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번엔 꼭 찾아요.
아침에 일어나 배낭을 챙기고 상황에 따라 아침 식사를 한다. 준비를 마치면 일행의 분위기나 개인의 선택에 따라 걸음을 옮긴다. 낯선 거리를 걷고 이따금 도시나 마을을 지나칠 때도 있다. 해가 밝아오면 고통을 느낄 정도로 맹렬한 볕 아래를 걷지만 습도가 낮은 덕에 그늘 아래는 시원하다. 체력에 따라 적당히 휴식을 취하며 목적지를 향한다. 식당을 이용하거나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다. 목적한 마을에 도착해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간다. 자리를 배정받고 짐을 푼 후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빨래터나 세탁기를 이용해 빨래 후 볕이 잘 드는 곳에 빨래를 넌다. 맑은 날은 워낙 볕이 강렬하기에 탈수하지 않아도 옷은 2, 3시간 후면 바싹 마른다. 2시부터 5시까지 씨에스타이기에 식료품점을 비롯한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기에 쇼핑할 수도 없다. 휴식을 취하거나 마을 구경을 하는데 가장 더운 시간이기에 될 수 있으면 휴식을 선택한다. 씨에스타가 끝나면 장을 봐서 저녁 식사를 한다. 대도시가 아니면 가게 문을 일찍 닫으니 필요한 것은 미리 사둬야 한다. 때때로 음주도 즐기다 보면 해가 저물고 이른 밤 알베르게의 불이 하나둘 꺼진다.
특별할 것 없이 하루도 쉬지 않고 반복했던 28일의 일상이 끝나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알람 없이도 이른 새벽 눈이 떠지지만 짐을 챙겨 나갈 일이 없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예술품을 보는 것도 일시적일 뿐 걷지 않는 하루는 어색하고 무료했다. 관광 욕구는 사라지고 달라진 일상의 어색함에 끝도 한도 없이 무기력해졌다.
포르투갈을 거쳐 귀국 비행기를 탈 마드리드에 도착할 때까지 대부분 날이 그랬다. 아마 마드리드에 도착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마드리드행은 며칠 전부터 기대가 가득했다. 스마트폰이 없는 수정과의 연락은 이메일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녀가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묵었던 한인 민박집에 도착한 뒤부터 가능했다. 나 역시 WIFI가 되지 않으면 이메일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연락에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정이 스페인에서 보낸 마지막 이메일은 이틀이 지나 마드리드로 향하는 포르투 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여기도 비바람 장난 아니에요.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태워준다고 안 하셨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아무튼, 오빠가 여기 묵는다고 예약해 뒀고요.
저번에 언젠가의 알베르게에 맡겼던 거 다시 적어서 남기고 가요.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같지는 않지만 오빠에게 적어주기로 했었으니 이번엔 꼭 찾아요.
그때도 이틀 뒤에 한 남자가 올 거라고 했는데 지금도 오빠가 이틀 뒤에 이곳에 오네요.
전 이제 진짜 갈 준비하고 마드리드 공항 갑니다.
다음 오빠의 메일을 확인하는 건 한국에서 하게 되겠네요!
한국에서 오빠 연락 기다릴게요.
순례길을 마치고 스페인 여행을 계획한 준영은 마드리드의 한 한인 민박집을 예약했다. 마드리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수정과 루다도 준영의 소개로 같은 민박집에 예약했다. 같은 입장인 덕에 수정에게 예약을 부탁했는데 예약과 함께 선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민박집 주인은 알콩달콩한 연애질에 덩달아 신이 나 고이 간직하던 작은 봉투를 건넸다. 한 달여 만에 손에 들어온 편지가 어색하고 신기하다. 내 것이라면 어떻게든 내 손에 들어올 거라더니 이것도 결국 내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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