.


중간 기억이 없다.


얼굴에 수건을 치운다. 형광등이 보인다. 억울하다. 1분만 쉬면 맨정신으로 돌아오는데 링에서 그걸 못 버티고.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참고 버티면서 상대 틈 딱 하나만 노리면 될 수도 있는데. 모든 상대를 우습게 보지 마라, 말은 잘하지. 내가 20대에 전적 200이 넘는 룸피니 챔피언이냐.


화난다. 풀 데도 없고 삭히기만 하니 심장이 재가 될 것 같다. 아무나 잡고 죽도록 패고 싶다. 이것으로 젊음을 불태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난 그 이상이 아닌가. 나만의 무엇은 없나. 기분, 개 토하고 싶고 자존심 상해서 부들부들 떨린다. 변명도 안 되는 이 개 같은 거.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게 최고인가.


운동 선배 따라 숙소나 들어가? 밥하고 구두 닦고 개 처맞고 야구빠따 들고 봉고차 타? 거긴 진짜로 쌈빡해? 어린놈이 너무 많은 걸 바랐나. 뭐 이렇게 화끈한 게 없어. 죽을 때까지 완전히 서로 아작을 내는 거 없나. MMA가 답인가? 감량이 아니라 유청-단백 대두-단백 먹고 벌크를 키움? 모르겠다. 이 병신 같이 누워서...


게임은 또 시작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쇠 타는 냄새. 플라스틱 타는 냄새, 군용텐트 같은 거 타는 냄새.


쇠가 타는 냄새라기보다 쇠에 붙은 도료가 타는 냄새겠지. 헌데 군용이 타는 냄새는 참으로 비슷하구만!


펑! 펑!


트럭에서 뭐가 터진다. 모든 생물과 식물이 어린애처럼 몸부림치며 떤다.


내가, 내가 이걸 만들었느니라. 어둠 속 라이터 돌처럼 주황색 화염이 터지고, 타오르는 불빛에 물체들이 불규칙하게 산란한다.


“그래도 밤이라고 화염이 보이네.”


군욕 폭약은 원래 펑! 하면, 검은 연기 90 화염 10밖에 안 된다.

불길이 하늘로 타오르고 치솟는 굵고 검은 연기. 폭발 직후 사방으로 엄청난 파편이 날아오고 낙하했다. 실폭으로 치면 대전차지뢰 큰 거 두 개 터졌다. 방화범이 바로 이런 기분야? 어이, 오줌 싸겠구나 야! 화끈해. 와우. 나 봐라 나. 벌어진 입, 코로 냄새가 들어와 내게 주술을 건다. 내 손을 보고 싶다. 이 거대한 그림을 정말 내 손으로 만든 거냐?


작은 쇳조각들이 날아 오지만 아직 끝 아니지. 세 번째 탄을 끼우고 조준경으로 물색. 교범에나 나올 그림, 내가 바라던 각도, 도로가 산에 막혀 90도 꺾이는 곳, 내 눈앞에 도로가 수직 1자로 보이고,


‘트럭. 쏴.’


격발! 로켓이 발사관을 나가면서 원시적인 노란색 불꽃이 튄다. 산야가 또 흔들리고 난 다시 탄을 돌려 끼우고....


‘뭐가 안 보이네 이제.’


조준하지 않았던 빈공간을 쏴!


눕거나 뛰는 그림자들, 웅크려서 산을 향해 번쩍이는 총구들. 고함.


아이고 몸들 많이 상했나 보네.


“우르릉!!!”


땅바닥이 들썩. 에고, 작은놈이 하나 또 터져. 걸렸어.

목메어서 외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도로 중앙에 대전차 두 개. 깊게 파지도 않았다. 제대로 파려면 공병삽으로도 평탄작업까지 한참 걸린다. 쟤들은 야간폭격 때문에 헤드라이트 거의 안 켠다. 켜면 어느 틈엔가 공중에서 서양문물이 내려와 때린다.


어느 방향에서 오다 걸릴지 모르니 양방향으로 30m 벌려 대전차 하나씩 추가. 사각형 섹터 도로변에 대인지뢰 네 개 - 모두 BT 인계철선으로 나무에 묶고, 대전차지뢰 바닥의 BT부터 대인지뢰까지 눈에 보이는 대로 인계철선을 복선으로 묶어서 회로도가 기억 안 난다. 하나 터지면 6개 중 네 개는 터질 거다. 교육 중에서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고 반복된 지뢰/BT. 이 과목, 1년에 최소 네 번은 하지. 파랑색 교보재 터트리면서.


이거 재밌었구나.


어? 어딨어? 벌써 다 쐈어? RPG 일곱 개가 벌써?


고개 들어 밤하늘의 반달. 포효한다.


“시원~~~하다!!!”


맨날 딱콩질만 하다가...


승리냐 공포냐 무엇이냐. 고기 타는 냄새까지... 집중력이 극에 달해 정신이 헤까닥하셨나? 현실인지 가상인지. 사실, 극도의 집중력이란 공포지. 내 몸이 떨리고 있어. 떨리면서 흥분하고 뭔 이런 게 다 있냐...


틱 틱 탁. 총알이 잎사귀를 관통하는 분명한 소리. 쏘네, 이제. 퇴출 타임! 도망갈 시간! Road Ambush! misfit, twilight zone. R.A.M.O.N.E.S. Anti-amore mines burning.


발사관을 나무에 힘껏 후려 까고 양손을 편다. 수고했다, 7호 본좌 동무.


땅바닥에 칼라시니코프 잡고, 퇴출!


총구를 땅으로 내려 총을 수직으로 흔드는 버릇. 전에 우연히 털었다가 총구에서 작은 돌들이 나왔었다. 총이 물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만 하는 거 아니구나. 총열 파열할 뻔했다. 알아서 자주 하게 되는데, 왜 영화엔 이게 안 나오지?


장대위, 최상사, 형추, 영배, 은솔이...


나 빼고 다 작살난 건가.


나 혼자 혈혈단신 강을. 여러 개 중에서 가장 유력했고 많이 거론했던 도하점에 나 혼자. 이틀을 산에서 기다렸다. 나 이전에 누가 왔을 확률은 없어. 1차 2차 재집결지 모두 발자국 하나 없었어. 강변에 이틀간 순찰병만 보였지. 결국, 다섯 브라보에 도착한 건 나 혼자야.


이젠 5대대가 날 두고 증발했어. 재집결지나 재집결 방식을 말 좀 해주면 어디 덧나냐! 내가 제일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여기 지역대도 우리 해파리 얘기 들은 사람이 없어. 아니, 우리가 온다는 것도 몰랐지. 대대장만 안 거야. 제기랄. 이산가족이냐? 다 죽었어? 우리 박쥐 해파리들은 어디로 갔어. 조장님 깔꾸리 최는...


체력이 하도 떨어져 다 버리고, 총에 탄창 하나 끼고 목에 군화 걸고. 횡영으로 끝도 없는 강 저 건너편을 향해. 빛이 없어 반대편 뭍이 안 보인다. 내 물차는 소리만 꼬로록 꼬로록 들리고, 나가는 기분도 안 든다. 멀리 산 그림자만 보며, 저체온증으로 (스쿠버교육 용어) 뒤집어 까질 거 각오하고 정신이 나가길 기다리며, 전에 했던 것처럼, 혼자서. 그래, 혼자서...


걸어라. 미련이 있거든, 죄책감이 있거든 생각 말고 걸어라. 총을 들어. 불을 뿜어. 지뢰 폭발로 몸이 찢기고 불타는 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줘? 어차피 고통만 연장되다 끔찍하게 죽는다. 걸어라. 뒤로 가는 걸음은 이제 식상한다. 마음은 도망치나 발은 밑으로 간다.


내가 날 볼 생각이 없지만, 나 지금 떨고 있다. 말만 많을 뿐 평범하다. 난 항상 링에서 떨었었다. 다른 놈들도 그런지 궁금해.


미적거림. 주저는 내 안의 천사와 악마의 교미니라.


링에 조명이 떨어진다. 중앙으로 나가. 난 주인공이며 지배자이며 하라마호이며 버지니아 공대의 햄릿! 울부짖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대드는 놈은 몸통에 박아. 내 검은 얼굴에 서릴 노오란 화염, 내가 바라는 모습이야. 얼굴에 화염 빛이 떨어지는 검은 얼굴 짐승.


탄창 비면 땅바닥에 버리고 교체.


걸어. 계속 걸어.


그 누나 잘 있나? 날 체육관에 가게 한. 여기까지 날 보냈네.

하하하. 존나 웃기다.


자, 이제 평지. 자세 잡아! 급작 타깃이 출현한다. 대처하라. CQB 활용! 조준간에 턱 붙이고 양 눈 떠, 총구 수평. 상체 미동 금지. 탄창 교환 시간 없고 급하면 허리에 권총. 제압 우선순위 신속 선별! 보행사격은 발바닥의 안정성에서 시작한다. 해파리는 여전히 흡착할 피가 필요하다. 초탄 명중. 초탄 명중.


I'm the One.

Salute!


자유, 평등 평화 행복. 희망의 나라로.


‘징. 징 소리가 들려.’


내 몸이 날아간다.

모르겠다. 내가 왜 날아가는지.


뭐가 또 터졌지?

내 건 없을 건데.


눈앞에 검은색으로...

아, 머리와 등이 뭘 때렸다.


지금 생각이 정상이 아냐.


소리는 들리나 앞이 안 보인다.

이제, 죽나 보다.


아, 이 자욱한 화약 냄새.

폭약 냄새?


이제 죽나 보다.


호흡. 숨을 쉬어. 심호흡.

이 심호흡에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보고 장님처럼 간다.


뭐가 터졌어.

그 충격으로 내가 날아갔어.


이건 충격이 정말 강했던 거야.

몸이 마비된 것처럼 감각이 없어.

손도 발도 신호가 없다.


그런데 뭐가 저렇게 터지지? 내가 설치한 건 끝난 것 같은데. 탄약 트럭에 유폭 났나? 아닌데. 내 지뢰가 터질 때 유폭되지 않으면, 불에 탄다고 포탄 같은 게 막 터지지 않아. 안 그렇지. 쇠 껍데기 안에 폭발에 준하는 압력이 열로 전달되지 않으면 안 터져. 용접기로 해도 안 터져. 포탄은 뇌관이 분리된 상태라, 포탄 자체가 화염으로 유폭하려면 1,000도(C)는 넘어야 할걸.


꽝!


뭐지?

또 터졌어!

심호흡,


기다려봐. 소리가 두 개야.

1) 저릉!

2) 꽈릉!


어?


어서 눈을 떠.

죽더라도 보면서 죽고 싶다.

아, 할머니 생각난다.

내가 말했었지.

숨이 거칠어지고 불규칙해지는 할머니에게,

무슨 용기로 그랬나 몰라.

나는 귀에 떠들었어.


구급대원은 의식이 없다고 했지만,


난 그때 응급차에 누운 할머니가 분명, 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 눈을 떠.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눈을 떠! 할머니, 나 노마야. 할머니가 태명을 낮게 지어야 한다고 할머니가 지었잖아. 이놈아 에서 노마. 뭐라도 부여잡아. 눈을 떠야 하루라도 더 살아! 할매. 어서! 어디라도 꼼지락거려봐! 어서. 할매! 뜰 수 있다고 생각해. 이 떠질 거라고 믿어! 할매! 내 얼굴 보고 가야지! 할매. 할매!’


눈이 떠진다.


내 눈이 열린다.


어둠. 화염.


저릉~~~!

꽈릉~~~!


저 한참도 멀리서 뭐가

반짝. 이와 동시에 저릉!


그리고 여기서 꽈릉!


저기서 터지는 거야 쏘는 거야?


이런,


저건 탱크야.


탱크가 왜 여길 쏘지?


여기서 오인사격이 날 일이 있나?

미친 거 아냐?


오,


아까 별을 봤지?


오,


저 저릉! 남쪽이야.


여기는 해파리 쓰리.

여기는 해파리 쓰리.

해파리 전망. 전망.

모든 해파리는 집결하라.

당소 해파리 쓰리.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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