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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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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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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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필규

DUMMY

츠카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찬호 역시 격통에 몸을 구부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미령은 온몸에 입은 화상과 타박상 때문에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는 찬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찬호는 손가락으로 츠카를 가리켰다.


“저쪽······저쪽 먼저.”


츠카는 고주파의 텔레파시를 무차별적으로 뿜어내고 있었기에 미령은 그에게 손을 대기 꺼려졌다.


“이건······아니······이 사람은······.”

“츠카예요. 옥토끼 츠카······. 저 사람 일으켜만 주세요.”


미령은 츠카를 일으켰다. 츠카는 호흡을 할 필요가 없는 옥토끼였지만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찬호는 엉기적엉기적 기어서 츠카에게 다가가, 그의 앞발을 잡았다.


텔레파시의 파장이 주욱 떨어졌다. 미령과 찬호는 츠카의 의중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영원히, 사라졌어,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츠카, 잘 들어요. 이러다가 저도 죽을 거 같아요. 제 가슴 아래에 박힌 총알 좀 빼내주실래요?>


찬호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육성이 아닌 텔레파시로 대화했다. 평소라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듯 입 밖으로 말이 새어나왔겠지만, 조그만 움직여도 폐가 엄청나게 쑤셔오는 지금은 생존본능의 수준에서 발성을 제어할 수 있었다.


<영원히······. 찬호야, 네가 죽을 것 같았어. 그래서······너랑 저 사람 둘 중에서 선택해야 했어. 선택을······.>

<잘 죽이셨어요. 아, 이런 말은 좀 아닌가? 아무튼 정말 고마워요.>

“지금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건가요?”

<이거 꽤 편해요. 같이 하실래요?>


츠카는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미령은 찬호가 말했던 옥토끼의 본능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녀는 돛대 없는 배 지하에 비밀 실험실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찬호는 츠카의 양 앞발을 마주잡고 그의 활짝 열린 무의식 깊은 곳에 자신의 텔레파시를 꽂아넣었다.


<츠카, 당신이 죽인 사람은 너겨 엿비라는 인간이었어요. 그자는 저희를 속여서 정보를 유출시키고 이 층 전체에 포탄을 발사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몰살시켰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주브만칼리가 이 땅에서 일으킬 살육의 행렬에 앞장서려고 했고요.>

<사, 살육이라니······.>

<당신은 그걸 막은 거예요. 한 인간을 죽인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낸 거예요. 저와 미령도 포함해서요. 거기에 집중하세요.>


그러다 찬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야야······.’라며 신음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츠카는 정신을 차리고는, 염력을 찬호의 몸속에 집어넣어 왼쪽 가슴 아래에 박힌 총알을 빼냈다.

총알은 살갗을 헤치거나 뼈를 건드리지 않고 나온 경로로 깔끔하게 빠져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주르륵 흘러나오던 피도 혈관을 틀어막아 지혈했다.


찬호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 보았다. 격통이 조금 덜 느껴졌다. 그는 편안하게 숨을 내쉬으며 몸을 바닥에 뉘였다.


“잘하셨어요. 츠카.”


미령은 찬호의 몸속에서 나와 바닥에 떨어진, 피와 뭔지 모를 덩어리가 달라붙은 총알을 저 멀리 발로 차 버렸다.


츠카는 여전히 더듬대고 괴상한 고주파의 소음을 텔레파시 여기저기에 끼워넣으면서 텔레파시를 보냈다.


<찬호야······. 지원, 기르불, 타카슬은 어디있어? 다 살아있는 거 맞지?>

“지원은 타카슬을 데리러 갔어요. 지원이잖아요. 무사할 거예요. 그런데 기르불은······.”


찬호는 미령을 쳐다보았다. 기르불은 마지막 수색조였던 그녀와 함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령의 표정으로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미리 알 수 있었다.


“포격이 있던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부른다면서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포격······포탄 중에는 외장재가 플라스틱인 종류가 있어요. 혹시 그 연기에 휩싸였다면······.”

<기르불을 찾아야겠네. 다 모아서 서로만으로 가자.>


츠카는 조금이라도 빨리 터리놀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찬호가 물었다.


“그런데 츠카, 서로만으로 간 거 아니었어요?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내 근처에 있던 인간들이 터리놀에서 총격전이 일어나서 너희와 타카슬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더라고······.>

“또 그거 했어요? 세상에. 그래도 덕분에 살았으니까 이번에는 넘어갈게요. 일단 기르불부터 찾아봐요. 주변이 온통 연기에 화염 투성이라서 눈으로는 도저히 못 찾겠어요. 생존자도 찾고 기르불도 찾으려면 안 그래도 당신이 필요해요.”


하지만 츠카는 텔레파시를 광역으로 전개하면, 죽어가는 다른 생물들을 감지해버릴까봐 망설였다.

찬호는 무례해보이지 않도록 츠카를 설득하는데 귀중한 시간과 인내심을 어마어마하게 소비했고, 미령은 그 옆에서 안절부절하며 찬호를 거들었다.


###


기르불은 지독한 멀미에 시달리고 있었다.


플라스틱 증기를 너무 많이 태워버렸다. 어지러워서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의무가 있었다. 찬호와 다른 자치군들을 보호하러 가야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어디있는지조차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주변의 풍경이 팔레트 위에서 뒤섞인 유화물감처럼 보였다.


우선 이 어지러움에서 탈출하는게 급선무였다. 기르불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심지로 붙잡고 있는 이 연료를 실수로라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천천히 명상했다.


감기에 걸린 인간이 회복을 위해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자는 것처럼, 기르불 또한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꿈을 꾸었다.


기르불은 지구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고온고압의 귀금속 원소들이 육중하게 가라앉아 뭉쳐있는 내핵이었다. 지사리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자, 지사리의 수도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기르불은 두 명의 지사리와 면담을 하고 있었다. 지사리 사회에서 유이하게 기르불보다 신분이 높은 둘, 왕검 코츠불과 단군 하비나였다.


코츠불이 말했다.


“굳이 지상으로 올라가겠다고? 네가?”

“왕제는 저 말고도 여러명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애초에 왕검 자리를 이어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낼 겁니다.”

“하비나, 자네가 좀 뭐라고 해봐.”


단군 하비나는 이 문제에 무관심했다.


“왜 나한테 그러나? 쟤는 네 제자지 내 제자가 아니잖아. 너희가 알아서 해.”

“이런······. 애초에, 왜 지상으로 가고 싶은데?”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까요. 세 종족이 화합하는 혼돈의 시기인데, 가만히 마그마 속에 잠겨 있자니 자존심이 상합니다.”

“좋다, 그럼 조건이 있다.”


코츠불은 기르불에게 3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로, 인간의 수많은 언어 중 적어도 셋 이상을 완전히 익힐 것. 둘째, 일행의 대장이 될 인간 여자에게 절대 복종할 것. 셋째로는, 인간 친구 10명 이상을 만들어 올 것이었다.


기르불은 지금까지 가나 동남부 언어, 가나 서부 언어, 가나 중부 언어를 익혔다. 또한 불완전하지만 만칼리어도 몇 개의 관용어구 정도는 지원과 찬호에게서 배웠다.


지원의 명령에는 별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대든 기억은 없었다.


인간 친구 10명······.


주지원, 유찬호, 강계, 백미령과 백주령, 죽목······이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가? 친구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를 구제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기르불에게 큰 위협이 되는 건 없었다. 터리놀 인간들은 지사리에 대한 대책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고 명죽림의 환청조차 명죽이 타들어가는 소리로 무시할 수 있었으니까. 또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언제라도 혼령화한 뒤 근처의 화산으로 대피해 땅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원과 찬호는 기르불을 데리고 지금껏 사선을 넘나들며 열심히 노력해왔다. 이제는 그가 힘을 낼 차례였다.


잠에서 깨어나니 감각이 어느정도는 회복되었다. 기르불은 자신이 여전히 호텔 건물 내부에 있으며, 어느 방의 벽난로에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는 몇 층에 있는 방이지?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곳을 찾아온 건가? 찬호 쪽과는 얼마나 떨어진 곳이지?


방 안에는 그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벽난로 앞에서는 어떤 노인이 안락의자에 앉은 채 기르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기르불은 당장이라도 굴뚝을 향해 뛰어오를 준비를 하면서 말을 걸었다.


“너는 누구지?”


그 노인은 반응이 느렸다. 기르불은 잠깐 동안 그가 자는 건 줄 알았다.


“깨어나셨나요.”

“여긴 어디야? 내가 몇 층에 있는 거지? 어쩌다가 내가 여기로 오게 된 거야? 분명 폭발이 일어났고 그 플라스틱 연기에서 도망쳤는데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어.”

“저는 함필규라고 합니다. 기억 못하시겠지만 기르불 왕제님께서 만칼리군으로부터 구해주신 인간들 중 한 명입니니다. 저 창문 벽에 매달려 계시길래 제가 벽난로로 모셔왔습니다.”


함필규는 방의 창문을 쭈글쭈글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르불이 매달려 있었다는 게 사실인지 유리가 약간 녹아서 굴곡이 져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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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개전 연설 22.09.06 37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6 1 10쪽
58 단둘이 22.09.02 35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28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7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6 1 11쪽
» 함필규 22.08.21 22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25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7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5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5 1 10쪽
49 불안 22.08.06 25 2 11쪽
48 인질들 22.08.05 23 1 9쪽
47 몰살 22.08.03 20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5 1 10쪽
45 블러핑 22.07.28 33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9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30 1 9쪽
42 모함 +2 22.07.21 34 1 11쪽
41 감금 +1 22.07.09 44 2 13쪽
40 진술 +2 22.07.06 42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33 2 9쪽
38 패륜 +2 22.07.03 3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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