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색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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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飛劒]
작품등록일 :
2012.11.26 23:54
최근연재일 :
2012.12.02 00:00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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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651

작성
12.11.2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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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 사이더 라냐(3)

DUMMY

"지, 진짜 난다?"

현수는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에 멍해졌다. 자그맣고 가느다란 팔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었지만 어쨌든 날고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네요."

확실히 하늘에서 보니 골목 구석구석까지 훑어볼 수 있었다. 깨진 창문이며 엎어진 쓰레기통, 핏자국과 골목의 시체가 비명 소리와 어우러지고 있었다.

"경찰서는 어디에 있죠?"

"여기선 좀 멀어. 하지만 그건 왜……"

아깐 경찰은 소용 없다더니, 라고 말하려는 찰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대로에서 경찰차 여러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경찰이 와봤자 피해만 늘어날 뿐…… 뱀파이어를 유인해야겠어요."

라냐의 말에 현수는 진심으로 기겁했다.

"어, 어떻게? 아니 그보다 혼자서 괜찮겠어?"

아까 단숨에 둘을 베어버린 것을 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숫자가 현저히 차이났다. 흔적만 보아도 저쪽은 최소 수십 명은 될 것이다.

"괜찮아요. 이 상태라면 전력을 다해도 다섯 시간은 싸울 수 있어요."

"그런 건 또 어떻게 아는 거야?"

"라비스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죠."

기가 막힐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라냐의 표정은 포커 페이스, 그 자체였다.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은 현수는 문득 생각난 듯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저 산에는 사람이 사나요?"

라냐가 문득 가리킨 곳은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야트막한 산이었다. 뒤쪽으로는 큰 산이 몇 개 더 보였다. 현수가 고개를 흔들자 라냐가 더욱 높이 비상했다.

"조, 조심 좀 해!"

"엄살 부리지 마세요. 지금부터 불꽃으로 뱀파이어를 유인하고 산으로 갈 거에요.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럴 거면 너 혼자 가는 게 더 낫지 않아?"

힘을 주자 상처를 덮치는 쓰라림에 인상을 찌푸리며 현수가 대꾸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내 참……."

못마땅한 얼굴로 말끝을 흐린 현수의 시선이 다시 아래를 향했다. 아파트와 주택 단지 내부로 진입한 경찰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수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쓸데없이 윤석의 얼굴과 겹쳐 그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아 버리고 말았다. 스치는 바람 소리를 뚫고 라냐의 담담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타올라라, 불이여."

동시에 푸확, 하는 소리가 나며 위쪽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살짝 뜬 실눈에 비친 것은 라냐의 주변에 생겨난 검은 불덩어리들이였다. 하나하나의 크기는 매우 작았지만, 기괴하게도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위압감은 현수의 몸조차도 떨리게 만들 정도였다.

"일부러 강한 기운을 불어넣었어요. 뱀파이어들은 라비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 추적해 올 테죠. 그럼 갈게요."

"경찰이 이걸 봐도 되는 거야?"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진 경찰들이 하늘을 주시하지 않고 있었다.

"상관 없어요. 어차피 이 정도 거리에선 제가 누구인지 식별하기도 불가능하니까요. 다른 뱀파이어의 이능력 정도로 이해할 거에요."

맞는 말이었다.

라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현수는 다시 그녀의 팔을 꽉 붙들었다. 도시의 풍경이 느릿하게 지나갔다.

5분이나 지났을까.

"슬슬 오는군요."

"벌써? 으악!"

갑자기 라냐가 방향을 틀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인영이 주택과 상가의 지붕을 타고 추격해오고 있었다.

"저들은 비행을 하지 못해요. 겁먹을 것 없어요."

그렇게 말한 라냐가 속도를 높였다. 이에 질세라 현수도 그녀의 팔을 더욱 세게 붙들었다. 손가락이 아려 왔다. 날지 못한다는 말을 듣긴 했고 실제로도 뱀파이어들은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 속도는 가히 공포스러웠다.

산으로 향한 라냐는 등산로에서 한참 떨어진 평평한 지형에 착지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팔을 놓자마자 현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죽는 줄 알았네……."

그런 현수의 앞에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주워서 확인해 보니 아까 라냐가 들고 있던 비수였다. 어느 틈에 피를 닦았는지, 칼집에서 뽑자 말끔한 은색 날이 빛났다.

"이건 왜?"

"필요할 것 같아서요."

짧은 말에 현수는 조용히 수긍하며 칼을 꽉 쥐었다.

"제 뒤에 붙어 있으세요."

그렇게 말한 라냐가 낫을 바투 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다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뱀파이어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외모 자체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비정상적으로 잽싼 몸놀림과 과다한 감정을 표출하는 표정으로 구분할 수 있을 뿐.

"라비스. 뒤쪽은 여신의 조각인가 보네?"

"볼 것 없어. 우리 쪽이 더 많아!"

그렇게 말한 여자를 선두로, 뱀파이어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소형 나이프나 깨진 유리, 식칼 같은 날붙이를 들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총기 소지 불법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네.'

속으로 곱씹으며, 현수는 라냐와 등을 맞댔다.

"여신의 이름으로 천벌을!"

나지막하고 당찬 소리와 함께, 라냐가 낫을 휘둘렀다. 검은 불길이 낫을 휘두른 궤적을 따라 타올랐다.

"크아아아악!"

불길에는 특이한 힘이 있는 건지, 스치기만 한 뱀파이어들조차 고통스러워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현수가 흘깃 보니 상처에서 불이 계속 타오르며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라냐의 낫은 리치가 상당히 긴 데다가, 검은 불이라는 강력한 공격 수단도 있었다. 덕분에 현수는 직접적으로 뱀파이어를 상대할 일 없이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현수는 본체만체하고 라냐를 주 타겟으로 삼는 탓도 있었지만.

별 생각 없이 주변을 훑던 현수의 눈에 멀찍이서 활을 겨누는 모습이 잡혔다. 라냐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활? 어떻게 저런 게!'

길이만 해도 1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장궁을 든 자들이 이곳저곳에서 화살을 꺼내고 있었다.

"라냐! 활이 있어!"

라냐의 시선이 한 순간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현수가 보아도 라냐가 공격하는 것보다 화살이 날아오는 게 훨씬 빠를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피해 볼 속셈으로 몸을 숙이자, 라냐의 옆얼굴이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현수한테 그 순간은 매우 느리게 느껴졌다. 진지한 표정의 라냐가 아주 잠깐 감았던 눈을 뜨며 외치는 장면이. 어쩌면 그 순간의 안광이 너무나 강렬해서일지도 몰랐다.

"이그나이트!"

그리고 현수는 또 한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다.

"캬아악!"

멀쩡하던 뱀파이어들의 몸에서 검은 불이 붙어 타올랐다. 확 일어난 불길은 순식간에 활마저도 집어 삼켰다. 쓰러지는 활잡이들을 보며 현수가 한 마디 했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썼어야지!"

"이건 힘 소모가 매우 심해서 아껴야 하는 기술이에요. 이걸 남발했다간 세 시간도 못 버텨요!"

"그냥 써! 금방 끝날 것 같은데 뭘!"

"그렇지 않아요!"

라냐는 확실히 잘 싸우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뱀파이어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 그것 하나였다. 불로만 싸우던 라냐는 차츰 낫으로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무기가 워낙 컸기 때문에 동작 하나하나도 매우 컸고, 이는 현수의 눈에도 빈틈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라냐는 모든 것을 초월적인 반응 속도로 해결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 낫을 휘두르고, 그 틈을 노린 적의 공격을 춤추듯 회피한 뒤 다시 베어버렸다. 몸이 워낙 작은 탓에 노릴 구석이 많지 않기도 했다.

혈향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토할 것 같은 비린내에 현수는 심호흡을 했다. 아까 전 방에 들어갔을 때 본 처참한 풍경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워낙 상황이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서 느끼지 못했던 공포가 한꺼번에 닥치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고 머리를 부여잡는데, 별안간 뱀파이어들의 공격이 멈추었다.

'끝난 건가?'

그건 아니었다. 단지 뱀파이어들이 공세를 멈추고 물러서 있을 뿐이었다. 라냐를 보자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불길조차 끄지 않고 있었다.

"뭐지?"

"역시. 예상했던 대로에요."

"무슨……."

의문은 곧 풀렸다.

"사이더 라냐.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 학살자 선비분들은 잘 있던가?"

누가 들어도 조롱이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한 남자가 뚝 떨어지듯 등장했다. 라냐와 같은 날개를 가진 사내였다. 훤칠한 키에 차가운 표정, 서늘한 목소리가 마주한 이의 심장을 저릿하게 만들 법한.

"아르비스."

"보아하니 여신의 조각을 손에 넣은 모양이군. 하지만 이쪽도 피는 넉넉하게 마시고 왔어."

"그만둬.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뭐야?"

"경고야."

그 말이 너무나도 가벼워서, 현수는 순간 판단력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얼마 전 뉴스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자색수와 뱀파이어에 대해 더 이상 파고들지 말라는 경고지."

"아무리 그런 짓을 해도 결국은……"

"됐어, 됐어."

아르비스가 손을 내저으며 라냐의 말을 잘랐다. 내젓는 손이 허공에서 멈추더니, 이윽고 검은 불길을 불러냈다. 불길은 한 쌍의 늘씬한 숏 소드가 되었다.

"어차피 우린 종족만 같지, 모든 게 달라.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쌍검을 캐치하여 자세를 잡는 것이 완연한 숙련자였다. 라냐가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어."

"그럼, 한 수 부탁하지. 사이더 라냐!"

아르비스가 빠른 몸놀림으로 쇄도했다. 라비스답게 뱀파이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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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사이더 라냐(2) 12.11.27 148 1 12쪽
1 1. 사이더 라냐 +2 12.11.26 28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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