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전쟁(Proxy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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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언트
작품등록일 :
2015.06.10 16:16
최근연재일 :
2015.07.18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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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1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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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제 4장 – 검은 날개의 쟈칼과 춤을.

무려 1년만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달려나가 보겠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길 ^^




DUMMY

(6)


갑자기 나타난 그는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떼면서 손을 털었다.

찰그랑-

황금색의 팔찌들이 부딪히면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능력자도 규칙을 어겼을 뿐만이 아니라, 너 역시도 규칙을 어겼지. 그 것이 비록 기록해 놓은 규칙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들이 상의하고 동의한 규칙들을.』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살기를 머금는다.

허공에 입자들이 뭉친다.

청년의 눈동자와 같은 황금색의 입자가 하늘거리며 뭉치고, 뭉쳐진 입자들이 형태를 이루며 청년의 몸에 하나씩 하나씩 달라 붙는다.


그 것은 가면이 되었다. 황금색의 바탕에 붉은색의 무늬가 고풍스럽게 그려진 고대의 황금의 가면이자 투구가 되었다. 사자 갈기처럼 사방으로 뻗은 왕관처럼 보이는 붉은색의 장식은 마치 태양과도 같았다.

그 것은 갑옷이 되었다. 가면과 마찬가지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청년의 육체를 감싸며 철벽과도 같은 갑옷이 되었다. 흉갑 부분에 붉은색으로 빼곡하게 새겨진 것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들.

그 것은 건틀렛(Gauntlet)이 되었다. 청년의 양 손에 달라 붙어 그 어떠한 적이라 할지라도 분쇄해버릴 수 있는 막강한 단죄의 철퇴를 내리는 황금의 건틀렛(Gauntlet). 건틀렛의 중심부분에서 뻗어나간 그 문양은 진실을 보는 우고트의 눈.

그 것은 그리브(Greave)가 되었다. 그 어떠한 장소라 할지라도 굳건하게 디딜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진 황금의 그리브(Greave). 그리브의 발끝 부분에서 퍼져나간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고스란히 그 위에 깃들어 불타오르는 것과 같은 문양이 되었다.

그 것들은 갑옷의 등 부분에서 찬란하게 솟구쳤다. 빛의 정수가 모여 이루어진 것은 그야 말로 빛의 날개.

완벽하게 전투 태세를 갖춘 그가 투구 속에서 빛나는 황금색의 눈을 들어 이자나기를 직시하였다.


『이집트의 최고 신인 나, 태양신 라가 묻는다.』

투구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싸늘했고,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이자나기여 어째서 그대들은 우리들이 정한 규칙을 어겨 놓고서 어째서 그렇게도 당당할 수 있는가.』

주변의 공기가 떨리며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그 것을 내가 알려줄 필요가 있나?」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아카 츠루미를 자신의 뒤쪽에 내려 놓으며 이자나기가 반문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세 자루의 검 중의 하나를 뽑아 오른 손에 쥐었다.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는 검신은 그야 말로 섬뜩.

등에 메고 있던 황금색 지팡이를 왼손에 뽑아 들었다. 지팡이에 맺히기 시작하는 어둠은 그야 말로 불길.


『하긴. 너희들은 언제나 그래 왔었, 지!!!』

그리브를 착용한 라의 다리가 바닥을 박찼고.


「웃기는군! 하등 한 태양신 주제에!!!」

양손에 위협적인 기운을 흩뿌리는 무기를 휘두르며 이자나기 역시 마주 달려 나갔다.


콰아아아앙-!!!


경천동지.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린다.

황금색의 건틀릿과 새하얀 검신이 맞부딪히며 일어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쓴다.

병원의 잔해가 분자 단위로 바스러지며 가루조차 남기지 못한다.


이자나기의 새하얀 검날이 라의 투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며 빛을 머금은 황금의 건틀릿이 어둠에 물든 지팡이를 쳐낸다.

일진, 일퇴.

일본의 창세신 이자나기와, 이집트의 태양신 라의 싸움.

두 신 모두 절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초 근접.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검과 지팡이를 뻗었으며,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는 양 손을 휘두른다.

주변의 건물들이 모조리 사라져나간다.

이자나기와 라의 공방으로 일어난 충격을 버티지 못한 채 지워져 나간다.



두 신의 싸움을, 전투를 넋을 놓은 채 지켜보고 있던 김현후가 주변의 지형지물이 바스러지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서 화들짝 놀랐다.

그에게 있어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이아인이었으니까.

허나 이미 이아인이 있었던 병실마저도 두 신의 맞부딪힘에 지워져 나간 지 오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린 김현후의 뒤통수를 토트가 가볍게 후려 쳤다.

예상하지 못한 일격에 뒷머리를 움켜쥐자,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확실히 빡치긴 했었나 보구나?』

『크르르…… 이제서야 병원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면 이성줄이 끊기긴 했었나 보군.』

토트와 아누비스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잘 봐라 임마. 이렇게 지형이 바뀔 정도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상 할 정도로 사람이 없지 않냐?』

토트의 말에 그제서야 둘러 본 김현후가 입을 다물었다.

분명히, 이렇게 요란하게 싸우고 있는데 사람의 머리카락 하나 안보였다.

『크크크…… 이미 이 곳은 전장이다. 그러니까 말로는…....』

『배틀 필드 임마, 배틀 필드! 영어로 배틀 필드! 뭐 전장이나 배틀 필드나 그 것이 그 것이지만.』

“……!!”

김현후의 머리 속에서 토트 신의 서고에서 읽었던 『전장』에 관련된 정보가 촤르륵 떠오른다.


현세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하여 일정 범위의 장소를 고스란히 복사하여 만든 가상의 세계.

능력자와 능력자 간의 싸움에 다른 일반인들을 비롯한 타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신들이 고안해 낸 싸움터.


『네 소중한 소꿉 누나는 지금 멀쩡하게 병실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저 둘의 싸움을 잘 지켜봐라.』

“대체, 언제부터?”

싸움에 집중하라는 토트의 말을 듣고서도 진정되지 않았는지 재차 한 질문을 받은 것은 아누비스였다.

『큭, 네가 내 시련을 통과하고 대가를 지불하여 되살아 났을 때부터.』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김현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년을 넘는 시간 동안 얼굴도 모른 채 복수심을 불태워 왔던 원수를 만났다는 사실에 앞뒤 가리지 않았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자신과 저 미친 년의 싸움으로 병원이 반파 되지 않았던가.

『냄새 맡기 좋아하는 김현후여. 이제 그냥 지켜 봐라. 네가 만약 대리자가 된다면, 이 싸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경험이 될 테니까.』

은근슬쩍 과거의 일을 언급하는 아누비스를 발로 한번 차고서 김현후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일본과 이집트의 최고신들이 벌이는 싸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눈에, 머리 속에 담기 위하여.


*****


라가 입고 있는 전신의 무장에 붉은색의 보다 진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주변의 온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일출(日出)의.』

그리브의 타오르는 붉은 문양이 급격하게 영역을 넓혀간다.

그리고 그 것은-

『케프리!』

강렬한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막대한 열기를 품은 채 라를 중심으로 폭사했다.

주변을 통째로 태워버리려는 듯, 사방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불꽃은 그야 말로 폭풍과도 같은 화염의 파도!


「이미 이 것은 많이 봐왔다, 하등 한 태양의 신 같으니!!」

그리브에 새겨진 불꽃의 문양에서 분출된 일출의 태양을 보면서 석장을 뒤로 던지며 허리에 차고 있던 두 번째 검을 뽑은 이자나기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정면을 향하여 그었다.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는 검이 라를 중심으로 뿜어지는 화염의 바다를 그대로 갈랐다.



『과연, 그 것은 예상대로 일월신검 중의 첫 번째인 일신검(日神劍)이로군』

자신의 공격이 무용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라의 음성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남아 있는 검은 일월신검의 나머지 반쪽, 월신검(月神劍)일 테지.』

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자나기는 웃었다.

「그렇다, 하등 한 태양의 신이여! 나는 태양의 아마테라스와 달의 츠쿠요미의 아버지! 그렇기에 그들이 직접 벼린, 태양을 상징하는 일신검과 달을 상징하는 월신검의 주인이다! 크하하하하하!!!」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 이자나기를 주시하며 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른쪽의 건틀렛을 들어 올리며- 두 번째의 일격을 준비한다.


「태양신이여, 태양신이여! 하등 한 태양신이여! 너는 나에게 닿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바로 일월신검의 주인이니!」

어느새 세 번째 검인 월신검마저도 뽑아 들어 손에 쥔 이자나기.

그러나 라는 투구 속의 황금색 눈을 형형히 빛내며 움켜쥔 주먹을 그대로 앞으로 굳건하게, 내지르며 무심하게 자신의 생각을 입에 담았다..

『말하지 않았나. 예상대로, 라고.』



황금색의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는 라의 주먹이 묵직하게 앞으로 뻗어나간다.

느릿하지만 정확하게.

느긋하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무겁고 진중하게.


『정오의 라(Ra).』

그의 입에서 태양의 두 번째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거북이처럼 느릿하던 주먹은 어느새 완전히 내질러져 있었다.

그리고, 뻗어진 주먹의 앞이 새하얗게 사라진다. 마치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을 지우개로 단번에 지우듯, 라의 정면에 있던 그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무슨……!?」

자신의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기함하며 일신건과 월신검을 교차하며 정면을 베었지만, 너무나도 힘없이 두 검이 반으로 쪼개어진다.

일월신검이라는 이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허망하게 부러진 두 검마저도 새하얀 빛에 먹히며 사라진다.

라가 내뻗은 일권(一拳)이 경악을 담은 이자나기를 덮쳤다.

그리고, 들려오는 폭음.


콰아아아앙-!!!!


*****


라의 일권, 『정오의 라』가 이자나미를 통째로 덮치는 것을 보며 토트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 라(Ra)님이 천칭이 부숴진 너와 비슷할 정도로 빡치셨나보다.』

『……저건, 호루스나 세트도 이름을 듣는 그 순간 모든 것을 던지고 도망가는 빛이니까. 괜히 우리들 중에서 최고 신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지. 크륵, 근데 저거 최근에 호루스한테 갈기셨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토트여.』

『음.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호루스가 인간들에게 들은 말이라면서 우리 라님에게 한마디 한 것이 화근이었지 아마?』

『대체 무슨 한마디의 말이었기에 라님이 그렇게 빡치셨는가?』

『아, 행동도 있었다. 갑자기 라님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더니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 라는 말로 기억하는데……』

토트와 아누비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짓는 김현후였다.

당신들, 아까와는 다르게 “님”자가 붙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기는 한 거야?

그리고 대체 어떤 미친 놈이 호루스한테 “왕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라는 대사를 가르쳐 준건데?! 더군다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고? 그거 대사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상세하게 알려준 것이 분명하잖아!


『뭐, 어째거나. 나름대로 창세신 급이라 이건가? 저거 한방이면 내가 알기로는 제우스의 천벌(天罰)보다는 위력적일 텐데 말이지.』

『창세신 급은 개뿔. 저 놈이 무슨 실력으로 저걸 버티겠나? 잘 봐라 토트.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템빨 아닌가, 템빨.』

라가 내질렀던 주먹을 회수함과 동시에 새하얗게 물들었던 공간의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입고 있던 갑옷들이 완전히 전소된 채 휘청이고 있는 이자나기가 있었다.

『확실히. 네 말이 맞긴 하지. 최고신들 중 강해지기 위해서 수련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 대신, 무구들만으로 강함을 꾀하는 한심한 놈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저 놈이 입고 있던 갑옷이 “정오의 라”를 막아 준 것 같은데, 어디서 난 것인지도 궁금하군.』

『뻔하지 않은가, 유명한 대장장이 신들을 협박해서 뜯어낸 것이 분명하지. 그렇지 않다면 다량의 뇌물을 줬을 수도 있지 않은가.』

엉망진창인 이자나기의 모습을 보며 세밀하게 분석하는 토트와 아누비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귀를 쫑긋거리는 김현후가 있었다.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망가진 이자나기를 뒤로한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오는 라(Ra)를 보면서 김현후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 것이 이집트 최고 신이라 불리는 태양신 라. 너무나도 많은 호칭을 가지고 있어서 셀 수가 없다고 하는 태양신 라의 힘……!

『마무리는 네가 해라 김현후. 우리가 온 것은 이자나기가 능력자들 간의 일에 끼어든 것 때문이다.』

황금 투구 안에서 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어쩐지 너무나도 따스한 봄날의 햇살처럼 들렸다.

『너는 아직 약하다. 저 미친 년을 상대로 “심판자”라고 하는 절대적인 힘이 없었다면 현재로써는 단 10초만에 죽을 정도로 약하다. 그러니 선택해라.』

잠시 말을 멈춘 라가 김현후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심판자”라는 힘과 복수심에 취해 저 년을 죽이던가. 아니면…… 훗날 대리자로써 모든 신들과 전 세계인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저 미친년을 무릎 꿇린 채 죄를 밝히고 공개적으로 죽이던가.』


라의 말은 마치 묵직한 쇠망치로 후려치듯 김현후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저 미친년을 죽이는 것은 나중에 가서도 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심판자』라는 죄인에게 절대적인 무적을 자랑하는 힘으로 벼르고 벼렸던 분노를 토해내며 원수를 무릎 꿇렸지만, 이자나기라고 하는 「신」에게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의 약함이 역겹기 그지 없었다.

그 것을 알고 있는 라(Ra)였기에 김현후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저 미친 년은 대리자가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차라리 김현후 역시 대리자가 되어 일곱 신전의 신들과 전 세계인들이 보는 진정한 대리 전쟁(Proxy War)에서 『심판자』에만 의존하지 않은 채 상대를 무릎 꿇리고 죄를 밝혀 죽이라고.

김현후는 눈 앞의 복수심에 눈이 멀지 말고 조금 후의 미래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라(Ra)의 말에 담긴 “능력자로써도, 인간으로써도 모조리 말살하라는” 뜻에 가볍게 몸을 떨었다.


『아참, 김현후. 내가 솔깃한 정보를 줄까?』

라(Ra)와 김현후의 사이에 촐랑거리며 끼어든 토트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휘며 웃었다. 그야 말로 장난기가 가득 담긴 악동 같은 그의 모습에 눈동자에 의문을 담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간다.

『저 미친 년에 대한 정보인데. 어때, 좀 흥미가 생기시나?』

토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김현후였다.


*****


『키야- 그야 말로 네 생각에 취하는구만! 어떻게 정보를 듣자마자 저런 짓을 생각해 냈냐! 이거 완전 악마보다 더 한 새끼네!』

저 멀리 기절해 있는 아카 츠루미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과 동시에 김현후를 욕 하는 토트.

『크흐흐!! 오랜만에 토트 너와 생각이 일치하는군. 그야 말로 악독하기 짝이 없는 짓이 아닌가!』

토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광소를 터뜨리는 아누비스.

『…….』

그리고 할 말을 잃어버린 라(Ra)였다.


“당신이 말한 대로 저 미친 년이 한 짓에 대해서 확실하게 밝히고 죽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토트와 아누비스, 마지막으로 라를 보면서 멋쩍게 머리를 긁는 김현후.


기절해 있는 아카 츠루미의 모습은 그야 말로 처참했다.

미친 년이라는 속 알맹이를 제외하고 겉모습만을 본다면 누구라도 반할 것 같은 귀여움과 미모를 지닌 미소녀였던 아카 츠루미였지만, 지금의 모습은 흉악 그 자체.

발끝부터 머리 끝, 손 끝까지 먹물처럼 번져 있는 검은색의 선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비위가 약한 자가 봤다면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은 외형이 되어버렸다.

『죽음의 늑대를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다니. 내가 오히려 배워가는군.』

나직하게 감탄하는 아누비스.



김현후가 한 것은 간단했다.

하지만 미친 년도 여자는 여자. 그리고 여자에게는 “너무나도 치욕적이고 끔찍한 짓”을 해버렸다.

죽음의 늑대와 암무트는 아누비스가 다스리는 짐승들.

암무트는 죄인을 자신이 가진 악어의 입으로 씹어 먹어 몸 속에서 끝없는 고통과 절망을 준다면.

죽음의 늑대는 『저승사자』라는 느낌이 강했다.

죽은 안내하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으며, 죄를 지은 영혼을 잡아오는 번견이 바로 죽음의 늑대.

그렇기에 죽음의 늑대는 “죽음”을 몸에 품고 있다..

아누비스의 권속이며 죽음이 충만한 저승에 있기에 가능한 것.


김현후는 그런 죽음의 늑대의 붉은 발톱으로 아카 츠루미의 머리 끝부터 손끝, 발끝까지 선을 그어 내렸다.

피부에 살짝 생채기가 날 정도로만.

아카 츠루미의 몸 속에 깃든 힘들이 죽음의 늑대가 지닌 “죽음”에 저항하려 했지만 『심판자』의 힘을 발휘하여 그 것을 모두 무효화 시키고서 작업을 계속했다.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으로 호박에 줄을 긋듯, 죽음의 늑대의 발톱으로 아카 츠루미의 전신에 멋들어지게 선을 그어내자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피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살짝 껍질이 벗겨질 정도의 생채기.

하지만, 늑대의 발톱에 있던 『죽음』이 마치 저주처럼 스멀거리면서 영역을 넓혀간다.

피부 위에 완전히 자리 잡은 『죽음』은 아카 츠루미의 몸 속에 있던 힘들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지만, 그 저주에 담겨져 있는 힘이 『죽음』이라면 대항할 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들을 품고 있는 인간이 죽지 않게 하는 것까지가 아카 츠루미의 몸 안에 있는 힘들이 할 수 있는 최선.


이제는 진짜로 줄 그은 호박처럼 되어버린 아카 츠루미의 모습에 김현후도, 토트도, 아누비스도 한참 동안이나 웃었다.

아카 츠루미의 대외적인 신분과 직업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일.


『와, 진짜 나 같으면 자살한다. 저 년 깨어나면 아마 자기 피부를 뜯고 싶을거야. 물론 뜯는 순간 그 아래의 피부에 자연적으로 옮겨 갈 데지만 말이야.』

『크르르륵, 너무 웃었더니 배가 아파 죽을 것 같군. 내가 죽는 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이 미친년이 일본의 대기업 사장의 딸이며 동시에 유명 연예인이라고 하니 이 꼴로는 절대로 사람들 앞에 나서질 못하겠군. 크하하하하!!』

“다음에 볼 때는 저 년이 죽던지, 아니면 제가 죽던지. 둘 중 하나겠지요. 물론 저 년이 무조건 죽을 테지만요.”

대폭소를 하는 토트, 아누비스와는 반대로 김현후는 이제 웃고 있지 않았다.

그 것은 약속이었다.

앞으로 있을 일들을 모두 이겨내고 대리자가 되어 아카 츠루미를 만신(萬神), 만인(萬人)의 앞에서 반드시 그 죄를 묻고 죽이겠다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

그 전에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이아인을 회복 시키는 것.

김현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라(Ra)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아카 츠루미를 어깨에 짊어졌다.

『아자나기는 이미 도망갔군. 아까와 같이 덤벼 들면 좋았으련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라의 말에 토트와 아누비스의 눈이 놀란 토끼 눈처럼 동그랗게 떠진다.

『신조차 버리고 간 이 미친 년은 에프터 서비스로 일본에 대충 던져주도록 하지.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 던져 놓을 테니 기대해도 좋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라(Ra)의 눈에 깃든 음흉함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서 두 신(二神)과 일 인(一人)이 몸을 움찔 떨었다.

『과, 과연. 눈 빛만으로 우리의 오금을 저리게 하다니, 역시 최고 존엄…….』

토트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들의 모습이 점차 흐릿하게 변해간다.


『크흐, 힘내라 김현후. 너의 사후에 다시 보도록 하지.』

실로 사신(死神)다운 말을 남긴 채 사라지는 아누비스.

『나는 언제나 똑 같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힘내라 이 녀석아.』

답지 않게 자상한 어투로 말을 건네고서 모습을 감추는 토트.

『내가 있는 곳까지 오너라. 남아 있는 일곱의 시련을 뛰어 넘어 최후의 시련을 받으러 나를 찾아 오거라. 기다리고 있겠다 김현후여.』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사라지는 라(Ra).


그리고 김현후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모습을 자신의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


눈을 감았다 뜨자 폐허였던 풍경이 사라지고 깨끗하기 그지 없는 병원의 내부가 보인다.

시선을 돌려 바닥을 바라보자 핏자국은 사라져 있었지만, 비릿한 피 냄새는 여전히 잔향을 남기고 있었다.

고개를 들며 몸을 돌리자 그 곳에는 이아인이 있는 병실의 문이 보인다.

문 손잡이를 잡으려다가 멈칫하면서 손을 내렸다.

“……나중에, 다시 올게. 그 때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가 인적이 없는 병원 복도에 아련하게 울려 퍼지고.

김현후는 붉어진 눈으로 눈물을 참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김현후의 그림자에서 꿈틀거리던 두 마리의 짐승이 은밀하게 이아인이 있을 병실로 스며 들었다.

죽음의 늑대 두 마리는 자신을 부리는 주인의 명에 따라 “이아인”에게 해를 입히려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차단하는 방패이자 창이 될 것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병실의 안.

가는 숨을 몰아 쉬며 생을 이어가고 있는 이아인.

그녀를 지키는 방패이자 창의 역할을 맡은 죽음의 늑대들이 그림자 속에 숨어 노란색 눈을 번뜩였다.




김현후.

토트의 시련을 통과.

아누비스의 시련을 통과.

앞으로 도전자의 자격을 얻기까지 남은 시련은 여덟.

도전자가 된 후 대리자가 되기 위하여 통과해야 할 시험은 하나.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작가의말

문맥상 어색한 부분, 또는 오탈자 지적은 언제나 감사히 받겠습니다.

선추코 3종 세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이번 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려 세 번이나 갈아 엎는 바람에 이제서야 올리게 되었네요.
벌써 새벽 3시.. 피곤합니다 ㅠㅠ
얼른 후기를 마저 쓰고 가서 자야겠습니다...

 

%%%%%

 

태양신 라.
이집트 제 5왕조로부터 주신으로 모셔진 이집트 신화의 최고 신.
라는 태양신이자 창조신으로도 유명하다.

라는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마다 지칭되었던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태양신 라.
아툼이라는 호칭으로 칭해졌었으며, 프타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훗날에는 라와 호루스가 합쳐지며 호라크티 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또한 역사가 긴 이집트인 만큼 태초의 8신 중 하나인 아문과 합쳐져 아문-라 또는 아몬-라 라고도 칭해졌었다.

 

동틀 무렵의 태양, 일출 때의 태양을 케프리.
정오에 하늘 중심에 떠 있는 태양을 라.
해가 지는 무렵의 태양, 일몰 때의 태양을 아툼.

 

-나무 위키에서 참조-


$$$$

 

저는 그럼 이만 푹 자고 다시 다음 편을 쓰기 시작해야겠군요.
이번 편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긴 했지만, 저는 지금 버전이 제일 마음에 드네요.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


덧1 : 저번 편에서 "이자나기"를 "이자나미"라고 잘못 칭하였습니다. 저번 편도 수정이 완료 되었으니 이번 편의 "이자나기"라 쓴 것에 당황하지 마시길 ^^

덧2 : 아누비스 말투 오그리토그리... 아오....

덧3 : 평소보나 용량을 2배나 썼습니다 선추코 주세요!! m(_ _)m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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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제 6장 - 태양신 라(Ra) +12 15.07.18 1,221 28 14쪽
29 제 6장 - 태양신 라(Ra) +5 15.07.15 876 29 9쪽
28 제 6장 - 태양신 라(Ra) +1 15.07.15 927 18 9쪽
27 제 5장 - 1년 후. +7 15.07.14 857 25 13쪽
26 제 5장 - 1년 후. +3 15.07.14 864 16 12쪽
25 제 5장 - 1년 후. +2 15.07.14 987 11 10쪽
24 제 5장 - 1년 후. +8 15.07.06 1,353 25 17쪽
23 제 5장 - 1년 후. +5 15.07.05 1,273 22 16쪽
22 제 5장 - 1년 후. +6 15.07.04 1,022 27 15쪽
» 제 4장 – 검은 날개의 쟈칼과 춤을. +9 15.07.01 1,102 26 22쪽
20 제 4장 – 검은 날개의 쟈칼과 춤을. +6 15.06.30 992 23 12쪽
19 제 4장 – 검은 날개의 쟈칼과 춤을. +3 15.06.29 1,094 22 13쪽
18 제 4장 – 검은 날개의 쟈칼과 춤을. +3 15.06.28 1,124 25 10쪽
17 제 4장 – 검은 날개의 쟈칼과 춤을. +2 15.06.28 1,049 21 8쪽
16 제 4장 – 검은 날개의 쟈칼과 춤을. +1 15.06.27 1,056 24 11쪽
15 제 3장 – 다시 신전으로. +2 15.06.26 1,085 24 10쪽
14 제 3장 – 다시 신전으로. 15.06.26 1,148 24 12쪽
13 제 3장 – 다시 신전으로. +2 15.06.23 1,137 23 13쪽
12 제 3장 – 다시 신전으로. +4 15.06.20 1,163 24 16쪽
11 제 2장 – 서고의 관리자이자 지혜와 지식의 신. +2 15.06.19 1,163 20 14쪽
10 제 2장 – 서고의 관리자이자 지혜와 지식의 신. +2 15.06.18 1,119 23 8쪽
9 제 2장 – 서고의 관리자이자 지혜와 지식의 신. +3 15.06.18 1,213 21 11쪽
8 제 2장 – 서고의 관리자이자 지혜와 지식의 신. +3 15.06.17 1,255 24 14쪽
7 제 1장 – 신전의 지킴이. +2 15.06.17 1,275 30 7쪽
6 제 1장 – 신전의 지킴이. +2 15.06.11 1,295 27 10쪽
5 제 1장 – 신전의 지킴이. +4 15.06.11 1,283 27 7쪽
4 제 1장 – 신전의 지킴이. +1 15.06.10 1,323 27 8쪽
3 제 1장 – 신전의 지킴이. +1 15.06.10 1,484 27 9쪽
2 제 1장 – 신전의 지킴이. +1 15.06.10 1,679 25 11쪽
1 제 0장 – 절대적 규칙(Absolute Rule) +2 15.06.10 1,993 34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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