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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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5.1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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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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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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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마족 간첩2

DUMMY

지하 감옥에 갇힌 지 꽤 시간이 지난 거 같다.

햇볕이 들지 않아서 지금이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건 확실하다.

제국에는 범죄자(?)의 인권이라는 것은 전혀 없는지, 지하 감옥에 갇힌 내게 먹을 것을 안 주고 있다.

감옥 구석에 앉아서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됐을까...? 역시 용사소환부터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딴 세계에 소환된 것 자체가 문제다.

나한테 일절 동의도 없이 자기네 세상을 구해달라고 제멋대로 용사소환을 하더니, 원래 세계에 돌아가고 싶으면 ‘용사’ 역할을 하라고 내게 강요한다.

그래놓고는 내 생김새가 ‘마족’ 이랑 닮았다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으라며 황궁에 가둬 놓는다. 무기한은 절대로 못하겠다고 따져서 합의 한게 1년의 시간과 아일레로 외곽 별장. 생활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외곽에 숨어서 지내고 있다.


‘눈에 띄지 말고 숨어서 훈련해라. 우리가 용사가 필요한건 사실이지만, 용사의 외모는 거부감이 든다 이건가?’


치안 서장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말했는데도, 사실 여부를 알아보지도 않고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었다.

치안 서장 정도면 꽤 높은 사람일테니, 제국 황실에서 용사소환과 관련된 명령하달이 있었다면 모를리 없다. 더군다나 외곽이나 지방도 아니고 수도 중심부에 있는 치안대 서장인데, 명령 하달이 있었다면 분명히 알았을 거다.

즉, 치안 서장이 내 말은 일절 안 믿고, 용사가 소환되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는 건, 황실과 고위귀족, 별장의 사용인들 정도만 나에 대해서 안다는 거다.

제국에서 나는, 존재 자체가 비밀이다.

새삼스레 르노아씨의 정보력이 놀랍네. 내가 용사라는 것도 알고...


‘제국은 날 이용만 하고 있어.

마왕과의 침공이 없으면 훈련한 시간에 대해 적당히 보상하고 돌아가라고 할 셈이고, 전쟁이 나면 자신들은 안전한 곳에서 마왕을 물리치는 데 나를 이용할 거야.

전쟁이 날지 안날지 모르니 내 존재 자체를 숨기고 있어.

자기네가 원하는 영웅의 얼굴이 아니니까... 완전 인종차별이네.’


굉장히 기분 나쁘다.

치안 서장이 내게 귀싸대기를 때리고 침을 뱉었다는 걸 제국에서 안다면 어떻게 나올까?


‘그러니까 누가 혼자 나가라고 했냐?’


‘오해로 비롯된 일이니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자?’


‘책임자를 처벌할 테니 이해해 달라?’


어떻게 나오든지 내 기분은 나쁠 수밖에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제국의 용사로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용사로 있어 달라는 말도 사실은 협박이지 않나...


*


하루종일 굶고 있으니 점점 배고픔에 무감각 해 진다.

체감으로는 저녁 식사 먹을 쯤 됐을 거 같다.


조금 전부터 머리 위가 상당히 시끄럽다.

누군가 치안대에 들어와서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는거 같더니만, 조용해진다.

지하의 문이 열리고 또각또각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르네트다.

지하 감옥의 계단으로 르네트와 치안관 한명이 내려온다.

르네트가 나를 발견하더니 안심했는지 눈시울을 붉어진다.


“예서 언니! 말도 없이 나가시면 어떻게 해요?!”


“아 르네트 왔니?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언니가 없어져서 별장이 발칵 뒤집혔었어요! 올젠 선생님이 황궁 마법 명단에 연락해서 아일레로 전체를 수색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도매시장 치안대에 마... 언니가 붙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풉. 마족 간첩이 도매시장 근처에서 돌아다니다가 잡혔다던?”


“에... 그렇긴 한데... 아니 어쨌든. 언니! 어딜 가고 싶으면 저한테 같이 가자고 했어야죠! 그러려고 제가 언니랑 같이 있는 건데!”


르네트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면서 잔소리를 한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메이드라기보다는 공주님 같던 얘가, 친해지고 나니 하는 짓이 귀여워 진거 같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풋...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겠니?”


“치안관 님! 지금 큰 실례를 하시는 거에요. 이분 당장 풀어주세요!”


“저도 서장님의 허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영애께서는 성함이? 이 마족과는 무슨 사이십니까?”


르네트의 복장을 보고 꽤 높은 신분이라고 생각한건지, 젊은 치안관이 말을 조심하게 한다.

나는 마족이고 르네트는 귀족 영애야? 웃기네.

르네트가 한쪽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대고 말한다.


“제 이름은 르네트 에스키아. 에스키아 백작가의 장녀예요! 이분은 황제 폐하의 초대를 받고, 마지쿠스 공작가에 머물고 계신 분. 곧 황궁에서 관계자가 올 거니 당장 풀어주세요!”


“하지만...”


르네트가 당당하게 풀어주라고 외쳐보지만, 치안관이 절차상의 이유와 권한을 이유로 조곤 조곤 안된다고 대답한다.

자기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치안 서장을 설득하라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 해봤어?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한대?”


“말이 안 통하네요. 법대로 처리하겠데요...”


“법대로 처리? 하라고 그래. 내가 무슨 잘못 했다고~”


“수도에 침입한 마족은 즉결 처형도 가능해요... 언니!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제가 마지쿠스 공작님을 모셔올게요!”


르네트가 지하 감옥에서 후다닥 뛰어나간다.

아... 아침에 서장이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인다 어쩐다 한게 이유 있는 말이었네?

무슨 내 존재 자체가 존재 악도 아니고 뭘 법적으로 즉결 처형이야.

그냥 화장실에서 나오다 그 앞에 서 있던 사람 부딪힌 거뿐인데.

어이가 없다.

이쯤되니까 가슴속 깊이 화가 몰려 온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게 어이 없어서 웃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진짜 싫다.

용사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도와 달라고 용사 소환하더니 수도에 불법 침입한 마족이라서 죽인다고? 아, 극혐.’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위에서 시끌시끌 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르네트가 마지쿠스 공작을 불러 왔나 보다. 멀리 소리가 들린다.


“무엇들하냐! 황궁 마법 군단장 그랑 마지쿠스 공작님이시다! 인사드리도록!”


“그란츠 마지쿠스 공작님을 뵙습니다!”


발 구르는 소리도 나는거 보니, 절도 있게 치안관들이 인사한거 같다.

내가 있는 지하 감옥으로 치안관 한명이 뛰어 들어오더니, 나를 묶은 수갑 등을 풀어준다.

1층으로 올라오니, 그란츠 공작이 위압적인 눈빛으로 경찰서 한가운데에 서 있고, 그의 뒤로 순백색 로브 차림의 사람들이 도열해 있다.

황실마법군단까지 데리고 왔나보다.


치안관들은 경직된 자세로 그란츠 공작 앞에 서 있는다.

안쪽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며 내게 침 까지 뱉은 장본인, 치안 서장이 뛰쳐나온다.


“아일레로 3 치안대. 서장 폴리 에이작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란츠 공작님!”


폴리 아이작이 90도로 머리를 숙여 그란츠 공작에게 악수를 청하지만, 그란츠 공작이 손을 '탁' 쳐낸다.

제국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심한 신분제 사회였나보다.

폴리 아이작이 거의 죽기 직전의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든다.

내게 침을 뱉으며, 나를 ‘거짓말쟁이 사기꾼 간첩 마족’ 취급하며 모욕하던 치안 서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죽을 날을 받아 놓은 비굴한 사람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폴리 아이작이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울상을 지으며 바라본다.

눈빛으로 내게 말하길래 나도 대답해 줬다.


‘그란츠 공작님의 손님이라고 확실하게 말해 줬어야지! 난 이제 죽었어!’


‘어쩌라고? 몰랐으면 이제부터 알면되겠네.’


“그래. 폴리 에이작. 황제 폐하의 손님을 아침부터 이 저녁까지 가둬뒀다고 들었네. 책임을 져야겠지? 장예서님. 먼저 돌아가시지요. 저는 뒷 정리를 하고 가겠습니다.”


“네, 공작님. 참고로 치안 서장님이 제가 계속 거짓을 말한다며 저를 뺨을 때리고 침을 뱉었습니다. 꼭 댓가를 치르게 해주세요.”


얼굴이 새하얗게 뜬 폴리 아이작을 뒤로하고, 르네트가 이끄는 대로 마차를 타고 마지쿠스 별장으로 돌아왔다.


* * *


치안대 감옥에서 나와 마차를 타고 마지쿠스 별장으로 돌아왔다.


집사장이 ‘지금이라도 식사하시겠냐고, 바로 준비하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그대로 방으로 돌아갔다.

하루종일 감옥에 갇힌 채 식사 타이밍을 놓치고 나니 뭘 먹을 의욕도 생각도 안난다.


씻고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그란츠 공작이 나를 찾는다.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한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열 받는 건 난데...’


1층 식당 옆 응접실에 들어가니, 그란츠 공작이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 있다. 내가 들어온 것을 보고 자리를 마주한다.


“장예서님. 얌전히 훈련만 하고 계실 수는 없던 겁니까?”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훈련 안 받는 휴무일이었잖아요.

저 평일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훈련 열심히 잘 받고 있었거든요?

바람도 쐴 겸 잠시 바깥 구경을 할까 싶어서 나왔을 뿐이에요.”


“사전에 설명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국 사람들에게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는 인식이 별로 안 좋다고.

장예서님 때문에 수도 아일레로에 마족들이 숨어들어와 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어이없네. 여기서 내 탓을 하고 있다. 그게 나랑 뭔 상관이라고. ㅅㅂ


“그래서 어쩌라고요?”


“설사 장예서 님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이제 용사로서 제국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제국을 혼란에 빠트릴 법한 일은 지양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소환된 줄도 모르는 용사가 왜 제국을 대표한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치안 서장한테 못 들으셨어요? 저는 용사소환으로 왔다고 사실대로 말한 거?”


“...”


“그란츠 공작님. 제가 혼란에 빠트리는 게 아니라, 제국 사람들이 절 안 믿는 거예요. 사실대로 말을 해도 안 믿어요. 왜? 용사가 소환된 줄 모르니까.

용사가 마족과 비슷한 생김새일 거라고 생각 못 했으니까.

눈앞에 얌전히 잡힌 자가 마족이면 자신의 공을 세운 게 되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는 거예요? 말해보세요.”


“르네트가 용사님 옆에 왜 있겠습니까. 제국을 안내해주고 생활을 도와주려고 있는거 아닙니까. 그럼 최소한 목적지는 밝히고 나가셨어야죠.”


“...”


“장예서님. 아침 이후로 제국 수도한 복판에서 마족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로브를 쓴 자들을 의심하고, 로브를 벗겨 신원을 확인하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외출 금지입니다. 절대 허락 없이 나가지 마십시오.”


그란츠 공작이 단호하게 외출금지령을 내린다.

억지로 용사로 불려 와 외모가 마족을 닮았다고 인종차별을 하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니.

진짜 싫다. 마음 같아서는 훈련 같은거 다 때려치우고 르네트랑 치킨집 차리는 데만 집중하고 싶다...


‘아. 용사 그만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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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7. 마족 간첩 23.07.07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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