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을 씹어먹는 특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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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천국
작품등록일 :
2023.12.11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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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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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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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DUMMY

조용했다.

장외도.

나와 조견도.


“...”


자신이 서있는 곳을 잠시 내려다보던 조견은, 한숨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이어 비무대 위로 걸어올라온 그는, 내 손을 덥썩 잡았다.


그리곤 정말 기쁜 듯한 목소리와 함께, 잡은 손을 들어올렸다.


“이 나의 오랜 친구가, 본 무투회의 유일한 승자가 되었소!”

“와아아아아아아!!!”


와, 이 남자...

신경도 굵지.


어쩌면 이 사람은, 인간의 탈을 쓴 능구렁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밝은 목소리와는 반대로, 내 손을 잡은 손아귀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요놈봐라?

이건 무언의 선전포고지?


나 역시도 손아귀 힘으론 누구한테 뒤지지 않는다.

나도 조견처럼 손아귀에 힘을 넣었다.

인정사정 없이.


그러자 당장, 조견의 관자놀이에 변화가 왔다.

푸르죽죽한 힘줄이 삐직 드러난 것이다.


“...”

“...”


잠시 후, 그는 입술을 달짝거리듯이 하여 말했다.


“강공자··· 고작 하루만에 얻어낸 인기로, 앞으로 내게 대적할 생각인가.”


관중을 고려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내게 한 말이다.

그리고 조견이 내뱉은 그 말엔,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이 담겨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무학을 숭상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오늘의 챔피언은 나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자, 조견은 관중을 향해 이어말했다.


“아직 이번 무투회를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많이 있으니, 천···천히 드시고 가도 좋습니다. 저희 세가를 찾아 멀리서 오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부디 오···늘의 무투회가 여러···분들의 무학 정진에···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중간 중간 말끝이 흐려진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먼저 손아귀에 힘은 왜줘?


무투회는 이것으로 종료되었다.

길게는 일주일도 넘게 진행된다는 선아의 말이 무색하게.


덤덤히 무투회의 종료를 선언하며 내 손을 놓아준 조견의 인내심을 높게산다. 짐작컨데, 나와 맞잡았던 저 손은, 이틀쯤은 붕대를 감고 다녀야 할 것이다.


“멋진 대련이었소!”

“좋은 구경 했소이다!”


선아를 향해 걸어가는 내게,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뭔가 적응이 잘 안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선아 앞에 서서 말했다.


“오래 기다렸지··· 이제 접객관으로 가자꾸나.”

“접객관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일단 옷을 좀 갈아 입으려고.”


선아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랐다. 내가 발걸음을 빨리 놀리자, 따라걷는 선아의 발걸음도 자연히 빨라졌다.


조견과 척을 지기로 한 이상, 이제 빨리 움직여야했다.

선아는 오는 내내 한마디의 말도 없더니, 접객관까지 오고나서야 입을 열었다.


“공자님.”

“응.”

“그 자와의 면회를 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온지요.”


그 자?


...아아.

무혼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조견을 이긴 대가로 요구한 소원이 그것이었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선아야.”

“네.”

“어쩌면 세가 내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선아의 얼굴엔 언제나처럼 큰 긴장감이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나는 그 싸움에서, 조견과 대적할 생각이다.”


나의 말에서, 그녀 어느 정도의 무게를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결국, 그 쪽 갈림길에 서셨군요.”


그 쪽 갈림길이라.

일전에 선아가 봐주었던 관상이 떠올랐다.


-그 살생의 업이 이곳까지 이어져있으니, 공자님은 반복해서 누군가를 죽일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물었었지.


음.

생각해보면 그녀의 관상대로, 스스로 위험한 길로 들어선 셈이긴 하다.


선아는 이어 말했다.


“잘은 모르나, 강공자님께서 굳이 나서지 않았서도 될 상황이 아니었는지요.”


무엇을 가르킨 말인지 안다.

내가 이 무투회의 연무장에 처음 나설 때의 상황을 가리킨 말이리라.


“그렇게 보였느나···”


그리고 난 확신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음을.


어디서부터 말해야할지 고민하는데, 어느덧 선아와 나는 접객관에 도착했다.

난 짧게 고민을 마친 다음 말했다.


“선아야.”

“네. 공자님.”

“잠시 기다려다오.”


고개를 갸웃 하는 선아를 두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입던 옷을 내팽개친 나는, 침대옆의 서랍부터 열었다.

거기엔 전생에서 쓰던 나의 전투장비들이 놓여있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챙겨 입었다.

방탄복을 입고, 그 윗옷의 안쪽주머니엔 수류탄을 채운다.

바지를 입고 허벅지에는 홀스터를 채운 뒤, 그 총집 안에 권총을 넣는다.


목에는 쌍안경의 목줄과 군번줄을 건 다음, 옷장을 열었다.

옷장안에 걸려있는 여러벌의 옷들은 모두 재양이 챙겨준 것.


나는 그것들 중 한 벌을 꺼내, 전투장비 위로 걸쳤다.

전투화까지는 감추는것은 무리겠지만, 그나마 이 시대의 복색과의 위화감은 많이 감해졌으리라.


나는 구석자리의 책상으로 가, 이미 갈려있는 벼루의 먹에 붓을 찍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그대가 같이 가자고 했던 곳에서 보자.’


악필이긴 했지만 못읽을 정도는 아니다.

볼일을 마친 내가 복도로 나가자, 마주친 몇몇 객들이 나를 알아보았다.


“어? ···무투회에서 판막음을 하신 강공자가 아니시오?”

“강공자! 나 진모장을 쓰러뜨리시는걸 잘 보았소! 속이 다 후련해지는 한 판이었습니다!”

“조견 도련님과의 대무를 장외로 마무리 짓는 건 의외였습니다, 하하. 친우라서 일부러 그리하신 겁니까?”

“때문에 무투회가 빨리 끝나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만족하오.”


연무장에서도 이미 느꼈던 관심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목례한 다음 복도를 나섰다.

다시 접객관 밖으로 나온 뒤, 나를 기다리던 선아에게 말했다.


“잠시 재양의 처소에 들렸다가, 세가 밖으로 나가자구나.”

“...막내 도련님 처소 말씀입니까?”

“그래.”


선아는 순순히 나를 따라왔고, 재양의 처소 앞에서는 시종하나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헛기침 하자, 녀석은 나를 알아보았다.


나와도 안면이 있는 시종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강공자님.”

“그래··· 재양은 안에 있느냐?”

“도련님이요? 아직 무투회의 뒷처리를 하고 있을 것으로 압니다.”

“음··· 그렇느냐.”

“아. 강공자님이 무투회를 판막음을 했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오후엔 청소하느라 직접 못본 건 아쉽지만, 축하드립니다.”


이 세계는 무학을 중시하는 세계.

나는 시종의 눈에 담긴 부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적어왔던 종이를 내밀었다.

두손으로 종이를 받아든 시종이 물었다.


“이게 무엇이옵니까.”

“재양이 오면 전해주거라.”

“알겠습니다.


이어서 나는 선아에게 말했다.


“자, 가자꾸나!”

“...”


날씨는 여전히 좋았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은 시간.


세가의 정문으로 말없이 따라나온 선아는, 조용히 물어왔다.


“공자님. 어디로 가시려는 것인지요.”

“그, 매월관이라는 곳··· 아느냐?”

“매월관 말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주점에 들리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 아니시온지요.”

“뭐 어떻느냐··· 그래, 그곳에 가본 적은 있느냐.”

“안까지 든 적은 없지만, 그 위치는 압니다.”

“그럼 앞장서다오.”


선아는 그렇게 했다.

자주 세가 밖을 돌아다니진 않았었지만, 평소에 비해 거리는 한적해보였다. 어딘지 활기가 없는 모습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선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많은 이들이 세가의 무투회를 보러 갔을테니까요··· 세가의 무투회는 이 지역에서 축제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식당 같은 곳들은 문을 닫은 곳도 많을 것이옵니다.”

“아··· 그럼 혹시 그, 매월관도 문을 닫았을 수도 있겠네?”

“가보면 알 테지요··· 거의 다 왔습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매월’이라는 간판을 올린, 4층짜리 건물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입구문을 밀어보았고, 다행이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어···? 아직 영업 전인데요?”


카운터로 보이는 자리에 앉은, 여자의 말이었다.

나이는 어림잡아 30살.


그녀는 가슴골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채, 곰팡대를 입에 물고 있었다.

땋아올린 머리에는 여러개의 비녀가 꽂혀 있었고, 입술과 손톱을 붉게 물들어있었다.


여러모로 도발적인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나는 ‘후-’ 하고 연기를 내뿜는 그녀에게 물었다.


“여소협이, 여기 주인입니까?”

“네. 매월관의 주인, 매월이라 하옵니다··· 보시다시피 여급들이 심부름을 나간 상태라, 조금 있다가 오심이 어떠한지요.”


그녀의 말대로, 넓은 주점에 아직 손님도 일하는 사람도 없어보였다.

이른 시간엔 열지 않는 주점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재양의 추천으로 왔습니다.”

“재양?”


이윽고 그녀는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혁련 세가 막내 도련님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 그럼 혹시, 도련님이 말한 그 강공자님?”

“···강씨이긴 합니다. 재양이 저에 관해서 말했었나 보군요.”

“언젠가 한번 데려오겠다고만 했었어요. 이렇게 풍채 좋은 분이신지는 몰랐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쨌건 이미 여기까지 발걸음을 한지라··· 매장 열기 전까지, 여기서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여기서요?”

“아. 조금 있다가 재양이도 올 겁니다.”


매월이라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중은 필요없으신가요?”

“네. 괜찮습니다.”


전생에서도 아가씨가 나온 술집은 잘 가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 잘 적응되지 않아서다.


“탁자 치워진 곳 아무데나 앉으세요. 술이랑 안주는 제가 알아서 내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주변을 둘러본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내 맞은 편에 앉은 선아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술집에 오는 것은 처음이네요.”

“어, 술 못마셔?”

“네... 입만 대도 취하는 편이라.”


막상 단 둘이 앉고나니 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주점 자체가 조용한지라, 카운터에 있는 여주인도 신경쓰이고.


오래지 않아, 카운터 쪽에서는 과일을 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내가 하려했던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는데, 선아가 먼저 말했다.


“그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짜고짜 그리 물으면 무슨 질문인지를 모르지.”

“어젯밤, 공자님께서는 제게 피를 묻히는 자리를 피하고 싶다고 하셨잖습니까.”

“...관상볼 때 말이지? 그랬지.”

“그럼에도, 둘째 도련님과 대적하기로 마음먹으신 겁니까?”


선아는 그저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 볼 뿐.

그 어떤 재촉도 없었다.


다만 그 질문 덕에, 내가 할말이 더 잘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

“그렇습니까.”

“음··· 편하게 답해봐···”


나는 더 나은 표현을 골라보다 포기한 채 말했다.


“너는 재양이 좋아, 아니면 조견이 좋아?”

“...”


나의 질문에 선아는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당황했다는 그녀 식의 표현인 모양이었다.


···왜 그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보단 세련된 질문이잖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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