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색의 사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비검[飛劒]
작품등록일 :
2012.11.26 23:54
최근연재일 :
2012.12.02 00:0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979
추천수 :
10
글자수 :
24,651

작성
12.11.30 20:14
조회
127
추천
1
글자
7쪽

2. 거래(2)

DUMMY

현수를 비롯한 일반인들은 뱀파이어가 신인류, 혹은 돌연변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라냐가 알려준 진실은 어떻게 보면 예측 범위 내였지만,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충격적이기도 했다.

라비스의 혈액을 인간에게 주입하면, 인간은 순간적으로 라비스와 비슷한 육체적 능력과 기억력을 갖게 된다. 이에 중독된 인간이 계속해서 라비스의 피를 주입받으면, 육신 자체가 변이를 일으킨다.

'육체적 능력은 크게 강화되나 스스로 피를 생산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반대로 소모 속도는 빨라진다 했지.'

한 번 변해버린 육체는 되돌려 놓을 방법이 전무했다. 변이된 사람은 결국 살기 위해 끊임없이 피를 찾아다녀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라비스의 혈액이든, 인간의 혈액이든.

'이 정도인가.'

거기서 잠시 놓고 있던 현수의 손이 곧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엔터 키를 몇 번 치고 나서 그는 새로운 내용을 입력했다.

- 라비스의 혈액은 인간에게는 이득을 주나 대신 변이라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준다.

- 뱀파이어의 혈액은 인간에게는 별다른 효과가 없으나, 라비스에게는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극독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라비스가 죽지는 않는다.

- 인간의 혈액은 라비스가 낮에 행동할 때 떠안는 핸디캡을 잠시 동안 없애고, 뱀파이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 여신의 조각의 혈액은 라비스와 뱀파이어의 힘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킨다.

거기까지 친 현수는 메모장 파일을 저장했다.

'꼭 소설이나 만화 설정 같네.'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군데군데 빠진 부분을 채워넣으며 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정을 한 차례 거친 뒤 재차 저장하려는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요?"

난데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라냐였다.

"와악!"

그야말로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놀란 현수는 집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이에 라냐도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와, 왔으면 노크라도 하라고! 놀랐잖아!"

"미, 미안해요.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저도 몰랐어요."

라냐가 큰 눈을 당혹스럽게 깜빡였다.

"뭐 됐어. 그보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집에 비상약이 없길래, 약국 갔다 온 거에요."

라냐의 손에는 꽤나 묵직해 보이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바닥에 내려놓고 내용물을 살펴 보니, 소화제부터 시작해서 붕대와 소독약까지 다량이 들어 있었다.

"왜 이런 걸?"

"일단 어제 다친 팔을 치료해야 하니까요."

무덤덤하게 말하며 라냐는 거리낌 없이 현수의 팔을 붙잡고 소매를 걷었다. 피투성이가 된 옷자락 아래로 긴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 작고 고운 손이 능숙하게 소독약을 뿌렸다.

"기분은 좀 어때요?"

"혼란스러워. 실감이 안 나는 것도 많고."

짧은 대답에 라냐가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현수는 문득, 지금이 환한 대낮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나갔다 온 거야? 낮인데."

"어제 마신 피의 효력이 남아 있었어요. 이제 곧 끝나겠지만."

아르비스와 싸울 때 한 번 더 피를 마셨던 것이 비로소 기억나는 현수였다.

"끝났어요."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은 뒤, 라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서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던 현수는 문득 노트북이 생각나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어제 말했던 걸 정리했는데 맞는지 좀 봐줘."

"정리요?"

라냐가 소리도 없이 다시 다가와 노트북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우스를 잡고 휠을 굴리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몇 가지가 빠졌네요. 첫 번째로, 검은 불에 대한 것."

"응?"

검은 불이 뭔지는 현수도 알고 있었지만 짚이는 내용은 없었다.

"아, 제가 이야기를 안 했었나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냐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직접 메모장 끝자락에 추가 사항을 입력했다.

- 검은 불은 여신이 직접 하사한 라비스의 힘. 검은 달에서 쫓겨난 이후로 라비스는 이 힘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여신의 조각의 피를 마시면 일시적으로 이 힘을 돌려받는다. 원인 불명.

제 할 일을 다 한 커서가 제 자리에서 얌전히 깜빡였다.

"그래서 어제……."

아르비스가 이상할 만큼 검은 불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납득이 되는 현수였다.

"네. 검은 달에 있을 때라면 아르비스도 추살로 맞섰겠죠. 그래서 당신이 대단한 거에요."

"내가?"

난데없는 말이었다.

"일반적으로 여신의 조각의 피를 충분히 마셨다고 해도, 이그나이트를 좁은 범위에 펼치는 정도가 한계에요. 그나마 대부분은 무기를 통한 단순한 화염 발사에 그치죠. 저도 그 정도일 줄 알고 다섯 시간이라 답했던 거고요."

"하지만 넌 어제 그, 추살이라던가? 그걸 썼지."

"네. 강현수 씨, 당신은 제가 알기로 현존하는 여신의 조각들 중 가장 잠재된 힘이 많았어요. 아르비스도 정말 놀랐을 테죠."

"그래서 어제 엄마가 여신일 거란 얘기를 한 거였어?"

"맞아요."

라냐가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윤석 씨는 일반인이었어요. 따라서 당신 정도의 사람이 나오려면, 배우자가 여신 자신이어야만 해요."

여신과 일반인 사이에서도 여신의 조각이 나오지만, 여신의 조각과 일반인 사이에서도 여신의 조각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여신은 계속 환생을 반복하며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30년을 넘기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죠."

"무슨 소리야?"

불길한 예감이 현수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추적당하고, 살해당하는 거에요. 라비스나 뱀파이어의 손에."

섬뜩한 말이 아무렇지 않게 대기중에 흘렀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도 살해당했다는 거야?"

"이유는 다양하지만……"

"질문부터 대답해 줘. 우리 엄마도 살해당한 거야?"

라냐가 잠깐 입을 닫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의 얼굴이 경악에서 분노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대체 왜?"

"방금 말했어요. 이유는 다양하다고. 여신의 살해에는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요. 오늘 하루 내내 설명해도 다 풀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얄미울 정도로 라냐는 태연했다.

"그런……."

어제 너무 울어서인지, 이젠 눈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턱에 절로 힘이 들어가 이가 갈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또렷이 들렸다. 라냐는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손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현수가 이 말을 할 때까지.

"전 당신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싶어요."

기다렸다는 듯, 라냐가 제의했다.

"일단 당신의 피를 독점 거래하고 싶어요. 돈은 후하게 치를게요. 원한다면 호화 주택에서 살 수도 있을 정도로."


작가의말

 

원래는 오늘은 8천자 정도 쓸 계획이었는데

술 약속이 잡혀 버렸네요. 으허허.....

순위 왕창 떨어지겠다 ㅠ

어쨌거나 오늘도 생존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자색의 사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 2. 거래(3) 12.12.02 93 2 7쪽
» 2. 거래(2) 12.11.30 128 1 7쪽
5 2. 거래 12.11.29 76 1 4쪽
4 1. 사이더 라냐(4) 12.11.29 133 3 8쪽
3 1. 사이더 라냐(3) 12.11.28 117 1 10쪽
2 1. 사이더 라냐(2) 12.11.27 148 1 12쪽
1 1. 사이더 라냐 +2 12.11.26 285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