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빙의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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쨈스톤
작품등록일 :
2024.01.31 09:15
최근연재일 :
2024.02.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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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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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귀문을 닫은 자는 길을 잃고.

DUMMY

임금이 이르기를,

“백성의 눈을 흐리는 무당의 무리를 성 밖으로 추방하라.”


그로부터 달이 세 번 기우는 동안,


흰 여우 떼가 출몰해 민가를 덮쳤다.

온 산천의 나무가 썩고 강물이 말랐다.


범이 자신을 노려보는 악몽에 매일 시달리던 임금은 결국, 그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임금이 무당들의 우두머리를 곁으로 불러 나라의 명운을 묻자,


“북동쪽(北東) 끝에 요사스러운 귀문(鬼門)이 있으매, 신명을 바쳐 이를 봉인하면 국운이 하늘 높이 뻗을 것으로 아뢰오.”


이에 임금은 그를 귀령군(鬼領君)으로 봉하고, 대대로 북동의 땅을 다스리도록 했다.


그러자, 가가호호 평안이 가득하고, 풍요가 넘쳐나니 나라의 권세가 과연 사방에 뻗쳤다.


빨간 불길이 치솟는 귀문 너머의 세상.

그곳에 머물던 한 귀신은 귀문 바깥이 늘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 날에 소멸을 각오한 채, 귀문을 비집고 기어 나왔다.


허나, 바깥엔 그가 즐길 거리 따위는 없었다.


따분했던 귀신이

인간 하나에게 다가가 밤낮으로 속삭였다.

그러자 인간이 견디지 못하고 목매어 죽어버렸다.


다시, 다른 이에게 밤낮으로 속삭였다.

그 역시 견디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어버렸다.


귀신은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이에게 밤낮으로 속삭였다.

그는 오히려 기뻐하며 귀신의 목소리를 매일같이 청하고, 극진히 모셨다.


달이 유난히 붉던 날 밤.

그는 귀신의 목소리를 따라, 무당 하나를 죽음으로 몰아냈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와, 귀신을 모시는 자에게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귀문이 열렸습니다.”


*


귀문이 개방되고,

서른다섯 해가 지난 어느 날.


경기도 파주에 자리한 스튜디오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오케이, 컷!!!”


스태프들이 세팅을 손보는 동안, 촬영분을 체크 하던 감독은 지난날의 맘고생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범죄 스릴러물에 한 획을 그을 작품의 감독직이 확정되던 날. 이미 내정됐다는 주연 배우의 이름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었다.


폭발하는 광기로 관객의 숨통을 쥐어야 할 역할에 로맨스 전문 배우라니.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다 못해, 밥상째 때려 부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그 배우가 지금 모니터 안에서 낄낄대며, 위태하게 쥔 칼로 상대를 위협하고 있다.


그 칼끝이 상대의 눈을 당장이라도 찌를 듯 날카롭게 서 있었다.


“컷!”


사인과 동시에 매니저가 프레임 안으로 뛰어 들어와 배우를 잡아챘다.


감독이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배우를 흘끗 바라봤다. 배우는 아직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한 상태였다. 감독은 그에게 달려가 절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감정선, 표현, 텐션···.

무엇 하나 나무랄 게 없었다.

그야말로 살인에 중독된 사이코패스 그 자체였다.


감독은 생각했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가면, 저 배우는 희대의 살인마 연기로 회자 될 것이라고. 자신이 메가 히트작 감독 반열에 오르는 것 역시, 당연한 순서라고.


감독 주변에서 함께 모니터를 보던 스태프들도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와, 이 동작 감독님이 디렉팅 하신 거예요? 완전 신들렸는데요??”


“분장 팀도 살벌하게 하네. 배우 눈에 핏발 선거는 어떻게 만든 거야?”


그 사이에 함께 있던 음향 스태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좋은데··· 아까부터 미세하게 잡음이 잡히더니 여기선 좀 심하게 걸리네요?


뭐지? 누가 속삭이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들은 조감독도 모니터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 감독님. 이거 한 번 봐주세요.

노이즈 난거 아니에요?”


*


“촬영 끝!! 수고하셨습니다!!!”


한 남자가 촬영분을 돌려보느라 정신없는 감독 뒤에서 인기척을 냈다.


“감독님, 고생하셨어요.”


감독이 돌아보자 보이는 말끔한 얼굴.

방금 전까지 모니터 속에 있던 미친 살인마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감독이 굳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했다.


“아이, 그런 말 말어! 고생은 무슨.

우리 주연 배우님이 다 해놓고.

자기가 이 영화로, 여기 있는 스태프들 다 먹여 살릴 거야. 이거 돼. 무조건 대박 나.”


그 말을 들은 배우가 헤실거리며 대꾸했다.


“다 차린 밥상에 주제도 모르고 숟가락 얻는 놈이라며 날뛰던 분 아니세요? 그분이 이렇게 말하니까 재밌네요.


이제 그 숟가락으로 이 할 일 없는 사람들 다 처먹이면 된다는 거죠?”


순간 감독을 비롯하여 주변 스태프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평온한 표정으로 내뱉는 배우의 말에,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황당한 눈빛만 주고받았다.


배우는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쿡쿡거리며, 자리를 떴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감독이 먼저 말을 뱉었다.


“완전 X라이 새끼네, 저거.


아니 근데, 밥상 어쩌고는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야, 조감독. 네가 떠벌렸냐?”


배우가 그들의 언쟁을 뒤로 하고, 분장실로 향했다. 그 뒤를 한 남자가 따라나섰다. 남자가 분장실로 들어서자마자, 배우는 손에 든 물병을 그의 얼굴에 힘껏 집어 던졌다.


남자는 덤덤하게 물통을 주워들고, 얼굴에 튄 물을 닦아냈다.


“아우, X발!!!!!!!!

난 너같이 주제 파악 못 하고 날뛰는 것들만 보면 복장이 터져 죽겠어!!!


이 형이 너는 벌레 같은 새끼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왜 말귀를 못 알아듣니!!! 말귀를!!!”


얼굴이 시뻘개 질 정도로 제 가슴을 때려가며, 분을 토해내던 배우는 갑자기 남자의 코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남자의 얼굴을 톡톡 치며, 달래듯이 읊조렸다.


“X같은 새끼가 왜 촬영을 방해하는데. 벌레 새끼가 프레임 안에 끼면 돼요, 안 돼요.”


말없이 뺨을 맞던 남자가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상대역 맡은 분이 칼에 찔릴까봐, 저도 모르게···.


곧, 분장실 안에는 뺨치는 소리만 울렸다.


찰싹

찰싹

“저딴 단역 하나 뒈진다고, 영화가 엎어지기라도 해?”


찰싹··· 찰싹··· 찰싹···

“이래서 네가 주제를 모른다는 거야. 형이 오늘 아주 확실하게 가르쳐줄게!!”


찰싹!! 찰싹!! 찰싹!! 찰싹!!!


한편, 분장실 문 앞에는 의상을 가져다 놓으려던 여자 스태프 둘이 동동거리고 있었다.


처음에 엿들은 대화 정도는,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연예계의 민낯인가 싶어 흥미로운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에 그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소리만 들어도 심각한 수준의 폭행이었다.


참다못한 여자 스태프 중 하나가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분장실 안에 큰일 났어요!! 도와주세요!!”


*


차웅은 출동하자마자, 목격자 증언을 수집했다.


“우리가 분장실에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고함이랑 비명이 난리도 아닌 거예요.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어서 얼른 사람들 불러왔어요.”


“사람들이 몰려왔는데도 지 매니저를 후두려 패더라니까? 보니까 완전 맛이 갔더라고.”


“아이, 그래서는 뭐.

한 열댓 명 들러붙어서 간신히 떼어 놨죠.

지금은 분장실에 격리해 놨어요.”


마지막 증인이 증언을 마칠 때쯤, 차웅의 반대쪽에서 중년 경찰이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피해자는 지 밥줄이 걸렸다고 합의로 가겄다는디?”


차웅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서자, 중년 경찰은 쯧 소리를 내며 뒤를 따랐다. 그러더니 분장실 앞에서 차웅을 슬쩍 밀어내고 문고리를 잡았다.


“에헤이, 뭐하는 겨.

정신 나간 놈 심문은 나 같은 베테랑한테 맡기고, 자네는 배워.


이 기회에 선배에 대한 존경심도 더불어 쌓으라고.”


멍하니 앉아 있던 배우는 분장실에 들어선 두 경찰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중년 경찰이 선배의 위엄을 보여주고자 입을 막 떼려고 할 때, 뒤쪽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아우 씨! 뭐야!! 깜짝이야.”


뒤를 돌아본 곳엔 잔뜩 몸을 움츠린 차웅이 있었다. 중년 경찰이 한심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얼씨구? 도련님 납셨네.

사건 현장 처음 봐?”


마주한 차웅의 눈에 얼핏 눈물이 글썽이는 듯도 했다.


“환장하겄네.”


중년 경찰이 한숨과 함께 다시 배우 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이름난 배우님이 어쩌다 그러신겨.

나 완전 그짝 팬 이잖어~

그냥 동네 형이다~생각하고 속 터놓고 말해보셔.”


“······.”


“나도 예술가들이 예민하다는 건 잘 알어.”


중년 경찰이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배우가 웃음기를 머금고 대꾸했다.


“여기도 주제 파악 못 하는 새끼가 있네?

개나 소나 예술 들먹이는데 역겨워 죽겠어.”


“아니, 이 양반이 지금 경찰한티 뭐라는겨? 눈에 뵈는 게 없나.”


중년 경찰이 배우와 거리를 좁히려 드는데 만류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차웅이 바들거리는 손으로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


“서, 선배님, 참으시죠.

일단 나가서 얘기 좀···.”


“아, 차 순경!! 이거 못 놔??

현직 경찰한테 저따구로 씨부리는걸 냅두면, 경찰차 끌고 댕길 명분이 있겄어?!?!”


차웅이 좀 더 강하게 중년 경찰의 팔을 끌었다. 영문 모를 표정으로 바라보는 중년 경찰 너머에 히죽거리는 배우가 있었다.


그를 본 차웅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보여선 안 될 것이 눈앞에 있는 탓이었다.


전신이 온통 문드러진 형체.

그것이 차웅을 노려보고 있었다.


*


얼마 후, 한 무당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 기세가 마치 과거에 급제라도 한 듯 등등했다. 그가 의식 준비를 마치고, 한쪽에 서 있는 차웅에게 다가갔다.


“거봐, 내가 필요할 거라 했지?

불교에서는 옷깃만 한 번 스쳐도···.”


“저 무교입니다.

얼른 가서 확인이나 해주시죠.”


보지도 않고 차갑게 자르는 차웅을 보며, 금룡이 가늘어진 눈으로 말했다.


“참나, 더럽게 까칠하네.

필요하다고 애타게 찾을 땐 언제고.”


금룡이 몸을 휙 돌려 묶여있는 배우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외쳤다.


“대상자 빙의 반응 확인됐고요.

지금부터 퇴마 시작 합니다잉!


빙의자와 대화, 눈 맞춤 일체 금지, 다들 알죠?”


금룡이 무령과 목검을 꺼내 배우의 몸을 후려쳤다. 그러나, 그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금룡의 의식이 속절없이 길어졌다.


배우는 여전히 한 번씩 움찔거릴 뿐,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누워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금룡의 기운이 눈에 띄게 쇠했다. 기세 좋게 촬영장으로 들어오던 사람과는 아예 다른 이 같았다.


멀찍이 지켜보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점차 커졌다.


“빙의 아닌 거 아냐?”


“그러게, 이거 수습 안 될 거 같으니까 쇼하는 거 같은데?”


“저 무당도 무속청에서 부른 거 아니라며? 무당 맞긴 한가 몰라.”


그사이에 섞여 있던 차웅이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 무리 밖으로 몸을 뺐다.


딸랑-딸랑-


금룡이 내는 방울 소리가 격해지던 그때, 갑자기 배우가 몸을 비틀어가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꺄하하하하!! 맞구나? 맞네! 여기 있었네!”


배우의 눈알이 빠져 버릴 듯,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사방을 살피다 순간, 차웅에게 시선을 꽂고는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맞아, 맞네. 낄낄낄!”


“······.”


“여기 있었구나?

썩어빠진 피가 흐르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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