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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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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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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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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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화 어려운 관계

DUMMY

528화 어려운 관계


도쿠가와 오키코의 여정, 그러니까 조선 여행이라 불러야 마땅할 행보는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이 정도로 좋은 적이 드물다고 해도 좋았다.


집이라고 할 장소, 고향이라고 할 땅, 속하였던 나라를 떠나 멀리 가고 이제는 돌아오기 힘든 처지임을 고려하여도 말이다.


땅은 아름답고 가는 곳마다 그녀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또한 그녀에게 있어서 이국이라는 점을 고려하여는 가는 곳마다 볼거리가 있고 활기가 넘치니 교토와 에도 양쪽과도 다르고 새로우니 매번 새로웠다.


물론 예전에 그러한 구경을 아예 하지 못하였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그건 아니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올랐다고 하나 천황은 천황.


하물며 옛 시절 가난함에 시달리는 천황이 아니라 에도 막부에서 지원하여 나름대로 여럭이 생긴 천황이었다.


덕분에 교토에서 공연이며 축제며 잔치하는 일을 보기는 하였으니 그녀는 그만한 구경거리를 보긴 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자리와 이렇게 여정하며 보는 것은 또 맛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그녀에게는 자유가 있었다.


신경 쓸 것이 없다고는 하지 못하나 전처럼 눈치만 살피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유가 말이다.


“곧 철원에 도착합니다.”


그러한 와중에 대마도 도주 평의성, 오키코는 후추 번 번주 소 요시나리라 인식하고 있는 사내의 말이 들렸다.


철원이라는 지명은 잘 알지 못하나 그곳에서 청나라 사람들과 한번 만날 것이라 이야기를 들었던 걸 기억한 오키코는 살짝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중이 옵니까?”

“환영하는 자리가 있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아, 철원에 도착하기 전에 교신사가 먼저 맞으러 나올 거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요시나리가 이르는 말에 교신사 야규 미츠요시에 대해 들은 바를 떠올린 오키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원에 도착하기 전에 본다면 여러모로 묻고 싶은 게 좀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오키코가 하는 말에 요시나리는 크게 달갑게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본디 조선과 일본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여 양국 동향을 민감하게 살펴야 하는 처지다.


지금 상황은 그런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좋았다.


허나 전에도 좋음을 누리다가 단박에 그러한 지위가 사라진 걸 경험하였고 기억과 기록으로 알고 있는 요시나리는 가능하면 그가 살피기 용이한 조선 남쪽이 아니라 다른 곳 이야기도 알고 싶었다.


미츠요시와 만나는 일은 이러한 갈증을 채워주기 적당하니 그는 오키코 이상으로 기대하며 만남을 고대했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양에서 나와 철원을 넘어 마중 나온 미츠요시와 마주할 수 있었다.



***



“조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늘에서 내린 핏줄과 땅에서 일어난 핏줄을 이으신 분께 교신사 야규 미츠요시가 인사를 올립니다.”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며 땅에 엎드린 미츠요시를 본 오키코는 곧 그에게 일렀다.


“교신사께서 양국의 화의를 위해, 나아가 더 많은 교류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오키코입니다. 남은 길을 잘 부탁드립니다.”

‘에휴.’


남은 길이라는 표현에 미츠요시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바라던 표현과는 거리가 있어도 너무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그것은 속내에 그칠 뿐,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물론입니다. 이 미츠요시,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조아려 대답한 미츠요시는 길잡이를 자청하며 철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허나 안내라고 한들 가는 길은 이미 헤매이기 어려울 정도로 짧게 남았으니 사실상 미츠요시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츠요시가 한 것은 사실상 길 안내라고 하기보다는 조선과 그 주변 정세 안내였다.


“전에 조선과 청이 사이를 낫게 한 후에 두 나라를 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 교환하였습니다.”

“교환? 인질인가요?”

“으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모양입니다.”


미츠요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곁에서 이야기를 듣는 요시나리를 살폈다.


이에 다소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던 요시나리가 이때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니 미츠요시는 곧장 말을 이었다.



“다만 이후 청나라며 조선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여러 사람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미츠요시가 이르는 말에 자신이 한 말이 민감한 것은 물론이고 여러 사람이 뿔나게 할 수도 있는 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오키코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답에 요시나리는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니, 그는 화제를 살짝 바꿀 생각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철원에는 청나라 친왕께서 거하신다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분이십니까?”

“호오. ‘지금은’이라니, 번주께서는 생각보다 아시는 게 많은 모양입니다.”


미츠요시가 살짝 감탄하며 물으니 요시나리는 제가 들은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늘어놓았다.


“후추 번이 조선과 상당히 가깝지 않습니까. 비록 동래에 오가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사정이 그렇다보니 여러 이야기가 좋든 싫든 제 귀에 들립니다.”

“그것은 참.”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고 의뭉스럽게 말한 미츠요시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이제 청나라에서는 친왕 가운데 한 사람을 보내어 조선에, 정확히는 철원이라는 땅에 거하게 하는 것이 법도로 삼고 있습니다. 하여 처음에는 성친왕이라는 친왕께서, 그다음에는 보국친왕이라는 친왕께서 계셨습니다.”

“보국친왕?”


귀에 익은 거 같은 호칭에 되물으니 미츠요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청나라에서 가장 귀한 친왕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미 그분들 가운데 하나가 방문하여 이 일을 성사하였으니 아마도 한번 얼굴을 마주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미츠요시는 오키코와 요시나리를 슬쩍 살핀 후 다시 입을 움직였다.


“그들을 칭하는 말은 섭정친왕회라고 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조선왕은 그들보다도 윗전으로 취급됩니다.”

“예? 조선왕께서 말입니까?”


타국의 왕이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그리도 높게 쳐준다니 오키코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반응에 미츠요시는 그 심정을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일러주었다.


“조선은 특별합니다. 제가 본 바에 따르면, 조선왕의 지지로 인해 청나라 황제의 계승도 영향을 받습니다.”

“험험, 상당히 흥미가 있는 이야기지만 지금 당장은 철원에 계신 분께 인사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청나라 계승 제도의 복잡함을 논하려고 하던 미츠요시는 지금 그것을 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넌지시 이르는 요시나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확실히 옳았다.


언제로 다가올지 모르는 계승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친왕을 살피는 일이 더 중했다.


그러나 막상 화제를 바꾸려고 하니 영 아쉬운 게 입맛을 다시게 되니 미츠요시는 간단하게나마 하던 말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아무튼 섭정친왕회는 전에 제가 들을 때에는 청나라 황제께 조언하며 그분이 장성하실 때까지 통치를 위임받은 이들이라고 들었습니다.”


통치를 위임받았다는 말에 오키코는 문득 이제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아비라 불러야 할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를 떠올렸다.


“실세군요. 그들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청나라 황제께서 즉위하심과 동시에 세워진 단체니 얼마 되진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평이하게 대답하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자신이 허수아비와 결혼하는 신세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두려움을 어렵지 않게 읽어낸 미츠요시는 사방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천황은 유일무이하십니다.”

“예?”

“천황은 유일무이하시니, 좋게도 나쁘게도 저는 그러한 분을 조선이나 청 그리고 명에서도 본 일이 없습니다.”


에둘러 이르는 말은 바로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오키코는 가만히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을 마주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막부는 어떻습니까?”

“훌륭하시지요. 적어도 그보다 좋은 걸 저는 사방 나라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칭송하는 말로 들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으니, 오키코는 지금 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속으로 곱씹었다.


‘사방 나라에서 보지 못했다.’


아주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 비슷한 것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청이나 조선은 일본과 사정이 다르다는 걸 이해할 수는 있었으니, 그녀는 품은 걱정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면 지금 철원에는 보국친왕이라는 분이 계시겠습니다.”

“아닙니다.”


있겠거니 생각한 사람이 없다는 말에 오키코는 들은 말들을 되새겨보았다.


이윽고 미츠요시가 그들 모두를 과거형으로 칭했음을 기억한 오키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지금은 어느 분이 계실까요? 그분도 섭정친왕회라는 곳에 속한 분이십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는 말에 오키코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좀 편한 상대를 만나겠다고 여겨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녀는 자신이 너무 섣불리 판단하였음을 알았다.


“지금 철원에 있는 분은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이라는 분으로, 선대 황제의 형님이시며 지금 황제의 백부이십니다.”

“······네?”



***



“반갑소이다! 이 아이신기오로 다이샨, 청나라 황실을 대표하여 그대를 환영하외다! 하하하!”


말에 올라 철원 경계까지 맞으러 나온 다이샨을 본 오키코는 가마에서 그를 보며 살폈다.


‘장수?’


체구는 크고 몸은 단단하게 보이니 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용맹함이 보이니 오키코는 그를 보고 친왕과 같다고 여기기보다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장수와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제 내려서 예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니 오키코는 서둘러 가마에서 내렸다.


“도쿠가와 오키코라고 합니다. 집안의 어른을 뵙습니다.”


마주하여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적잖이 흡족했는지 다이샨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께서 아주 곱고 훌륭한 비를 맞이 하시니 참으로 좋군! 또한 이렇게 양국이 신부를 서로 나누어 교환하니 그 우애는 오래도록 가겠지요! 자자, 일본의 공주께서는 부디 사양하지 마시고 이 철원에서 푹 쉬고 떠나도록 하시오.”

“가, 감사합니다.”


큰 환대에 어색함을 느끼며 대답하니 다이샨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에 오키코는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는지 고민했으나 이내에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이는 다소 역전이 있으나 인연이라는 건 본디 그런 법이지. 우리 고륜영안공주도 이곳에 있으니 서로 좋은 연을 맺는 시간이 되시길 바라외다.”


고륜영안공주 아이신기오로 비양고가 있다는 말에 그제야 오키코는 이곳에서 만나기로 예정된 자가 다이샨만이 아님을 뒤늦게 떠올렸다.


동시에 들은바 상대의 나이와 이제 맺을 인연을 생각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묘한 얼굴을 지었으니, 오키코는 그 묘한 감상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어머니라니.’


작가의말

[첨언 - 오키코와 비양고의 관계]

오키코는 1624년 생, 비양고는 1634년 생입니다.

 

나이로 생각하면 오키코가 손윗사람으로 보이지만 지금 작중 상황으로는 비양고는 오키코에게 시누이이자 새어머니가 되는 셈입니다.

 

반대로 비양고에게 오키코는 딸이자 올케가 되는 셈이지요.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땅늘보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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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68 ageha19
    작성일
    24.03.20 21:40
    No. 1

    허, 며느리보다 10살 어린 시어머니라니... 하기사, 뼈대있고 자손 많은 가문 쪽에선 이른바 '조카보다 어린 삼촌' 같은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천년고목
    작성일
    24.03.20 23:02
    No. 2

    20페이지 천항-천황 오타 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8 금빛시계
    작성일
    24.03.21 21:03
    No. 3

    오타 수정되었습니다.
    관심과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감상 되시고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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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 542화 후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3 24.04.03 149 15 11쪽
542 541화 원로 +1 24.04.02 161 15 12쪽
541 540화 세 경쟁자 +2 24.04.01 161 14 14쪽
540 539화 목패 협약 +4 24.03.31 155 15 16쪽
539 538화 감추는 재미 +2 24.03.30 162 16 12쪽
538 537화 모두가 아는 비밀 +2 24.03.29 152 14 13쪽
537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4 24.03.28 151 15 12쪽
536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2 24.03.27 154 14 12쪽
535 534화 미룸은 미정이 아니다 +3 24.03.26 163 14 12쪽
534 533화 허황된 이야기 +2 24.03.25 156 14 16쪽
533 532화 덕은 풍성함이 전부가 아니다 +2 24.03.24 166 12 12쪽
532 531화 소망은 성장한다 +4 24.03.23 170 15 15쪽
531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2 24.03.22 159 13 12쪽
530 529화 신부 교환 +2 24.03.21 179 14 13쪽
» 528화 어려운 관계 +3 24.03.20 181 13 11쪽
528 527화 친하면 조금이라도 돌아본다 +1 24.03.19 167 15 13쪽
527 526화 연약한 사람 +6 24.03.18 164 18 12쪽
526 525화 물려받은 천성 +1 24.03.17 167 13 12쪽
525 524화 인정받지 못한 아이 +1 24.03.16 192 15 12쪽
524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2 24.03.15 158 16 13쪽
523 522화 병졸과 역관 +4 24.03.14 168 19 12쪽
522 521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3 24.03.13 178 14 13쪽
521 520화 용기 있는 말 +4 24.03.12 177 16 17쪽
520 519화 정통성 +4 24.03.11 185 19 13쪽
519 518화 그대는 옳다 +3 24.03.10 177 14 11쪽
518 517화 거울 같은 사람 +3 24.03.09 179 14 12쪽
517 516화 우선하여 해결할 일 +2 24.03.08 191 17 13쪽
516 515화 맞수 +3 24.03.07 182 17 14쪽
515 514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7 24.03.06 187 16 13쪽
514 513화 소리는 사람을 모은다 +2 24.03.05 188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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