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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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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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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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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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끝은 시작이다

DUMMY

28화 끝은 시작이다


방금 김류에게 한 말은 스스로 하고도 의외였다.


딱히 내 것이 아닌 누군가의 감정이 들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이 먹을 대로 먹은 노인이 앞에서 제 아들을 위해 하는 모습이 측은해서 한 말에 불과하다.


사실상 김경징을 살리려면 이게 선결이기도 했다.


본래 역사에서 김경징은 그래도 김류의, 공신의 아들이랍시고 인조가 그를 살리려고 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인조 말고는 김경징의 편을 들어주고자 한 신료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인조가 봐주려고 하니 다들 들고 일어나서 입을 모아 김경징을 죽일 것을 고했다 하며, 하물며 야사에서는 아비인 김류조차 화를 내었다고 한다.


오늘 보니 야사는 그저 야사에 불과한 듯하나 그렇다고 신료들이 김경징의 편을 들어주진 않을 거다. 오히려 그를 속히 벌주라고 하면서 벌떼 같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안쓰럽긴 하나 그렇다고 방금 그에게 말한 것 이상을 위해 나서줄 생각은 없다.


법이 과하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벼워지는 것도 문제다.


“어려운 일이다.”


무심코 중얼거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안쓰럽고 동정이 들긴 하나 그건 김류에 대해서지, 김경징에 대해서가 아니다.


김류에게라면 그나마 심사숙고한 끝에 고민 좀 하여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김경징? 그런 녀석을 위해서 고민하라고?


고작 그런 소인배를 위해 시간을 쓰기에는 내 시간이 아깝고 할 일도 산적해 있다.


당장 청나라에 관련된 일도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이지.


“전하, 청에서 온 예친왕께서 만남을 청하고 있사옵나이다.”


양반은 못 되는, 본래 양반하고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지.


“안으로 뫼셔라.”


말을 허하니 곧 몇 번 보아서 익숙한 예친왕 도르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청나라 황제가 인정한 바에 의하면 예법상 서열은 내가 위다. 비록 허울뿐인 서열이라고 하나 청나라 황제가 정한 이상 도르곤은 그걸 존중하겠다고 하듯 내게 먼저 예를 취하고 자리에 마주 앉았다.


“다망하신 분께서 어인 일로 찾아오셨소? 사람을 보내면 충분할 것을.”

“작은 일이라면 그러하겠으나, 큰일을 앞두고 어찌 그런 우행을 하겠습니까.”


큰일이라.


이 시기에 큰일이라 하면 내가 생각할 때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청나라 군대의 귀환.


다른 하나는 가도.


과연 이 둘 중 어느 쪽 문제로 인하여 왔을까? 아니면 내가 고려하지 못한 세 번째가 있을까?


“아군은 이제 귀국할 것입니다. 하여 한께서 전일 이르신 일에 대한 확답과 전송 의식에 대한 것을 알고자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들에게 어떻게 될 거라 정식으로 이르지 않았다. 당장 그 윤곽이나마 제대로 정해진 것이 어제오늘인데 이들에게 알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도 이는 쉬이 대답할 수 있는 일이니 어렵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왕지사 이리 화의를 맺게 되었으니 이러한 화의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여 청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 만이 아니었군. 너무 쉽게 생각했어.


“편히 말씀하시오. 내 가능한 일이라면 돕도록 하겠소.”


나 지금 제대로 웃은 게 맞는지 모르겠다. 부디 그랬길 바란다.


“돌아가는 길에 가도를 정리하고자 하니 그에 대한 도움으로 병과 군량을 얼마간 내어주시길 요청하는 바입니다.”



***



“만만치 않은 자로다.”


대담을 마치고 궁에서 나와 군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르곤은 조선왕과 대담하던 걸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본디 그는 이 일들에 대해 모두 좋은 소식을 듣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저들이 명을 대하는 태도는 실로 지극하다고 할 정도였다. 일반 백성들도 자신들보다는 명을 가까이 여기는 게 종종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본래 명나라 사람이었던 천우병이나 회순왕 같은 자보다 훨씬 더 명나라 사람 같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나라의 왕이자 그 기치의 선두에 있었던 자가 당금의 조선왕이다.


하물며 그는 명을 위해 거짓 항전을 하고 항복하겠다고 한에게 제안한 자다.


그런 이가 아무리 항복했다고 하지만 그건 단순히 당장의 위협에 굴해 어쩔 수 없이 숙인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내민 조건 가운데 무엇하나 제대로 대답을 얻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대답이나 이리저리 변명 삼아 미루는 소리나 들을 거라 생각했다.


홍타이지 역시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에 도르곤을 보낸 것이다. 비록 전일 강을 건너는 모습으로 이제 자신들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나 그것만으로 단정하고 풀어주기엔 이곳은 여러모로 껄끄러운 나라였다.


헌데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조선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찾아온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늘어놓고 대답했다.


그 유수와 같은 말솜씨는 실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한께서는 어찌 여기실까 모르겠군.”


말을 이리했으나 도르곤은 내심 홍타이지가 이번 일을 흡족해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대답을 모두 들은 것은 아니고, 실질적인 도움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대답만 들었으나 홍타이지가 가장 바라고 기뻐할 내용이 있었다.


“알고 했다면 대단한 재주고, 모르고 했다면 천운을 타고난 자로다.”



***



“조선왕이 말하길, 세자를 청과 수교하기 위한 책임자로 삼아 보낸다 합니다.”


도르곤의 말에 홍타이지의 눈이 빛났다. 살짝 돌려서 요구한 거라 저들이 모르쇠로 잡아떼고 적당한 정승을 보낼 수도 있다 여겼다.


물론 그러면 한층 더 압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궁리가 무색하게 바로 원하는 바를 알아서 들어둔다 하니 제법 기꺼웠다.


“봉림대군이라 했던 왕자는?”

“그 역시 청의 문물을 경험하기 위해 오기로 정하였다 합니다.”

“호오.”


그저 인질로, 여차하면 지금 조선왕을 갈아버리고 대신할 꼭두각시라 당당히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결국 저들의 가장 정통한 후계자와 그다음 가는 후계가 자신과 함께 있는 셈이니 말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깨달을 터였다.


또한 굳이 험한 말로 위협하지 않고 대접하는 것에 감복하여 저들이 먼저 요청하는 모양새에 가까우니 실로 좋은 겉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이 끝이더냐?”


그러나 본래라면 한참 전에 정해졌어야 할 일이 이제야 이루어진 셈이니 홍타이지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하물며 이번에 도르곤을 보낸 이유는 고작 세자와 왕자의 거취에 대해서만 논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 이것보다 더 많은 결과가 있어야 했다.


“하루 거리를 따라와 배웅하겠다 하였습니다. 혹여 마음에 들지 아니하시다면 다시 조정하겠습니다.”

“하루라.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를 데리고 갈 것도 아닌데 무엇 하러 그러겠느냐.”


그 정도면 제후로서 취하는 예로 적당하다 여긴 홍타이지는 크게 의문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 홍타이지의 안색을 살피며 도르곤은 마지막으로 남은 일을 입에 담았다.


“가도에 대해서는 곤란하다 합니다. 남은 군사도 식량도 없으니 병을 내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남은 것이 없다? 북방에 남은 것이 있을 텐데?”

“그들을 보낼 수는 있으나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어째서?”


조선이 보유한 병사들 가운데 북방에 있는 이들은 청에서도 높이 사는 이들도 상당한 정예였다. 그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니, 쉬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에 도르곤은 이걸 말해도 되나 잠시 고민했으나 조선왕이 스스로 이리 말했으나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여겨 입을 열었다.


“북방에 있는 이들은 예로부터 명에 은혜를 입은 이들이 많아 보낼 수는 있으나 제대로 싸우려 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흐음.”


당장에 화를 내거나 불쾌한 기색을 보일 줄 알았던 홍타이지는 의외로 차분했다.


그 속내를 엿보기 위해 도르곤은 눈알을 굴리며 살폈으나 홍타이지의 속은 알기가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홍타이지는 금세 생각을 마치고 궁리하던 일을 입에 담았다.


“아마도 반절은 사실이겠지.”

“반절이라 하심은?”

“저들이 제대로 싸우려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 사실이고, 명에 대한 은혜로 그러하다는 말은 거짓일 거다.”


반절의 사실과 거짓을 입으로 말한 홍타이지는 제 생각에 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당장 우리와 싸우던 이들을 우리에게 보낸다? 병사들 목숨도 그렇지만 그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일 줄 알고 쉬이 파견하겠느냐.”

“한께서 말씀하신 일은 실로 옳습니다. 허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그런 건 저희가 고려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됩니다.”


조선왕에 말을 들은 후 이곳으로 오는 내내 확고히 품었던 생각이었다.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정히 곤란하면 가장 앞에 세우면 끝날 일이었으니까.


헌데 홍타이지는 의외로 그럴 생각까진 없는 모양이었다.


“그 말이 맞으나, 굳이 무리해서 저들을 내몰 필요도 없다. 가도야 지금 있는 전력으로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 저들이 오로지 이쪽으로 돌아섰음을 확고히 보일 자리일 뿐이다.”


어려울 거 하나 없다는 듯이 의자에 몸을 누인 홍타이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조선왕에게 그들을 내라 전해라. 전장에 나설 필요는 없어도 따라는 와야지. 뭣하면 세자를 머리로 삼아서 데리고 가면 그만이다.”

“예, 한이시여.”

“아, 저들 가운데 무언가 다른 움직임은 없었느냐?”


공손히 대답하는 도르곤에게 홍타이지가 질문을 덧붙였다. 그에 도르곤은 잠시 생각하다가 오늘 저들 가운데 논의되었다 하는 일들 가운데 아직 고하지 않았으나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일을 떠올렸다.


“이쪽에서 바란 일들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제외하면 오로지 하나의 논의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지?”

“조선에서 군을 이끌던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도르곤의 말에 저들이 무엇을 하고 있나 안 홍타이지는 잠시 흥미를 보였으나 이내에 관심을 거두었다.


어리석고 무능한 이들이 적이라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겠으나 이제는 아군이 그리한다면 귀찮은 일이었다.


그러니 그런 이들, 얼마나 죽고 사라지건 홍타이지가 알 바 아니었다.


“그거야 저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



“상께서 부르신다고.”

“그렇습니다.”


지난 한 달, 김자점은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뒤집을 수 있는가, 책임을 어떻게 져야 무사할 것인가 등등 많은 생각이 그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러나 무엇 하나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고 그대로 하루하루 흘러 결국 예정된 날이 지났다.


남들이 보면 무능하고 겁쟁이처럼 보이겠지만 그에게도 할 말은 많았다.


허나 그러면 뭐 하겠는가.


결과도 현실도 무엇하나 그의 힘이 되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말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오직 하나, 책임 추궁뿐이었다.


“서둘러 채비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미 제도 도원수께도 연락이 갔습니다.”


심기원에게 연락이 갔다는 말에 김자점은 대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러다가 이게 그자를 꼴 보기 싫어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을 전하러 온 자야 이런 부름에 늦으면 좋을 것이 없다는 의미로 한 것이었으나, 김자점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놈이 먼저 가서 내게 뒤집어씌우면 큰일이다.’


김자점은 저보다는 심기원에게 더 잘못이 크다 여겼다. 제가 통솔한 군대는 어디다 팔아먹고 자신의 군을 강탈하려고 든 탓에 뭔가 제대로 해볼 기회도 없었다 여긴 것이다.


심기원과 분쟁이 없었다고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싶기도 하나, 사람이라는 게 보통 원망할 대상을 찾고 그 대상이 정해지면 이것저것 갖다 붙이는 법.


김자점의 눈에 심기원이 딱 그러했다.


그리고 심기원 역시 그와 비슷하게 여기리라는 게 훤히 보였다.


“서둘러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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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화 소인은 화를 자초한다 +3 22.11.14 1,987 60 15쪽
32 31화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자는 실제로 있다 +1 22.11.14 2,021 60 15쪽
31 30화 청으로 가는 사람들 +3 22.11.13 2,108 55 15쪽
30 29화 왕이 품어야 하는 마음 +1 22.11.13 2,145 58 15쪽
» 28화 끝은 시작이다 +1 22.11.12 2,103 59 12쪽
28 27화 상사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1 22.11.12 2,111 54 12쪽
27 26화 신상필벌은 중요하다 +1 22.11.11 2,237 57 12쪽
26 25화 사람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1 22.11.11 2,251 58 15쪽
25 24화 보낼 일을 논하다 +1 22.11.10 2,261 59 14쪽
24 23화 어려운 요구를 받다 +1 22.11.10 2,364 58 13쪽
23 22화 소파진에서 대담하다 +2 22.11.09 2,367 59 11쪽
22 21화 그날이 오다 +1 22.11.09 2,392 60 13쪽
21 20화 도의는 모두에게 통용되어야 한다 +4 22.11.08 2,408 63 13쪽
20 19화 사실과 보여지는 건 다를 수 있다 +5 22.11.08 2,436 65 12쪽
19 18화 바깥을 알다 +2 22.11.07 2,530 62 13쪽
18 17화 말의 가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22.11.07 2,621 64 13쪽
17 16화 여럿보다 하나가 나을 때도 있다 +2 22.11.06 2,724 77 15쪽
16 15화 믿음을 보내다 22.11.06 2,763 78 13쪽
15 14화 부끄러워하다 +2 22.11.05 2,808 79 13쪽
14 13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1 22.11.05 2,831 75 12쪽
13 12화 누군가는 안녕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를 원한다 +1 22.11.04 2,951 70 12쪽
12 11화 탐욕은 재앙의 친구다 +1 22.11.04 3,080 81 13쪽
11 10화 화두를 던지다 +4 22.11.03 3,237 81 13쪽
10 9화 보상을 논하다 +2 22.11.03 3,416 86 12쪽
9 8화 사방에 소식을 보내다 +5 22.11.03 3,546 85 15쪽
8 7화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끝난다 +2 22.11.02 3,596 87 12쪽
7 6화 소현세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4 22.11.02 3,822 88 14쪽
6 5화 고민을 안겨주다 +2 22.11.01 3,906 101 13쪽
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4,137 94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492 9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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