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할아버지···, 딱 오 분만 더 잘게요."
마을의 아이 '유탄'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방 안의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에 더욱 잠을 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이 누군가에게 잡혔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나··· 나쁜 놈들!"
유탄은 눈 앞의 사내들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할아버지가 늘 저녁을 해먹던 냄비 화로에 불을 지피고는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유탄은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유일한 문을 향해 뛰쳐 나가려는 찰나.
코 끝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그 순간이었다.
"딱 좋게 일어났군. 이리와 앉아라."
자신을 향해 말하는 적의 없는 목소리.
예상치 못한 상대의 평온한 태도에, 유탄은 어찌할까 고민하다 이내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들 사이에 앉았다.
"먹어라. 몇일이나 굶어 위가 쪼그라들었을 테니. 조금씩 꼭꼭 씹어먹고."
이윽고 사내가 건네준 그릇 안에는 고기와 약재가 섞인 영양 만점의 죽이 담겨 있었는데, 잠시 눈치를 보던 유탄은 허겁지겁 죽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루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자··· 아니 도련님께서는 언제 이런 요리실력까지 익히셨습니까? 설마 왕실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같은 것입니까?"
"그냥 배고프면 뭐든 맛있는 법이다."
"그런 수준이 아닌데요.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루쟌의 극찬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죽 만들기 lv3' → '죽 만들기 lv4'로 레벨업 되었습니다.>
생활 계열 능력은 상대의 만족감에도 레벨이 오르는 모양.
이에 베히문트는 그저 옅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그릇에서 죽을 한 수저 퍼 올렸다.
-끄윽.
순간 귓가로 들려오는 작은 트름 소리.
베히문트가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죽을 다 먹어버린 유탄이 아쉬운 듯 수저를 쪽쪽 빨고 있었다.
이에 베히문트는 자신의 그릇을 유탄에게 건네곤, 다시금 받을까 말까 눈치를 살피는 유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꼬맹이는 눈치 보는 거 아니다. 죽은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니 사양말고 계속하여 먹어라."
이에 유탄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연신 숫가락질만 할 뿐이었다.
+++
"형들은 누구에요?"
이제는 완전히 경계가 풀려버린 유탄이 베히문트에게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베히문트는 짧게 대답했다.
"용병."
엘리샤 왕녀의 부탁을 받고 왔으니 틀린 말은 아닌 바.
헌데 그 말을 들은 유탄은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 시작했다.
"용병이면 돈 받고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들인거죠? 그럼 제 전 재산을 드릴테니 납치된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유탄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쿠퍼 몇 개를 꺼네 베히문트에게 건넸다.
베히문트는 그 콧물 범벅이 된 쿠퍼를 받아들며 물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지?"
"몇일 전에 흐윽. 좀비와 함께 웬 나쁜 사람들이 찾아와서 사람들을 흐윽. 광장에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울먹임에 제대로 알아 듣기 힘든 유탄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벨트라 도시에 좀비 사태가 일어난 시각.
좀비를 이끄는 한 네크로멘서들이 이 마을에 방문했다는 것.
그리고 이후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광장에 모아놓고는 자신들이 구해온 마차에 태워 사람들을 어딘가로 납치했다는 것이었다.
'이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네크로멘서들의 흔적을 발견하였군.'
베히문트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네크로멘서의 수장인 다크 엘프가 죽으며, 좀비 사태의 의뢰주에 대한 추적의 실마리가 끊어진 상황.
예상 외의 장소에서 그들의 단서를 다시금 찾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을 납치한 이유는 알고 있니?"
"잘은 모르겠어요. 흐윽. 할아버지가 저를 급하게 약초 더미에 숨기는 바람에··· 아!"
유탄은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분명 할아버지에게 '뭔가'를 만들라고 했어요."
"무엇을 만들라고 했지?"
"그것까지는··· 자세히 모르겠어요···."
이에 베히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왜 마을 사람들을 납치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만하면 큰 성과나 다름 없었다.
이제 이후에 할 일은 정해진 바.
"루쟌. 마차가 도착하는 데로 아이를 마부에게 맡기고 우리는 네크로멘서들을 추적한다."
"네, 알겠습니다."
루쟌의 짧은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끝이 난줄 알았던 네크로멘서들과의 악연이 다시금 시작된 바였다.
+++
안개가 낀 깊은 고원(高原).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그곳을 베히문트와 루쟌이 걸어가고 있었다.
"왕자님, 점점 냄새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거의 다 도착한 모양이군."
베히문트는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마을의 아이 유탄과 헤어져 네크로멘서와 마을 사람들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일주일 째.
이미 그 흔적을 추적하기도 힘들 정도로 경과된 시간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발달된 루쟌의 후각으로 조금씩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음?"
그렇게 냄새를 맡으며 앞서 걸어가던 루쟌은 우뚝 멈춰섰다.
베히문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뭔가 새로운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는 것이 아무래도 몬스터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이 지나가는 길이 하필이면 몬스터의 서식지와 겹치는 모양이었다.
이에 베히문트와 루쟌은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바.
"루쟌. 아직도 몬스터의 냄새가 맡아지나?"
"네, 오히려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베히문트는 허리춤에서 엘리샤 왕녀가 보상으로 준 드워프제 검을 뽑아들었다.
루쟌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바.
분명 이 근처에 몬스터가 있는 것은 확실하였다.
그렇게 베히문트가 의태(擬態) 능력이 있는 몬스터를 의심하며 <기척 감지 lv.3>를 발동하는 찰나.
"이런!"
베히문트는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루쟌에게 소리쳤다.
"루쟌! 위다!"
그렇게 올려다 본 하늘.
그곳에는 무소음의 고속 비행을 하는 몬스터 '하피(Harpy)' 수백 마리가 어느샌가 그들의 머리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마치 동물의 시체를 파먹기 위해 주변을 맴도는 대머리 독수리 같은 모습.
이윽고 한 하피의 울음 소리와 함께 그들은 베히문트와 루쟌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에엑!
- 작가의말
분량을 늘려 14p 쓰려고 했는데 실패했네요.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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