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대부분을 해결해준다5
하루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시간은 언제일까?
길을 가던 사람에게 묻는다면 백이면 백 누구나 아침과 저녁 시간을 말할 것이다. 그야 아침과 저녁에는 출근길과 퇴근길이 있기 때문이다.
올 해 이십대 후반으로 회사에 입사한지도 5년이 지나는 김대리 역시 출근길에 몸을 맡기고 지옥을 경험했다.
빈 공간 하나 없는 지하철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의 괴로움을 겪은 그는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마누라가 챙겨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후우우우……먹고 살기 참 힘들어.”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
마음 같아선 당장 직장을 때려 치고 자유로이 놀고 싶었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음, 좋아. 집에 있는 마누라와 자식이라도 생각하고 마음을 다시 잡아보자.”
출구 앞에서 나눠주는 신문 권유를 쿨하게 무시하곤, 혼자 눈을 감고 사색에 빠진다.
먼저 마누라.
- 네? 용돈 인상? 지금 몇 년 째 남의 집에 들어가서 살고 있는데도 용돈을 더 달라고요? 알았어요. 일단 여기에 서명부터 해주실래요? 별 거 아니에요. 누구나 다 쓴다는 이혼 서류니까.
“허억!”
마치 출근길까지 따라와 바가지를 긁는 듯 한 생생한 경험을 한 김대리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번뜩 떴다.
“아직 이런 내공은 안 되는군.”
저번에 점심 식사를 회사 상사와 함께하는 도중 가끔 힘들 때 가족 생각을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상사는 놀라운 얼굴로 감탄하면서 말했다.
“요새 젊은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군. 벌써부터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일한다고? 어떤 영약을 처먹었기에 그런 내공을 가졌나? 아무래도 자네가 갈굼이 부족해서 가족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모양이야. 허허허!”
이후, 오후에 있던 업무 시간 도중 군대 선임이 천사로 보일 정도로의 갈굼을 먹었다.
김대리는 생생하게 들리는 상사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소름이 끼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좋아, 그럼 마누라는 관두고 내 귀여운 자식을 생각해볼까.”
자고로 자기 피가 이어진 자식은 어찌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법이다.
김대리는 5살인 아들과, 4살인 딸을 떠올렸다.
- 아빠! 오늘 휴일이지? 회사 쉬는 거지? 놀이공원 가자! 놀이공원!
- 아빠, 옆집 아름이네 아빠는 회사 사장이라는데 아빠는 직장에서 위치가 어느 정도야?
“쿨럭!”
김대리가 주화입마에 빠져 사례가 들렸는지 기침을 거칠게 토해냈다.
“으음. 내가 무리를 했군. 시끄러울 정도로 방방 뛰는 악마 같은 아들과, 마누라의 흉계에 이용되는 딸을 생각하려 하다니……이럴 땐 나중에 효도하는 자식들을 생각해야하는 법이지.”
김대리는 냉정하고 잔혹한 현실을 회피하고 미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버지. 비록 대학 등록금을 다 내주시긴 했지만, 취업은 못했습니다. 공장에 들어가서라도 돈을 갚을 테니 돈 좀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저 자취도 할 생각인데 겸사겸사 집도 좀 구해주세요. 여자 친구랑 같이 살아야하거든요.
- 아빠, 설마 아빠 팬티랑 내 속옷이랑 같이 빨래한 거야? 아, 하지 말라고 했잖아! 기분 나쁘다고! 그리고 요새 친구들이 명품 백 자랑하는데, 아빤 백 안 사줘? 진짜 짜증난다니까!
“크하아악!”
어째 미래를 상상했더니 더 뒷골이 땡긴다.
이대로라면 위가 남아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후우……진정하자. 아버지로서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지. 얼른 회사로 가서 모든 걸 잊고 일이나 해야겠어.”
김대리는 눈물을 삼키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는 걷던 도중 무언가 의아해하며 금세 다시 걸음을 멈췄다.
“음……? 뭐지, 이 출근길에 지각할지도 모르지만 묘하게 발걸음이 빼앗기는 냄새는……?”
코를 자극하는 고소하고도 달콤한 듯한 애매모호하고 복잡한 냄새.
김대리는 미간을 찌푸리고 냄새에 따라 몸을 던졌다.
아직 지각까지엔 시간의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대리는 향기의 유혹에 버티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약 삼여 분 정도 걸었을까, 그는 어느새 길거리에 세워진 개조된 트럭 앞에 멈췄다.
“어서오십시오. 제가 한국의 정다방……아니, 바리스타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뭐로 드릴까요?”
묘한 말투로 주문을 받으려는 웨이터 복장의 청년이 정중하게 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대리는 자기가 어느새 커피를 파는 카페카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대리는 무이자 8개월 할부로 구입하여 애지중지하는 손목시계로 아직 출근까지 여유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음, 아직 괜찮으려나……그럼 자신있는 커피 한 잔 주시겠습니까?”
“예. 결제 먼저 도와드리겠습니다.”
“얼마요?”
“5,000원입니다.”
“뭐요? 얼마?”
부모님 안부를 물을 정도로의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에 김대리가 경악하면서 가격을 되물었다.
“5,000원입니다.”
“아니, 커피 가격이 부모님 없을 정도로 비싼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노점에서 파는 커피 따위가 뭐 이리 비싸?”
김대리는 불만어린 얼굴로 따지듯이 물었다.
안 그래도 요새 용돈이 부족해서 돈쓰기가 부담스러운데 비싸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청년은 방긋 웃으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최고급 원두를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전 문화가 아니라 커피를 파는 바리스타니까요. 그리고 향기를 맡으시면 알다시피 보통 커피가 아닙니다. 먹고 놀라실 지도 모릅니다.”
“끙……카페카 주제에 무슨……거, 알았으니 빨리빨리 만들어주쇼.”
아무리 최고급 원두라곤 하지만, 세간에서도 욕먹을 정도로 커피의 원두가 싸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향기가 마시고 싶을 정도로 끌린다는 건 사실이 맞기에 김대리는 피 같은 용돈은 조금 더 소비해서라도 커피를 마시기로 결정했다.
그는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지갑에서 율곡이이가 그려진 지폐를 꺼내 수상적인 청년에게 넘겼다.
청년은 후, 하고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리며 지폐를 받아내곤 커피를 만들기 위해 몸을 돌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지우는 밝은 웃음과 함께 홀더에 끼운 따듯한 커피 한 잔을 건네줬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김대리는 커피를 건네받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살짝 뚜껑을 열어 확인하니 외관상은 보통 커피와 아무런 차이가 없어보였다.
의심이 가긴 하지만, 일단 지불을 했으니 마셔야한다.
‘향기만큼은 기가 막히군. 하지만 그래봤자 커피가 맛있다고 해도 얼마나 맛있다고…….’
김대리는 커피를 조심스레 입에 대곤 데지 않도록 천천히 목 너머로 넘겼다.
‘뭐야, 딱히 맛있지도 않잖아.’
커피가 넘어가자마자 김대리는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향기와 달리 맛에 아무런 임팩트가 없다.
내심 맛있으면 속으로 ‘오오옷!?’ 하고 액션도 보여줄 준비도 했었는데, 기대와 달라 살짝 짜증이 치밀 정도였다.
“이보쇼. 별 거 없는 커피 잖……응?”
김대리가 흠칫 놀랐다.
그의 눈앞엔 자칭 바리스타인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티브이에서 봤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신은……우사인 폴트?”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우사인 폴트가 앉아있는 장소는 한국이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커피나무로 가득한 곳에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엔 우사인 폴트의 모국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 국기를 보면서 김대리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긴……자메이카?”
자메이카의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
커피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커피 원두의 원산지.
언젠가 잡지에서 봤던 지역이 눈앞에서 펼쳐져 있었다.
우사인 폴트는 멍하니 서있는 김대리의 손을 이끌고 맞은편 의자에 앉혔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는 또 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으면서 커피를 마시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김대리는 멍하니 그 모습을 관찰하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지각하면 어떠리. 나는 이 삭막한 세상에 지쳐 자케이카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려고 왔던 거니까.”
김대리는 피식, 하고 상큼한 웃음을 흘리며 눈을 지그시 감고 커피에 빠졌다.
“여보세요? 손님. 저기요? 여기 자메이카 아니거든요? 손님?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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