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원하는 자는 전쟁을 준비해라. - 1화
골드 스푼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어깨의 코일건 뿐만이 아니라 손에 들고 있는 레일건과 레이저 캐논 등이 발사되어 화망을 펼쳤고, 거기에 걸린 컨테이너들이 박살난다.
그러자 그 안에 가득 차있던 암석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나하나는 별거 아닌 컨테이너라고 해도 저 정도의 수가 대기권을 돌입해 낙하하면 그 파괴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저것만으로도 충분히 궤도 공격이랄 수 있을 정도다.
-진건아, 카리옷들이 움직이고 있어.
엘라노어가 서서히 다가오는 레버넌트들을 보여줬다.
카리옷은 컨테이너로 궤도공격을 가함과 동시에 지상으론 레버넌트들을 방어기지 6km 거리까지 접근시킨 다음 장거리 포격과 미사일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 레버넌트들은 포격형으로 중무장 시킨 기종으로 수평선 너머에서의 곡사 공격을 퍼부었다.
“제길, 선수를 빼앗겼네.”
이진건의 아케론이 급하게 공장을 나섰다.
대기권으로 낙하하는 질량 병기에 장거리 포격의 콤보. 만약 이쪽이 전투 준비를 안 한 상황이었다면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좋아, 엘라노어! 대포병 사격 개시.”
-조았써.
궤도상에 대기하던 엘라노어는 갈레온으로 지상의 움직임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이진건의 설계에 의해 개조된 갈레온은 등 부분에 대형 무장창을 두 개 가지고 있었는데, 그 오른쪽 무장창에서 다수의 광신호 중계기들이 사출되어 거대한 고리를 이뤘다.
그리고 왼쪽에선 은색의 기둥들이 발사되어 태양을 향하고 섰다. 이어서 은색의 기둥들이 길게 펼쳐지더니 거대한 거울로 변해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사경들에서 태양광이 반사되어 아래에 링을 이룬 광신호 중계기로 쏘아지고, 이 중계기들은 강렬한 태양빛을 서로 중계하며 차츰 증폭했다.
이어서 출력이 임계점에 도달하자 엘라노어는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
태양광을 응축한 레이저 궤도 포격이 시작되었다.
방금까지 포격을 하던 레버넌트 포격형들 중 한 기가 궤도상에서 발사된 포격을 맞고 터져나갔다.
그러나 카리옷 측은 이에 대한 대비를 했는지 갈레온의 궤도 포격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위쪽으로 산란 섬유막을 쐈다.
다수의 로켓탄들이 날아오르다가 폭발해 가볍고 끈끈한 거미줄 형태의 섬유막을 공중에 흩뿌렸고, 유리섬유로 이뤄진 이 산란막은 궤도 레이저 포격에 증발하며 중간에서 에너지를 가로챘다.
“이거 서로 대비를 단단히 했네.”
이진건은 찬찬히 돌아가는 상황을 봤다.
이쪽이나 카리옷이나 둘 다 장거리 포격전으로 시작할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한 것이다.
“미사일이 온다. 요격 개시!”
카리옷 쪽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은 골드 스푼들이 쏴서 요격하고, 공중에서 폭발해 떨어지는 자탄들은 골드 스폰의 어깨에 달린 레이저 요격장치들이 자동으로 격추한다.
여기까진 이진건의 계산 안쪽이다.
‘카리옷 측에 선수를 뺐긴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포격전으로 시작되어 다행이군.’
지금 탈환작전에 참가한 골드 스푼의 파일럿들은 교수와 교관, 그리고 3, 4학년의 생도들이 대부분이다.
만약 이들이 카리옷의 베테랑들과 맞붙게 되면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전멸하게 된다.
때문에 이진건은 방어기지의 포격 사거리 안에서 차츰 포격을 해가며 나아 갈 생각이었다.
그나마 포격전이라면 실력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자.”
이진건의 아케론이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가고 그 뒤를 이어 아틀라스와 안드로메다가 따라붙었다.
위로는 궤도 공격이 쏟아지고, 땅위에선 아머드 기어들의 포격이 오간다.
카리옷 쪽에선 컨테이너들을 궤도 포격으로 썼고, 이쪽에선 궤도상의 갈레온이 아래로 레이저를 쏜다.
굉음과 섬광이 울려 퍼지는 대지 위를 아케론이 다리를 접고 호버 기동으로 날고, 그 위를 안드로메다가 날아간다.
카리옷에서 나온 포격전 사양 레버넌트는 20기, 이쪽은 마찬가지로 포격전 사양의 골드 스푼이 30기. 하지만 골드 스푼은 작정하고 장거리 고화력으로 떡칠해 놓은 상태라 초전의 우위는 탈환 부대쪽이 가져갔다.
카리옷의 레버넌트들이 대포병사격과 궤도포격을 피해 이동하는 사이, 안드로메다가 고속으로 날아갔다.
흩어진 대형이 다시 재정비 하지 못하도록 아예 파고 들어가 흔들려는 생각이다.
하지만 카리옷도 안드로메다를 발견하고 사격을 퍼부었다.
루메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적들의 포격을 정신을 집중해서 보았다.
“실전에선 두 번째인데, 제정신으로 쓰는 건 이게 첫 번째인가.”
그 순간 루메의 스킬, 별의 계승자가 발동하고 안드로메다의 주변으로 고열의 플라스마 장벽이 펼쳐졌다.
레일건 탄들은 그 플라스마에 부딪혀 증발하고, 레이저는 고온과 중력장에 왜곡되어 빗나간다.
이어서 안드로메다에서 플라스마 포격이 발사되어 레버넌트 한 기의 상체를 증발시켰다.
그때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거리형 레버넌트들이 나섰다.
“이런!”
루메는 놈들의 장비를 봤다.
플라스마 공격에 대비한 대 디메스 용 장비다. 아마도 이진건의 플라스마 저격에 호되게 당한 경험 때문에, 그리고 안드로메다의 각성을 보고 이런 준비를 했겠지.
또한 사격도 일반 탄두가 아닌 재돌입 탄두를 썼는데, 이놈들은 플라스마 실드나 중력장에 부딪혀도 어떻게든 자탄을 안으로 밀어 넣는다.
“좋아, 놀아주지.”
루메는 자신이 그동안 갈구했던, 그러나 얻을 수 없던 별의 계승자를 마음껏 발동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기동에 고화력이 안드로메다에서 펼쳐져 레버넌트들을 휩쓴다.
하지만 레버넌트는 애초부터 디메스의 바랑칼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놈들이고, 지금 장비하고 있는 장갑과 무장도 바랑칼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루메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플라스마 포격이 날아가고 그것을 피해 레버넌트가 위로 뛴다.
하지만 이미 플라스마는 놈의 다리를 휩쓸었고, 레버넌트는 양다리를 잃었다.
“큿!”
하지만 다리를 잃은 레버넌트는 바로 자세를 잡으며 안드로메다를 향해 사격했다.
“끈질기군!”
루메는 놈들의 공격을 증발시킨 다음 다시 한 번 플라스마를 쏴 격추시켰다.
팔라딘이나 알비온이었다면 작동불능에 빠졌을 손상에도 레버넌트는 악착같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사이 두 대의 레버넌트가 안드로메다를 향해 날아오른다.
놈들은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랜스를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중세의 기사를 연상케 했다.
루메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격을 증발시키고 튕겨내다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대의 레버넌트와 근접전을 하려 했다.
놈들과 맞붙으면 레버넌트들이 아군 오사를 막기 위해 사격이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루메! 쇼크 랜스다! 피해!
그러나 갑자기 들려오는 이진건의 고함에 루메는 즉시 뒤로 빠졌다.
“쇼크 랜스? 무슨 무기야?”
-일회용 중력병기라고 보면 돼. 바랑칼을 잡기 위한 무기다. 절대 맞지 마. 중력장 방어막을 무시하고 플라스마 실드도 위험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섬광이 쏟아져 쇼크 랜스를 들고 있는 레버넌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안드로메다가 휩쓰는 사이 아케론이 도착한 것이다.
-루메, 사선에서 비켜.
이진건의 말과 함께 안드로메다가 급히 상승했고, 그 자리를 아케론의 촘촘한 화망이 채웠다.
양손의 코일건, 양 허리에는 보조 손이 조종하는 전열화학 개틀링포, 오른쪽 어깨의 플라스마 캐논과 왼쪽 어깨의 레이저 캐논, 등에 달린 미사일 포드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아머드 기어 화력 중대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화력이 단 한기의 아머드 기어에서 뿜어져 나오고, 여기에 걸린 기체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리고 아케론은 이 화력을 계속 토해내며 접근해온다.
-피오! 뚫어!
-맡겨주시라!
이진건의 호령에 아틀라스가 달려간다.
40미터에 달하는 거체가 달려가자 그 위용에 카리옷들이 잠시 위축될 정도다.
-무슨 저런 거대한···.
-커봐야 단지 표적일 뿐이야, 사격해!
레버넌트들의 사격이 아틀라스에 쏟아진다.
-헷헤-. 간지럽지도 않다.
피오는 쏟아지는 공격을 그대로 맞아가며 달려갔다.
체리 다이아몬드를 훨씬 능가하는 방어력에 훨씬 빠른 속도다.
그리고 아틀라스는 악착같이 사격하는 포격용 레버넌트를 잡아들고는 위아래로 찢어버렸다.
왼손으론 팔을, 오른손으론 다리를 잡고 그대로 잡아당기자 아머드 기어가 두 동강이 났고, 이 비상식적인 광경에 베테랑 파일럿들도 움찔할 정도다.
그리고 그 잠깐 멈칫한 사이 이진건의 저격이 놈들의 뚜껑을 따버렸다.
“피오, 그대로 달려. 내가 화력을 퍼붓는 곳을 그대로 짓밟아.”
-오케이!
아케론이 화력을 퍼부어 그쪽을 마비시키면, 그곳을 아틀라스가 돌진해 짓뭉개버린다.
“루메, 피오 뒤를 따라가며 중거리의 적들을 요격해. 쇼크 랜스를 든 놈은 피오에게 맡겨!”
-알았어.
안드로메다는 플라스마 포격으로 비교적 속도가 느린 포격전 사양의 레버넌트를 노렸고, 아틀라스를 노리는 고화력 공격들을 중간에서 끊었다.
그리고 안드로메다를 노리고 돌격하는 놈들은 아틀라스에게 잡혀 으스러졌다.
-엘라노어, 골드 스푼 쪽을 쏘는 놈들에게 저격해.
-맡겨주세용.
서로 대포병사격을 하는 사이 골드 스푼 쪽도 제법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레버넌트들은 궤도 상에서 내려꽂히는 레이저 저격에 더 심각한 피해를 입고 와해되고 있었다.
“오래 싸우지 마. 잔당 처리는 골드 스푼에게 맡기고 우리는 중앙으로 파고든다. 헤일리 교관님.”
-뒤는 걱정 말고 달려요.
현재 탈환부대의 선두에는 아틀라스와 안드로메다가 각자의 방어력을 바탕으로 길을 뚫고 있고, 그 바로 뒤에선 아케론이 따라가며 막강한 화력으로 레버넌트들을 격추한다.
그리고 궤도상에서 갈레온이 저격을 하면 흐트러진 대형 사이로 골드 스푼의 포격이 떨어져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멈추지 마, 모이면 불리해. 놈들이 수적 우세를 가지지 못하게 흩어놔.”
이진건의 말대로 놈들의 숫자는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은 포격전을 하기 위해 선행부대만 앞세웠기에 이렇게 밀고 들어가는 것이지 레버넌트들이 제대로 대형을 갖추면 골치 아파진다.
-어- 진건아.
엘라노어의 목소리는 어딘가 문제가 생겼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후방의 레버넌트들이 재정비하고 있어?”
-응. 이거 봐. 우리쪽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
후방의 레버넌트들은 선행부대가 휩쓸려도 바로 가세하지 않고, 바로 뒤쪽에서 凹자 형태로 대형을 만들어 이쪽 선두를 감쌀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저 안으로 이진건 일행이 들어가면 앞쪽이 막고, 좌우에서 포위해서 공격할 심산이다.
“오케이, 바꿔. 내가 선두에 선다. 루메, 엄호해줘.”
이번엔 이진건의 아케론이 앞장서서 달리며 레버넌트의 대형을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놈들은 방패를 들어 막으며 대형을 유지하려 했다.
“걸렸구나.”
이진건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계속 사격을 퍼부었다.
그는 놈들의 凹자 대형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사격만으로 갈아버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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